동서고금의 현자들이 피, 숨결과 눈물로 올린 기도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다. 토해 내고픈 속엣것, 정갈하게 닦아 바치는 영적 제물이기도 하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어제의 기도와 오늘의 기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속했다 할지라도 각자 기도 드리는 내용이 다르기는 마찬가지다. 매 시간, 저마다 느끼는 삶의 무게와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는 올리는 자의 시각과 감정, 또 그 사람이 처한 시대와 사건을 반영한다. 각자 다른 사연으로 올리는 기도문 안에서 세기와 인종, 종교를 아우르는 염원과 보편한 깨달음을 발견한다면 내적 영성을 한층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기의 기도》는 로버트 밴 더 웨이어(Robert Van de Weyer)가 편집한 《Books of Prayers》(Castle Books, 1997)를 이현주 목사가 우리말로 옮기고 엮은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토머스 모어, 에라스무스, 장 칼뱅, 블레즈 파스칼, 토마스 아퀴나스 등 개신교나 가톨릭계에서 잘 알려진 종교개혁가, 성직자, 신학자 등이 올린 기도문부터 아즈텍 부족, 딩커 족 등 문명화되지 않은 부족의 기도문이나 이슬람을 창시한 무함마드, 시크교를 창시한 나나크의 기도문 등 여러 지역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모았다.
동서양 철학을 두루 공부해 얻은 영적 양식을 이웃과 나누는 데 애쓰는 이현주 목사는, 매일 아침 기도문 한 편씩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성스런 에너지를 가슴 깊이 느꼈다고 한다.
지난 일 년 남짓한 세월, 이 기도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참 많이 행복하고 감동하였습니다. 기도문 한 줄 한 줄에 배어 있는 거룩하고 따스한 기운이 그대로 제 삶의 갈피에 스며들어오는 느낌이었고, 그것을 세상에 나눠드리고 싶었습니다. (……) 부디 이 거룩한 에너지 보고(寶庫)를 머리맡에 두시고, 힘들 때나 고마울 때나 외로울 때나 심심할 때에 아무데나 펼쳐서 눈길 닿는 대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읽으시는 바로 그 구절을 통하여 그때그때 필요한 위로와 격려와 깨우침의 성스런 에너지가 틀림없이 여러분 가슴에 전달될 것입니다.
- 〈옮긴이의 글〉에서
이 책에 실린 기도문들에는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에 강인한, 어리석음을 고백하기에 지혜로운 여러 현자들의 피와 숨결, 눈물이 담겨 있다. 이 기도문들을 보면, 기원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착점도 지름길도 없이,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진 절대자를 향한 믿음과 깨달음을 향한 열망이 느껴진다.
성전 밖 하느님을 향한 외침
“왜 아이들이 기아에 허덕이다 죽어가야 하나, 왜 아무런 죄 없는 시민이 폭탄 세례를 받아야 하나, 아흔아홉 마리 양을 가진 자가 가난한 농부에게서 한 마리 양을 빼앗는 일이 세계 각 나라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신은, 왜 가만있는가.”
기도는 때로는 눈물이기도 하고 환희, 수줍은 고백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신의 침묵에 던지는 물음일 때도 있다. 기도문 안에는 성전 안과 밖에서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숱한 부조리와 핍박에 갈등하고 고통 받는 자들의 외침이 생생하다.
그리스도님, 어찌하여 이 땅에 전쟁과 학살을 허용하십니까? 무고한 사람들이 잔혹하게 박해당하는 것은 무슨 감추어진 심판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에게 확실한 것은 당신 백성이 하늘에서 평화를 얻으리라는 것과 그곳에서는 아무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뿐입니다. 황금이 불로 순화(純化)되듯이 육신의 시련으로 영혼이 맑아져서, 저 밤하늘 별들을 넘어, 당신의 하늘나라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갖추게 하소서.
- 앨퀸의 기도문에서 (310쪽)
신문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적 신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어떻게 사람을 고문할 수 있는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증인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 눈물로 간구합니다. 같은 사람에게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히는 자들을 부디 도와주십시오. 그들 가슴에서 증오를 제거해주시고,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십시오.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에게 힘을 주시고, 용기와 함께 더욱 든든한 믿음을 주십시오.
- 마이클 홀링스의 기도문에서 (30쪽)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노래
기도는 소박한 고백을 담기도 한다. 내면의 모순된 감정을 정제해 영적으로 새로 거듭나는 일은 먼저 자신이 작디작은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자연을 창조주 하느님으로 생각한 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천국이 멀지도 높지도 않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이곳,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머무는 곳에 있다고 느껴진다.
제가 두려운 것은, 주님, 궁핍 그 자체가 아닙니다. 목숨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을 테니까요. 진짜로 무서운 것은 좌천과 실직이에요. 동전 한 닢 없어서 그래서 돈 말고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될까봐 그게 두렵습니다. (……) 주님, 남들을 질투하게 될까봐 그것이 겁납니다. 경멸하는 말투로 “그자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하면서 속으로 이를 갈지 않을까, 그게 두렵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주님, 저는 제가 얼마나 탐욕스러운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간의 위엄을 지킬 수 있도록 저에게 은총을 베풀어달라고, 주님, 당신께 시방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 폴 게레스의 기도문에서 (91쪽)
이현주 목사는 〈옮긴이의 글〉에서, “사람이 살면서 하느님께 기도드릴 수 있다는 사실, 그 기도를 통해 하늘로부터 성스런 에너지를 공급받고 온갖 아픔과 번뇌, 상처를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영양소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더없이 큰 축복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