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양장)

한국과 일본, 역사 인식의 간극 : 동학농민전쟁, 3·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시선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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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동학농민전쟁, 3ㆍ1운동, 관동대지진을 둘러싼
‘일본인의 눈에 벗어난’ 한국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다
와타나베 노부유키의 질문은 이렇다. “한국과 일본은 왜 역사를 두고 다투는가?”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영유권 등의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은 오랜 세월 갈등을 겪었다. 서로를 향해 혐한과 반일의 감정을 서슴지 않고 드러낸다. 왜 다투는 걸까?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역사 인식의 근원은 무엇인가? 역사 전문 기자로서 40년간 일선에서 활동한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스스로 직접 사료를 찾아 나선다. “우선 해야 할 일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모습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아래 일본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일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사실史實을 하나둘 찾아간다. 동학동민전쟁, 3ㆍ1운동, 관동대지진에 얽힌 숨겨진 역사와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자신도 몰랐던 역사에 관해 놀라며 그는 거듭해서 이렇게 묻는다. “과연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까지 찾아내는 등 저자의 세밀하고 성실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두었다. 이 책은 2021년에 일본의 퓰리처상이라는 불리는 ‘평화ㆍ협동 저널리스트 기금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시작은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소송’을 둘러싼 한일 갈등의 원인을 찾고자 하는 탐색이지만, 그 원인을 찾아가면서 숱한 의문점과 마주한다. 그 대부분이 한국인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일본인들은 모르거나 모호하게 아는 사실들이다. ‘불법적인 한국병합’ ‘동학농민전쟁의 의병 진압’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빨치산과의 전쟁’ 등이 그것이다. 기자로서 또 일본인으로서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객관적이며 냉철하다. 이러한 입장과 자세는 어쩌면 한일 간의 역사 인식의 차를 좁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요구되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냉정하게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다.”
저자

와타나베노부유키

저널리스트이자논픽션작가.1955년에태어나와세다대학교정치경제학부를졸업했다.2018년까지아시히신문사의기자로일하면서,아오모리시산나이마루야마三?丸山유적출현,중국시안견당사묘지墓誌발견,지바시가소리패총加?利貝塚재평가등여러특종을보도하고역사자료발굴에힘썼다.논문으로「「731부대―묻혀버린세균전의연구보고(731部隊―埋もれていた細菌?の?究報告)」(《세카이(世界)》2012년5월호)가있고,저서로『허망의삼국동맹(?妄の三?同盟)』(2013),『GHQ특명수사파일(GHQ特命?査ファイル)』(2018),『가나가와의기억(神奈川の記憶)』(2018),『한국과일본,역사인식의간극(?史認識―日韓の溝)』(2021),『청일?러일전쟁사의진실(日??日露?史の??)』(2022)등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머리말

제1장징용공소송
1.징용공을둘러싼대립
2.“일본의조선지배는불법이었다”
3.한반도에서무엇을했는가?
제2장동학농민전쟁
1.숨겨진역사
2.일본군수뇌부의철저한의도
제3장관동대지진
1.강해지는주장,“학살은없었다”
2.어린이들이본요코하마지진
3.왜유언비어를믿었을까?
제4장두학살을연결하는선
1.일본군병사의실상
2.정체불명의적
제5장잊힌과거
1.개찬된『일청전사』
2.전쟁사개찬의진상
제6장3.1운동
1.새로발견된자료
2.하라다카시총리와조선총독부의대응
제7장모호한자화상
1.없었던일로치부된학살
2.‘갑자기탄생한’자경단
제8장여러개의전후
1.말할수없는전장체험
2.‘일본인의마음의틈을겨냥한속임수
제9장다음시대를전망하는역사상의힌트

맺음말
옮긴이의말
자료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일본인의시야에서벗어난역사들

와타나베노부유키가한일역사인식의차이로가장먼저언급하는것은,징용공소송에서한국대법원판결의골격이기도한‘한국병합은무효이자불법’이라는논리다.이는일본인으로서는‘헛소리’로들릴만큼이해하기어려운주장이다.그래서그는이태진교수가말한병합을위한일본의“분명히계산된지속적인노력”이무엇인지사료를찾아나선다.그과정에서,저자는동학농민전쟁의‘의병’이란존재와마주한다.“일본군의의병토벌은1911년까지계속되었다.그간의전투횟수는총2,852회이며,일본군은1만7,779명의폭도를살육했고,일본군전사자는136명이었다.싸움이가장치열했던1908년에는1,451회의전투에서일본군은의병1만1,562명을살육했다.다시말해,1908년한해동안한반도어딘가에서매일평균4회의전투가벌어졌고,30명정도의의병이살해된셈이다.”그리고이렇게덧붙인다.“이런사실을아는일본인은얼마나될까?부끄럽지만나는몰랐다.”그는의병토벌대로참여한한일본군의종군일지를살피며한반도에서일어난끔찍한살육의현장을되살려낸다.

다음은관동대지진의조선인학살사건이다.이역시많은일본인이“학살은없었다”고주장하고대부분그렇게믿고있다.저자는지진재해당시소학교아이들이쓴작문등의자료를찾아그현장상황을생생히복원한다.“많은사람이조선인을다리위에서칼로베거나쇠몽둥이로때리고창으로찔렀다.결국에는강물에던져버렸다.”“한사람이쇠갈고리로놈의머리를찍어나룻배로끌어당겼어요.마치목재를끌어당기는것같았어요.(…)쇠갈고리한방으로이미죽은놈을다시칼로베고죽창으로찔렀어요.”

저자는여기에그치지않고동학농민전쟁과관동대지진이라는두학살을연결하는고리를찾아낸다.그가해자인후비역병사와재향군인회그리고그들이속한자경단에대해당시사회적인상황과연결하여그조직의성격을분석하고이렇게말한다.“지진이덮쳐불안과공포의혼란속에서유언비어가흘러나왔다.재향군인에게는박진감넘치는상황이었고,그들은의심할여지없이유언비어를믿었다.(…)경찰기능을보완하기위해준비된것이자경단이었다.치안공백상태에서‘민중의경찰’로서의직무를다해야한다는의식이작용했을수도있다.그때문에어디에있는지알수없는적을찾는일에조금도멈칫거리지않았다.살의에차서과거한반도나대륙에서자행했던만행을일본내에서재현했다.그것이관동대지진당시자경단에의한조선인학살의기본적인구도였던게아닐까?”

왜일본인의기억에사라졌을까?

그렇다면왜이러한역사는일본인의기억에서사라진것일까?저자는개찬된『청일전사』를예로들며,정부와군이역사“기록을처분하거나정사正史를날조”했고,그로인해동학농민전쟁과3.1운동에서의조선인들의희생은일본인의기억에서사라지게됐다고말한다.관동대지진의기록또한마찬가지다.“누군가에의해조직적으로처분”되어조선인학살과관련된자료는거의찾아볼수없다.그뿐만이아니다.지진재해직후일본정부의조선인학살에대한방침은“정상참작을해야할점이적지않다.소요에가담한전원을검거하지않고현저한행위를한자로검거범위를한정한다”고발표한다.그리하여“모든시와마을구석구석까지폭동을일으키고,폭동을일으킨민중에의한살해가있었던”요코하마시에서조선인을살해한행위로기소된사람은‘단한명’으로기록된다.저자는이렇게덧붙인다.

“너무많은민중이가해자였다.지역사회는누가가해자인지잘알고있었지만,그모든사람에게죄를추궁하면엄청나게큰사건이되는것이었다.잘못된것이라고말하지도못했다.그러니유독악질적인범죄를제외하고는학살은없던일로할수밖에없었을것이다.정부도군도경찰도그리고민중도일본사회가하나가되어은폐하고잊어버리려했을것이다.이미일어난일은어쩔수없다며,책임을묻지않고반성도없이애매하게방치하면서흐지부지하다가그냥잊히기를기다린것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