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 램지어 교수의 논거를 검증한다 (양장)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 : 램지어 교수의 논거를 검증한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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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관동대지진 학살은 가짜 뉴스의 폭발이었다!”
하버드대학 램지어 교수의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론, 그 진상을 밝히다
하버드대학 존 마크 램지어 교수가 2019에 발표한 논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란 제목의 논문은, ‘관동대지진’의 혼란에서 조선인을 학살한 일본 자경단은 기능부전의 사회가 만들어낸 경찰 민영화의 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이는 정당한 방위 행위였다고 강변한 것이다. 논문의 표지에는 ‘하버드’라는 큰 글자와 함께 케임브리지대학 출판국에서 책으로 펴낼 예정이란 문구를 넣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권위’를 두루 갖춘 모양새였다. 램지어 교수는 2000년에 “위안부는 계약에 의한 매춘부였다”는 내용의 논문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또한 일본 미쓰비시 그룹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는 일본 법률 연구자로서 2018년에는 일본 문화홍보에 이바지하여 일본 훈장 ‘욱일중수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역사 전문 기자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2021년에 이 논문을 접하고 램지어가 주장하는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기에 나선다. 그 검증 방법은 램지어 교수가 논거로 제시한 신문 기사들이 작성된 배경과 그 실태를 낱낱이 살피는 것이다. 이는 40년 경력 기자의 전문 분야이기도 하다. 100년 전 당시의 신문 기사들이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 작성되었는지를 신문 기사 자료, 연구 보고서, 기자로서의 경험적 지식 등을 바탕으로 톺아본다. 그리하여 조선인 학살의 원인이 된 유언비어라는 ‘가짜 뉴스’, 신문 기사를 통해 유포된 ‘가짜 뉴스’, 그리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정부가 조작한 ‘가짜 뉴스’가 나오게 된 배경을 전하고, 학살의 실상과 그 원인에 대한 분석도 이어나간다. 그리고 그 기억이 오늘날 일본 사회에 사라진 채 전해지지 않은 원인에 대한 냉철한 통찰도 담아내고 있다.

2023년 9월 1일은 관동대지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일본 사회에는 여전히 “학살이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살해당한 조선인은 있었지만, 그들은 범죄자이기 때문에 일본인의 자위 행동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학살 부정론은 일본 국내에서 도쿄도지사가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것을 취소하는 사태뿐 아니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처럼 해외에까지 그 무대를 넓히고 있는 형국이다. 관동대지진의 진실이 잊혀가고 왜곡되는 상황에서, 이 책의 역자이자 역사학자인 이규수는 이렇게 말한다. “100년 전의 관동대지진을 기억하는 일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피해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의 야만을 새삼스럽게 폭로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이른바 반일 감정에 바탕을 둔 과도한 민족주의에 동조하기 위한 것 또한 아니다. 한일 양국이 역사적 진실을 공유하고 부조리한 과거를 거울 삼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역사학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저자

와타나베노부유

저자:와타나베노부유키
저널리스트이자논픽션작가.1955년에태어나와세다대학교정치경제학부를졸업했다.2018년까지아시히신문사의기자로일하면서,아오모리시산나이마루야마유적출현,중국시안견당사묘지墓誌발견,지바시가소리패총재평가등여러특종을보도하고역사자료발굴에힘썼다.논문으로「「731부대―묻혀버린세균전의연구보고」(《세카이(世界)》2012년5월호)가있고,저서로『허망의삼국동맹』(2013),『GHQ특명수사파일』(2018),『가나가와의기억(神奈川の記憶)』(2018),『한국과일본,역사인식의간극』(2021),『청일·러일전쟁사의진실』(2022)등이있다.

역사:이규수
역사학자.1962년에태어나고려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일본히토쓰바시대학대학원사회학연구과를졸업했다.히토쓰바시대학한국학연구센터교수를역임하고,현재는전북대학교고려인연구센터학술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동양척식주식회사의토지수탈과궁삼면토지탈환운동』(2021),『제국과식민지사이』(2018),『한국과일본,상호인식의변용과기억』(2014),『제국일본의한국인식,그왜곡의역사』(2007),『식민지조선과일본,일본인』(2007)등이있고,역서로는『시무時務의역사학자강덕상』(2021),『다이쇼데모크라시』(2012),『일본제국의회시정방침연설집』(2012),『식민지조선의일본인들』(2006).『내셔널히스토리를넘어서』(2000)등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머리말

제1장램지어교수의논문읽기
1.치안이라는정상재
2.조선인범죄의검토
3.전후일본의경비산업

제2장논거자료를확인하다
1.범죄가없었다는자료
2.램지어교수의논거자료

제3장논거가된신문기사를읽다
1.조선인폭도보도
2.우스이고개의폭탄테러계획

제4장10월20일전후의신문기사
1.조선인과관련된보도해금
2.시민의반응
3.정부의압력으로만들어진허위보도

제5장도쿄대학신문연구소의연구
1.전후의연구
2.인용된《가호쿠신보》기사

제6장학살은왜일어났을까?
1.학살의실상
2.귀환병들의경험

맺음말
옮긴이의말
참고문헌
부록관동대지진관련사진자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역사전문기사의철저한논문검증

램지어교수는논문에서관동대지진당시조선인들이폭동을일으키고방화를저지르고우물에독을뿌렸다는유언비어를사실인것처럼강조한다.그는“중요한것은학살여부가아니라조선인이얼마나광범위하게범죄를저질렀고,실제자경단이죽인조선인이얼마나되느냐는것”이라고주장한다.이러한주장에대한근거로그는당시에보도된신문기사들을제시한다.
이책의저자와타나베는램지어교수논문에등장하는신문기사들을하나하나읽어가며그의주장을반박한다.그는주로신문기사가오보임을증명한다.정확히말하면,그렇게오보가나올수밖에없었던당시의상황을살피고추적하는것이다.1923년9월1일관동대지진당시,도쿄와연결되는통신시설은모두끊긴상황이었다.신문기자들은긴박한상황에서본연의임무를다해,하나의기사라도더얻기위해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고정보를모았다.그러한기록은와타나베가제시한여러신문사의사사(社史)에고스란히담겨있다.거리의피난민에게들은풍설이나철도통신망을통해얻은정보,그리고군의전문(電文)등이사실확인을거치지않은채마구호외로발행된것이었다.그러한‘가짜뉴스’는시민들에게유언비어가마치사실인것처럼잘못된인식을심어주었다.
가짜뉴스는여기에서그치지않았다.일본정부는공공연한장소에서벌어진조선인학살문제를해결해야했다.저자와타나베는이렇게말한다.“조선인학살을정당화하려면‘유언비어가실재한것’으로하지않을수없게되었다.정부는이모순된상황을다소나마꿰맞추기위해‘없던일을있었던것’으로하고,‘있었던일을없었던것’으로조율했다.정부는거짓발표를한것이다.권력이의도적으로유포한가짜뉴스라고말해도좋을것이다.지진직후의‘유언비어를보도한오보’와는다른형태의혼란이라볼수있는,‘정부의발표를보도한오보’가이렇게방대하게생겨난것이다.”

학살은왜일어났는가?

조선인학살은공공연한장소에서벌어진일이었다.왜이런학살이일어났을까?일본인은유언비어의어떤부분이두려웠던것일까?이책의저자와타나베는그원인에대해몇가지사실을지적한다.
우선당시‘불령선인’이라불리던조선인에대한일본인들의인식이다.많은신문이조선인범죄에대해의심하는기색도없이보도했으며,특히《가호쿠신보》(9월4일자)1면칼럼에는유언비어로나도는조선인범죄에대해“그들의평소행동을보면있을법한일이다”라고까지표현한다.이에대해와타나베는“사람들이믿는유언비어의중심에있던것은조선인이집단으로일본이라는나라에싸움을걸어온다는구도였다.‘불령’이란‘불평을품고순종하지않는다’는뜻이다.일본인들사이에서는식민지조선인이일본에대해불평을품고있다는인식이공유되었을것이다.”라고말한다.
또하나는재향군인이란귀환병들의존재다.일본군은동학농민군과의싸움을비롯해1910년한국병합을전후해만단위수의조선인을죽였다.이후에도3.1운동과,만주와시베리아에서게릴라전을벌이는‘불령선인’과‘조선인빨치산’을상대로싸웠다.그런조선전선에서귀환한사람들이재향군인이되었고자경단을조직한것이었다.와타나베는이렇게말한다.“쌀소동에대한반성으로경찰이자경단을발족했을때,그중심에재향군인이편입되어들어갔다.거기에지진재해가발생해유언비어가흘러들어갔다.그내용에는조선전선에서의체험을떠올리게하는현장감이있었다.어떻게든몸을지켜야한다는생각에무기를찾고,망설임없이조선인을죽인게아니었을까?”

※이책의부록에는재일사학자강덕상선생의유물을관리하고있는<강덕상자료센터>에서제공한관동대지진관련한이미지가상당수실려있다.

책속에서

이밖에도유언비어에대한조사와연구는수두룩하다.나는그가운데“유언비어는거짓말이아니었다”는내용을입증한자료를본적이없다.램지어교수의견해는이와같은기존연구를부정하는것이다.그렇다면논거는무엇인가?우선제시한것은‘젊은이가많으면범죄가많다’는논리였다.그러나일반적으로젊은이가법을어기는경우가다른세대에비해많다고해도,그것이방화나살인같은중대한범죄에까지해당하는것일까?하물며유언비어의내용은집단무장봉기나폭탄투척,독살포등과같이사전준비와조직이필요한행동이다.그런데도‘젊은이가많다’는것이근거가될수있을까?
---p.63

철로를따라전국을연결하는국철통신망을통해전언게임처럼전해진정보였다.그것을《나고야신문》기자가나고야의철도관련시설에서입수해기사화했다고볼수있다.‘열차에폭탄’이라고하니그사태는심각했다.호외를발행하겠다는판단도당연했을것이다.이기사가보도한범죄가이후수사에서어떻게밝혀졌는지에대한기록은찾아볼수없다.오보였다고생각할수밖에없다.왜그런기사가나오고호외가발행됐는지그윤곽이드러나는듯하다.이렇게살펴보면이기사의해석에서도램지어교수의견해에동의할수없다.
---p.107

조선인학살은공공연한장소에서자행되었고많은사람이목격했으니,일본이법치국가인이상이를전혀없었던일로할수는없었다.군과경찰이관여한사실도많은사람이목격했지만,자경단의잘못으로돌리며모든책임을떠넘기려는움직임이역력했다.이에대해,자경단은물론일반시민들사이에서도의문점이증폭되었다는것을우에스기의발언이드러내고있다.자경단은경찰에협조하거나지시를따랐을뿐인데도,경찰은죄를그들에게뒤집어씌우려했다.
---p.123

군과경찰의관여가드러나는것이바람직하지않다고판단한정부는모든책임을자경단에떠넘기려했다.하지만우에스기신키치교수의발언과흑룡회의활동이보여주듯이,여러곳의반발이거세져자경단에게중죄를물을수없게되었다.그렇다고조선인학살은많은사람이공공연한장소에서목격한사실이기때문에없던일로간주할수없었다.따라서일본인에의한조선인학살을정당화하려면‘유언비어가전한조선인의범죄는실재한것’으로하지않을수없게되었다.정부는이모순된상황을다소나마꿰맞추기위해‘없던일을있었던것’으로하고,‘있었던일을없었던것’으로조율했다.
---p.142

청일전쟁과동시에1894년시작된동학농민군과의싸움을비롯해1910년한국병합을전후하여일본의지배에저항한의병의진압작전으로인해,일본군은만단위수의조선인을죽였다.1919년에는3·1운동을진압하고,이후에도일본군은만주와시베리아에서게릴라전을벌이는‘불령선인’과‘조선인빨치산’을상대로싸웠다.자경단의중심이된재향군인중에는그런조선전선에서귀환한사람들이포함되었다.지진의혼란속에서자경단이적으로판단해찾아나선것이‘불령선인’과‘조선인빨치산’이었다.이런사실은조선전선과학살의깊은연결고리를보여준다.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