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설정식 문학의 거친 숨결과 맥박
『설정식, 분노의 문학』은 시인이자 소설가, 영문학자였던 설정식(1912~1953)의 삶과 문학을 많은 문헌 자료와 사진 자료 등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 20세기 전반기 한반도 지식인의 비극적 운명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설정식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라고 할 일제강점기 36년의 대부분과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1929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1933년 연희전문학교 별과에 다녔다. 그리고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학교에 편입, 졸업하고 귀국하여 1936년부터 이듬해까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37년 미국으로 유학,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고 1940년에 귀국했다. 이후 이곳저곳에 머물던 그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해방기에 설정식은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부 위원장을 맡는 등 정치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그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자진 입대하여 월북, 1951년 개성 휴전회담 때 인민군 소좌로 조중 대표단 영어 통역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마흔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설정식이 살아온 지역은, 대략 그려보아도 ‘단천 → 경성 → 중국 펑톈 → 중국 베이징 → 경성 → 일본 도쿄 → 경성 → 미국 오하이오주 → 미국 뉴욕시 → 경성 → 평양’일 정도이니 그가 보여준 삶의 궤적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살아간 시대 역시 지리적 공간 못지않았다. 그가 태어나 성장한 유년기에는 일제의 ‘무단통치’를, 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일제의 ‘문화통치’를 겪었으며 청년과 장년기에는 혹독한 ‘민족말살 통치’를 경험하였다. 이후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어수선한 해방기에 들어서 좌익 지식인으로 조국의 미래를 두고 고민했던 설정식의 문학에는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의 거친 숨결과 맥박이 담겨 있다.
“그 찬연한 분노와 또 저주의 아름다움”
이 책의 제목을‘분노의 문학’이라고 붙인 것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설정식의 삶과 문학을 다루는 이 책에 ‘분노의 문학’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이 부제는 김기림이 설정식의 두 번째 시집 『포도葡萄』(1948) 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 붙인 제목 「분노의 미학」에서 빌려와 조금 바꾼 것이다. 김기림은 설정식의 첫 시집 『종鐘』(1947)에서 “그 찬연한 분노와 또 저주의 미美”를 발견하였다. 김기림은 두 번째 시집 『포도』(1948)에서도 설정식이 “혼란한 시대의 회오리바람에도 조금치도 현훈眩暈을 일으키는 일이 없이” 분노의 미학을 표현했다고 지적하였다.
이 점에서는 김광균도 김기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설정식의 시에는 “육신과 희망을 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부단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설정식은 세 번째 시집 『제신의 분노』(1948)에서 아예 ‘분노’를 중심 주제로 삼았다. 나는 이러한 분노를 비단 설정식의 시뿐 아니라 그의 작품 전체에 관류하는 중심 모티프로 간주하였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 무렵 다른 작가들보다 한 옥타브쯤 목소리가 높다. 문학가 설정식이 느낀 격양된 목소리와 분노는 어디까지나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해방기의 사회 현실에 대한 그 나름의 반응이었다. 그는 해방기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제집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번, 세 번 저당으로 넘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술을 부어가며 아름다운 꽃이여, 나비여 하며 음풍영월을 하고” 있는 현실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저자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 마흔한 살에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설정식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설정식이 남긴 발자취 중에서 ‘비교적 깊게 파인 곳’에 주목하면서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에서 불행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찬연한 이념의 고향’을 찾아 북으로 간 설정식이 남로당계 인사 숙청 과정에서 살아남았더라면 한국문학을 좀 더 풍요롭게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시인과 소설가, 번역가로서 설정식의 문학 활동과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던 문학은‘진정한 민주주의 민족문학’을 건설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계문학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진단한다.
설정식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되 편협한 민족주의는 배척하였다. 홍명희와의 대담에서 그는 “글러도 내 민족 옳아도 내 민족이라는 따위 감상적 민족주의도 좋지만, 눈물겨운 것만으로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말하였다. 설정식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문학은 ‘민주주의 민족문학’이었다. 조선문학가동맹과 관련하여 그는 홍명희에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민족문학인데 이것을 위하여 봉건과 일제 잔재를 소탕하고 파쇼적인 국수주의를 배격하여 민족문학을 건설함으로써 세계문학과 연결을 가지려고 할 따름입니다”라고 천명하였다.
저자는 먼저 1930년대 초에 발표한 초기 시에서부터 해방기에 쓴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분석하면서 설정식이 사회의식을 드러내면서 점차 순수시에서 이념 시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라고 짚어낸다.
설정식이 1930년대 초엽에 쓴 시 작품과 해방기에 쓴 작품 사이에는 한 시인이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 편차가 무척 크다. 초기 시는 백석의 작품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 그러나 설정식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식민 통치의 고삐를 점점 조이자 서정성을 버리고 사회성과 정치적 색채가 짙은 서사적인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시에 관해서 정치적 색채가 짙은 후기의 이념 시보다는 초기의 서정시 쪽의 문학적 성과를 중심으로 설정식의 시를 살피고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설정식이 1930년대 초에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그의 문학적 역량은 시보다는 오히려 소설에서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초기의 시를 제외하면 그의 시 대부분은 지나치게 이념 편향적이어서 이렇다 할 감동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편소설이든 장편소설이든 소설 작품에서는 이러한 이념 편향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예술의 형상화는 소설 쪽에서 좀 더 뚜렷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설정식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으나 신변잡기적 범위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추구하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설정식은 스스로 “사실의 투영을 그려서 사실에 필적케 하려는 것이 나의 시작詩作 의도였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의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은 오히려 시보다는 소설에서였으며 ‘사실의 투영’이라고 할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보편성을 획득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번역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던 좌익 작가의 아이러니
설정식이 이념이나 사상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쪽에 서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해방 이후 조선에서 ‘진정한 볼셰비즘’의 발전을 기대하였다. 그것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조선문학가동맹 같은 좌익 단체에서 활약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설정식이 좌익 문단 쪽에 서게 된 것은 이승만과 그가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같은 정당 단체와 그것을 직간접으로 지지하는 우익 문단 등에 대한 역선택으로 보는 쪽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피력한다. 다시 말해서 좌익 문단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우익 문단이 싫어서 그러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정식은 이승만보다는 차라리 여운형에게서 해방기 한반도의 희망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설정식에게 여운형은 해방기 암흑을 밝힐 등불 같은 존재였다. 여운형이 괴한의 피습을 받고 사망한 날 밤을 다룬 「무심無心」에서 그는 “등불이 잠시 꺼졌다 / 우연이 이렇게 태허에 필적할 수가 있느냐” 라느니 “오호 내일 아침 태양은 / 그여히 암흑의 기원이 되고 마는 것 이냐”하고 절망감을 피력하였다.
저자는 설정식이 이념적으로는 좌익 쪽에 서 있으면서도 명시적으로 또 일관되게 문학을 사회 변혁이나 혁명의 수단으로 삼으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설정식의 문학관은 임화나 김남천보다는 정지용이나 김기림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정지용이 설정식을 ‘우익 시인’으로 평가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고 한다.
설정식을 정지용이 왜 ‘우익 시인’으로 평가했는지 수긍이 간다. 정지용은 “정식이가 어찌 프롤레타리아 시인일 수 있으랴? 하물며 ‘빨갱이’ 시인일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였다. 그러면서 정지용은 설정식이 “‘프롤레타리아’ 시인이 아닌, 과격파가 아닌, ‘우익 시인’”이라고 자리매김하였다. 정지용은 계속하여 “혁명시인이란 어느 국가의 여유 있던 사치더냐? 조선에는 이렇게 애절, 비절, 참절한 시가 있을 뿐이다”라고 잘라 말하였다.
여러 예시를 통해 저자는, 이 책에서 설정식이 기질로 보나 세계관으로 보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설정식은 염치를 중시하여 권위에 아부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개혁적 지식인이었음을 그의 발언과 문헌을 짚어가며 드러내 보여준다.
설정식은 학생 시절부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칸초네요 나폴리 민요인 「오 나의 태양」과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때 /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치인다.” 지오반니 카프로가 지은 「오 나의 태양」의 가사처럼 설정식은 한반도에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는 하늘에 전보다 더 밝은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면 “아름다운 저 바다와 / 그리운 그 빛난 햇빛 / 내 마음속에 잠시라도 / 떠날 때가 없도다”라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가사처럼 자유와 평등의 찬란한 햇빛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설정식 은 한국전쟁 초기 가족을 남쪽에 남겨두고 스스로 찬연한 이념의 고향을 찾아 북쪽으로 갔다. 그러한 그가 북쪽에서 ‘미국 제국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권력 투쟁의 제단에 바친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설정식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라고 할 일제강점기 36년의 대부분과 혼란스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함경남도 단천에서 태어나 1929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광주학생운동에 연루되어 퇴학당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돌아와 1933년 연희전문학교 별과에 다녔다. 그리고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상업학교에 편입, 졸업하고 귀국하여 1936년부터 이듬해까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가 1937년 미국으로 유학, 부친의 사망소식을 듣고 1940년에 귀국했다. 이후 이곳저곳에 머물던 그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였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해방기에 설정식은 조선공산당에 가입하고 조선문학가동맹 외국문학부 위원장을 맡는 등 정치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였다. 그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자진 입대하여 월북, 1951년 개성 휴전회담 때 인민군 소좌로 조중 대표단 영어 통역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마흔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설정식이 살아온 지역은, 대략 그려보아도 ‘단천 → 경성 → 중국 펑톈 → 중국 베이징 → 경성 → 일본 도쿄 → 경성 → 미국 오하이오주 → 미국 뉴욕시 → 경성 → 평양’일 정도이니 그가 보여준 삶의 궤적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살아간 시대 역시 지리적 공간 못지않았다. 그가 태어나 성장한 유년기에는 일제의 ‘무단통치’를, 소년기와 청년기에는 일제의 ‘문화통치’를 겪었으며 청년과 장년기에는 혹독한 ‘민족말살 통치’를 경험하였다. 이후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어수선한 해방기에 들어서 좌익 지식인으로 조국의 미래를 두고 고민했던 설정식의 문학에는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의 거친 숨결과 맥박이 담겨 있다.
“그 찬연한 분노와 또 저주의 아름다움”
이 책의 제목을‘분노의 문학’이라고 붙인 것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설정식의 삶과 문학을 다루는 이 책에 ‘분노의 문학’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런데 이 부제는 김기림이 설정식의 두 번째 시집 『포도葡萄』(1948) 에 관한 서평을 쓰면서 붙인 제목 「분노의 미학」에서 빌려와 조금 바꾼 것이다. 김기림은 설정식의 첫 시집 『종鐘』(1947)에서 “그 찬연한 분노와 또 저주의 미美”를 발견하였다. 김기림은 두 번째 시집 『포도』(1948)에서도 설정식이 “혼란한 시대의 회오리바람에도 조금치도 현훈眩暈을 일으키는 일이 없이” 분노의 미학을 표현했다고 지적하였다.
이 점에서는 김광균도 김기림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설정식의 시에는 “육신과 희망을 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부단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설정식은 세 번째 시집 『제신의 분노』(1948)에서 아예 ‘분노’를 중심 주제로 삼았다. 나는 이러한 분노를 비단 설정식의 시뿐 아니라 그의 작품 전체에 관류하는 중심 모티프로 간주하였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 무렵 다른 작가들보다 한 옥타브쯤 목소리가 높다. 문학가 설정식이 느낀 격양된 목소리와 분노는 어디까지나 일제강점기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해방기의 사회 현실에 대한 그 나름의 반응이었다. 그는 해방기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제집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번, 세 번 저당으로 넘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술을 부어가며 아름다운 꽃이여, 나비여 하며 음풍영월을 하고” 있는 현실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저자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 마흔한 살에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설정식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설정식이 남긴 발자취 중에서 ‘비교적 깊게 파인 곳’에 주목하면서 20세기 전반기 한반도에서 불행한 시대를 살다 간 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찬연한 이념의 고향’을 찾아 북으로 간 설정식이 남로당계 인사 숙청 과정에서 살아남았더라면 한국문학을 좀 더 풍요롭게 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낸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시인과 소설가, 번역가로서 설정식의 문학 활동과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던 문학은‘진정한 민주주의 민족문학’을 건설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세계문학의 대열에 합류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진단한다.
설정식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되 편협한 민족주의는 배척하였다. 홍명희와의 대담에서 그는 “글러도 내 민족 옳아도 내 민족이라는 따위 감상적 민족주의도 좋지만, 눈물겨운 것만으로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말하였다. 설정식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문학은 ‘민주주의 민족문학’이었다. 조선문학가동맹과 관련하여 그는 홍명희에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 민족문학인데 이것을 위하여 봉건과 일제 잔재를 소탕하고 파쇼적인 국수주의를 배격하여 민족문학을 건설함으로써 세계문학과 연결을 가지려고 할 따름입니다”라고 천명하였다.
저자는 먼저 1930년대 초에 발표한 초기 시에서부터 해방기에 쓴 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분석하면서 설정식이 사회의식을 드러내면서 점차 순수시에서 이념 시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라고 짚어낸다.
설정식이 1930년대 초엽에 쓴 시 작품과 해방기에 쓴 작품 사이에는 한 시인이 썼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 편차가 무척 크다. 초기 시는 백석의 작품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 그러나 설정식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식민 통치의 고삐를 점점 조이자 서정성을 버리고 사회성과 정치적 색채가 짙은 서사적인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저자는 시에 관해서 정치적 색채가 짙은 후기의 이념 시보다는 초기의 서정시 쪽의 문학적 성과를 중심으로 설정식의 시를 살피고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설정식이 1930년대 초에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그의 문학적 역량은 시보다는 오히려 소설에서 빛을 발한다고 말한다. 초기의 시를 제외하면 그의 시 대부분은 지나치게 이념 편향적이어서 이렇다 할 감동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편소설이든 장편소설이든 소설 작품에서는 이러한 이념 편향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예술의 형상화는 소설 쪽에서 좀 더 뚜렷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설정식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으나 신변잡기적 범위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추구하였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설정식은 스스로 “사실의 투영을 그려서 사실에 필적케 하려는 것이 나의 시작詩作 의도였다”고 말했지만 이러한 의도를 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은 오히려 시보다는 소설에서였으며 ‘사실의 투영’이라고 할 육체에 영혼을 불어넣어 보편성을 획득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번역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던 좌익 작가의 아이러니
설정식이 이념이나 사상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쪽에 서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해방 이후 조선에서 ‘진정한 볼셰비즘’의 발전을 기대하였다. 그것은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조선문학가동맹 같은 좌익 단체에서 활약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설정식이 좌익 문단 쪽에 서게 된 것은 이승만과 그가 이끄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같은 정당 단체와 그것을 직간접으로 지지하는 우익 문단 등에 대한 역선택으로 보는 쪽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피력한다. 다시 말해서 좌익 문단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우익 문단이 싫어서 그러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정식은 이승만보다는 차라리 여운형에게서 해방기 한반도의 희망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설정식에게 여운형은 해방기 암흑을 밝힐 등불 같은 존재였다. 여운형이 괴한의 피습을 받고 사망한 날 밤을 다룬 「무심無心」에서 그는 “등불이 잠시 꺼졌다 / 우연이 이렇게 태허에 필적할 수가 있느냐” 라느니 “오호 내일 아침 태양은 / 그여히 암흑의 기원이 되고 마는 것 이냐”하고 절망감을 피력하였다.
저자는 설정식이 이념적으로는 좌익 쪽에 서 있으면서도 명시적으로 또 일관되게 문학을 사회 변혁이나 혁명의 수단으로 삼으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설정식의 문학관은 임화나 김남천보다는 정지용이나 김기림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정지용이 설정식을 ‘우익 시인’으로 평가했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고 한다.
설정식을 정지용이 왜 ‘우익 시인’으로 평가했는지 수긍이 간다. 정지용은 “정식이가 어찌 프롤레타리아 시인일 수 있으랴? 하물며 ‘빨갱이’ 시인일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였다. 그러면서 정지용은 설정식이 “‘프롤레타리아’ 시인이 아닌, 과격파가 아닌, ‘우익 시인’”이라고 자리매김하였다. 정지용은 계속하여 “혁명시인이란 어느 국가의 여유 있던 사치더냐? 조선에는 이렇게 애절, 비절, 참절한 시가 있을 뿐이다”라고 잘라 말하였다.
여러 예시를 통해 저자는, 이 책에서 설정식이 기질로 보나 세계관으로 보나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인물이었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설정식은 염치를 중시하여 권위에 아부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개혁적 지식인이었음을 그의 발언과 문헌을 짚어가며 드러내 보여준다.
설정식은 학생 시절부터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칸초네요 나폴리 민요인 「오 나의 태양」과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 폭풍우 지난 후 너 더욱 찬란해 /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때 / 하늘에 밝은 해는 비치인다.” 지오반니 카프로가 지은 「오 나의 태양」의 가사처럼 설정식은 한반도에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뒤에는 하늘에 전보다 더 밝은 태양이 찬란하게 떠오르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면 “아름다운 저 바다와 / 그리운 그 빛난 햇빛 / 내 마음속에 잠시라도 / 떠날 때가 없도다”라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가사처럼 자유와 평등의 찬란한 햇빛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설정식 은 한국전쟁 초기 가족을 남쪽에 남겨두고 스스로 찬연한 이념의 고향을 찾아 북쪽으로 갔다. 그러한 그가 북쪽에서 ‘미국 제국주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권력 투쟁의 제단에 바친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설정식, 분노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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