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사람을 보라!
20세기 한반도를 밝힌 삶과 신앙의 스승들
20세기 한반도를 밝힌 삶과 신앙의 스승들
2014년에 초판이 나왔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는 저자 임락경 목사가 평생에 걸쳐 직간접으로 만나고 가르침을 받은 삶과 신앙과 사상의 스승들을 돌이켜 보는 책이다. 그는 이 스승들을 ‘영성가’라고 통칭하면서도 그 이름이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지 또렷이 규정하지는 않았다. 헤아려 보건대 “몸과 맘과 정신”(유영모)을 닦아 높은 경지에 다다른 이들을 칭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신분과 경력에 걸맞게, 이 책에 소개된 영성가들은 대부분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 신앙을 품고 20세기 한반도에서 살아간 인물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예컨대 저자가 오래 교분을 맺으며 큰 영향을 받은 유영모는 ‘하느님’을 믿었을 뿐 좁은 의미의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더 나아가 신앙을 가졌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이 책의 밑바탕에 놓인 관심사도 아니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히려 신앙의 유무와 종파의 구분을 넘어, 어려운 환경에서 높고 참된 뜻을 세우고 그 뜻에 따라 삶을 살아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것이 그가 이 책에 실린 인물들에게 주목한 이유이자 그들의 삶을 널리 알리고자 마음먹은 동기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사는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십자가에 의지하는 삶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몸소 지고 가는 길이다. 전자는 십자가에 기대어 현실에서 덕을 보거나 명예를 얻는 길이지만, 후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평생 섬기다” 가는 고난의 길이다. 임락경 목사는 어느 길만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십자가에 기대어 덕 보며 사는 신앙인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가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앙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이들에게 저자가 집중적인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그들 가운데 앞자리에 서는 이들은 한국 기독교의 태동기에 외국인 선교사로 건너와 이 땅의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간 사람들이다. 예컨대 1912년 식민지 조선에 간호사로 와서 평생 후배 여성들을 길러내고 나병 환자들과 걸인들을 돌보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서서평(徐舒平, Elizabeth Shepping) 선교사의 생애를 독자는 깊은 감동 없이 접하기 어렵다. 그가 처음 만든 ‘조선간호부회’가 오늘의 대한간호협회로 계승되면서 그의 정신은 지금도 아픈 이들과 함께하는 손길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의사였지만 아들이 동네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끌려갈 정도의 가난을 견디며 광주제중병원에서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한 고허번(A. Codington) 선교사, 한국전쟁이 터지자 혼자만 살겠다고 피신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며 끝까지 남아 간난신고를 겪은 유화례(Florence E. Root) 선교사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21세기 한국인들이 여전히 기억할 이름으로 호명하는 가운데 각자의 삶의 길을 자세히 기록한다.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언급되는 이현필, 유영모, 최흥종, 강원용은 저자가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던 위 세 분과 달리 임락경 목사가 꽤 긴 시간에 걸쳐 친교를 쌓으며 가르침을 받은 삶과 신앙의 스승들이다. 저자는 10대 시절인 1960년대 초에 이현필이 세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 스스로 찾아 들어가 그와 함께 생활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금욕과 청빈의 영성 운동을 실천하여 ‘맨발의 성자’로 불린 이현필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셈이다. 오늘 근대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사상가로 이야기되기에 이른 다석 유영모와는 그가 19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찾아뵙고 가르침을 얻은 사이다. 광주 최초의 목사이며 나병과 결핵 환자, 걸인, 고아의 벗으로 살아간 최흥종을 그의 말년에 매일 밤 목욕을 시키며 모셨던 이가 젊은 날의 임락경 목사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내 진보적 전통의 태두라고 할 강원용 목사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저자의 신앙적 행로가 변화했다고 기술되는 인물이다. 이 네 분의 명성이 드높은 그만큼, 공식적인 활동과 말씀뿐 아니라 사사로운 행적까지 기록한 임 목사의 글은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증언일뿐더러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역사적 사료의 가치까지 지닌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저렇듯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삶과 신앙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간 이들을 다루고 있되 그들을 강철 같은 신념의 인간, 흠결이나 오류 없이 거룩한 존재(저자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거룩이’)에 다가간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저자는 여기 등장하는 이들의 굳은 믿음을 전하면서도 그들의 인간다운 면모, 자기 모순과 약한 모습, 또 그것들을 딛고 나오려는 안간힘을 해학 어린 시선과 필치로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를테면 이현필은 평생 고기 먹지 말고 병원 가지 말자는 신념을 실천해왔으나 그것이 신앙을 얽어매는 계율이 되기에 이르자 스스로 그 신념을 어긴 뒤 이를 공표한 바 있다고 한다. 저자를 젊은 날 스스로 짊어진 비좁은 규율의 속박로부터 자유롭게 한 백춘성 장로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사업가이면서도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내주러 간 자리에서 아들 이름을 기억 못해 남들이 사진을 보여주고서야 분간해낸 사람으로 나타난다. 젊은 시절 노름의 유혹을 이기려 도끼로 내리쳐 손가락까지 잘랐지만 “작심삼일이 아니고 작심일일도 아니”어서 “잘린 손가락 헝겊으로 처매고 그날 밤에 그 손으로 또다시 노름을 했”던 이가 김광석 장로로 변모하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런 일화들은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생생한 입체감을 부여해준다. 동시에 ‘영성가’들이란 우리네 평범한 사람과는 처음부터 연이 닿지 않는 비범한 인물들일 것이라며 마음속에서 밀쳐 두려는 독자의 숨은 충동을 가라앉혀 준다.
이 책에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진 인물 가운데, 앞서 나온 이름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래서 더더욱 저자로 하여금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한 이보한, 일명 ‘이거두리’(1872~1931)를 빼놓을 수 없다. 이거두리는 양반이자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권세 있는 자들을 면전에서 조롱하고 부자들한테서 돈과 물품을 거두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가 하면, 기생들에게서 금붙이를 모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몰래 보내며, 길 가다 마주치는 헐벗은 자들의 누더기 옷을 자신의 새 옷과 자청해서 바꾸어 입었던 파격의 인간이었다. 광인 같기도 하고 자유인, 협객 같기도 한 그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향한 사랑과 구휼救恤의 마음을 지닌” “사랑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거두리가 걸어간 길은,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이들의 행적과 더불어,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교인들”에 지친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교회 바깥에 있으면서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한 사람들 모두에게 청량한 독서 경험을 안겨 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저자는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사는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십자가에 의지하는 삶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몸소 지고 가는 길이다. 전자는 십자가에 기대어 현실에서 덕을 보거나 명예를 얻는 길이지만, 후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한평생 섬기다” 가는 고난의 길이다. 임락경 목사는 어느 길만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십자가에 기대어 덕 보며 사는 신앙인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에서 가난과 핍박을 무릅쓰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앙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이들에게 저자가 집중적인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
그들 가운데 앞자리에 서는 이들은 한국 기독교의 태동기에 외국인 선교사로 건너와 이 땅의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살아간 사람들이다. 예컨대 1912년 식민지 조선에 간호사로 와서 평생 후배 여성들을 길러내고 나병 환자들과 걸인들을 돌보다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서서평(徐舒平, Elizabeth Shepping) 선교사의 생애를 독자는 깊은 감동 없이 접하기 어렵다. 그가 처음 만든 ‘조선간호부회’가 오늘의 대한간호협회로 계승되면서 그의 정신은 지금도 아픈 이들과 함께하는 손길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의사였지만 아들이 동네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끌려갈 정도의 가난을 견디며 광주제중병원에서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헌신한 고허번(A. Codington) 선교사, 한국전쟁이 터지자 혼자만 살겠다고 피신하는 것은 하나님 뜻이 아니라며 끝까지 남아 간난신고를 겪은 유화례(Florence E. Root) 선교사도 있다. 저자는 이들을 21세기 한국인들이 여전히 기억할 이름으로 호명하는 가운데 각자의 삶의 길을 자세히 기록한다.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언급되는 이현필, 유영모, 최흥종, 강원용은 저자가 직접 만날 기회는 없었던 위 세 분과 달리 임락경 목사가 꽤 긴 시간에 걸쳐 친교를 쌓으며 가르침을 받은 삶과 신앙의 스승들이다. 저자는 10대 시절인 1960년대 초에 이현필이 세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수도 공동체 ‘동광원’에 스스로 찾아 들어가 그와 함께 생활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금욕과 청빈의 영성 운동을 실천하여 ‘맨발의 성자’로 불린 이현필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 셈이다. 오늘 근대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사상가로 이야기되기에 이른 다석 유영모와는 그가 198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찾아뵙고 가르침을 얻은 사이다. 광주 최초의 목사이며 나병과 결핵 환자, 걸인, 고아의 벗으로 살아간 최흥종을 그의 말년에 매일 밤 목욕을 시키며 모셨던 이가 젊은 날의 임락경 목사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 내 진보적 전통의 태두라고 할 강원용 목사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저자의 신앙적 행로가 변화했다고 기술되는 인물이다. 이 네 분의 명성이 드높은 그만큼, 공식적인 활동과 말씀뿐 아니라 사사로운 행적까지 기록한 임 목사의 글은 우리 역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증언일뿐더러 다른 곳에서 만나기 힘든 역사적 사료의 가치까지 지닌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저렇듯 남들이 흔히 가지 않는 삶과 신앙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간 이들을 다루고 있되 그들을 강철 같은 신념의 인간, 흠결이나 오류 없이 거룩한 존재(저자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거룩이’)에 다가간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저자는 여기 등장하는 이들의 굳은 믿음을 전하면서도 그들의 인간다운 면모, 자기 모순과 약한 모습, 또 그것들을 딛고 나오려는 안간힘을 해학 어린 시선과 필치로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이를테면 이현필은 평생 고기 먹지 말고 병원 가지 말자는 신념을 실천해왔으나 그것이 신앙을 얽어매는 계율이 되기에 이르자 스스로 그 신념을 어긴 뒤 이를 공표한 바 있다고 한다. 저자를 젊은 날 스스로 짊어진 비좁은 규율의 속박로부터 자유롭게 한 백춘성 장로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사업가이면서도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내주러 간 자리에서 아들 이름을 기억 못해 남들이 사진을 보여주고서야 분간해낸 사람으로 나타난다. 젊은 시절 노름의 유혹을 이기려 도끼로 내리쳐 손가락까지 잘랐지만 “작심삼일이 아니고 작심일일도 아니”어서 “잘린 손가락 헝겊으로 처매고 그날 밤에 그 손으로 또다시 노름을 했”던 이가 김광석 장로로 변모하는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런 일화들은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에게 생생한 입체감을 부여해준다. 동시에 ‘영성가’들이란 우리네 평범한 사람과는 처음부터 연이 닿지 않는 비범한 인물들일 것이라며 마음속에서 밀쳐 두려는 독자의 숨은 충동을 가라앉혀 준다.
이 책에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진 인물 가운데, 앞서 나온 이름들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그래서 더더욱 저자로 하여금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한 이보한, 일명 ‘이거두리’(1872~1931)를 빼놓을 수 없다. 이거두리는 양반이자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권세 있는 자들을 면전에서 조롱하고 부자들한테서 돈과 물품을 거두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가 하면, 기생들에게서 금붙이를 모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몰래 보내며, 길 가다 마주치는 헐벗은 자들의 누더기 옷을 자신의 새 옷과 자청해서 바꾸어 입었던 파격의 인간이었다. 광인 같기도 하고 자유인, 협객 같기도 한 그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향한 사랑과 구휼救恤의 마음을 지닌” “사랑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거두리가 걸어간 길은,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이들의 행적과 더불어, “자신과 가족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교인들”에 지친 오늘의 신앙인들에게는 물론이고 교회 바깥에 있으면서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삶인가 하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한 사람들 모두에게 청량한 독서 경험을 안겨 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임락경의 우리 영성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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