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겨내는이야기가아니다.변해가는이야기다
희귀질환자녀를둔가족의책은대부분'어떻게이겨냈는가'를말한다.이책은다르다.저자는이겨냈다고말하지않는다.대신그긴시간동안자신이어떻게무너졌고,무너진자리에서무엇을발견했는지를솔직하게풀어놓는다.
진단을받은날밤,자신의의지와능력은아무힘이되지못했다.임상시험을준비하는내내두려웠고,태평양을건너면서도흔들렸다.그흔들림을이책은숨기지않는다.오히려거기서시작한다.흔들리는아버지,밤마다의학논문을붙들고씨름하는어머니,아무도가르쳐주지않았는데동생의팔을들어스트레칭을돕게된언니와오빠.이책이단순한투병기를넘어서는것은,고난이이가족을어떤사람들로만들어갔는지를담담하고도세밀하게기록하고있기때문이다.
★★'왜우리인가'에서'오늘무엇을할수있는가'로…
진단을받은직후의가족은질문으로가득찬가족이었다.'왜우리인가?','어디까지나빠질까?','얼마나남았는가?'그질문들이하루하루를채웠고,답을주지않으면서계속해서마음을갉아먹었다.밤이깊어질수록선명해지는불안속에서,서로를바라보며아무말도하지못한채시간을견뎌내던사람들이었다.
그러다어느날부터인가가족의언어에서'혹시'라는단어가사라지기시작했다.대신'오늘무엇을할수있는가'를묻는목소리가그자리를채웠다.아침마다재활일정을확인하고,주사날짜를체크하고,전날밤의수치기록을읽으며아이의상태를점검하는리듬.화려하지도극적이지도않은,그러나그평범한반복이이가족을살리고있었다.두려움이사라진것이아니라두려움을다루는방식이바뀐것이었다.이책은그변화의과정을세밀하게따라간다.
★★가장작은것들이기적이되는순간
태평양상공에서붙든세가지기도는거창하지않았다.'아빠'라는한마디,식탁에서함께먹는밥한술,기계의도움없이쉬는스스로의숨.그것이전부였다.그런데그소박한기도들이하나씩이루어지는과정을따라가다보면,독자는자신이'기적'이라부르던것의정의가슬며시바뀌는것을느끼게된다.
채은이가숟가락을쥐고천천히음식을입에넣는장면은누군가에게는무심한일상이지만,저자에게는태평양상공에서했던간절한기도의한부분이조용히이루어지고있는순간이다.그장면하나가독자의가슴에오래남는것은,그것이기적을'완치'가아닌'함께있음'으로다시정의하기때문이다.
★★가족이함께만들어간리듬
언니래은이는아무도시키지않았는데어느날부터인가채은이의팔을조심스럽게들어스트레칭을돕기시작했다.오빠도현이는주사를맞으러가는채은이에게'괜찮아?'라고걱정스럽게묻는대신,'이번엔몇시에끝나?끝나고뭐먹을까?'라고자연스럽게묻는다.그질문속에는걱정이사라진것이아니라,걱정을다루는방식이바뀌었다는사실이담겨있다.
이책의뒷부분에는아빠의글을포함해엄마,외할머니,언니,오빠그리고채은이가직접쓴글이실려있다.이글에는수많은시련속에서도어디선가나타나도움의손길을건넨사람들에대한감사,아픈아이를키우는자식을바라보는안타까움,한참아빠엄마의사랑이필요한시기에아픈동생을위해그사랑을나누어야했던언니,오빠의사랑,그리고조금씩세상을경험하고있는채은이의이야기가들어있다.다섯살때휠체어를'띡의자'라고불렀던아이가,초등학교4학년때식당에서처음으로차별을경험하고,지금6학년이되어이렇게쓴다.'내가바라는것은단하나다.장애가있는사람도똑같이웃고,상처받고,꿈꾸며살아가는사람이라는것을더많은사람들이알아주었으면좋겠다.'그문장은,이책전체가하고싶었던말이기도하다.
★★계란으로바위를쳐서,세번모두이겼다
보험사는채은이의병을'선천성질환'이라규정하고보험금지급을거절했다.'예정된불행'이라는이름으로한가족의고통을행정언어로정리한것이었다.채은이의아빠,엄마는거기에동의하지않았다.
엄마는밤마다진료기록을펼치고의학논문을읽으며기록감정신청서를다듬었다.마침내나온기록감정결과는명확했다.'김채은은출생후7개월에척수성근위축으로진단받았으므로선천적질환으로보기어렵다.'그렇게시작된소송은1심,2심,3심까지모두승소로끝났다.그판결이만들어낸'선천성'의개념에대한리딩판례는척수성근위축증환우뿐아니라유사한유전자질환으로보험사와같은문제를겪는모든가족에게하나의기준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