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민중의형성’인가,‘민중만들기’인가?
이책은한때한국사회에서널리회자되었던‘민중’에대한책이아니다.혹시라도이책을통해,민중이라는단어의기원,그단어가지칭하는역사적실체,그리고한때나마저‘민중’이라는단어가궁극적으로가리키는것으로간주되었던역사발전의핵심‘주체’를찾고자한다면실망할수도있다.하물며,그와같은주체로서의민중혹은민중운동의역사적등장과성장,그들의성공과좌절을이책에서찾기는힘들다.이책은‘민중’이라는개념을,그역사를그런방식으로다루지않기때문이다.
사실,민중이라는개념을그와같은방식으로다루는데에는처음부터많은한계가있었다.‘민중’이라는단어가한때한국의정치와사회,역사와문화,경제를분석하는핵심개념으로회자될때도있지만,사실‘민중’이라는개념을둘러싼역사는도대체그민중이‘누구인가’를규명하기위한수많은논쟁과경합의역사에다름아니었기때문이다.이런사정은민중을대신해좀더사회과학적인,좀더분석적인개념이라고생각되었던‘계급’에대해서도마찬가지다.‘계급’이라는개념,그리고그계급운동의역사에대한논쟁역시‘계급’이라는개념을둘러싼담론투쟁의역사였고,그자체가이미계급(에관한)‘투쟁’의역사이기도했기때문이다.좀더최근에회자되고있는‘서민’,‘시민’,‘다중’,‘대중’,‘서발턴’,‘프레카리아트’등등역시이같은문제를피해가기어렵다.누가진정한‘민중’이며,누가진정한‘프롤레타리아’인가?누가진정한‘다중’이고,‘대중’이며,‘서발턴’이며,‘프레카리아트’인가?그렇다면,한번생각을바꿔달리생각해볼수있지않을까?과연‘민중’이라는지극히독특하며한국적인개념이언제어떻게형성되었고,이같은개념을만들어낸이들은누구였으며,이들이이단어를통해한국사회에미치고자했던효과는무엇이었는지말이다.
이책은바로이런문제에서출발을한다.다시말해,이책은이른바‘민중운동’으로일컬어지는한국의민주화운동에참여했던지식인과대학생에관한것으로,이들이1970년대와80년대에걸쳐‘민중’이라는개념을어떻게만들어내고,‘민중’에대해어떤논쟁을벌였으며,‘민중’에대한자신들의고민을어떻게실천했는가를다루고있다.이책의제목이‘민중의형성’이아니라‘민중만들기’인까닭도바로여기에있다.
오직민중만이완전히민족적이며,오직민중만이완전히민주적이다.이것이[역사발전의]주체를찾는과정에서시행착오를겪은한국근대사에대한[나의]성찰의결론이다._김민석
물론나는알고있다/내가운동보다도운동가를/술보다도술마시는분위기를더좋아했다는걸/그리고외로울땐동지여!로시작하는투쟁가가아니라/낮은목소리로사랑노래를즐겼다는걸/그러나대체무슨상관이란말인가_최영미
2.역사의주체는어디로?
그렇다면,1970년대와80년대에지식인들과대학생들,학생운동권은왜민중이라는단어를다시(재)발명해내야했던것일까?그들은왜이시기에‘민중프로젝트’를추진하게되었을까?그것은바로우리가한번도역사의주체였던적이없었다는위기의식,말하자면‘역사주체성의위기’때문이었다.일본제국주의에의한식민지경험,한국인의직접적인참여없이이루어진해방,외세의개입에의한분단과전쟁을겪으면서,그어떤대안에대한고민과시도도없이자본주의적발전이라는경로로휩쓸려가게된한국현대사에대한비판적인식이그한축을이룬다.다른한편,이같은위기의식은산업화가급속히진행되고유신체제가도래한1970년대에더욱증폭되는데,박정희정부가추진한근대화와개발은‘미완성’의‘실패’한역사가가져온궁핍으로부터탈출을의미했지만,그것은또한과거와현재,도시와농촌,노동자계급과중산층사이의심각한단절은물론,억압적이고체계적인권위주의체제의본격적인도래를의미했기때문이다.
이런상황혹은시대인식속에서,당대의지식인들이실패의역사를극복해내며,국가가주도하는공식적인발전전략과담론들에맞설수있는대항주체로발명한것이바로‘민중’이었다.다시말해,민중이란어떤물적·역사적토대를가지고있는분석적인개념이라기보다는,지식인들과대학생들이간절히염원하는유토피아적지평을구성하는대상이자,기존의실패한역사는물론이고,국가가주도하는발전주의적지배담론에맞서이들이쟁투를벌이는대항공론장이기도했다.
이책에서‘민중운동’과‘민중프로젝트’는특별히구분되어사용되지않으며,이두용어는대체적으로같은의미를갖는다.다만‘민중운동’이일정한시기에표출된사회운동으로서그것이가지고있는역사적맥락과그특수성을강조하는것이라면,‘민중프로젝트’는‘민중’이라는개념이생성되는과정과그개념을실천하기위해사회각분야(학술,예술,종교등)에서이루어진다양한시도를이론적이고보편적인틀에서강조하는것이다(“서문”,22쪽).
필자는이책에서문화사라는접근을시도하고있다.이는역사학에새로운방법론을도입하고자하는필자의욕심을반영하는것이기도하지만,더중요하게는어떻게하면미국내한국학이라는테두리에얽매이지않고보다폭넓은독자들과이중요한이야기를공유할수있을까하는필자의고민을반영하고있다.
이책에서필자는‘민중프로젝트’를구조적선제조건,억압적인군사정권및급속한산업화,그리고민중운동이스스로배태한‘정치문화’가복합적으로상호작용하면서만들어낸산물로이해한다.여기서말하는‘정치문화’란린헌트가프랑스혁명에대한연구에서다룬바있는“집단적목적과행동으로표출되고,또그것을형성한가치관,기대심리,암묵적규칙”을지칭한다(Hunt1984,10-11).따라서정치문화란비전,언어,코드,이미지등을공유하는것과같은상징적행위로구성되며,이를통해새로운정치적주체성이형성된다.민중프로젝트를정치·문화·상징권력의장場에서이루어진힘겨루기의산물로이해할때,민중프로젝트는억압과저항,권력과해방사이의경계가고정되어있는것이아니라유동적이라는것을보여주며,국가가주도한민족주의·근대화담론과,이와대립관계에있는민중담론사이에교차점이존재한다는것을보여준다.
3.문화사에서공지성公知性이론까지
그렇다면,이들은‘민중’을어떻게재현하려했으며,이런재현이물질화되어이루어진대항공론장은어떤것들이었을까?이와관련해,저자는자신의방법론을특히,문화사적접근방식이라고지적을하는데,이는구체적으로린헌트의‘정치문화’(“집단적목적과행동으로표출되고,또그것을형성한가치관,기대심리,암묵적규칙”)에대한정의에기반을둔것이다.이책은이같은방법론에기대,시나,수기,소설등의문학작품들은물론이고,팸플릿,대자보,회의문건,운동권학생들이주도했던학술대회,마당극등에이르기까지,당시지식인과운동권들이새로운정치적주체성을구성하기위한활용했던다양한민중프로젝트를살피고있다.이는어느서평자의지적처럼,“새로운정치적주체성의구성을위한민중기획에대한저자의논점을예증하는동시에,당시의운동권에대한세부적이고풍부한묘사를담은역사서술로도성공을거두고있다.특히,1970~80년대학생운동에대한세밀한묘사,활동가가되어가는과정,그리고학생운동의내부체제들에대한치밀한서술은문화담론적인것과정치운동적인것의연계,혹은거시적인것과미시적맥락에대한정련된탐구의한전형을보여주고있다”(권영숙,“70년대이후한국의‘민중’운동,구성혹은해체의역사”역사비평83호,2008,463쪽).나아가,이를제임스스콧,가야티르스피박등의서발턴이론,린다알코프등의페미니즘이론과지식인의책임성에대한논의,마이클최의공지성이론등다양한이론적성과에비추어그내용을맥락화하고,서구의논의들과비교함으로써,‘민중프로젝트를’최신역사학의이론적자장속에서새롭게평가하고있으며,한국의민주화운동을세계역사의무대위에올려놓고있다.
4.민중과지식인
현재의시점에서회고적으로되돌아보면,1970년대와80년대지식인들,운동권의민중관은다분히레닌주의적전위의함의를담고있는것으로보인다.재현의불가능성이진리처럼회자되고,무엇보다운동의당사자성을강조하는오늘날의이론적·실천적흐름속에서,1970년대와80년대지식인들이고민했던재현의정치학은어찌보면,진리에대한지식인/전위의독점,지도와피지도의논리를고스란히답습하는것이자,온정주의적인민중관에서그리멀리나아가지못한것으로만비친다.대체로,오늘날이시기의운동에대한평가는큰틀에서이와같은시각에근거해이뤄지고있다.물론,저자역시당시민중운동에서나타난이러저러한한계에대해지적을하고있다.그럼에도,저자는당시‘운동권’으로살겠다는결정은가장극단적인경우미래를포기하고,일시적인경우라하더라도당장가족과의모든관계를끊어버리는고통까지도감수하는것을의미했으며,따라서이들은운동권에가담하면서한편으로는자긍심을,다른한편으로는죄책감을가졌고,그런만큼이들의자기희생은더욱극적이고치열했다고지적한다.나아가,이들역시역사가여전히해명하지못한문제,즉지식인의정확한역할(말하자면,민중의대변자역할을해야하는가?아니면,지식인의우월적지식과도덕적권위를전면적으로부정하고민중의뜻에복종할것인가?)이무엇인가를놓고고민했다.이점에서이책은또한운동권이민중운동속에서이딜레마와어떻게대면했는지,이를풀어내기위해어떤다양한노력을했는지를역사화하려는시도다.
●책의구성
이책은크게세부로구성되어있다.
제1부(1~3장)에서는민중운동에서운동권이가지고있던중심적인문제의식을“역사주체성의위기”로파악하고이를짚어본다.당시지식인과대학생사이에는한국의근·현대사는실패한역사이며,민중은역사의주체가아니었다는역사의식이만연해있었다.
“1장민중의형성”에서는해방후남한에서의사회운동역사와유신체제의등장을간략하게훑어보고이‘역사주체성의위기’에대해살펴본다.이어서운동권에혁명이라는‘과업’을안기고민중을역사적주체로규정하는데가장중요한역할을한사건으로광주민중항쟁을논의한다.아울러민중담론이만들어지는과정에서논쟁과동원의대상이된1894년동학농민운동,1948년제주4·3항쟁,그리고1950~53년한국전쟁의의미를검토한다.
“2장반공주의와북한”에서는한국의반공주의가애초부터북한과그들의추종세력만을겨냥했던것이아니며,국내의반정부세력을겨냥하고있음을보여준다.
“3장반민주의와주체사상”에서는1980년대의여정이가져온두개의가장중대한결과를다룬다.즉,국내지식인과학생들의인지지도에서헤게모니적지위에있던미국이가졌던위상의붕괴그리고북한에대한운동권의재평가가바로그것이다.
제2부(4~6장)“대항공론장의형성”에서는민중운동을‘대항공론장’으로개념화한다.민중운동가들이전개한대항담론은국가가정한공공의제에이의를제기하며1980년대한국의사회·정치담론의틀을새롭게짰다.민중운동은대항담론을전개시키는공론장이었다.
“4장대항공론장으로서의운동권”에서는,1970년대의사회정치적,문화적맥락속에서,도덕적특권담론이부상하게된배경을살핀다.그런다음운동권이어떻게스스로를대항공론장으로구성하고조직했는지논의하면서,구체적으로는도덕적특권담론,선후배관계와같은운동권의비공식적제도,원서原書의배포,서클과지하스터디그룹,운동권의필독목록등을살펴본다.그런다음,1970년대초부터80년대말까지의시기를세시기로나눠조명하며,이세시기에걸쳐일반학생이운동권일원이되어가는과정을그린다.
“5장불확정성과급진적비판사이”에서는마당극이지니고있는전통발명의정치학이라는포괄적인맥락과,구체적으로는한국정부가국가정책차원에서주도한민속문화부흥이라는맥락을살펴본다.그런다음,조선후기유행했던전통연희를배경으로1970년대유신체제를비판하는‘저항극’으로확립된탈춤의연극적·미학적구조를간단히살펴보며,마지막으로광주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