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방대하며, 정확하고, 과학적인 설문조사 결과
노동경제학의 대부, 하버드대 경제학과 리처드 프리먼 교수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2400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통해 “노동자가 회사에 바라는 거의 모든 것”을 분석한 책으로, 2005년 후속 연구들까지 종합해 업데이트한 개정 증보판이다. 프리먼은 미 전역의 5250만 명이 넘는 (25인 이상 규모의 민간 기업 소속) 노동자 모집단에서 2400명의 샘플을 추출해(이는 전국 단위 여론조사가 다루는 표본의 2배 규모다) 30분이 넘는 전화 설문 조사를 했고, 여기서 또 800명을 추려 추가 설문을 했다. 또한 특정 이슈만을 다루는 기존 조사들과 달리, 노동자들이 직장 생활을 하며 겪는 거의 모든 이슈, 즉 직업 만족도, 노조에 대한 입장, 고용주에 대한 태도 등을 다루고 이들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을 뿐만 아니라 관리자들까지 설문 대상의 폭을 넓혀 회사 내 서로 다른 주체들의 입장을 실증해 냈다.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아주 과학적”인 설문조사로 정평이 난 이 연구를 통해 프리먼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시장주의자들” 양쪽이 모두 놀랄 만한 결과를 이야기한다. 노동계도, 재계도 몰랐던 현장 노동자들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왜 노동자의 속마음이 중요한가
“그 어떤 나라도 노동자들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노사문제를 다룰 수 없다. …… 우리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다고 믿는다. 어느 때보다 불평등이 심하고 노동자는 침묵하는 이 시대, 분명히 이보다 더 ‘옳은’ 것은 없을 것이다.”
프리먼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사는 내가 얼마나 잘사느냐는 두 가지, 즉 얼마나 좋은 직장을 얻었는지, 그리고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달려 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고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가 미비한 나라일수록 한 개인의 행복에 기업이 미치는 영향은 특히 더 심대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제대로 대표되고 있지 못하다. “노사정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노동자가 원하는 것’, 그것이 정말 현장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일까?” 노동경제학자 프리먼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실제 이 조사는 클린턴 행정부하에서 노동법 개정을 위해 구성된 미래노사관계위원회에 자료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로 법 개정에 실제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은 많았다. 노동자가 원하는 것에 대체 왜 주목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노사 관계가 점점 임시적 관계로 바뀌고 있고, 노동자는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중요한 건 기업 내의 역학이 아니라 전체 경제라고 하는 비판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전문가는 따로 있으니 노동자에겐 그다지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거나 승진 기회가 있는 직장으로 간주하는 노동자는 60퍼센트 이상이었고, 과반수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고 대답했으며, 회사에 대해 애정이 거의 없다고 대답한 노동자는 15퍼센트에 불과했다. 또 “부유층의 요트는 파도에 올라탔지만, 빈곤층의 쪽배는 가라앉은” 현실, 즉 전체 경제가 나아져도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서 노사관계는 확실히 중요한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노동경제학자 프리먼에 따르면, 고용관계란 직종마다, 상황마다 다르고 어려운 법적 논변이나 추상적 경제 모델이 아닌 인간과 관련된 문제다. (자신을 포함해) 아무리 뛰어난 경제 전문가라도 그것이 철수나 영희의 직장 생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자기 직장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노동자 자신인 것. 기업을 개선시키고 싶다면 당연히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평범한 여론조사의 기준을 넘은 설문조사의 모범
: 어떻게 노동자의 속마음을 알아낼 수 있는가
“최근 30년 동안 여러 설문조사들이 직장 내 권력 및 노사 관계에 대한 노동자들의 시각을 알아봤지만, 이 프로젝트가 가장 광범위한 연구 분석이라고 우리는 자부한다. …… 모든 자료를 취합한 결과, 우리는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확보했다.”
그간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주류 경제학자들, 시장주의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어떤 이론이 노동자들의 바람을 설명해 줄지 골몰해 왔고, 2) 저널리스트들은 질적 조사, 즉 인터뷰를 통해 이를 시도했으며, 3) 정치가들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한두 줄짜리 질문을 추가하는 것으로 이를 알아보려 했다. 하지만 프리먼이 보기에 1은 실재를 오도하는 공허한 이론일 가능성이 높고, 2와 같은 소규모 인터뷰는 포괄적인 노동자 집단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3과 같은 여론조사는 보통 성급한 답변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프리먼은 “더 야심찬 목표”, 즉 “모든” 노동자의 견해를 “정확히” 대표하고 싶었다. 그는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들이 자신의 답변을 숙고하고 곱씹어 대답하도록 만들고 싶었고, 평범한 여론조사의 기준을 넘어선 과학적 타당성을 추구하고 싶었다. 또 실제 노동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계와 노동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추구해야 했다.
이를 위해 프리먼은 포커스 그룹을 선정해 직장 내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하고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설문지를 작성하는 방법을 택했다. 토론 과정에서 프리먼은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해 낸다. 우선, 노동자들은 처음 몇 분은 “그럭저럭 괜찮다” “딱히 불만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특정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깊이 생각할수록 점점 더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냈고, 질문 하나만 던졌을 때는 별 생각 없이 “그냥저냥 만족해요”라고 이야기하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그런 피상적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의 대부분의 설문들은 포괄적인 질문만 던지거나 워밍업 없이 곧바로 답변만 얻어내려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태도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지 못했던 것. 따라서 프리먼의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충분히 “긴 시간”을 가지고 인터뷰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직장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십니까” 같은 포괄적 질문은 배제했고, 특정 사안에 대한 만족도, 즉 수당이나 직업훈련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이슈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만족하는가” 같은 상투적 문구 대신, “다른 회사가 아닌 지금 회사를 선택한 데 만족한다” 같은 식으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또 포커스 그룹 노동자들의 토론 결과, 노동자들은 자기 직장에 대해선 아는 게 많아도 일반적인 노동 현안에 대한 지식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프리먼은 되도록 “미국에서 피고용인은....” 같은 식으로 말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직접 경험해 알고 있는 작업장 현안을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회사에서 당신은...” 같은 식으로 말했다. 또 생산직과 사무직 등 직종별로 걱정하는 문제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이질적인 노동자들에게 서로 다른 스플릿 설문을 실시해야 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실제로 이 설문 프로젝트가 전 세계 노동경제학 연구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이후 주요 영어권 국가들(캐나다, 영국, 호주)과 독일, 일본, 한국에서도 이를 본 딴 프로젝트들이 진행되었으며 대체로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재계의 생각과 달리) 노동자들은 더 참여하고 싶어 하고, 더 노조를 원한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바라는 참여 및 발언 수준과 현재 그들이 누리고 있는 영향력 수준의 격차는 컸다.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발언권과 더 많은 참여를 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후속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측에 대한 신뢰도가 감소함에 따라 이와 같은 노동자의 욕망은 계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노동자들이 발언권을 더 갖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켜 결국 회사도 더 성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열린문 정책 같은) 개인적 참여 방법과 (노조와 같은) 집단적 참여 방법 가운데 선호는 55퍼센트, 43퍼센트로 비교적 균등한 양상을 보였다. 이런 차이는 현안별로 갈렸는데, 의료보험이나 산업 안전, 임금과 복지 혜택 같은 노동자 집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들의 경우 집단적 소통을 더 선호했지만, 성희롱, 부당한 대우 같은 이슈의 경우 개별적 소통을 더 원했다. 결론적으로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처리할 영역과 집단적으로 처리할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무노조 기업 노동자의 32%가 노조를 원하고 있으며, 현 노조원의 경우 노조에 대한 지지율이 90퍼센트로 월등히 높다는 사실이다(노조 지지율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모두 합하면 44%로 현재 노조 설립율보다 네다섯 배 높은 수치다). 이는 상당히 특이한 점인데, 다른 질문들의 경우 노조가 있든 없든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프리먼은 여러 가지 검증 과정을 거쳐 이는 현재 노조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결론 내린다.
노동자들은 또 회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경영진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발언권이나 대표권을 더 내줄 리 없다는 것. 노동자들은 경영에 대한 지식과 이해에서는 경영진에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노동자 대우에 있어서는 44%가 C이하의 점수를 주었고, 노조를 원하는 노동자의 55%가 노조를 설립하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경영진의 반대를 들었다. 흔히 경영진은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알맞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서 노조의 힘이 감소한 것이라 주장해 왔지만 설문 결과 경영진의 반대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진의 견해에 따라 노조에 대한지지 여부가 바뀔 거라고 응답한 노동자들은 12%로, 노조 인증 선거가 부동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