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

특권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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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미국의 뉴햄프셔 주, 콩코드에 위치한 명문 사립고 세인트폴 스쿨은 오랫동안 부유층 자제들만이 다니는 배타적 영역이었다. 500명 남짓의 아이들이 2000에이커에 달하는 부지에 늘어선 1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100개 이상의 고딕 양식 건물들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는다. 이 학교의 연간 학비는 4만 달러, 학생 1인당 책정된 학교 예산은 8만 달러, 한 학생당 기부금은 100만 달러에 달한다. 가난한 파키스탄 이민자였지만 외과의사로 성공한 아버지 덕에 이 사립학교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저자는, 그러나 그 시간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고백한다. 졸업 당시 동문회장에 뽑힐 정도로 학교생활에는 잘 적응했지만, 실은 “엘리트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내내 “불편”했다. 이런 “특권층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 그는 졸업 후 아이비리그로 직행한 동기들과 달리 작은 리버럴아츠 칼리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경험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의문을 남긴다.
“왜 누구는 이런 학교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데, 누구는 죽도록 노력해 성취해야 하는 일이 되는가? 왜 어떤 애들은 학교생활이 너무 편하고 쉬운데, 어떤 애들에겐 악전고투해야 하는 일이 될까? 왜 이런 엘리트 학교의 대다수는 여전히 부잣집 애들인가? 이들은 어떻게 기존의 특권을 그대로 수호하면서도 타고난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능력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걸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졸업 후 9년 만에, 이번엔 선생이자 연구자로서, 모교로 돌아간다.
저자

셰이머스 라만 칸

파키스탄과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다. 세인트폴 스쿨 졸업 후 하버포드 칼리지와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에서 에릭 올린 라이트, 로버트 하우저, 마이라 맑스 페레이 밑에서 수학하며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연구했다. 2007년부터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로 엘리트를 대상으로 한 문화연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교인 세인트폴로 돌아가 1년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완성해 낸 이 책 『특권』으로 2011년 C.W. 밀스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재직 중인 컬럼비아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Sexual Citizens를 출간했다. 컬럼비아 인구리서치센터와 여성·젠더·섹슈얼리티 연구소 소속 연구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뉴욕 엘리트에 대한 연구 Exceptional: The Astors, Elite New York, and the Story of American Inequality을 준비 중이며, 러셀세이지 재단의 “경제 엘리트들의 정치적 영향”을 다루는 연구 프로젝트와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후원자들의 취향을 분석하는 앤드류멜론재단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목차

서론 | 민주적 불평등 13
1 새로운 엘리트들 43
2 자기 자리 찾기 83
3 특권의 편안함 147
4 젠더와 특권의 수행 213
5 베오울프도 배우고 〈죠스〉도 배우고 279
결론 351
방법론적 ·이론적 성찰들 364
감사의 말 372
해제 | 엘리트들의 ‘공정’ 사회 | 엄기호 377
옮긴이 후기 390
미주 396
참고문헌 408
찾아보기 414

출판사 서평

* 민주화 이후 엘리트의 진화 : 능력주의 신엘리트의 등장
1993년, 올리브색 피부의 열네 살 소년 칸은 처음 도착한 세인트폴 스쿨 기숙사에서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다. 예상과 달리 기숙사가 온통 흑인과 라틴계 애들뿐이었던 것. 하지만 이는 그 기숙사가 유색인 학생들만을 따로 모아놓은 ‘소수학생 기숙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나머지 기숙사들은 온통 백인 명문가 자제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학교 측의 인종차별적 조치 때문이 아니었다. 학교는 이 기숙사를 없애고 그들을 다른 백인 학생들과 함께 거주하도록 할 작정이었으나 이를 반대한 것은 오히려 유색인 학생들이었다. 유색인 학생들은 그곳의 백인 엘리트 학우들 사이에서 “불편”했고, 고향 동네에서처럼 자기네들끼리 있는 게 속편했던 것이다.
그리고 졸업 후 9년 만인 2004년, 교사로서 엘리트 연구를 위해 모교에 돌아간 칸은 충격적인 변화를 목격한다. 여전히 백인 명문가 부유층이 지배적일 거라는 그의 예상을 깨고,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고립된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세인트폴의 인종적·계급적 다양성은 더욱 증가했고(“빈자와 부자, 흑인과 백인,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교실과 운동장, 댄스파티와 기숙사, 그리고 침대에서 청소년기를 공유”), “이미 성공의 열쇠를 쥔 양 행동하는” 특권층 아이들은 “세인트폴의 치부”로 여겨지며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학생들은 이런 학생들의 입학 경위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들이 여기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문화적으로도 이들은 기존의 엘리트에 대한 고정관념과 달랐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지식과 문화, 인맥 주변에 장벽을 두르고 고급문화, 고급 취향을 구분지으며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폐쇄적인 엘리트들이 아니었다. 전세 비행기를 타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보고 와서는 랩음악을 즐기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개방성과 문화적 잡종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 내놔도 평범한 미국 시민 같은 외양에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기사식당에서 똑같이 편안히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엘리트들이었던 것.
저자는 이와 같은 세인트폴 신엘리트들의 경제적 기원을 과거 이주민이 유입되면서 일어난 부의 지각변동에서 찾는다. 과거 자본수입이 압도적이었던 부자들과 달리 이제는 임금 소득이 압도적이 되면서 “자신들의 위치를, 그들이 가진 자본이나 물려받은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하는 일로 설명”하는 부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이들과 우리의 차이는 공장을 소유하느냐 그 공장에서 일하느냐의 차이에 있지 않으며, 오히려 “아침에 일어나 월급받기 위해 출근”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우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과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한” 민주사회에서 “결과도 정의로운” 사회에 도달한 것일까?


* 불평등의 심화

35쪽: “여전히 세인트폴은 이미 엘리트인 이들을 위한 곳이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면 벤츠나 BMW가 바다를 이루고, 기사를 동반한 롤스로이스도 간간이 보인다. 햇볕이 쨍한 날이면 캠퍼스는 이들이 목과 손목, 손가락에 무심코 걸친 잘 세공된 보석류로 반짝거린다.”

우리는 보통 개방성이 평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엘리트 기관들에서 흑인과 여성은 모두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우리는 이것을 ‘평등’의 지표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상위층의 소득 증가를 분석해 보면 오히려 불평등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평균 가계소득은 25퍼센트 증가했지만, 상위 5퍼센트의 가계소득은 68퍼센트 증가했으며, 상위 1퍼센트는 323퍼센트, 최상위 0.1퍼센트는 492퍼센트 증가했다. 게다가 그 어느 때보다 소외계층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하는 하버드 대학에서 ‘중간 소득’ 구간에 위치한 학생들은 미국 사회 전체로 놓고 보면 상위 5퍼센트 소득 수준에 해당한다. 이렇게 (인종적·문화적) 개방성은 증가한 듯하지만 실은 계급적으로 더 불평등해진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엘리트 기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소외계층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왜 그 어느 때보다 부와 권력의 세습은 심해진 것처럼 보이는가? 그런데도 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이런 세습을 능력주의로 포장하고 있는가?
저자는 바로 그 해답을 이들의 학교생활에서 찾는다.


* “세상은 위계적이다. 하지만 그 위계는 우리 엘리트들이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다.”

144쪽: “노력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무한한 가능성이 지닌 가치에 대해 세인트폴 학생들이 피력하는 믿음은 몹시 놀랍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깜찍하며 상당히 순진무구하다. 그런 믿음은 꽤나 편리한 것이기도 한데, 이에 따르면 위계는 분명 자연적 불평등을 반영하지만 그것이 항구적인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은 위계를 넘나드는 법을 배움으로써 개인이 사다리에서 자신보다 위/아래 있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위계는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사다리 위에서 성취하는 것들이 온전한 자기 노력의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학생들이 세인트폴에서 가장 처음 배우는 것은, 바로 위계의 존재다. 세인트폴에 들어와 제일 처음 치르는 입회식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학교 교직원과의 관계, 각별한 사제관계, 선후배 관계에 이르기까지 세인트폴의 일상사는 온통 위계를 몸에 익히는 과정들이다. 아이들은 이 세상이 이와 같은 위계질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익혀 나간다. 예배당에서 (몇십 년간 학교 건물을 청소해 온 교직원에게는 배정되지 않는) 자기만의 지정석을 갖게 되는 첫 경험에서부터 이들은 “세상은 위계적인 곳이며, 이런 위계 안에서 사람은 제각기 다른 위치를 차지한다”는 질서를 각인하며,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한 줄씩 위치가 상승하는 것을 통해 위계가 자신들을 제약하는 천장이 아니라 오를 수 있는 사다리라는 걸 배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상승의 원리를 (학년이 올라가는 건 교과과정상 당연한 변화인데도)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학생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 오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또 학생들은 선생과의 복잡다단한 밀도 높은 관계를 통해서도 위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법을 배운다. 선생들과 24시간 붙어 지내면서 세인트폴 학생들은 다른 일반고의 사제관계를 넘어선 매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위계에서 자신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과 어떨 때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또 어떨 때는 그 선을 살짝 넘나들면서 막역하게 지내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와의 관계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교사들의 ‘헌신’에 대한 학생들의 감사하는 마음 속에 숨겨진 엘리트적 태도이다. 교사들이 하루 종일 캠퍼스에 살면서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며 항상 그들을 위해 ‘대기 중’인 모습은 엘리트들에게 자기 삶의 중요성과 자신들의 가치를 주입시키는 데 일조한다. 졸업생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칸은 세인트폴 출신들이 교사의 헌신에 대해 특히나 감상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는데 뛰어난 교사들이 자기 삶을 완전히 바쳐 학생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의 기저에는 사실 “자존감”이 흐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청소나 식당일을 하는 교직원들과의 관계와 비교된다. 교직원들은 사실 학교에서 가장 명백하게 ‘불평등’을 드러내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같은 공간, 동시대를 살지만 완전히 분리된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엘리트들이 이런 명백한 불평등을 상기시켜 주는 가시적 증거에 대처하는 방법은 ‘무시’이다. 학생들에게 직원들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에게 매일같이 음식을 내다 주고 그들이 먹고 자는 곳을 청소해 주는 그들의 이름을 (그들이 달고 있는 명찰에도 불구하고) 실제 댈 수 있는 학생은 없었다(이는 선생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특히 대조적이다.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은 학생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저자는 이들의 삶이 드러내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물어보았으나 학생들은 대부분 교직원들이 마주한 삶의 난관을 구조적 불평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맞닥뜨린 불운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교직원들 가운데 예외적인 인물이 둘 있다. 바로 식당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빅 가이와 우유 난쟁이. 저자는 유독 이 둘과만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의 장애가 그들이 출세하지 못하는 데 대한 명백한 설명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은’ 존재로 여길 수 있었던 것. 또 예상과 달리 직원들에게 더 친절하고 잘 지내는 아이들은 중간계급이 아니라 부잣집 아이들이라는 점도 발견한다. 부잣집 아이들은 자신의 위치가 확고하므로 직원과 더 편하게 안정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반면, 중간계급 및 노동자계급 학생들에겐 직원의 존재가 자신의 출신 배경을 떠오르게 하는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
학생들은 학교 안의 이런 다양한 관계들을 경험하며 위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관계를 넘나드는 방법을 체화한다. 세인트폴의 가치는 공부가 아니라 바로 이런 관계를 경험하며 “거기 있는” 데 있다.



* 특권의 편안함

189-190쪽 : 그들이 대부분의 미국 십대들과 다른 점은 분명 무수히 많을 것이다. 사는 집에서부터 겨울 방학 동안 스키 타러 가는 곳, 또 여름방학 때 고향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인턴십 기회들까지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부유한 삶의 치장들 가운데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자랑스레 떠벌리는 일은 없었다. .... 학생들은 엘리트 지식에 가치를 두는 것도, 자신들과 다른 사람을 구분해 주는 것들을 즐기는 것도(또는 그 뒤에 숨는 것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배운다. 대신에 그들은 문화적 경계들을 가로지르며 더없이 자유롭게 소비하는 법을 배운다. 그 모든 것을 흡수하도록 그리고 모든 것을 흡수하기를 원하도록 배우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나와 디엠엑스와 바이올린 기교 모두에 대해 대화를 나누도록 배운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부와 특정한 지식을 이용해서 경계를 형성하는 대신, 운동장은 평평하다는 걸 시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