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말로써서로를달래어조정해자유와질서를보존하려는인간의개명된행위이다.
모든사람이천사라면갈등은없을것이고,그런천사들이사는곳은정치가필요하지않은천국일것이다.모든사람이악마라면만인은만인에대해투쟁할것이고,그런사람들이사는곳은지옥이거나자연상태일것이지,정치적공동체는아닐것이다.모두가동질적인사람들로구성된곳에서는아마도이처럼정치가필요없거나,불가능할것이다.
정치는체계화된국가가단일한종족,종교,이해관계혹은전통이아니라다양한사람들에의해구성된집합체라는사실에대한깨달음에서출발한다.너와내가좋아하는것이다르고,너와내가그리는꿈과이상이다르며,그렇기에이해관계가다르다는사실에대한깨달음말이다.그러나이같은깨달음이존재한다고해서곧바로정치적인체계가설립되는것은아니다.차이는억압을통해언제든파괴될수있고,은폐될수있기때문이다.정치적인체계는이같은차이에대한깨달음에서더나아가,이런차이들에대한승인,그리고우리가이런차이들과더불어살아갈수밖에없다는사실에대한인정속에서만등장할수있다.그렇기에정치적인체계의성립은자유의탄생이라말할수있는데,이는함께더불어살아가는사람들이서로에게법적지위를부여하며,안전을제공하고,자유롭게발언할수있도록의사표현의수단을충분히보장하는것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흔히국가가존재하는모든곳에정치가존재한다고말한다.하지만이책이지적하듯현실은그렇지않다.정치는이처럼인간의개명된행위이기때문에매우드문것으로우리가의식적으로보존하기위해노력해야하는것이다.그것은소란스럽고,비용이많이들고,양보와타협을강요하며,시간을잡아먹는일이지만,그이외의정당한방법은없다.적어도우리가무력을사용하지않으려한다면말이다.
#선과악사이에도정치는불가능하다
오늘날한국정치를지배하고있는흐름은정치를여전히어느하나의이념이나,제도,가치,도덕으로환원하려는시도들이다.정치적인경합을빛과어둠,선과악의대결구도로상정하거나,적과아의대결,민주주의세력대반민주주의세력의대결로그리는모습이대표적이다.집권당들의목표는,다음선거에서정권이교체되어도다음정부가되돌릴수없는제도를확립하는것이거나,아예한걸음더나아가향후100년동안‘계속해서’집권하겠다는것이다.정치인들은서로를조롱하고경멸하는표현들로부르고,한지붕아래함께살아갈수없는사람들인양서로저주한다.선거가끝나면시민들은어떻게저런세력들에게표를줄수있느냐는하소연을동료시민들에게하고,특정지역을비난하거나폄하한다.이같은조롱과하소연의이면에는상대방을함께더불어살아가야할공동체의구성원으로바라보는것이아닌,공동체에서척결하거나쫓아내야할적으로바라보는시각이깔려있다.이런시각이지배적인사회에서는정치가제대로작동할수없다.정치는도덕적선악으로재단될수있는것이아니며,그어떤고귀한가치나신념에기반을둔행위가아니고,그래서도안된다.정치는말그대로인간이처한실존적현실에대한인식에서출발해,이질적인사람들이함께모여폭력적방법을제외한채공동체의문제를해결하기위한해법으로출현한것이기때문이다.
이책은특정한정치적이념이나가치를옹호하는사람들이자신들이소중히생각하는가치가결코배타적으로정당하다거나옳은것이아님을인정하고,한사회의다양한가치들이정치적으로작동할수있는맥락을부정하지않도록유의해야함을일깨워준다.특히,진정한정치적신조는오히려조정이라는,끝도없고어렵기짝이없는문제들에대해구체적이고실현가능한해결책을찾아내려는시도임을역설한다.
#정치는민주주의로도환원될수없다
정치는말로달래어조정하는행위라는저자의주장,특히이를민주주의로환원할수없다는지적의의미를곱씹어보는일은매우중요하다.유독한국사회에서는민주주의를절대적인최상의가치로상정해,정치적인경합을민주주의대반민주주의(혹은독재)의틀로만환원하려는경향이강하다.또한이같은이분법을기반으로상대방을서로악마화하고,이를선악의가치로전환시키기까지하며,민주주의를절대선으로바라본다.이같은구도에서여당은대체로제왕적권한을가진다는대통령과더불어독재세력,반민주세력으로불리며비판을받는데,얄궂은일이지만,이같은상황은정권이교체될때마다공수가뒤바뀌며반복된다.민주화이후25년이넘었고,여야간의평화적정권교체가두번이상이뤄졌음에도불구하고,한국사회는여전히민주대반민주의구도속에갇혀있는것이다.
이책은민주주의를최고의선으로바라보는관점,또한정치를민주주의로환원하는방식을명확하게거부한다.이책은민주주의를상대화한다.민주주의그자체로는그것이좋은것인지나쁜것인지알수없다.이책의저자인크릭은“민주주의에서는모든것이반짝이고아름답다”는식의생각이얼마나잘못된것인가를지적하고,그것이다수의힘이나선동가의수사앞에얼마나취약한가를보여준다.민주주의란인간들이운용하기에따라서최선의정치가될수있지만,또한최악의통치가될수도있는것이다.
이같은발상은한국사회에큰의미가있다.민주주의란그자체로신성한무엇이아니라,모든사람들이가장공정하고정당하다고생각하는게임의규칙가운데하나일뿐이다.게임그자체로는선악을따지기어렵고,게임의승패도마찬가지다.이게임의참여자는누구든이기고질수있으며,자신이이기면선이고다른편이이기면악이라는식의주장을할수는없다.
이런구분을잘하지않고,우리는언제나민주주의가희망이라거나민주주의가문제라고말하는셈이다.이같은상황에서시민들은희망과절망의악순환에빠지는반면,정당들은적대적상호공존이라는안전한틀안에서생명을유지하게된다.만약이러한정치를바로잡고자한다면,그것은민주주의를상대화하고정치와민주주의를구분하는것에서출발할수있을것이다.민주주의란하나의조건이지결과를담보하지는않기때문이다.그래서이상황에서는선악을따지는것이아니라,누가어떻게‘정치’를더잘할것인가가중요하다.
#원래‘정치’는기득권에반하는용어로사용되었다
오늘날정치또는정치인이라는단어에는부정적인어감이배어있다.‘정치적계산’이나,‘정치적고려’등과같은표현은특정세력이나,부류의이해관계만을고려한다는생각으로받아들여지고,‘정치인처럼보인다’는말은표리부동하다는의미로사용되곤한다.사람들은정치가기득권을가진사람들에게만유리한방식으로작동한다고생각하고,정치가개입해공정하고효율인경제와사회의작동을가로막는다고생각하곤한다.
하지만이와달리,18세기잉글랜드에서‘정치’는일반적으로‘기득권’에대항하는용어로주로사용되었고,이런의미에서정치인들이란왕가,법조계,교회의기득권질서에도전하는사람들이었다.그들의도전방식은다소특이했는데,전제정에서흔한궁정의음모가아니라분명한정책이슈를만들어내고그것을공중에게알리는방식이었다.정치인들은경우에따라고결해보이는사람일수도,경박해보이는사람일수도있었지만,이들은‘합법적인기득권’에맞서‘공중’thepublic과‘인민’thepeople의권력을주창한사람들이었다.그렇기에정치(인)이라는표현은당대기득권세력들에게경멸의대상이되었는데,토리의대지주들이정치인들이라조롱했던휘그의거물들은하층민들과어울리고,그들을대변하며,그들을국정을논하는자리에끌어들이려했기때문이었다.
오늘우리는정치(인)의이같은의미를되찾고,정치의이같은차원을옹호하고방어해야한다.정치가원래의의미처럼기득권에서배제된사람들,말하자면몫없는사람들에게몫을나눠주고,그들이공동체의질서와자유를보존하는행위에함께참여할수있도록하는행위라는본래의의미를되찾을수있을때,또정치가그런방식으로작동할수있을때,사회는좀더안정되고,문명화될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정치를조롱하고경멸하는것은기득세력에게만도움이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