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17.00
Description
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주민 8인의 이야기를,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듣고 적었다. 홈리스 야학 교사나 자원 활동가로서 오랜 기간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 온 기록팀은 2020년 10월부터 1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쪽방 주민들의 “스스로 말하기”를 돕고 기록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과 가정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끝없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 한 칸 구할 여력이 없어 거리와 쪽방을 오가는 생활을 해온 ‘가난의 굴레’를 증언한다. 또 이들의 가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의 부정부패와 각종 명의 도용 범죄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은 우리 사회 복지체계의 현 주소를 다시 묻게 한다.
책의 말미에는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와 해피인 서울역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더해 쪽방촌 사람들의 애환을 곁에서 지켜온 이들의 관점에서 살폈다.
저자

홈리스행동생애사기록팀

1)말한사람
남대문로5가쪽방촌주민강성호,권용수,김강태,김기철,문형국이석기,이양순,장영철
해피인서울역신종호위원장,홈리스행동이동현활동가

강성호는어머니가돌아가신후부터노숙을시작해오랫동안서울역과병원을오가는생활을지속하다현재는기초생활수급자가되어양동쪽방에살고있다.

권용수는두차례철거와강제이주에도67년간양동쪽방을지키며살고있다.

김강태는14년간외항선을타며젊은시절을보냈고,가족의배신과IMF외환위기를동시에겪으며서울역거리생활을시작했다.“누울자리”를찾아장애인시설,돼지농장,양계장등전국곳곳을누비다2017년부터양동쪽방에살고있다.

김기철은1976년에상경한이후쭉서울역근처에서생계를꾸려왔다.딸은영이장애인시설로가게되면서가족과이별하고지금은양동쪽방에살며딸과함께살날을기다리고있다.

문형국은3년전류머티즘으로중국집프라이팬을더이상들수없게되면서기초생활수급자가되었고양동에전입신고를했다.

이석기는오랫동안임금체불에시달리며염전에서일하다탈출한후2019년,양동쪽방촌에첫‘내집’을갖게됐다.

이양순은가정폭력을피해집을나온후서울역을배회하다만난“아저씨”와쪽방촌에자리를잡았다.

장영철은열세살때걸어서상경한후줄곧거리와쪽방을오가며지냈으며,양동쪽방에는2017년부터살고있다.

신종호는2019년부터해피인서울역위원장으로활동하면서매주양동을방문해도시락을전한다.

이동현은대학때부터줄곧주거빈곤현장에서활동해왔다.현재는홈리스행동에상근중이다.

2)듣고적은사람

박내현
노동과인권의영역에서활동중이다.한존재가오롯이그자체로인정받았으면하는바람에서구술사작업을하고있다.

박소영
작고연약한존재들이제몫의삶을잘살아갈수있는사회를꿈꾸며홈리스야학에함께하고있다.

여름
홈리스야학한글교실에서활동중이다.배제당한존재의기억으로공간을재구성하고싶다.

오규상
‘집’에관심이있다.홈리스운동의현장과장애인운동의자리에서활동중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상임활동가.의지와무관하게닥치는일들에주로시간을쓴다.이런과정들이일목요연하게엮이면좋으련만아직은그저잘수습되길바랄뿐이다.

이은기
「시사인」기자.2018년가을,홈리스야학활동을시작해반빈곤운동공간아랫마을에서얼쩡거리고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에서활동한다.

이채윤
홈리스야학에서여러계절을함께했고,〈홈리스뉴스〉편집위원으로활동했다.연대의마음으로인류학을공부하고있다.

최현숙
구술생애사작가.저서로는「할배의탄생」,「할매의탄생」,「삶을똑바로마주하고」,「작별일기」등이있다.

홍수경
홈리스야학에서교사로활동하고있다.성과가잘보이지않는,더디고느린활동이주는힘을믿는다.저항하는사람들의목소리를잘듣고기록하고싶다.

홍혜은
페미니스트저술가・기획자.서른살까지기초생활수급자로지냈다.여성・주거・빈곤・가족문제를연결시키는작업을한다.

목차

들어가며가난이고여든곳,양동/이동현19
“처음생긴내집,여기서오래살고싶어요/이석기∼박내현27
“중국집후라이팬이무거워,그래서이렇게됐지/문형국∼이재임51
“거리에서우리끼리그좋은법을만들어놨어요/김강태∼박소영·이채윤79
“우리아저씨가나보호자여/이양순∼여름ㆍ이은기113
“돈을좀모아도된다는희망이있었으면해요/장영철∼오규상133
“은영이가99년생,지금은시설에있어/김기철∼여름ㆍ이은기165
“여기주변쪽방생활만70년가까이한거지/권용수∼최현숙·홍혜은193
“낭떠러지에서있는데더가면.../강성호∼홍수경227
“그분들의현재삶을바라봐야해요/신종호∼홍수경255
“떠나고그럴때가제일섭섭해요/이동현∼이재임273
나가며우리네삶의실타래를붙들고/최현숙309

출판사 서평

◈ 가난한나의이름으로‘내삶’을말하다:끝없이일해도가난한삶
‘양동쪽방’을공통분모로모인이책의주인공들은쪽방뿐만아니라여인숙과고시원,거리와병원등을오가며생활해온이들이다.이토록가난한이들에대한세간의관념은‘무능한사람’‘게을러서스스로의생계조차꾸리지못하거나자포자기한채살아가는사람’‘국가가주는수급비로먹고사는사람’이라는것이다.하지만출생부터빈곤했던이들은대부분이배고픔과폭력,미래가없는삶으로부터탈출하고자“무작정상경”한평범한‘시골사람들’로무일푼으로시작된이들의서울살이는끝없는밑바닥노동이력들로점철돼있다(거리생활을오래했던김강태역시노숙을하면서도양계장,돼지농장등을오가며끊임없이일해온삶을보여준다).넝마주이,머슴살이,새우잡이배,염전,양계장,돼지농장,각종건설현장을전전하며도로와빌딩,댐과발전소를짓고달걀과돼지,새우와소금을밥상위에올려준이들이지금은쪽방에살고있는것이다.
그런데도이들은왜가난에서벗어나지못한것일까?화자중장용철은일용직일자리를전전하며번돈으로는서울도심에서비적정주거나거리를떠돌며하루살이인생으로살수밖에없기때문이라말한다.게다가(중국집배달원에서사장이되어)가난의궤도에서벗어날뻔한문형국조차IMF의여파로다시일용직인생으로추락하는모습이나실직과IMF위기가겹쳐한순간바닥으로추락해버린김강태의삶은“가진건몸뿐인”이들에게우리사회가제공하는안전장치는과연무엇이었는지되묻게한다.
지금도쪽방촌에서말년을살고있는이들은모두가기초생활수급자가되었음에도불구하고하루70킬로그램에달하는폐지를줍거나“새벽부터남대문인력시장”에나가일거리를찾는삶을이어가고있다.기초생활수급자로서받는돈75만원에서25만원의월세를내고남는돈으로는생계를이어가기힘들기때문이다.

◈ 가난한나의이름으로‘내집’을말하다
한평남짓쪽방의열악한환경에대해서는이미잘알려져있다.주방은물론화장실조차공동으로사용하고,냉난방은물론온수조차제대로나오지않는쪽방에서주민들은대개가목욕은상담소에서하고,식사는무료급식소를이용하거나나눠주는도시락을데워먹는정도다.그런데도월세는현재25만원선.전기요금은월세에포함돼있지만밥솥하나라도더갖다놓을라치면전기세를더내야할정도로‘관리’는철저하다(물론기반시설에대한관리는거의하지않아서문형국은몇년간망가진공용세탁기를한번도써본적이없다고할정도이고,부실한시설에서아픈몸이부상을입어요양병원행을앞당기는경우도부지기수다).
쪽방주민대부분은오랜노숙생활끝에몸이망가져정착하거나단순일용직등불안정한일자리에종사하는사람들이도심에서가장값싼거처를찾아들어온경우에해당한다.재개발로밀려나쪽방촌을전전해온이들도상당수다(강성호는3년간쪽방촌내에서만이사를다섯번했고,장영철은후암동쪽방에서쫓겨나양동에왔으며,김기철역시중림동에서쫓겨난적이있다).하지만사실이들이지불하는월세는타워팰리스의평당월세보다높을정도로결코싸지않으며,월수급비75만원의3분의1에달할정도로큰부담이다.
그런데도대부분은이런부담을감수하고서라도한사코양동에남고싶다고말한다.왜일까?노년을맞은기초생활수급자가굳이도심에남으려는이유는뭘까?그것은내사회적관계가있는정든‘내집’이기때문이기도하지만무엇보다경제적이유가가장크다.가난한이들일수록도심에거주하려하는이유는그곳이이들이당장‘내일’이나마그릴수있는곳이기때문이다.남대문일당소개소가가까이있고,지방보다수급비를조금이라도더받을수있으며,병원이나일자리로이동하는데드는교통비를줄일수있기때문이다.
하지만양동재개발이확정된이후현재주민의절반이이주한상태다.대부분은강제퇴거가이루어지면서법적으로보장된이사비나주거이전비도받지못하고나갔다.이들은과연어디로갔을까?

◈ 빈곤비즈니스ver.2021/가난한자들을이용해누가돈을버는이들은누구인가
쪽방촌집주인들이대부분강남에거주하고있는건물주들이며가난한이들의수급비에서3분의1에달하는액수를월세로받아가면서장사를하고있음은이미잘알려진사실이다.재개발이확정된양동쪽방촌은현재부동산개발회사들이건물을사들이고주민들을내보내기시작하면서주거안정성은훨씬더위협받고있다.재개발시세입자에게보장되는주거이전비와이사비를받을수있는자격을없애기위해서다.
하지만이들의가난을갉아먹는‘비즈니스’는이뿐만이아니다.거리노숙을경험한이책의화자들은하나같이서울역에있다가요양병원이나정신병원으로유인당해입원한경험을증언한다.입원환자수를늘림으로써병원은의료급여를탈수있고,또이들이수급자가될경우그수급비까지병원에귀속되기때문.또몇몇의증언에서는수급비를착복하고무임노동을시키는복지시설의부정부패도드러난다.
게다가이책의화자들은대부분이명의범죄의피해자이기도하다.정보부족이나판단미숙으로돈몇푼에신분증을내줬다가명의범죄의피해자가아닌공범이되어감옥살이도하고듣도보도못한채무를죽을때까지짊어지고다니며수급에서탈락하는경우도부지기수다.물론그뒤엔이들의‘못배움’과‘어리숙함’을이용하는범죄집단이있는것이지만,그배경에는카드발급을남발한국가의금융정책과핸드폰구입을강권한정보통신정책이있다는점역시간과할수없을것이다.

◈ 복지제도의허와실
기초생활수급자가되는길은쪽방촌주민들에겐‘구원’의길이기도하지만고난의가시밭길이기도하다.우선은‘가난을증명하는’절차가복잡하고까다로워전문가의도움없이는신청이불가능할정도다.대부분은유인입원당한병원이나속아서끌려간복지시설에서수급자가되거나,노동할수없을만큼망가져버린몸을이끌고구청의복지사나상담소직원,활동가들앞에나타나야수급을위한도움을받을수있다.“자신의빈곤과가족의해체를증빙하고,이를위한온갖서류와모멸감을견디고근로능력없음”판정을받고나서야기초생활수급자가될수있는것.
게다가고난은기초생활수급자가되는것에서끝나지않는다.수급자들은수급이후에도자신의노동을‘들켜서는’안된다.소득이잡히면수급비에서차감되기때문.‘부정’수급자로몰리지않기위해쪽방주민들은“몰래”파지를줍고,“산재도기본급도”보장받지못하는더음지의일에내몰린다.

◈ 함께,곁을지키는사람들
가난은이책의화자들을(‘가족’을비롯한)대부분의사회적관계로부터단절시켰다.하지만이들에게도‘곁을함께한’사람들이있다.(술친구가돼주거나무연고자로사망한이웃의공영장례를함께하는)쪽방촌의이웃들,이들의수급선정을돕고도시락을챙기며안위를돌보는활동가와복지사들이그들이다.이책은이런이들의목소리를말미에담아가난한이들의삶을보다깊이들여다본다.
해피인신종호위원장의인터뷰는매일새벽2~3시에일어나오전중에생업인배달일을마치고오후에는해피인활동을하는‘봉사자’의일상을보여주는한편,몇년간주민들을만나며쌓아온통찰들을드러내준다.“여태껏많은상처를받아본사람들”의마음을열기위한노력과,“혼자벽보고이야기하는”정신질환을가진주민을좀더일찍찾아보지못한후회도있다.그는“끊임없이성실히일한이들이끊임없이가난해야하는이유”를되물으며“우리도일을못하고누군가의도움없이는움직일수없는순간이올것”임을강조한다.
대학때부터쭉도시빈민의곁에서활동해온,이책의기획자이동현활동가는“양동주민들이살아온이야기를남겨야겠다마음먹으면서”특히“양동을떠난사람”이야기를꼭담고싶었다고말한다.지금껏쪽방재개발로이주한사람들이옮겨간삶들을보면,“아주잘해봐야수평이동”인데,그런이들을내쫓아고시원이나여인숙,거리로내모는재개발에대해다시생각했으면해서다.그는621번지에살며집주인대신건물을살뜰히관리했던은철아저씨(지금은중림동여인숙에산다)같은“쪽방주민들이그동안마을을일궈온노고와권리”는왜인정되지않는지묻는다.
또노가다로번돈이있는데도(언제추락할지모르는삶이기때문에)“감각을잊어버리면안된다”면서주기적으로노숙을하러오는똥파리형이나자신에게일자리를준“이명박”을찍은의리파림보형등20년넘게활동해오면서만났던홈리스‘친구’들의사연들역시가슴을울린다.
다른지역임대주택으로갔다가자살한동자동주민의사례나양동에살다구로에위치한임대주택으로가게됐지만전혀연이없는곳에서고립감때문에힘들어하고있는석길님의이야기는쪽방촌재개발이나이주대책이단순히물질적으로더좋은집의문제가아니라한인간의사회적관계와삶전체를들여다봐야하는문제임을웅변한다.

◈ 화자소개
〈이석기〉
초등학교도졸업하지못하고남의집살이를하다가,친구랑서울로갈결심을한다.친구가서울로갈교통비마련을위해짊어지고나온쌀가마때문에소년소에가게된다.소년소를나와서는구두닦이,넝마주이등을하다‘안되겠다’싶어무작정상경한그는낮에는파지를줍고,밤에는파지를실어나르는래카에서자는삶을시작한다.
10년넘게신안의염전에서70만원에불과한월급조차제대로받지못한채일하다경찰의도움으로체불임금을받고탈출했으나,그돈을모두고향형님에게안겨주고는다시서울에서노숙을시작했다.김포의한교회에서기거하다지금은양동쪽방촌에살고있다.

“일곱살때부터남의집살이를했어요.…열네살때아부지한테더는못하겠다했어요.
“학교를안댕겨서글씨를몰라요.읽는건가끔되는데쓸줄은몰라요.
“그냥딱요만큼살면돼요.
“내가생각해도대단해요,살아있는게.이제는방이라도하나있으니까그럴일없죠.그땐쪽방도몰랐고그렇게살줄밖에몰랐어요.

〈문형국〉
평생비정규일자리를전전했다.1970년대엔시다,미싱사일을하다가일자리가없어지면서“방을따로안구해도거기서잘수있”는중국집에서일하기시작했다.중화요릿집일당을다니다삼풍백화점중국집의‘기술자’로들어가월급제로3년간일하기도했다.안산에서직접중국집을운영하면서“허리띠를해도바지가줄줄내려갈만큼”살이빠질정도로열심히일했으나4년만에IMF위기가닥치면서장사를접고다시일당을나가기시작한다.하지만거기도건물주인에게사장이쫓겨나면서그만두게되었는데,그걸보고“중국집하나만해선안되겠다싶어”도나쓰,꽈배기만드는기술을익히는‘시다’로들어갔다.그기술로여기저기서종업원으로일했으나“하루종일만두,찐빵,도나쓰를혼자서다”해야하는일이너무힘들어서그만뒀다.다시중국집에서숙식을해결하며주방장일을했으나손가락이부어요리사가운의단추조차채우지못하게되면서수급을만들고양동쪽방촌에자리를잡았다.부인과아들은안산에따로살고있으며“가끔보기야보지만서로별말안”하고살고있다.

“남대문중국집배달로시작해서싸완,칼판,주방장까지다해봤제.…그러다가하루는아침에일어나질못하겠는거여.일나가려면가운을입어야하는데손가락이이만큼부어서단추도못잠그는거여.…중국집후라이팬이이렇게무거워.그래서이렇게됐지.인생이변한게.…그길로수급만들고이방에온거여.
“서울오면돈버는줄알고시골에서죄다올라왔으니까.나도그랬지.
“잠이야뭐,양동에서만난친구하나랑하루하루방세주고살기도하고,중국집에서그릇닦으면서가게2층다락에서자고그랬지.

〈김강태〉
해군입대를계기로14년간외항선생활을했다.IMF직후아버지의죽음,가족의배신이겹치면서빈손으로서울역으로올라와거리생활을시작했다.“누울자리”를찾아장애인시설,돼지농장,양계장,재활용수거등을전전하면서도오랫동안거리생활을청산하지않았다.그는서울역에서만난사람들과공동체를이루어살면서돌아가면서일을하고술을나눠먹었던‘품앗이’같은문화를들려주기도한다.
양동쪽방에살기시작한건2017년부터다.지금은해피인에상주하며성경도필사하고,“서울역아는형들”이랑만나기도하면서산다.좁은쪽방에서도1400원주고산7킬로정부미로요리를해먹고,해피인사무실을쓸고닦고꾸미는살림꾼이기도하다.

“배타고나서는더는돈벌기가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