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 젠더 성의 재활과 정치)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 젠더 성의 재활과 정치)

$23.00
Description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부제: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은 장애와 질병이 있는 몸의 현존을 부정하고 반드시 재활하고 극복해야 할 ‘치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폭력적으로 서사화해 온 한국의 역사, 정책, 제도, 문화 텍스트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미국 시러큐스대학교 여성/젠더학과와 장애학 프로그램 부교수 김은정의 저서로,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후 여성학, 장애학, 한국학 등 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2017 전미여성학학회 앨리슨 피프마이어상, 2019 미국 아시아학학회 제임스 B. 팔레이즈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를 다룬 소설, 영화, 신문 기사, 정책 문건, 활동가의 글 등을 텍스트 삼아 ‘치유’를 명분으로 장애와 질병을 가진 사람/삶을 파괴하는 ‘폭력’을 들여다보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안에서 분석함으로써, 장애와 질병에 관한 사회적 경험과 문화적 재현의 다른 상상력을 제안한다. 「심청전」, 「노처녀가」, 「백치 아다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당신들의 천국』, 〈만종〉, 〈꽃잎〉, 〈팬지와 담쟁이〉, 〈수취인불명〉, 〈오아시스〉, 〈핑크 팰리스〉 등 고전에서 현대까지의 서사와 기념우표, 광고, 사진 등의 시각적 이미지를 망라해 여성주의 장애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장애학적 문화 비평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 조혜영 영화평론가는 이 책이 장애학뿐 아니라 문학, 영화, 드라마 등 서사와 관련된 활동과 연구를 하는 사람을 위한 필독서라고 권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국가주의가 장애의 문화적 재현, 관련 정책, 사회운동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저자 특유의 정교한 논리와 세심한 언어로 살필 수 있다.
저자

김은정

EunjungKim
시러큐스대학교여성/젠더학과와장애학프로그램부교수이자장애여성공감회원.교차성·초국적여성주의장애학·인권·무성애·크립/퀴어이론을다룬논문들을썼고,‘불구’의생태학과존엄성에관해연구중이다.저서로『치유라는이름의폭력』,역서로『거부당한몸』(공역)등이있다.『치유라는이름의폭력』으로2017전미여성학학회앨리슨피프마이어상과2019미국아시아학학회제임스B.팔레이즈상을수상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서문
1장낳아서는안되는장애
2장대리치유
3장사랑의방식이라는폭력
4장머물수없는곳,가족
5장치유로서의성경험
결론

감사의말
옮긴이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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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당연한상식이라고여겼던전제를완전히뒤집는다.책장을열자마자독자들은날카로운질문들이자신의고정관념을뒤흔드는강력한체험을하게된다.”-조혜영,영화평론가

“장애여성의역사,문화적재현,운동의쟁점이치열한정치적언어로담긴,수많은소수자들의목소리가메아리치는텍스트다.”-나영정,퀴어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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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과거와미래사이,타자성과정상성사이,치유전과후에존재하는장애를주목한다.이중간지대에서치유와장애는과정으로서공존한다.나는역사적이고초국가적인맥락에서,한국의문화적재현에서장애와치유가어떻게봉합되고있는지살펴보려고한다.이접점에서치유라는이름으로가려지는폭력이중요한주제로떠오른다.장애화된몸은접힌시간속에서다층적으로구성된타자성과정상성의경계로이뤄진지형안에서시각화되고서사화된다.”(30쪽)

“저자의장애학적독해는‘접힌시간’을펼쳐내은유로서의장애를비판할뿐만아니라,그이야기를살아낸장애의신체성과물질성을감각하게하고,거래하고협상하는장애의행위성을인식하게한다.특히이책의장애학적비평이빛나는순간은장애학이,정상성과규범성을질문하는페미니즘,퀴어,탈식민적관점과교차할때다.”(조혜영,추천의글)


치유의이름으로일어나는폭력
정치적개념으로서‘치유’

이책에서‘치유’는정신적·기능적·신체구조적정상성을갖게되어장애가없어지고아픈몸에서건강한상태가되는것을의미한다.정상성과건강의범주는유동적이기에,치유가되더라도병력때문에낙인이지속되거나사회적치유에도달하지못해소수자로남을수있고,장애와질병이그대로이더라도계급과성별에따라더는장애인이아니라고간주될수도있다.정상성과건강의범주는장애와질병의정의뿐아니라치유의정의에도영향을미친다.따라서치유는도덕적인당위가아닌정치적인개념이라고할수있다(11쪽).김은정은한국어판서문에서치유가“정상과건강의테두리를만들어내는행위”이고“추방된몸들의일부를선택적으로포섭함으로써경계를강화시키는과정”(10쪽)이라고설명한다.또장애와질병을당연히없애야하는것으로규정하고장애와질병을가진사람을파괴하는폭력을정당화하는사회에대한비판적견지를밝히며‘치유폭력’이라는말을사용한다.치유폭력은장애와질병에대한직접적인폭력으로나타날수도있고,장애와질병이가진차이를없앰으로써발휘될수도있다.치유는당위성이강조될수록개인이아니라가족·사회·국가공동체를위한것이된다.이때개인은얻게될보상과치러야할대가를고려해협상하게되는데,이과정에서공동체를위해죽음의가능성을감수하기도한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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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타자를소위나아지게해줄것이라는명목으로타자가지닌차이를지우려는힘의행사를묘사하기위해서‘치유폭력’(curativeviolence)이라는말을사용한다.치유폭력은치유가장애의존재자체를문제로규정하고치유과정에서그대상을파괴할때일어난다.……치유와관련된폭력은두가지차원에서존재한다.첫째,장애와질병을삶의다른방식으로보는여지를없애는폭력이다.둘째,치유의이름으로정당화하며장애인들에게신체적·물리적으로가하는폭력이다.”(38쪽)


과거와미래사이에사라진현재
‘접힌시간’을펼쳐내기

2005년7월31일방영된KBS〈열린음악회〉에는가수강원래와과학자황우석이출연했다.척수장애가있는강원래가휠체어를타고무대에나와춤춘뒤,과학기술부장관과함께무대에오른황우석은자신의연구에성원해달라고당부하며강원래를“벌떡일으켜”그가과거처럼“날렵한”춤을추는걸다시보길바란다고말했다.강원래는같은해발표한뮤직비디오에서대역배우와특수효과를동원해‘일어나’춤추는‘과거’의자기모습을재현했는데,언론은치료된‘미래’에초점을맞춰그가“휠체어에서일어났다”고보도했다.황우석은자신의연구가‘국익’에도움이된다면서강원래처럼사고로척수가손상된미국배우크리스토퍼리브(〈슈퍼맨〉의주연배우)의연락을받았다고했는데,리브역시2000년미국투자사뉴빈(Nuveen)의광고에‘치유’된모습으로나온적이있다.가까운미래의장애관련행사를그린이광고에서카메라가의자에서‘일어서서’걸어오는한남성의하반신과발,전신을차례로비춘다(전신이나오고나서야시청자들은리브를알아본다).광고속진행자가리브를악수로맞이하면관객들이‘일어서서’박수를보낸다.리브의머리가다른몸과합성돼있기에‘뭔가달라보였음에도’이광고는‘너무진짜처럼보였기때문에’시청자들을호도하는결과를가져왔다(여러시청자가리브의치유에대해문의했다).한편황우석의치료용배아복제연구는연구조작등이드러난뒤에도정부지원과국제적관심을받았다.
김은정은강원래,황우석,크리스토퍼리브를둘러싼이런치유의논리를‘접힌시간’이라는시간성으로설명한다.접힌시간은“정상적인과거로현재를대신하고……정상적인미래를현재에투영시킴으로써현재를사라지게”만든다(23쪽).장애를갖기이전의과거와치료된미래만이의미를갖는것이다.이는장애인이사회로‘복귀’하려면먼저치유되어야만한다는사회적명령을강화하고,여기에담긴비장애중심적전제를유지시킨다.이런사회에서는치유가폭력의명분이된다.장애와질병을삶의다른방식으로보는여지를없애고,치유의이름으로폭력을가하는것을정당화한다.“치유만이유일한길이라고강조하는것은……치유가항상뭔가를가능하게할수도있지만,이와동시에뭔가를불가능하게도할수있는다면적인협상과정이며고통이나상실,죽음을초래할수있다는사실을가려”(27쪽)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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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우리는장애가있는몸을과거의몸이나앞으로되어야할미래의몸이아닌현재상태그자체로볼수있을까?무엇이장애를가진현재의삶을가능하게하거나불가능하게하는가,혹은그중간의무언가로만드는가?‘괜찮았던’과거를향한향수나‘더나은’미래에대한희망을장애가있는몸에투영하면서과거와미래에만주목하기때문에,몸의역사와함께,그리고나이든후의미래와함께현재에머무르기힘들다는것이접힌시간속에살아가는삶의특징이다.”(358쪽)


장애와질병이있는삶을손실된시간으로보는가정
멈출수없는훈련과재활

김은정은세계보건기구(WHO)의‘장애보정생존연수’(DALY)지표나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의정의가지닌한계에대해언급한다.WHO의장애보정생존연수는“인구중조기사망으로인한수명손실연수”(YLL)와“건강문제나그후유증을갖고사는사람들의장애로인한수명손실연수”(YLD)를합산한지표이다.이렇게장애와질병을갖고사는연수를“손실된시간으로보는가정”을통해,장애와질병을갖고살아온시간의의미가“전체인구가장애와질병없이노년까지살수있는”,“실재하지않는시간과공간에비교해측정됨으로써훼손된다”(359쪽).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훈련’과‘재활’을구별하는데(비장애인에게‘학습’‘교육’이라고불리는것들이‘훈련’이라는용어로불린다),당국은훈련과재활을통해“장애인이최대한의독립성을,완전한신체적·정신적·사회적·직업적능력을,삶의전분야에서완전한통합과참여를달성하고유지할수있도록”해야한다.저자는여기서독립성,능력,통합이병렬적으로배치된점에주목하면서“독립성과능력이통합의전제조건이아니라는점”을확인하지만,“능력수준에관계없이완전한통합과참여를보장한다기보다는여전히정상성에최대한가까워지는것을강조”(360쪽)한다고지적한다.반드시이전의‘적절한’몸으로치유되어야하고이를위해훈련과재활을계속해야한다는생각은장애인을가족과지역사회에서고립시키고그들의‘현재’삶,현존을불가하게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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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치유될수있는몸과치유된몸은여전히장애화되는데,그이유는장애의역사가몸에담겨있을뿐만아니라,앞으로더나은몸이될수있을거라는기대때문에나이가많이들기전까지는재활의노력을멈출수없기때문이다.……그런점에서장애인에게정상성이란항상한순간앞선미래에존재하기에현재의삶을유예하도록하고사회적변화를위한시도를하지않도록만든다.”(30쪽)

“가능성과독립성이“최대한”혹은“최적의”수준에도달하고나서야사회적·물리적환경을조정하기시작해야하는것인가?개인이훈련을통해능력을갖춰야한다는생각,재활을통해이전의‘적절한’몸이회복되어야한다는생각,장애와만성적질병은영적·가족적·의료적개입을통해반드시치유되어야한다는생각등은모두장애인을가족과지역사회에서분리할뿐만아니라그들의삶을유예시킴으로써현재로부터분리하는것이기도하다.“(360쪽)


한국적맥락
국가주의의작동으로서치유

김은정은서문에서한국사의핵심적인순간들과장애인권이슈를교차해정리한다(45,62~71쪽).1905년대한제국의외교권이넘어가고1910년일본에합병되자문학에서국가를장애화된몸으로묘사하는경향이생긴다.1929년조선박람회가열리게되자일본경찰들은장애가있는서울도심의노숙인과걸인들을체포하고추방했다.1930년대엔‘불량분자’와‘불구자’는불임시술을받고격리해야한다고주장하는우생학담론이대중매체에나타났다.조선총독부는시청각장애나정신장애가있는고아들과어린이들을수용하기위한조선총독부제생원을설립하고소록도엔한센병환자등을시설화하기위한자혜병원을설립했다.1945년의해방과분단,1950년의한국전쟁을거치며많은사람이장애를갖거나사망했다.이때부터‘장애’라는범주가다양한소수자집단에폭넓게적용됐는데이들이처한조건때문에취약한상태로간주되어보호와통제의대상이됐다.1954년한국보건사회부는취약한인구집단에대한연간통계보고서를내기시작한다.첫번째보고서엔“나환자,혼혈아,미망인,마약중독자,전염병환자,매춘부”가포함됐다.1955년엔“장애인,상이군인”이추가됐다.1961년에처음으로실시한‘장해’아동에대한국가인구조사에는다양한신체·감각장애아동과함께‘혼혈’아동이포함됐다.1964년박정희정권때한국군이처음으로베트남에파병됐다.이후상이군인들이등장하는전쟁영화가만들어졌는데,상이군인의재활은한국의경제성장및산업발전과결부되었다.일제강점기에확산된근대우생학의개념은박정희군사정권시기강하고능력있는나라를세우려는열망에따라재등장했고더욱강화되었다.1973년엔‘모자보건법’이제정되면서재생산에대한국가통제가정당화되었다.인공임신중절에대한예외조건을규정하고장애인들에대한강제불임수술을허용했다.1980년전두환은광주항쟁의배후에북한이있다고주장하며군대의무력을사용했고,대량학살과부상,실종이일어났다.전두환정권은‘복지국가’로포장하기위해노력했다.1981년엔‘심신장애자복지법’이제정됐고국제장애인연맹에도가입했다.같은해‘국제장애인의해’가지정되면서장애인의인권및반차별원칙이선언되었고,이것이한국장애운동의촉진제가되었다.장애인단체와활동가들은1990년‘장애인고용촉진법’을통과시키는것을시작으로장애인에관한법률을새로제정하고잘못된제도를재심사하고폐지하는데중점을두고싸워왔다.1988년에생긴장애인등록제도는20여년만인2019년폐지되었으나여전히여러숙제를안고있다.이밖에도저자는민주화이후장애를재현하는문화적서사의양상이변한것과국가인권위출범등의이슈를언급하며논의를전개해나간다.IMF경제위기이후한국의신자유주의는내가‘대한민국주식회사의CEO’라고말하는지도자(이명박)를선출했고,이후10년간한국대중문화에서‘힐링’‘치유’‘테라피’가핵심어휘로떠올랐다.이단어들은두루사용되던‘웰빙’이라는용어를거의대체하다시피했다.“인권이계속침해되는상황,권리를가진모든이들에게자원이적절히제공되지않는상황에서,힐링과치유를지향하는담론은대개이런상황에대한심리적위로로이어지고,사람들에게자기계발을요구한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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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맥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