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연대기, 1931~2011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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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평양 을밀대 위의 강주룡부터 부산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까지 일하는 여자들이 쌓아온 전투적 노동운동의 역사
# 하늘 높이 올라서야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자들의 이야기
# ‘형제’에서 제외된 마이너리티들의 이루지 못한 꿈과 열망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식민지 시기 평양의 을밀대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고무 여공 강주룡부터 2011년 부산의 35미터 크레인 위에 오른 용접공 김진숙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사를 통해 여성 노동운동의 기억들을 복원하고 한국의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역사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다시 쓴다. 역사학자 남화숙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전투적으로 투쟁하며 계급의식과 페미니스트 의식을 발전시켰던 여공들의 연대기를 통해 이들을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어엿한 주체로 복원해 낸다. 식민지 조선의 엄혹한 조건에서도, 해방 후 노동법이 형성되는 결정적 국면에서도, 권위주의 시대 극도로 폭력적인 탄압 속에서도, 그리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압력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성들의 연대기.
저자

남화숙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미국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타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워싱턴 대학교 잭슨국제대학 및 역사학과에서 주로 한국사와 노동사를 강의했다. Journal of Korean Studies 공동 편집인, 아시아학회 한국학위원회 위원장, 워싱턴대학교 한국학 프로그램장 등을 역임했고, 『사회와 역사』 『역사와 현실』의 해외 편집위원을 맡아 일했다. 주로 해방 후부터 박정희 시기까지의 노동사, 여성사, 지성사를 연구해 왔으며, 저서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가 있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로 2011년 아시아학회가 한국학 분야에 수여하는 ‘제임스 팔레 저작상’을 수상했으며, 『체공녀 연대기, 1931~2011』로 제임스 팔레 저작상(2023)과 미국역사학회가 동아시아 역사 부문에 수여하는 존 페어뱅크상(2022)을 수상했다.

목차

서론 009
1장 식민지 평양에 체공녀가 나타났다 023
2장 1930년대 사회주의 운동과 여공 079
3장 파업 여공, 근대적 주체의 등장: 식민 통치하 민족・계급・성의 문제 127
4장 격동의 1950년대 여성 노동자 175
5장 산업화 시대 노조를 이끈 여자들 221
6장 민주화 이후 여성 노동자와 기억의 정치 303
감사의 글 369
참고문헌 375

출판사 서평

⊰ 우리, 일하는 여자들의 한 세기 ⊱
∗강주룡-김진숙을 연결하는 페미니스트 역사 쓰기∗


“1980년대 후반, 여성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한 연구자로서 나는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설명하는 논의들을 마주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활동가들과 진보적인 학자들은 새롭게 등장한 이들의 노동조합운동을 축복하면서 이전 시기 여성이 주도했던 노동자 투쟁에 비판의 시선을 돌렸다. 이 불공정한 관점에 맞설 효과적인 대항 서사를 꾸릴 언어나 도움이 될 전거를 찾지 못한 나는 좌절감 속에서 식민지 시기 여성운동 연구를 접고 한국 노동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한국 사회운동의 젠더 관계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런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때 그대들이 없었더라면...?’ 민주노조 운동의 큰언니 격인 이철순이 던진 이 질문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자 책을 닫으며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여공들의 한 세기에 걸친 여정을 따라가면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어려운 과제를 모두 달성한 대한민국의 ‘성공’을 상상할 때 사회의 양심과 민주적 약속에 호소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정의와 존중을 요구하며 싸운 여성 노동자들의 역할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소망한 것은 여공의 시선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그들의 기여를 재평가하는 것이었다.”


여성 산업 노동자, 즉 여공들의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최근 십수년간 전순옥, 재니스 김, 김승경, 김원 등 국내외 연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연구들을 밑거름 삼아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까지 100여 년에 걸친 여성 노동운동의 장기 역사를 제안하는 야심 찬 기획으로 2022년과 2023년 존페어뱅크상과 제임스팔레상을 수상했다. 산업화 시기 조선소 남성 노동자들의 노조 운동을 분석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를 통해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국가-자본-노동’ 관계 속에서 생계부양자 역할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욕망이 투쟁의 결정적 동력이었음을 보여 주었던 저자는 이제 시대를 관통하며 페미니즘 관점에서 바라본 노동운동사의 유효성을 증명해 낸다.
한국학 분야의 대표적인 노동사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저자가 애초부터 노동사를 전공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식민지기 여성운동사를 연구하던 그가 방향을 튼 것은 과거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여성들에 대한 부당한 비판을 마주하고서였다. 이에 맞서 “효과적인 대항서사를 꾸릴 언어나 도움이 될 전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 노동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저자는 그 순간부터 오랫동안 “20세기 한국사를 노동과 젠더에 초점을 맞춰 다시 쓰는 작업”을 꿈꿔 왔다. 특히 이 책을 완성으로 이끈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2011년 김진숙의 크레인 농성과 한 세기를 넘어 다시 소환된 강주룡이었다. 시간적 간극을 초월한 두 여성 노동자의 연결성에 매료된 저자는 식민지기 평양의 고무 공장, 해방기 부산의 방직 공장, 산업화 시기 민주노조를 이끈 여성노동자들, 그리고 민주화 이후 계속해서 주변으로 밀려나다 비정규직 장기 투쟁 사업장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여성들의 연대기를 완성해 냈다.



∗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란하는 ∗
⊰ 여성 주체의 전투성 ⊱


“나는 평원고무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끗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나는 …… 근로대중을 대표하야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 1931년 5월 29일 아침 을밀대 지붕 위에서 강주룡
“3월 12일 오전 8시, 주야 근무가 교차하는 시간, 6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공장 정문으로 쏟아져 나와 경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노조 위원장이자 조방 대한노총 노조의 설립자 안종우는 단 하루 만에 파업을 조직하는 어려운 임무를 “치밀하고 민첩”하게 수행해 낸 이외선 등 여성 노동자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 이 여성들은 공장 내 평조합원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회사 측 추산으로도 주간 근무자의 약 81퍼센트가 파업에 참여했다. 공장의 철문은 노동자들의 몸에 밀려 넘어졌고, 경찰이 정문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로 설치한 10여 대의 트럭은 여성 노동자들의 습격으로 - 그 안의 경찰을 꼬집고 물면서 끌어냈다고 한다 -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간 식민지기 여성들의 노동운동은 물질적 빈곤에 대한 단순한 반발로 사상적・정치적 기반이 부족한 운동으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하지만 저자가 발굴해 낸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전기는 이들을 다양한 가능성들이 열려 있는 정치경제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주체로 재고하게 만든다. 1920, 30년대 노동운동의 고양기에 여러 사회운동의 각축장이었던 평양에서 다양한 자양분을 흡수해 나가는 강주룡의 성장기는 특히 상세한데, 이를 통해 저자는 신여성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계급의식과 정세 판단에 입각한 달변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은 강주룡의 능력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 무엇보다 남화숙은 ‘적색 노조’와의 연관 속에서 그가 “엘리트의 선동”에 넘어간 “무지한 여공”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경계하면서, 조선인 민족주의 엘리트와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등이 혼재하는 복잡한 운동 진영 속에서 그녀가 체험을 통해 스스로 획득했을 ‘해방의 지식’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을 부추긴다. 강주룡은 적색 노조와 연관된 기간이 짧고, 그전에 이미 파업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엘리트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적 자의식을 갖춘” “공장 여성”이라는 주체의 등장을 보여 주는 것. 이는 강주룡과 동료들이 “아사동맹”을 조직하고 “곱비끈흔 노우와가티” “공장을 습격”하며 “파업깨기꾼의 출퇴근을 방해”하는 등의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는 양상에서도 잘 재현된다.
이 같은 여성 노동자 주체의 전투성은 해방 정국 부산의 조선방직(조방) 투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란을 방불케 한 분규”로 평가받는 조방 쟁의에서 1천여명에 달하는 조방 여성들은 전시 수도 부산의 임시국회 건물 앞에 이 모여 데모를 하고 가두시위를 벌였고, 단 하루 만에 6천여명이 참여하는 파업을 가능하게 할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당시 여성들에게 이 같은 공장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고수익이었고 안정적이었다는 점에서, 또 전시 상황에서 이런 일자리를 잃을 경우 “사회의 밑바닥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이 해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투쟁의 최전선에서 수개월을 버텨 낸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파업의 패배 후 해고된 여공 600명 이상이 실제로 성매매 등 “사회의 밑바닥으로 전락”했다는 당대의 기록은 이 같은 투쟁에서 그들이 가졌을 자의식과 굳은 의지에 대한 상상을 더한다. 비록 자신들은 패배했지만 이 같은 전투적 파업은 노동 입법을 자극했고, 1953년 공포된 노동법을 통해 한국에서 노동조합은 기업 측의 정당한 파트너로 인정받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세력 강화로 여성의 역할은 평조합원으로서 남성 지도부에 의해 동원되는 보병의 역할로 축소되고 만다.


⊰ 페미니스트 의식의 등장, 기수회 ⊱

기존 논의들은 1970년대를 - 민주화 운동 전반에서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이 주도한 민주노조 운동에서조차 - 젠더 문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기로 간주해 왔다. 이제는 한국 노동운동사의 고전이 된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구해근은 1980년대 중반까지 성적 이슈가 거의 모든 노동쟁의에서 제기되지 않았다면서 “출산휴가와 공정한 승진 기회를 얻기 위해 싸웠”던 콘트롤데이타의 사례만을 “작은 예외”로 언급할 뿐이다. 하지만 남화숙은 그 시점을 앞당겨 기수회의 등장을 근거로 197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스트 의식이 본격적으로 생겨나며 여성만의 특수 의제를 제기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저자가 보기에 1976년 크리스찬아카데미의 노동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여공들이 결성한 “여성해방노동자기수회”는 노동운동 대의에 여성 노동자 스스로가 여성해방 대의를 통합해 넣은 최초의 사례에 해당하며, 기수회 회원들은 여러 민주노조들에서 간부로 활동하며 높은 수준의 페미니스트 의식과 그에 입각한 투쟁을 보여 주었다. 기존의 연구들은 운동에 참여한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경험하는 성차별적 관행에 얼마나 민감했고 또 저항했는지에 대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기수회 자체는 아카데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탄압의 여파로 1979년 사라지지만, 당시 기수회에서 이루어졌던 젠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여성 노조 활동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콘트롤데이타 노조, 원풍모방 노조 등 기수회 회원들이 주도한 일부 노조에서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성별 특수 과제들-생리휴가를 무급휴가로 단체협약에 명시하고, 관리직에게만 지급하던 상여금을 여성 생산직에게도 지급하며, 결혼 퇴직제 같은 관행을 폐지하는 등-이 투쟁의 핵심 목표로 부상했는데, 이는 당시까지 한국노동운동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 같은 변화의 양상에 입각해 보면, 여성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 사수 투쟁은 계급적 이익 추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자’임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공순이’라는 단어가 강요한 고통스러운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적 회의, 교육 프로그램, 그룹 활동, 시위, 농성, 국가 폭력과 사측에 의한 폭력을 경험하며 주체성의 변화를 겪는 동시에 노조 활동을 통해 직장 문화와 주변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든든해서 안 먹어도 막 배가 부르고 세상에 겁나는 게 없고 우리들한테 요구에 수그리고 들어온다 느끼니까 막 세상을 다 얻은 거 같은 정말 든든한 기분으로 그때 회사에 다녔어요. 너무나 멋있게 그래서 세상에 겁날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웃에 다른 데 노동자들이 이제 노동조합 결성한다고 하면 막 쏘낙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