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권이라고하면사람들은모든인류가평등하게누려야할보편적인권리들이라고생각하곤한다.오늘날인권이라는말을손쉽게부정할수있는사람이나집단은그리많지않아보인다.그덕분에많은사람들이인권이라는이름으로보장되는일정한권리들로부터혜택을누리고있고,인권이라는이름으로자신의권리를정당화하기도한다.그러다보니,사람들은흔히인권은정치적이어서는안되며,누구나받아들일수있는도덕규범과같은당위적개념이라고생각하곤한다.‘천부인권’이라는표현에바로이런의미가각인되어있다.하늘로부터모든인간에게보편적으로부여된권리라는생각말이다.과연그런가?
이책은이같은입장에대한논박으로시작한다.
“인권을정치화하지말라!인권에대한무수히많은말들가운데나는저말을가장싫어한다.”
인권을초역사적인도덕규범으로만들려는시도속에는인권을사회적관계와역사성으로부터추상화된것으로파악하려는의도가담겨있다.이는갈등과충돌,적대와투쟁을통해변화하는사회적삶의실재적조건을은폐하는것이자,인권의내용과담론들을현재의틀속에가두어고착화하려는시도와다름없다.인권을이렇게현재에고착된것으로파악할경우,우리는인권이역사적으로갈등과충돌,적대와투쟁속에서풍부해지고,날카롭게벼려져온개념이라는사실을직시하지못하게된다.이는다시인권이역사적으로변화해온개념이라는사실을망각하게함과동시에,여전히인권담론속에배제되어있는수많은이들을사고하지못하게하는문제가있는것이다.
2.
인권의역사성과갈등적성격을파악하지못할경우,우리는매우난처하면서도,역설적인상황에처해있는자신의모습을발견하게된다.예컨대,최근합법적절차에따라이루어진현직대통령의구속에반대하며,법원에난입한이들이인권의최후보루라고할수있는저항권과시민불복종권을참칭하는모습이그러하다.이뿐만이아니다.오늘날모든개인은자신의양심과사상에따라자신만의의견을가질수있으며,이같은의견의표현을금지해서는안된다는표현의자유를인권의하나로누리고있다.하지만이런표현의자유가모든맥락과정황을삭제한초역사적규범으로보장되어야하는것일까?이렇게표현의자유라는이름으로여성,성소수자,인종적소수자,사회적약자들에대한각종혐오표현과증오에찬공격이난무하고있는상황을우리는어떻게바라보아야할까.
이같은낯설기만한상황을이해하고,인권에그이름에걸맞은자리를찾아주기위해서는,인권이오랫동안전개된사회적갈등과투쟁의결과로형성된역사적권리임을다시한번상기해야한다.말하자면,표현의자유는무엇보다권력기관에의해개인의자유가억압당하는상황에맞서주창되고옹호된권리인것이지,개인이다른개인들을증오하고모욕하는것을법적으로보장하기위해만들어진권리가아니라는사실을잊지말아야하는것이다.우리가인권의이같은갈등의역사를반추해본다면,한국사회에서가장막강한권력을누리고있는현직대통령과그를추종하는세력들이말하는저항권과불복종론이얼마나허무맹랑한말장난에불과한지깨달을수있을것이다.
3.
“인권은혁명과더불어도래했다.인권이혁명과더불어도래했다는것은인권이국가적수준의규범이되는최초의순간에는총과칼이함께했다는의미이다.인권의기원에는모든인간의존엄성이라는고귀한이상만이아니라인간의피가흐르고살이찢기는폭력적현실이자리잡고있다.”
-본문중에서
오늘날우리가이야기하는인권은,가장중요하게는,프랑스혁명에서비롯된것이다.이점에서프랑스혁명은인권혁명이라할수있다.이책에서저자는랑시에르를따라,‘1789년인권선언’의의의를강조하는데,인권선언은지배자들이피지배자들을속이거나달래기위해적어놓은아무런의미없는문장,실효성이없는공문구가아니라,인민의출현으로말미암아입증된평등이현실의질서안에‘최소치’라도기입되었음을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다.곧,프랑스인권선언은기존의신분제질서를뒤엎고모든사람은‘단지인간이라는이유만으로’태어날때부터자유롭고평등한존재임을선언함으로써,현실의질서속에평등을기입한것이다.
이것은제3신분,곧인민이봉기해정치적주체로등장함으로써,정치적주체화라는사건을국가질서안에규범으로새겨놓은것이라할수있다.나아가,이렇게등장한정치적주체들은‘선언’이라는형식으로일련의권리들을서로에게호혜적인방식으로나누어줌으로써,지배자들에의해서위로부터주어진해방이아니라스스로해방을쟁취했던것이다.
“어떤사람도외적인,일방적인결정에의해,또는시혜에의해자유롭거나평등하게될수없고…오직호혜적으로만,상호인정에의해서만그렇게될수있다.”
-에티엔발리바르
정치적주체의자격으로부터배제되거나그권리를억압당하는자들의해방은결코이들을배제하고억압해온지배자들에의해이루어질수없다.지배자의도구로,지배자의집을허물수는없는법이다.해방은아직평등한자유과같은권리를합법적으로보장받지못했지만이권리를위해함께투쟁하는이들이서로를이미그런권리를가진주체로인정하는호혜성을실천함으로써,그리고그런권리의상호인정에기초한집단적투쟁을통해이루어질수있는것이다.
인권은바로이같은정치적주체성의탄생,확대와더불어성장해왔다.그렇기에인권은끊임없이발명되어야하고,전화되어야하며,그과정에서새로운정치적주체가기존의질서내에자신을기입할수있어야한다.그런기입은위로부터,기존질서의지배자들이다른이들에게위에서아래로부여하는것이아닌,새로운정치적주체화의계기를통해이루어지는것이다.
인권을비정치화하고,탈정치화하려는시도들은인권의바로이같은측면들을감추고,현실을완성된이상태로보려는시도와다름없다.정치적주체화는비시민이시민이되기위해투쟁할권리에기초하고있다.그리고이런권리는바로투쟁그자체와더불어만들어지는수행적권리이다.근대에이같은수행적권리를우리는인권이라불러왔다.다시말해,근대에탄생한인권은바로정치적주체화의권리이자계기인것이다.
인권이기존체제에늘불온한단어이고,정치적주체화의출발점인이유는바로이때문이다.그렇기에인권을비정치화해도덕적규범으로사고하는것이아니라,모든다양한인간들의존엄과평등자유를구체적인현실에서실현해나가는‘인권의정치(화)’가무엇보다중요하게사고되어야한다.인권의불온성과정치성이의미하는것은무엇보다인권이권리로부터배제되었거나,권리를박탈당했거나,권리를억압당한이들이다시권리를쟁취하기위한투쟁의시작점역할을하기때문이다.
이책은1789년프랑스혁명과더불어도래한인권담론이,어떻게정치적주체화의계기들을구성하게되었는지에서출발해,인권담론이21세기한국사회에서도어떻게시민들의민주적권리를유보하거나억압하는국가에맞서정치적주체화의계기로작동하는지살펴보고있다.이를위해이책에서는2014년세월호참사에서부터,장애인권운동에이르기까지여전히한국사회에서자유와평등의혜택을누리지못한채배제되고있는이들을살핀다.
장별주요내용
1부‘인권의철학과정치적주체화’는정치적주체화의계기로서인권에대한총론적논의를다룬다.
1장「인간과시민의권리에관한선언:정치적주체화와인권선언」에서는1789년프랑스혁명와중작성된〈인간과시민의권리에관한선언〉이왜정치적주체화의권리를담은문서인지를살핀다.결집된힘으로권리의쟁취를거부하는권력에맞서집단적으로전개하는투쟁이봉기이며,정치적주체화는무엇보다이런집합적투쟁의과정자체임을밝히고,프랑스혁명의인권선언은이같은정치적주체화자체를공동체의규범으로만드는문서임을보여준다.
2장「인권의인간학:상호주체적권리인가,관개체적권리인가」는자유주의인권론의인간학을비판하는두가지이론적사조,즉상호주체성의인권론과관개체성의인권론이어떤인간학을전개하고있는지비교하고두입장사이의이론적쟁점을검토하는작업을수행했다.이를통해정치적주체화의권리로서인권을사고할때관개체성의인간학이더욱잘부합함을이론적으로밝히고자했다.
3장「인민이인민이되지못하게하는것:작은포퓰리즘들의각축을넘어서교통의민주화로」에서는한국사회에서포퓰리즘의문제를다룬다.이를통해정치적주체화의한형태로서포퓰리즘이한국적현실에서어떤양상으로전개되고있는지를분석하며과연포퓰리즘이한국적상황에서정치적주체화에적합한가라는질문에대해‘교통의민주화’개념에입각해비판적으로응답하고자했다.
2부‘안전의변증법’은2014년세월호참사이후한국사회의권리담론에서매우중요한의제가된재난과안전의문제를‘인권의정치’의시각에서논의한다.
4장「존엄과안전에관한4.16인권선언:사건화와주체화의장치」는〈존엄과안전에관한4.16인권선언〉에대한이론적해석을담고있으며,이선언이무엇보다안전한사회를연대와협력을통해건설할수있는정치적주체들을형성하고자하는글임을보이고자했다.
5장「안전할권리,국가의관점에서시민의관점으로」는안전을빌미로시민의민주적권리를유보하거나억압하는국가권력의오작동(‘국가의안전중심적일탈’)에맞서‘안전’이그시작부터자유와평등을보장하기위한권리임을밝히고국가의안전중심적일탈에맞서안전할권리를민주화하기위해서는여전히정치적행위로서인권운동이필요함을규명하는이론적논의를전개했다.
6장「재난의감각학:사회적참사의문화정치학」은수많은생명이사라지거나다친사건이어떻게사회적으로인지되고의미화되는지를분석했다.이런인지는무엇보다재난에대한감각적질서와관련되어있으며재난에대한감각적질서는재난의서사화과정에의해구성됨을보이고,재난을둘러싼국가적서사와이에저항하는안전사회운동의서사화과정이어떻게갈등하는지를규명하고자했다.
3부‘장애인권운동과공동의역량’은사회로부터배제되어온이들의삶과투쟁을장애운동을중심으로살펴본다.
7장「시대와불화하는불구의정치:장애여성운동,교차하는억압에저항하는횡단의정치」는장애여성운동단체인장애여성공감의20주년선언문을교차성페미니즘관점에서해석하고장애여성공감의활동이갖는정치적의미를밝히고자했다.
8장「감금의질서,수용시설의권력기술:생명정치와죽음정치,그리고형제복지원」은한국현대사가만들어낸비극가운데하나인형제복지원사건을다루었다.형제복지원이라는부랑인수용시설에서작동한권력의테크놀로지,폭력의성격을생명정치와죽음정치의개념을통해분석함으로써오늘날장애인사회운동의핵심의제가운데하나인‘탈시설’논의에기여하고자하는바람또한이글에담았다.
9장「사회적배제와장애화그리고장애정치의역량」은사회적배제의관점에서장애인의상황을파악할뿐만아니라이에맞서는장애인사회운동이갖는정치적역량을규명하는글이다.장애인들의취약성은이들을무능력하게만드는조건이아니라오히려상호의존성과연대의계기가되며,이에기초한장애인사회운동은취약한이들을배제하는기존지배질서에균열을내고취약성과상호의존성에기초한새로운질서의구축가능성을제시하고있음을보이고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