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마이너노트로

느리게 마이너노트로

$19.80
Description
■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목소리를 길어 올려 마이너노트短調로 연주한 수필집
■ 애증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해
3년을 돌보며 마지막을 지킨 민중사학자를 향한 추도문까지
앞서 간 자들을 향한 애도와 비탄의 엘레지
■ 누군가의 힘껏 살아온 삶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법에 대하여
■ 돌봄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자신의 삶으로써 증명해 낸 돌봄의 윤리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게 된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가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며 “가슴에 사무치는 기억들”을 마이너노트短調로 연주한 수필집. “시대에 휘둘리며 달려” 왔지만 시절을 함께했던 선배와 동년배들도 하나둘씩 떠나가고, 돌아갈 곳 없는 노년의 시간 속에서 회한 가득한 인생을 돌아본다.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의 공적인 자아에서 내려와 “웅크리고 있던” 내면의 목소리를 정성껏 길어올린 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해 마지막을 지켜 주기 위해 결혼까지 감행했던 민중사학자 이로카와 다이키치에게 바치는 추도문으로 끝이 난다. 가부장제가 무엇인지 알려준 장본인이라며 힐난해 왔던 아버지가 어떤 이상을 품고 있었는지 되묻는가 하면, 앞서 걸어온 자들의 업을 되새기며 그들이 자신에게 전해준 것들에 대한 감사와 계승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말한다.
“책과 개만이 친구였던” 외로운 어린 시절을 지나 학생운동이 괴멸된 이후 막막하기만 했던 대학 시절을 통과한 우에노는 이제 “앞서 걸어온 여자들”로부터 넘겨받은 언어와 사상을 넘겨줘야 할 노년의 사회학자가 되어 있다. “다른 목소리로 몇 번이고 언제까지나 이어 불러야 할” 것들을 전하며 그녀는 말한다. “모쪼록 이 바통을 받아 주세요.”
저자

우에노치즈코

일본을대표하는페미니스트사회학자.교토대에서사회학박사학위를받고,도쿄대에서가르쳤다.현재동대학명예교수이자NPO법인여성행동네트워크WAN이사장으로있다.1994년,『근대가족의성립과종언』으로산토리학예상을,2011년『돌봄의사회학』으로아사히상을수상했다.그간페미니즘적관점에서가부장적사회를날카롭게분석하는글들뿐만아니라늙음과돌봄에대한성찰을담은글들을꾸준히발표했다.노후에대한제안과인생상담,도쿄대신입생축사등학문적글쓰기에만국한되지않는그녀의글들은대중적으로도큰공감과신뢰를얻고있다.국내에도『가부장제와자본주의』,『여성혐오를혐오한다』,『위안부를둘러싼기억의정치학』,『여자들의사상』,『느낌을팝니다』,『집에서혼자죽기를권하다』,『불혹의페미니즘』,『독신의오후』등다수의저서가소개돼있다.이책은‘후기고령자’가된그녀가공적인자리에서는드러내지않던자신의내면을조용히응시하며그간숨겨두었던면모들을‘마이너노트로’연주한수필집이다.

목차

I바소콘티누오7
아버지의딸로서/배교자/강아지파/위생관념/스승의디엔에이/후회투성이인생/쓸모에대하여/버리지못하는이유/불요불급

II인테르메조65
초콜릿중독/초밥이먹고싶다……!/플라워보이/연극이라는극도/산타는여자들의어제와오늘/삼림한계선/화장실사정/텍스트속베네치아/여행은사람에대한기억

III리타르단도131
정신적외상경험/참전을원하는여성을만난다면?/학교에지뢰를설치하고왔다/월경의변천사/사회학자와아티스트/낳지않는이기주의?/인지증당사자가본세상/의사가죽는법/분노의이유/되돌릴수없는것들/용서를주고받는다는것

IV녹턴205
감정기억은되살아날까/손의나이/낙상사고/독신의사귐/우에노지즈코기금:‘송은’을위해/인재를키운인재:야마구치마사오[1931~2013]추도문/‘남자다운’죽음:니시베스스무[1939~2018]추도문/나카이씨는‘신의나라’로갔을까?:나카이히사오[1934~2022]추도문/전후최고의여성니힐리스트:도미오카다에코[1935~2023]추도문/우리는당신을잊지않겠습니다:모리사키가즈에[1927~2022]추도문/눈속임을허락하지않는엄격함:니시카와유코[1937~2024]추도문/여자의자유를위해일상에서싸우다:다나카미쓰[1943~2024]추도문/어디에도기대지않고끝까지사유하다:쓰루미슌스케[1922~2015]추도문/이로카와씨,고마워요:이로카와다이키치[1925~2021]추도문

후기 301
옮긴이후기 304

출판사 서평

■■ 여든을바라보는페미니스트의내면에웅크리고있던목소리
남성중심사회에대해명쾌한어조로목소리를내는데주저함이없었던페미니스트,비혼에대한사회적편견들을비판하며“가족없이도존엄하게살고죽을수있는사회”를역설해온독신자,돌봄의대상이될수밖에없는약자가약자로서존중받으며살수있는사회를외쳐온사회학자.이같은‘장조’의공적자아의모습으로만친숙한우에노지즈코가내면에웅크리고있던‘단조’의목소리를길어올려쓴에세이들을모았다.
“나고자란가정에서가부장제에대해배웠다”며늘힐난해왔던“독불장군”아버지는아내를먼저보내고10년을실의와고독속에살다돌아가셨다.(모두의사가된)두아들과달리자신에게는차별적인기대를갖고있었기에(“지코짱은말야,참한새색시가되어야지”)사회학자가되는길을반대하지않았던아버지.딸은모든걸‘쓸모’로만평가했던아버지에대한반항심에서한때“쓸모없는”고고학자를꿈꾸었고,아버지의결벽증에대한반발심에서“아무거나먹고아무데나앉는생존형인간”이되었으며,기독교인이었던아버지의이중성때문에무신론자가되었다고말해왔다.하지만장례식장을찾은아버지의환자들을보며직업인으로서의아버지에대해다시생각하고,칠십넘어서까지최신의학잡지를끼고공부를게을리하지않던모습에서연구의가되고싶지않았을까아버지의의중을헤아려보기도하며돌아가신아버지와의때늦은화해를시도한다.
책과개만이친구였던외로운소녀는학생운동이괴멸되며아무일도없었다는듯예전으로돌아가버린대학캠퍼스에서꿈도의욕도없이방황하던대학시절을지나“집으로돌아가기싫어”대학원에진학한다.그리고“재주도능력도없는”자신을한탄하며절망감에허덕이던시절을지나스물세번의낙방끝에겨우전문대교원자리를얻는다.도쿄대교수우에노지즈코가있기이전에단카이세대여성으로서그녀가어떻게일본사회를통과하며자신을형성해왔는지가촘촘히그려진다.

■■■ 노년의깨달음속에서자신과타인의인생에건네는화해의제스처

¶(210-11)지는해의빛은필사적이면서도호화롭다.절절하게사무치는감정은있지만,더이상유쾌하지도불쾌하지도않다.처음부터혼자였다.마지막도혼자다.그렇게풍경이가르쳐준다.…죽기전에몇번이나바다를마주하고일몰을볼수있을까?
¶(222)들어봤다고,알고있다고생각했다.하지만타인의고통은결국타인의고통일뿐이었다.‘그때그사람은이런고통을견디고있던걸까’,‘암말기였던그사람은진통제를쓰면서나를만나러와줬던걸까’하며이런저런장면이떠올랐다.
¶(190)이시쿠라씨의세가지조건은모두가족과관련된것들이다.그렇다면독신인나는……?괜찮다.피로연결되지않아도서로를소중히여기는관계는얼마든지만들수있다.‘가족같은’이라고부를필요조차없다.


마침내도착한노년의시간들을우에노는어떻게받아들이며살고있을까?
“나도‘후기고령자’는처음이라……”하면서써내려간성찰의글들은때로는따스하게,때로는냉철하게,또때로는유머러스하게노년의시간들을그려낸다.
어느날은에스컬레이터에서넘어져허리를크게다쳤다.강의를가던길이라좌약진통제를넣고휠체어에의지한채연단에섰다.그렇게‘독신의노후’라는강연주제를시전하고3주를칩거하며그녀는그제야깨닫는다.사회학자로서그간많이듣고안다고생각하며말해온것들이실은‘타인의고통’일뿐이었고,자신도‘마음의준비’가되어있지않았음을.
몸도마음도여의치않은삶.늙고병들어돌봄의대상이된다는것을직접경험한노년의이야기들엔“분노와비애”가서려있다.특히헨미요의노년에공감하며써내려간에세이는이책의백미다.전세계를누비던행동파작가헨미요는뇌출혈로반신마비가된다.노인요양시설에서운영하는주간돌봄센터에다니게된헨미씨는(그는소설로아쿠타가와상을,시로다카미준상을,논픽션으로고단샤논픽션상을받았다)인지증을앓는할머니할아버지들과‘두뇌트레이닝’을받게된다.요양보호사가하나씩돌아가며질문을시작한다.“‘차갑다’의반대말은뭘까요~~”이같은취급에노여움이치솟는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며헨미요는말한다.
“여기서저런사람들과함께있는것.그럴수밖에없는심신의노화.그것에초조해하는나자신.그리고속절없이쇠약해져가는상황을아직체념할수없는나자신에조바심이나서,저런사람들과나를필사적으로구분하려했고동시에다른사람도그렇게구분해주기를원했던것이다.눈물이고인다.풍경이흐릿하다.”
이글을읽고우에노는얼어붙는다.요양보호대상판정을받더라도주간돌봄센터같은데는절대다니고싶지않다고생각하는자신의마음속에도그와같은마음이자리하고있음을깨달았기때문이다.

¶(194-96)돌봄대상이되면무력해진다.‘무력하다’는것은‘어린애취급을받는다’는뜻이다.하지만노인은어린애가아니다.아이처럼순진하지도무구하지도않다.아이처럼아름답지도않다.오랜세월을살아오면서온갖고생과경험이몸에배어있을뿐만아니라,무엇보다여기까지살아냈다는자부심이있다.하지만그자부심은조금만여의치않아도맥없이무너질만큼불안정한것이다.…“자,여러분,함께해요”라고말하는주간돌봄센터의레크리에이션같은데나는참여하고싶지않다.지금까지살면서한번도단체행동을좋아한적없는내가늙었다고그런걸좋아하게될리없다.요양보호사가귀에다‘할머니’라고속삭이면‘나는네할머니가아니야’라고쏘아붙일것같다.‘회상요법’등을명목으로‘당신의인생을들려주세요’하면서말벗자원봉사자가찾아오면,‘생판모르는당신한테내인생이야기를할이유는없어’하며쫓아낼것같다.그런데……그런데……그사람들의도움이없으면식사도목욕도내몸하나마음대로할수없게되는것이노년의현실이다.
나는강연의마지막을“안심하고돌봄받을수있는사회를!”이라는말로마무리한다.그것을가능하게하는것이요양보험제도라는것을알고있지만,제도가내마음까지구해주지는못한다.뜻대로안되는몸,여의치않은움직임,남에게의지할수밖에없는한심스러운삶에이가갈리는그원통함과애처로움까진제도가닿지않는다.……늙음앞에돌아갈곳은어디에도없다.여의치않은신체라는타자를껴안은채,우리는계단을하나씩하나씩내려가야한다.……이제나는어떻게해야할까?

노년의시간은또한“기억의지층이두터워지는”시간이기도하다.우에노는‘돌이킬수없는것들’‘잃어버린후에야그가치를깨닫는것들’그리고무엇보다‘후회스럽고부끄러운것들’을생각한다.“그때그럴수밖에없었다고한들,인생은필연의연쇄로이루어지는것이아니다.자신의어리석음이나미숙함을탓하며후회해도무르고다시시작할순없다.”“생각이짧아서,충동에사로잡혀서,해서는안될말을하고해서는안될일을했다.상처를주기도하고받기도했다.”
우에노가죽기전에꼭해두고싶은일은자신의미숙함으로인해상처받았거나오해때문에관계가틀어져버린사람들과용서를주고받는것이다.부모를저세상으로떠나보내기전에,또어긋난인연들이떠나버리기전에화해를해두는것은자기인생과화해하는길이기도하다.누군가가죽기전에만나고싶다고하면“잘왔어”하면서말없이상대의눈을바라보며안아주는것,그것만으로도충분할것이라그녀는말한다.
우에노는늘강연의끝을동화작가이와사키치히로의말을완창하며맺는다.“왜옛날로돌아간단말입니까.”한심할정도로어리석었던젊은시절로돌아가고싶지는않다.“실패를거듭하고식은땀을흘리며조금씩세상을알아왔는데,왜옛날로돌아간단말입니까.”스스로의힘으로이세상을헤쳐나간어른,노년에대한성찰들이깊은울림을전한다.


■■■■ 선배와동료들을떠나보내며생각한‘산자’의책무들:기억과계승,그리고돌봄의일

¶(280)모리사키씨,당신이일본근대사상사에남긴거대한발자취를우리는기억하고있습니다.설령그것을남자들이‘사상’이라고부르지않는다해도,그것은분명여자의언어로자아낸독자적인사상입니다.모리사키씨,우리보다앞서걸어주셔서정말고마워요.나는,우리는,당신을잊지않겠습니다.
¶(294)인터뷰마지막날쓰루미씨가사주시는식사를함께한후,나는이런기회는두번다시오지않을거라는이별의예감이들어혼자울었다.쓰루미씨는이제없다.이미노년이되었는데도마음의여유가없는나에게,‘언제까지나내게기대지말고자네발로걸어가게’라고저세상에서말씀하시는것같다.
¶(295)2018년실내에서넘어져대퇴골이골절된후,3년반동안휠체어생활을해야했던그를돌본것은나였다.병원도시설도안가겠다,이대로집에서지내고싶다는말에그가정말좋아하던야쓰가타케남쪽산기슭에위치한산장에서마지막을지켜주었다.


책의마지막4부는선배와동료페미니스트들을떠나보내며“결코잊지않겠다”는마음으로써내려간추도문들이다.이구슬픈‘만가’輓歌는자신이했던말과글의배후에“잔향으로울려퍼지는”선배페미니스트들,때마다초콜렛을전하던“좋아하는아저씨들”,보잘것없던젊은시절자신을끌어주고밀어주며소중한것들을나눠주었던스승에대한기억들로가득하다.신좌파의패배이후잡지『현대사상』을통해일본의‘비제도권학술저널리즘’을견인했던야마구치마사오,우에노가고등학생시절부터길잡이별같이여겼던「사상의과학」의철학자쓰루미슌스케에서부터다나카미쓰,도미오카다에코,모리사키가즈에등“여성해방”도“페미니즘”도없던시절“여자만의언어를내려주었던”1세대페미니스들의업을기리는추도문들은그자체로일본의한시대를풍미한지성들의역사이기도하다.
이같은앞선자들에대한존중과계승의태도는비단지식인들에국한되지않는다.“그세대의증언을직접들을수있는마지막세대”로서우에노는히로시마와나가사키등역사의증언자들의이야기를‘듣는’작업의중요성또한역설한다.박물관에전시된유품이나사진,기록같은매개물로는경험할수없는것을직접듣는일,그렇게“타인의경험을깊이흡수함으로써”맺어진인간적인관계는취약성자체를치유한다.
책의마지막은민중사학자이로카와다이키치에대한추도사다.여기서우에노는“파트너”도“가족”도아니지만,대퇴골골절로거동이어려워진이로카와를3년간돌본장본인이자신이었음을고백한다.사회과학이윤리적인학문임을가르쳐주었던사람,서슴없이천황제를비판하던사람,도쿄대출신이면서도관의녹을먹지않겠다며도쿄대교수제안을거절했던사람,그러면서도“일본여성들이용기를얻을거”라며우에노에게도쿄대입학식축사를하라고격려해주었던사람.독신자도집에서돌봄받으며살수있는사회를부르짖었던그녀가이런이로카와씨와함께한마지막날들은어떤의미였을까?집에서당사자의뜻에따라돌봄을받다떠나보냄으로써본인이늘주장해온돌봄의윤리를증명해낸것일까?
그를잃고부르는마지막만가는상실의아픔을짙게드리우며긴여운을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