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열대 (인간 이전과 이후의 인류학)

불온한 열대 (인간 이전과 이후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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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  근대 인류학의 탄생으로부터 100년, ‘탈식민주의’ ‘존재론적 전회’ ‘다종민족지’를 거쳐 인류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  인간 이전적인 바위의 삶과 그것에 기생하듯 살아가는 아시의 삶, 거기서 발견한 ‘자연/문화’의 이분법을 대체할 ‘자연’에 대한 새로운 성찰들
◆  ‘인간 활동이 곳곳에 침투한 자연’이라는 인류세적 논의를 넘어서고자 한 인류학자의 10년에 걸친 여정
사토미 류쥬는 석사 때까지 사회사상사를 전공하며 사회학자가 되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론적으로 막다른 길에 봉착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 그는 ‘뭔가 제대로 사유하려면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며 전혀 몰랐던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인류학으로 전향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다다른 곳은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에 위치한 말레이타섬. 그곳에서 그는 산호석을 수만 개씩 쌓아 올려 만든 섬 위에서 어로와 농경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바다의 민족’ 아시Asi를 만난다. 하지만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국적’ 타문화를 기술하는 것도, 또 ‘텍스트로서의 문화’에 대해 쓰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버린 상황이었고, 게다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존재론적 전회’의 흐름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류학은 그야말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인류학자는 어떤 인류학을 실천하며 어떤 민족지를 써야 할 것인가. 이 책은 그 같은 이론적 고민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과, ‘아시’들과 함께 ‘불온한 열대’ 위에서 써내려간 10년에 걸친 필드워크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낸 실험적 민족지다. 저자는 한 세기에 걸친 인류학의 발전 과정을 ‘아시’에 대한 자신의 문제의식이 발전해 가는 과정과 연결해 되짚어 나가는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한 아시가 산호초라는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를 탐구하며 인류세적 관점을 넘어선 돌파구를 마련한다. “대중을 향해 말하고자 한 실험적 글쓰기” 방식으로 출간 당시 학계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으며 2023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베스트에 올랐다.
저자

사토미 류쥬

사토미 류쥬里見龍樹
도쿄대에서 사회학과 사회사상사를 공부하다 2007년, 문화인류학으로 전향해 2014년, 도쿄대 문화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와세다대학교 인간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솔로몬제도 말레이타섬 인근에 산호석으로 ‘인공섬’을 짓고 사는 ‘바다의 민족’ 아시들에 대한 장기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 왔으며, 기후변화, 산호초 보전, 열대림 벌채 등에 대한 환경인류학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바다 위의 삶’의 민족지: 솔로몬제도 말레이타섬 북부에서 사회적 동태와 자연환경』(2017), 『입문 강의: 현대인류학의 모험』(2024) 등이 있으며, 『부분적인 연결들』, 『증여의 젠더』,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등 존재론적 전회의 주요 저작들을 공역했다. 박사논문으로 2016년에 아시아ㆍ태평양연구상을, 2018년에 시부사와상과 일본오세아니아학회상을 수상했다. 『불온한 열대』는 이 같은 그간의 연구를 집약한 결과물로 2023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베스트에 올랐다.

목차

들어가며: 쓰나미 이후 11

1부 타자
1장 인류학/민족지의 현재
1 말레이타섬으로 29⊸2 포우바이타 마을 33⊸3 섬들 41⊸4 문화를 쓴다: 인류학/민족지 비평의 전개 49⊸5 인류학/민족지에 대한 재고 52⊸6 포우이아시섬 55⊸7 디메 63⊸8 민족지를 둘러싼 실험: 텍스트성의 문제 67⊸9 바하이 73

2장 부상하는 자연
1 쓰나미의 밤 81⊸2 옛 땅으로 돌아간다 85⊸3 존재론적 전회: ‘단일한 자연/복수의 문화’의 문제 91⊸4 세계청년의날 97⊸5 진짜 토지 소유자 102⊸6 밤이 내린 마을에서 108⊸7 광의의 자연: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다자연주의 118⊸8 수많은 존재론: 데스콜라의 ‘자연의 인류학’ 125⊸9 코이나 135

2부 역사
3장 역사에 대항하는 섬들
1 살육의 밤 141⊸2 수수께끼로서의 역사 148⊸3 교환론과 그 너머 152⊸4 섬들의 역사 쓰기: 말리노프스키에서 역사인류학으로 157⊸5 ‘역사 없는 섬들’과 ‘역사 속의 섬들’ 사이에서: 살린스의 역사인류학 163⊸6 식민지 역사 속의 섬들: 살린스에서 토머스까지 170⊸7 아시 섬들의 형성사 176⊸8 전투의 시대 180⊸9 법의 도래 186

4장 이미지로서의 섬들
1 ‘카스톰 시대’의 섬들 193⊸2 전투와 전사 201⊸3 전투와 이주 205⊸4 전투 장치로서의 섬들 210⊸5 역사에서 이미지로: 스트래선의 역사인류학 비판 214⊸6 ‘새로운’ 섬들 220⊸7 ‘말할 수 없는’ 역사 226⊸8 잘 잊는 경관: 멜라네시아의 ‘역사’와 ‘자연’ 231⊸9 쓰러진 나무 239

3부 자연
5장 살아 있는 바위
1 장례길 247⊸2 성장하고 죽는 바위 251⊸3 자연과 문화를 넘어서: 현대 인류학의 전개 257⊸4 살아 있는 바위 264⊸5 에리포우섬의 사마니 269⊸6 섬을 만드는 사람들 276⊸7 ‘자연-문화’를 기술하다: 라투르 이후의 전개 283⊸8 바위의 죽음 293⊸9 멜라네시아에서의 ‘자연-문화’: 교환론의 한계 301

6장 가라앉는 섬들
1 가라앉는 부두와 섬들 311⊸2 인류세를 살아가는 아시 사람들 315⊸3 ‘살아남음’의 민족지 321⊸4 ‘바다 위의 삶’의 쇠망 325⊸5 무너지는 바위들 332⊸6 석출되는 자연: 와그너에서 ‘자연의 인류학’으로 338⊸7 ‘깊은 곳’과 ‘땅속’ 346⊸8 이미지로서의 자연: 스트래선의 전개 352⊸9 민족지의 자연: 존재론적 전회 이후의 인류학적 사고 359⊸10 베어진 나무 366

나가며 374
후기 380
친애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385
옮긴이의 말: 바다 위의 인류학, 자연 너머의 심연을 마주하다 392
초출 일람 401
미주 403
찾아보기 434

출판사 서평

◆  존재론적 전회 이후 인류학자는 어떤 인류학을 실천하고 어떤 민족지를 써야 하나?
| 낯선 곳을 탐색하는 인류학적 여행기와 현대 인류학 이론에 관한 고찰이 교차하는 실험적 텍스트
| 가장 고전적인 장소에서 가장 최신의 이론을 넘어서고자 한 야심찬 시도

2008년 현장연구를 시작한 후에도 오랫동안 사토미는 막막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동거동락 중인 아시 사람들은 ‘우리에겐 ‘전통문화’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아’, ‘우리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주변 섬에서 온 이주민이야’, ‘바다 위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할 것 같아 내륙 산지로 이주할 생각이야’라는 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예하는 듯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 또 한편 이론적으로도 산호석으로 ‘인공섬’을 짓고 ‘바다 위의 삶’을 살아가는 아시의 문화를 어떤 방법론을 가지고 서술해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그가 찾은 말레이타섬은 멜라네시아 지역, 그러니까 인류학의 고향과도 같은 곳으로 말리노프스키 이래 고전적으로 이미 철저한 연구를 거친 현장이었다. 아시 문화나 사회조직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고하는 것도, 그것을 구성된 텍스트로 보며 기술하는 것도 이미 철저한 비판을 거친 철지난 방법이었고, ‘대화’나 ‘나’의 이야기를 도입하는 것이 현대 인류학이 봉착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저자는 ‘전략적 이국주의’를 구사하며 텍스트나 표상론으로 환원하기 어려운 실재성을 사유하기 시작한 ‘존재론적 전회’의 흐름을 마주하기 시작한다.
보통의 민족지였다면 사례에 들어맞는 이론적 입장 하나를 파고들며 기술해 나갔을 테지만, 이 책은 이렇게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고전적 인류학의 현장을 다시 사유의 중심으로 호출하면서 그곳을 한 세기 인류학사와 접목시키는 동시에, 참여관찰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 그 위에 현대 인류학의 이론적 문제의식을 쌓아올리는 과정을 유려한 문체 속에 녹여낸 이 책은 “대중을 향해 말하고자 한” 실천적 글쓰기 전략의 일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회사상사를 전공하다 인류학으로 전향한 전력뿐만 아니라 (간학제적인) 와세다대 인간과학부 교수로 부임해 인류학을 배운 적 없는 학생들에게 현대 인류학을 가르치는 경험을 쌓으면서 저자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인류학이 종전과 전혀 다른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현대 인류학의 흐름을 처음부터 쉽게 설명하는 방식”은 이런 생각에서 “공을 들여” 나온 결과물이다. 덕분에 출간 후 이 책은 “100년에 걸친 인류학의 발자취를 명쾌하게 정리하며 그 위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과 마주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 이 책은 참여관찰의 전통을 충실히 따른 성실한 민족지이기도 한데,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잇달아 마주하며 타자와 역사, 자연의 ‘불온함’에 대한 인류학적 사고가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은 인류학자가 민족지를 쓰는 행위가 ‘주어진 타자를 기록’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와의 만남 속에서 인류학을 생성해 나가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 준다. 이에 더해 현장에서 매일매일 써내려간 일지가 쌓여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서사와 아시 사람들과 저자의 라포가 느껴지는 정감어린 사진들이 내뿜는 현장감 역시 ‘낯선 곳을 탐색하는 인류학적 여행기’로서의 매력을 더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자는 멜라네시아 인류학의 전형적인 이미지-폐쇄적인 섬사람들, 문명과 접촉하지 않은 전통사회의 이미지-를 깨고 아시를 ‘끊임없이 타지인들을 받아들여 온 열린 역사’를 기반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역동적으로 대응해 온 사람들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또 타자를 재현함에 있어 그들이 가진 고정된 생활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자신의 흔들림과 함께 포착해 나간 방법론은 매우 다층적인 인간사를, 그 복잡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기록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  기억과 망각을 오가는 역사

이 책의 2부에서 사토미는 아시가 거주하는 섬들의 역사를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역사로 새롭게 기술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처음엔 사토미 역시 전통적인 역사인류학의 방법론을 가지고 섬들의 역사를 풀어내는 민족지를 썼다. 즉, 섬들을 둘러싼 이주와 정착의 역사, 서구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변화해 온 역사를 조사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 틀에 들어맞지 않는 불온한 요소들이 튀어나왔다.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 보면, 아시의 섬들은 상당수가 ‘오메아(전투)의 시대’에 서구 세계와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급속히 조성된 것이었다. 그런데 아시 사람들에게 이에 대해 묻자 자신들이 거주하는 섬들은 오메아의 시대 이후인 ‘법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선을 그었다. 또 사람들은 “이 섬은 누가, 언제, 왜 건설했는가” 같은 질문에 오래전 일은 잘 모르며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역사적 물증으로 보이는 몇몇 무인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엇갈린 진술들을 내놓거나 과거의 사건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보통 현지조사에서 이처럼 정합적이지 않은 응답들은 ‘데이터’에서 제외되기 마련이다. 대개는 정합적 이야기를 해주는 정보 제공자(대부분은 고령의 남성)의 답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잘 모르겠다’ 같은 응답은 데이터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른다면 위와 같은 이야기들은 불순물이며 무인도들은 반역사적인 것들이고, 아시는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결여한 사람들이 된다. 하지만 사토미는 그런 불온한 요소들을 끝까지 붙들고 씨름하며 왜 아시 사람들이 그런 역사 인식을 갖게 됐으며, 그런 ‘오해’가 아시의 역사 인식에 대해 무엇을 시사하는가를 묻는다.
이때 그가 가져오는 것은 스트래선의 ‘이미지’ 개념이다. 스트래선은 살린스의 구조주의적 역사인류학이 문화적 동일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려는 전통주의적 원시사회의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사건을 꼭 맥락화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맥락화에 의존할 경우 사건은 맥락의 예시로만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건의 의미를 맥락을 상정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해하고자 한 것. 스트래선에 따르면, 그 안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는 ‘이미지’는 이미 그 자체가 역사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킬 필요가 없다. 사토미는 ‘교환 네트워크’에서도 ‘역사적 맥락’에서도 미끄러지는 아시의 섬들을 이런 ‘이미지’로 사고해 본다. 자신의 역사를 풀어내기 어려운 아리테섬이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무인도 등 아시의 섬들은 맥락화에 대항하는 불온한 ‘이미지’다. 아시에게 섬들은 ‘잘 몰라서 말할 수 없는’ 역사를 구현하는 역설적인 물증이자, 역사와 비역사 사이의 경계에 놓인 대상이며 역사인류학이 제창한 역사적 맥락화를 거스르는 일종의 불순물, 달리 말해 스트래선이 말한, 맥락화에 대항하는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토미는 아시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재구성한다. 보통 우리는 역사를 정체성의 기반을 제공하는 정합적 지식으로 생각하지만, 아시에게 역사는 결코 자명하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것으로 존재하며 ‘우리’의 정체성의 근거가 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을 끊임없이 불안과 탐구로 이끌어 가는 무엇이다. 아시의 섬들은 ‘이런저런 사건이 확실히 있었음’을 실체화하고 기록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건이었을 수도 있으며, 나아가 또 다른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잠재적이고 우유적인 역사를 구현한다. 아시는 이런 역사 인식을 통해 맥락화할 수 없는 역사의 불온한 모습과 맞닥뜨리면서, 역사와의 관계에서 구축되는 ‘우리’라는 자기 동일성에서 벗어나 ‘정체성의 식별 불능 지대’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  인류세 논의를 넘어 | 불온한 자연에 대해 사유하는 법

¶ “우리는 섬을 만들지 않아. 섬이 제멋대로 자라는 거야.”
¶ “섬을 짓는 데 쓰는 건 모두 살아 있는 바위야. 바위는 살아 있기 때문에 강하고 섬을 단단히 붙들어 둘 수 있어. 바위는 늙으면 단단히 맞물리지 않아. 그러면 섬이 가라앉아.”
¶ “사람들은 이제 바다 위의 삶을 두려워해. 지금 세상에는 별의별 일이 다 있잖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찌 알겠어? 지진이니 쓰나미니.”
¶ “해수면 상승에 대한 내 생각은 이래. 섬이 막 만들어졌을 때는 바위가 아직 싱싱하고 살아 있어. 그런데 바위가 햇볕에 그을려 죽어 버리면 섬이 낮아지지. 그래서 밀물이 섬 위까지 들이닥치는 거라고.”
¶ “얕은 여울에는 바위가 사라져 버렸지만, 땅속에는 살아 있는 바위가 있어. 땅속에 있는 바위까지 전부 파내 버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바위를 다 파내 버렸다고 해도 10년이나 12년 정도 지나면 다시 바위가 자라는 걸 볼 수 있어.”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산호초 위에서 살아가는 아시는 분명 인류세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디스플레이스먼트 리서치 같은 환경단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의 섬들은 평균 고조면 기준 1미터 미만 높이로 현재의 해수면 상승 추세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다. 만조시 섬들은 해수면 위에 “간신히 떠있는” 수준이고 폭풍이 몰아치면 물에 완전히 잠겨 버리는 섬도 있다. 이 같은 설명에서 아시의 삶의 위기는 글로벌 기후변화에 따른 것이다.
인류세적 개념 미학은 이처럼 그간 환경위기를 논하는 담론들 속에서 보편화되어 왔으며,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개입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토미 류쥬는 이런 개념 미학이 제시하는 ‘곳곳에 인간 활동이 침투한 자연’이라는 이미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바탕에는 ‘자연-문화’를 일원론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일종의 하이브리드로 생각하는 관점이 깔려 있으며, 여러 종의 얽힘과 관계성을 서술하며 비인간 종에 대한 인간의 윤리와 책임을 도출하는 식의 논의로 이어진다(이는 1990년대 이후 인류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토미는 이 같은 확장적 관계론이 인간 중심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