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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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에서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정치가 바로 후자의 정치, 즉 시민의 정치이자 해방의 정치이다. 그것은 선거와 의회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재현의 정치”가 아니라, 그 “재현의 정치”에 구멍을 내는 “사건의 정치”이다. 바디우는 정치의 재정초와 관련하여 재현에서 벗어난 비지배의 정치라는 가설과 이에 대한 참여를 정치의 공리로 제시한다. “정치를 하나의 경험으로, 과정으로, 나아가 일종의 물질로 놓는 사유, 어떤 사건 이후 상황 속에 나타난 사건에 충실한 주체들이 구성하는 그러한 진리로서의 정치에 관한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급진적인 정치란 이런 것이다.
저자

알랭 바디우

저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 )는 모로코의 라바(Rabat)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사회주의자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툴루즈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바디우는 프랑스 파리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사르트르주의자였고, 이후 알튀세르의 작업에 참여해 1968년 과학자를 위한 철학 강의에서 ‘모델의 개념’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68년 5월 혁명 이후 확고한 마오주의 노선을 취하며 알튀세르와 결별했고, 1970년대 내내 마오주의 운동에 투신했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에서 마오주의 운동이 쇠락하자 다른 정치적?철학적 대안을 찾고자 노력한다. 1988년 『존재와 사건』을 출판해 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틀 안에서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연 그는,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며 새로운 ‘진리철학’을 확립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이후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개입해 신자유주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실뱅 라자뤼스, 나타샤 미셸 등과 함께 1985년 ‘정치 조직’(L’Organisation politique)을 설립하는 등, ‘당 없는 정치’라는 슬로건으로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개입은 『정황들』 연작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8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1999년부터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로 활동했으며, 2002년에는 고등사범학교 부설 프랑스현대철학연구소를 창설했다. 현재는 스위스 자스페(Saas-Fee)에 위치한 유럽 대학원(European Graduate School, EGS)의 르네 데카르트 석좌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철학을 위한 선언』, 『수와 수들』, 『조건들』, 『윤리학』, 『사도 바울』, 『세기』, 『세계의 논리』, 『사랑 예찬』, 『플라톤의 국가』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1 파괴
역사적 좌표계에 관해
솔제니친과 샬라모프
승리의 끝
폴란드 노동자 운동의 보편적 의미
동시대적 반(反)마르크스주의의 반동적 의미
파괴적 주체화와 위치 이탈
(재)시작의 형상
원천의 재검토

2 재구성
사건. 경험적 경로
정의와 공리
관념론 반박
변증법의 계보
형식론 1: 금지된/불가능한
형식론 2: 식별적 개입과 도박적 개입
개입과 조직: 정치. 전(前)미래
교조주의란 무엇인가?
탈숭고화

옮긴이 후기

출판사 서평

정치 없는 시대에 정치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해방의 정치는 사건으로부터 태어난다

마르크스주의가 무너진 폐허에서 완전히 새롭게 시작될 정치의 계기

2016년 10월 29일부터 장장 4개월, 누적 참가자 1600만 명.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혁명과 광장의 정치가 국민주권과 헌법의 가치를 증명해낸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러한 지금 여기에서 정치는 무엇인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서 시작하여, 강정과 밀양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벌어진 탄압, 수백의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재벌기업 특혜 및 노동여건 개악, 친일과 독재 미화를 목표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기도, 피해자 의견의 반영이 없는 한일 위안부 합의, 사드 배치 파동, 권력의 심부에서 벌어지는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일련의 파국적인 상황에서조차 이전투구와 기회주의에 매몰된 의회의 무능 또한. ‘정치권’이라 불리는 영역에서 전개된 이 ‘정치’는 주권자인 시민들의 삶과 의지와는 유리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그곳에 정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주권자로서 각성하고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이 ‘정치권’의 바깥에서 또 다른 ‘정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책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에서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정치가 바로 후자의 정치, 즉 시민의 정치이자 해방의 정치이다. 그것은 선거와 의회민주주의로 상징되는 “재현의 정치”가 아니라, 그 “재현의 정치”에 구멍을 내는 “사건의 정치”이다.

‘정치의 위기’라는 테제에 대한 반론
재현의 정치가 직면한 위기는 곧 해방적 정치가 다시 출현할 계기이다.

오늘의 정치철학이 선호하는 주제는 ‘정치의 위기’라는 테제이다. 여기서 위기에 처한 정치란 선거라는, 수(數)로 관리되는 체제에 지배되는 정치, 곧 재현의 정치이다. 바디우는 이 책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에서 정치철학의 이러한 경향에 반론을 제기한다. 제도적?구조적 정치의 퇴각을 위기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회복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다. 우리는 제도적 정치의 회복과 정상화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제도적 정치의 주체성을 거부하고 그것이 가진 한계를 드러내 구멍을 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 위기는 오히려 해방적 정치가 다시 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정치를 사유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것(le politique), 즉 재현의 정치를 반박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은 오로지 그것이 사회적인 것의 적절한 재현이라는 점에만 의지한다. 그 때문에 정치적인 것의 이론가들(정치철학자들)에게는 좋은 국가 형태와 나쁜 국가 형태의 구분, 즉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구분만큼 값진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들에게는 전체주의의 대립쌍으로서 민주주의가 갖는 이념적 우월성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분만으로는 진정한 해방적 정치를 불러오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치적인 것에 관한 사유의 잔해 가운데 오늘날 크게 중시되는 것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전체주의에 맞세우는 바람직한 전투이다. 어쨌든, 개념으로서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의회적 기능의 경험적 묶음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정치적 사유의 세계적인 위기가 서구의 (자본주의적) 체제들이 동방의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인) 체제들보다 유연하며 합의에 적합하다는 이 진부한 사실로 귀착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가? 정치적 사유가 소중하다면, 그런 방식으로 이해되는 민주주의적 이념은 결코 정치적인 것의 위기의 역사성을 감당할 대책이 되지 못한다. (본문 16쪽)

“의회적 기능의 경험적 묶음”이며 “서구의 자본주의적 체제들”의 우월성만을 증명하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넘어, 바디우는 실천이라는 표지 아래서 정치의 개념을 내놓는다.
이렇게 기존 정치철학의 지배적인 흐름에 맞선다는 의미에서, 또한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해방적) 정치(la politique)를 사유한다는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적인 책이자 정치적인 책이지만, 정치철학 책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재현의 정치에만 관련된 정치적인 것에 관한 사유는 이론에 머문다. 혹은 재현의 정치와 관계없는 익명의 일반인들에게는 다른 동네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정치란 재현에 따르거나 혹은 제도에 종속된 정치가 아닌 어떤 다른 차원에 속한 무엇이다. 이 책이 목표하는 것은 정치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경유한 (재현의) 정치에 관한 사유(정치철학)가 아니라, 정치를 하나의 경험으로, 과정으로, 나아가 일종의 물질로 놓는 사유, 어떤 사건 이후 상황 속에 나타난 사건에 충실한 주체들이 구성하는 그러한 진리로서의 정치에 관한 사유이다. 이러한 구도에서 사유는 더 이상 생각이나 공상의 범위에 머물지 않는다. 사유는 실천과 등가화되며, 따라서 ‘정치는 사유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적으로 ‘정치는 실천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실천의 가능성이 값없이 주어지는 그러한 정치는 재현의 정치와 대별되는 해방의 정치, 곧 진리의 정치이다. (박성훈, 「옮긴이 후기」 중에서)

새로운 정치는 재현으로부터 벗어날 때 시작된다
사건으로부터 태어나는 정치

바디우는 정치의 재정초와 관련하여 재현에서 벗어난 비지배의 정치라는 가설과 이에 대한 참여를 정치의 공리로 제시한다. “정치를 하나의 경험으로, 과정으로, 나아가 일종의 물질로 놓는 사유, 어떤 사건 이후 상황 속에 나타난 사건에 충실한 주체들이 구성하는 그러한 진리로서의 정치에 관한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바디우가 말하는 급진적인 정치란 이런 것이다.

근원으로 향하고 필요의 관리를 거부하며 목적을 성찰하는 정치, 정의와 평등을 유지하고 실행하는 한편 파국을 공허하게 기다리지 않고 평화의 시기를 책임지는 그러한 급진적인 정치란 어떤 것인가? 이와 동시에 무한한 과업인 급진주의란 어떤 것인가? 중요한 것은 혁명적인 정치가 본질적으로 끝없이 지속되도록 요청하는 일이다. (본문 128쪽)

모든 진정한 (해방의) 정치는 상황 안의 특정한 어떤 것, 어떤 공백이나 무로 취급되는 무엇과 결부된 정치이며, 전체를 아울러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쳐 상황을 장악하는 폐쇄성의 정치란 있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한 변증법은 바디우의 말 그대로 실존과 존재의 변증법이다. 하나로 셈하기에 따라 상황 안에 수용되는 실존과 그 실패에 따라 수용되지 못하는 무한히 많은 존재들이 있을 때, 정치는 하나로 셈하기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수용되지 못하여 공백과 같이 취급되는 무한한 존재들을 상황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따라서 정치는 결코 끝나지 않는 무엇이다. (박성훈, 「옮긴이 후기」 중에서)

‘하나로 셈하기’ 안에서 권리를 가질 권리를 갖지 못한 존재들, 수용되지 못하고 공백과 같이 취급되는 존재들을 상황 안으로 받아들이는 정치. 바디우는 이 정치의 원자(原子)가 사건에 관련되는 도박적 개입이라고 말한다.

나는 타자(Autre)가 동일자(Meme) 아래 은닉되고 둘(Deux)이 구조에 의해 하나(Un)로 셈해졌던 가설 속에서 사건에 관련되는 도박적 개입을 정치의 원자라고 상정한다. […] 도박적 개입은 상황에 대해 제시하는 해석을 통해서 전정치적인 상황을 정치화하며, 이를 토대로 사건이 구축된다. 그러한 개입은 일자의 구조에 맞서 둘을 견지한다. (본문 129쪽)

개입과 함께 이전에는 상황 안에 갇혀 있던 진리가 사건의 형상 속에서 순환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일체화하고 동일시해버리는 ‘하나로 셈하기’라는 지배적 정치 질서에 균열을 내는 개입이 공백을 드러내고, 그 공백의 가장자리는 사건의 자리가 된다. 그리고 거기서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의 본질은 재현을 배제하고, 강령적인 인식을 결코 외형으로 삼지 않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은 전적으로 개입의 그물망으로 물질화하는 사건에 대한 충실성에 있다. (본문 99쪽)

직접적인 투사적 형상은 이와 같이 실행 또는 참여의 처지로 끌어내어진다. 투사적 형상은 그 자체로 정치적 실존에 관한 내재적 개념이다. 그 형상은 정치의 비강령적 본질에서 집요하게 추출된다. 누구건 행동하지 않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본문 100쪽)

이 인용문들은 공히 개입으로서의 정치, 참여와 실천으로서의 정치를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월호의 정치, 촛불의 정치와 맥이 닿는다.
정치는 재현이 아니라 주체의 개입을 통해 진리를 생산한다. 바디우가 말하는바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실재가 존재하는데, 파스칼에게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신, 루소에게 위임이나 재현이 불가능한 개개인의 의지, 말라르메에게 시인이나 세계로 재현될 수 없는 시, 라캉에게는 결코 기표로 재현될 수 없는 주체가 바로 그런 실재인 것과 마찬가지다. 국회와 국가기구가 독점하는 재현의 정치가 아니라, 사건의 정치 즉 광장의 정치에서 진리가 생산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정치의 역사적 붕괴와 그에 이은 반동적 사유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과업은 무엇인가

이 책은 1985년 장-뤼크 낭시(Jean-Luc Nancy) 등이 주도해 개최한 두 차례의 강연회에서 바디우가 발표한 글을 정리한 결과물로, 현실 사회주의의 국가 기구와 공산주의 이념의 스탈린주의적 변질과 왜곡에 직면하여, 진정으로 해방적이고 공동체적인 정치를 향한 보편적 요구는 어떻게 계속 유지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그 해방적?공동체적 정치의 재구성은 역사적 붕괴의 단계에 이른 마르크스주의의 폐허 위에서 모색된다. 근대 정치적 기획에서 해방의 정치를 표방하는 가장 전범적인 예시가 바로 마르크스주의 정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현의 정치와 해방의 정치의 구분이다. 마르크스주의 정치 내에도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그런 만큼이나 분명하게 국가와 제도적 수단으로서의 당에 따른 정치와 이에서 벗어나는 비지배의 정치 사이의 구분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다른 형태의 재현의 체계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이다. 바디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