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 양장본 Hardcover)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빌론 포로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서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논설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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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루터의 3대 논문은 종교개혁자가 써낸 가장 중대한 텍스트의 가치는 그것들이 시대와의 생생한 대결에서 직접 탄생한 고백서이자 그가 본질적인 점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종교개혁의 대강령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실질적으로 루터 신학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루터는 이 글들을 95개조 반박문 공표 이후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조여 오는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함은 물론 예언자적 열정에 불타 1520년 8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단 3개월에 걸쳐 작성했다.

이처럼 루터와 그의 사상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루터의 3대 논문은 국내 출판계에서 여러 차례 번역본이 출간된 바 있으나, 대부분 중역(重譯)이었거나 판본이 불분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서출판 길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새롭게 펴내는 이번 번역본은 현재까지 루터 저작의 정본 역할을 하고 있는 바이마르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라틴어에서 번역, 루터가 의도한 바가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주안점을 두었다.
저자

마르틴루터

저자마르틴루터(MartinLuther,1483~1546)는독일아이슬레벤(Eisleben)에서아버지한스루터와어머니마르가레테사이에서태어났다.1501년에르푸르트대학인문학부에들어가1505년마기스터학위를받았다.그해7월부친의집을방문한후돌아가는도중들판에서폭풍을만나죽음의공포속에서성녀안나의도움을호소하면서수도사가될것을서원(誓願),아우구스티누스은둔자회에르푸르트수도원에입회하였다.1507년그는종신서약을거쳐사제서품을받았으며,1512년에는비텐베르크대학에서신학박사학위를받았다.1517년10월31일,면죄부를반박하는그유명한95개논제를발표함으로써서양역사전체를통틀어획기적사건으로기록될종교개혁을촉발했다.1518년로마교황청에의해재판이시작되어추기경토마스카예탄(ThomasCajetan)으로부터심문을받았으며,1520년에는루터를파문하는위협교서‘엑스수르게도미네’(ExsurgeDomine)가선포되었다.같은해8~10월에종교개혁사상의핵심을보여주는3대논문을출판했으며,1521년에는로마교황에의해파문됨과동시에보름스제국의회에출두하라는소환장을받았다.보름스제국의회출두이후,귀환하는도중에작센선제후현자프리드리히(FriedrichderWeise)의보호아래바르트부르크성(城)에은신,『신약성서』의독일어번역작업에착수했다.1525년농민전쟁이발발하자초기에는농민군을동정했으나,그들의폭력적처사에경악하여등을돌리고비판하기시작하였다.1525년시토회수녀였던카타리나폰보라(KatharinavonBora)와결혼하여슬하에여섯명의자녀를두었다.1530년아우크스부르크제국의회에일명‘아우크스부르크신앙고백’이제출되었으며,루터파교회가공식출범하였다.1534년『구약성서』의독일어번역을완성하여『신약ㆍ구약성서』를출판,이를통해근대표준독일어의정착에큰기여를하기도하였다.1545년교황에대한마지막비판문인『로마교황제반박』을발표한후,1546년2월18일고향아이슬레벤에서작고하였다.

목차

옮긴이의말9

「독일민족의그리스도인귀족에게고함:그리스도인신분의개선에대하여」21

「교회의바빌론포로에대한마르틴루터의서주」139
면죄부는로마아첨꾼들의허접스러운것이다142
교황청은로마주교의힘센사냥집단이다143
세례의성례전에대하여199
고해성사에대하여229
견신례에대하여242
혼인에대하여244
서품에대하여263
최후도유(塗油)의성례전에대하여278

「교황레오10세에게드리는루터의서신:그리스도인의자유에대한논설」291
[그리스도인의자유에대한논설독일어판서문]306
마르틴루터의논설
그리스도인의자유에대하여307

바이마르판의사용판본목록353

부록:95개조반박문369
해제:루터의종교개혁사상핵심을보여주는3대논문의의미379
연보411
찾아보기415

출판사 서평

루터사상의핵심을보여주는3대논문,정본역할을하는바이마르판으로번역하다
마르틴루터(MartinLuther,1483~1546)는중세후기부패한로마가톨릭교회에대한철저한비판을통해본래의그리스도교정신을강조하면서오직성서와믿음에바탕을둔일대혁신을불러일으켜서양사전체에엄청난영향을끼쳤다.1883년이후그의전저작과글을모아편집,출간해오고있는바이마르판『루터전집』(D.MartinLuhtersWerke:KritischeGesamtausgabe)은물경60,000여쪽에이르는방대한분량으로,이것은그가단순히종교개혁을촉발한운동가가아니라서양근대의시원을연위대한사상가였음을증명해준다.사실상그렇게많은문헌들은1517년비텐베르크궁정교회에95개조반박문을못으로박은이후,실질적으로종교개혁이촉발되면서부터수많은가톨릭계사람들과의치열한논쟁과정속에서생성된지적결과물로서,종교영역뿐만아니라정치,경제,사회,문화전영역에걸쳐이후인류사에대단한파급효과-커다란의미에서‘근대’라할수있는역사적인전환점-를가져왔다.
이가운데이번에한권의책으로묶어펴내는루터의3대논문은종교개혁자가써낸가장중대한텍스트로,이글들의가치는그것들이시대와의생생한대결에서직접탄생한고백서이자그가본질적인점들을집중적으로다루어종교개혁의대강령을만들어냈다는데있다.실질적으로루터신학사상의핵심을보여주는결정체라고해도과언이아닌것이다.루터는이글들을95개조반박문공표이후로마교황청으로부터조여오는위협으로부터자신을방어함은물론예언자적열정에불타1520년8월중순부터11월중순까지단3개월에걸쳐작성했다.
이처럼루터와그의사상전반을이해하는데중요한루터의3대논문은국내출판계에서여러차례번역본이출간된바있으나,대부분중역(重譯)이었거나판본이불분명했던것이사실이다.도서출판길에서종교개혁500주년을맞아새롭게펴내는이번번역본은현재까지루터저작의정본역할을하고있는바이마르판본을저본으로삼아라틴어에서번역,루터가의도한바가정확하게전달될수있도록하는데그주안점을두었다.

독일귀족에게보내는일갈,「독일민족의그리스도인귀족에게고함」
독일어로쓰인이논문은독일귀족에게자기신분내에서개혁을하라는권고가아니라오히려그들에게도탄에빠져있는그리스도교를개혁하라는호소이자일갈이다.이는곧성직신분이교회개혁의의지가없으므로평신도(귀족신분)들이치유자가되어야한다는것이다.이로써13세기이래평신도의강력한부상(浮上),교회문제에대한평신도의점진적인개입,역으로일방적으로성직자중심으로발전해왔던교회와의경쟁은마침내절정에도달했다.로마에대한독일인의증오는이평신도들의자구책에서유일한배출구를발견하게되는데,바로루터가그러한독일인의증오를대변하는선구자였던셈이다.그는이논문에서세속권력에대한영적권력의우위성,교황의교리적권한및공의회에대한교황의권한을거부하는반면,‘만인사제직’-이개념은바로반(反)로마주의운동을가장간단명료하게표현한말이다-을강조한다.즉모든그리스도인은성직신분에속하며그들사이에는직업적차이외에는다른차이가없다는것으로,그리스도교사회에서의차이는신분의차이가아니라기능상의차이가있을뿐임을역설한것이다.이를통해루터는로마의수위성은더이상존재할수없으며,로마교황만이성서를올바로해석할수없도없을뿐더러교황만이총회를소집할권한도없다고말한다.이러한권한은그리스도인이라면누구에게나있다는것이다.
이논문에서루터는교회개혁을기존구조안에서달성하려는희망을포기했음을분명히했다.그는자신의신학적단초들이이제교회의내적토론공간을위해의도된것이아니라여전히교회직무상통일체로서이해된그리스도의몸전체를갱신하기위해사용되어야한다는것을점차숨김없이드러냈다.

가장치열한신학적논박,「교회의바빌론포로에대한마르틴루터의서주」
제한된독자를위해라틴어로쓴이논문에서루터는로마에신학적으로가장신랄한공격을가했다.즉교회는스콜라주의성례전론에사로잡혀있다는것이다.이글은다만7개성례전에대한공격이상을의미하는데이는전통적인성례전개념,즉교회전례에서역사하는신적생명의객관주의에대항하는것이다.그러나그는객관적성례전주의를비판하는데서극단적으로까지밀고나가지는않았다.그는이것을울리히츠빙글리(UlrichZwingli)와열광주의자들에게맡겼다.1529년마르부르크에서처럼루터는이미여기서“이것은내몸이다”를고수했다.그는세례와성만찬만허용하고회개(고해성사)는유보단서를붙여성례전으로인정했다.그는성만찬에서평신도가포도주를마실자유를요구하고,전통적‘화체설’(化體說)을일개이론에지나지않는다고폄하했다.그는성만찬에서그리스도몸의참된임재를확립한다.그러나이‘임재’의양태문제는미결로남겨둔다.특히루터는끈질기게미사내지성만찬이제사라는교리를공격한다.성만찬은우리에게죄사함을약속하는그리스도의유언(언약)이다.성만찬제정의말씀은전체복음의요약이다.이언약을믿음으로써영접하는대신인간들은이것을제사,즉하나의행위로만들었다.따라서그리스도의선물이하나님께바치는인간의제물이되었다.
루터는인간의상태와무관한‘작위적행위’를부인하지는않지만,특히강하게스콜라주의신학에반대하여성례전적은혜를신앙으로써받을필요성을강조한다.“믿으라,그러면이미먹은(은혜를받은)것이다.”수찬자의신앙은예수그리스도의현실적임재를일으킨다.빵과포도주의본질은변화없이남아있다.이로써그것에대한언급은없지만사제의성례전적직무는불필요하게되었다.사제직은기껏해야교육적목회의의미에서그리고말씀을선포하기위해성서를아는자가있어야한다는사실때문에존재가치를가질뿐이다.이처럼종교적삶의핵심인미사를거부하고4개성례전을거부한이논문에서분명해진것은루터의생각이본질적으로교리상로마가톨릭교회와배치된다는사실이다.
빈번한출간,번역,주해그리고찬반의입장들은이논문이완결된주제를갖춘,가장두드러진종교개혁적저서들가운데하나에속한다는것을설명해준다.개신교교리형성에서이논문의모범적의미는아무리높이평가해도지나치지않는다고볼수있다.
교회의혁명을강조한이논문은많은찬성외에더많은이반(離叛)을초래했는데,특히교회의계급서열적-성례전적구조를건드리고싶어하지않는개혁가톨릭적-인문주의적사고를가진자들에게서특히그러했다.수년간루터의길에공감했던에라스무스(Erasmus)가로마교회와의분명한단절을지지하지않았음은주지의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삶의이상(理想)을대중에게친근하게설파,「그리스도인의자유에대한논설」
이텍스트는로마교황레오10세가루터에게내린파문위협교서인‘주여,일어나소서’의공표이후,교황에게루터의정통성과선한뜻을확신시키기위해교황청과연결된카롤루스밀티츠(CarolusMiltitz)의권고로쓰였다.이글에서는그리스도인의삶의이상을대중에게친근하게서술하기위해교회에대한공격이후퇴한다.따라서이글은루터의모든글가운데가장온건한편으로전체그리스도교계를대상으로한다.여기서루터는가톨릭분위기에가장접근해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글의기조에는만인사제직개념이깔려있다.
루터에게서그리스도인의자유는구원받은인간의진수인데,‘그리스도인’은율법에예속되는백성에대립되는그리스도교자유의백성의다른이름일뿐이다.율법적경건의위험에대한공격은‘자유’개념을날카롭게드러내게만들었는데,여기서자유의개념은칭의론(稱義論)의결과이다.즉인간의오직믿음을통해서만율법의예속에서완전히해방된다는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윤리적함의를밝힌이텍스트는교회의바빌론포로가칭의론이해를성례전론에적용했다면,그리스도인의자유론은칭의받은자의삶에서자유와봉사에대해말하고있는것이다.
이텍스트의신학적독창성과학문적,사상적완성은1520년의다른두위대한발언에뒤처지지만그것이대중에끼친영향력은그리스도안의새로운복음적존재에대한인상깊은용이한명제들로말미암아당대에비교할것이없을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