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70만 일본인의 밝혀지지 않은 역사!
일제강점기 아래, 경성(京城)에서는 미나카이(三中井)백화점, 히라타(平田)백화점, 미쓰코시(三越)백화점과 더불어 초지야(丁子屋)백화점이 이른바 4대 백화점이었다. 여기에 박흥식(朴興植)이 세운 화신(和信)백화점까지 더해 흔히 5대 백화점이라고 했다.
이 가운데 초지야백화점을 설립한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 , 1867~1940)는 일본에서 1904년 해협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와 탁월한 사업감각과 총독부의 공식적인 지원, 그리고 행운까지 겹친 덕에 초지야를 일류 회사로 키워 히로히토 천황이 하사하는 - 일본 본토의 경제인들도 받기 힘들었던 - 청색동엽장(靑色桐葉章)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그는 단순히 식민지 조선에서 사업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선사업을 지원하고 토박이 승려들을 보살폈으며, 또한 가난한 이들을 교육하고 경성 본점에 이례적으로 조선인을 많이 고용하는 등 사업과 자선을 배합한 자칭 ‘불교적 상도(商道)’의 방식으로 ‘내선융화’(內鮮融和) - 즉 일본과 조선의 융화 - 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고바야시와 같이, 일제강점기(1876~1945) 당시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30만 명의 군인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19~20세기 세계 식민/제국주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의 대량이주였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을까? 그들은 조선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을까? 이주 정착민들과 식민국가는 어떤 관계였을까?
이 가운데 초지야백화점을 설립한 고바야시 겐로쿠(小林源六 , 1867~1940)는 일본에서 1904년 해협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와 탁월한 사업감각과 총독부의 공식적인 지원, 그리고 행운까지 겹친 덕에 초지야를 일류 회사로 키워 히로히토 천황이 하사하는 - 일본 본토의 경제인들도 받기 힘들었던 - 청색동엽장(靑色桐葉章)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그는 단순히 식민지 조선에서 사업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선사업을 지원하고 토박이 승려들을 보살폈으며, 또한 가난한 이들을 교육하고 경성 본점에 이례적으로 조선인을 많이 고용하는 등 사업과 자선을 배합한 자칭 ‘불교적 상도(商道)’의 방식으로 ‘내선융화’(內鮮融和) - 즉 일본과 조선의 융화 - 를 실천한 대표적 인물이기도 했다.
고바야시와 같이, 일제강점기(1876~1945) 당시 일본 본토에서 한반도로 건너온 사람들은 (30만 명의 군인까지 포함하면) 1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19~20세기 세계 식민/제국주의 역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들의 대량이주였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왔을까? 그들은 조선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했을까? 이주 정착민들과 식민국가는 어떤 관계였을까?
제국의 브로커들 (일제강점기의 일본 정착민 식민주의 1876~1945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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