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에서

바다 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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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권력이 지워버린 기억을 삶으로 이어간다는 것
죽은 자는 산 자 속에 살아 있다

“제주 4ㆍ3 사건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의 문학적 고투
75년이 지나도록 파묻혀 있는 제주 4·3 사건의 진실.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은 아흔여덟 평생, 글을 무기 삼아 그 기억의 말살과 대결해 왔다. 이 소설은 그의 대표작이자 4·3을 다룬 유일한 대하소설인 〈화산도〉(1997)를 이어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1948~49년 제주 4·3 항쟁과 친일파 처단이라는 문제를 지주로 삼았던 〈화산도〉에 이어, 〈바다 밑에서〉는 항쟁의 패배 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일본으로 도망한 남승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고문이 남긴 상처와 학살의 기억, 혼자 도망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를 통해, 작가는 4·3의 진실과 그 현장에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목소리를 전한다. 그리고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도리어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일본 사회를 배경으로, 남승지라는 재일 조선인 청년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캐묻는다. 원한의 땅, 조국 상실, 디아스포라의 존재.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망각의 시대에 경계인이기에 도리어 집요하게 매달려 썼던 이 작품은 김석범 문학의 원점이자 기나긴 소설의 끝맺음이다.
저자

김석범

1925년오사카(大板)에서태어난김석범은평생에걸쳐‘제주4·3사건’에관련된작품집필에매달렸다.그는18세인1943년에제주도에서일년여머물며의기투합한청년들과조선독립에대한이야기를나누었고,1945년3월에는중국으로탈출해서임수정부를찾아간다는계획을세웠으나장티푸스에걸려사경을헤매다오사카로돌아가야했다.해방후인1946년에도그는서울로돌아와국학자정인보선생이설립한국학전문대학국문과에입학했다.하지만학비와생활비를마련하기위해오사카로밀항한뒤,40년이넘는세월동안고국땅을밟지못했다.김석범이‘제주4·3사건’에대해적극적인관심을갖게된것은제주도에서밀항해온친척으로부터제주민중들의참혹한학살소식을접하면서부터였다.이후로그는야만적인권력에의해자행된‘제주4·3사건’의문학적형상화에심혈을기울였다.그의나이32세때인1957년에발표한?간수박서방(看守朴書房)?과?까마귀의죽음(鴉の死)?에서시작해,?관덕정(觀德亭)?(1961),?만덕유령기담(万德幽靈奇譚)?(1970)과??月?(2001)에이르기까지제주4·3사건을소재로한작품을꾸준히발표했다.김석범은1988년다시고국을찾을때까지정권의회유와압박으로많은괴로움과좌절을겪어야했으며,제주4·3평화상1회수상자가되었을때도이념공세에시달려야했다.그는조국의진정한통일과미래를위한망명문학이부정되는현실에맞서자신의문학은‘망명문학’이라고항변하기도했다.만약그가한국에서살고있었다면?화산도?는쓸수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일본문학계에서도김석범은일본어로부터자유와해방이라는고뇌를안고작가활동을해왔다.일본어를절대화시켜서는안된다는보편성에근거한자유와해방을추구하면서,조선인작가로서의자기정체성을찾는길을지향했다.?화산도?로1983년아사히신문오사라기지로(大佛次郞)상과1998년마이니치(每日)예술상을수상했다.

목차

바다밑에서
덧붙이는글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사막같은슬픔이야.맞아,사막같은마음에눈물이있나?
우리는눈물도얼어붙어서안나오잖아요.
아무것도없다.있는것이라고는말의형태가아닌음성.
그것은제주도의목소리.눈물의오아시스가없는소리.“

한국현대사의오랜금기제주4?3,김석범문학의원점이자숙명
해방공간의모순과역사적진실을똑똑히기억해야한다

제주4·3사건은오랜세월한국현대사의금기였다.그금기에도전해이사건을재조명하려던한국문학계의여러시도들이탄압을받기도했다.국내의그런사정에비추어,1997년일본에서대하소설『화산도』가출간된것은하나의사건이었다.(한국어완역판은2015년출간)20여년에걸쳐원고지22,000장으로완성한이작품은말의형태를얻지못한채갇혀있던제주4·3의목소리를해방시키고자한엄청난의지의산물이었다.

작가김석범은1925년일본오사카의이카이노에서태어났다.그의부모는제주도출신으로태중에그를품고밀항해일본에서그를낳았다.오사카는재일조선인들이가장많이모여사는도시였고,이카이노는4·3당시제주도를탈출한사람들의밀집지,은거지였다.

1951년그는대마도를방문했다가한여성을만나게되고,그여성에게서4·3당시경찰에의해고문을당한이야기를듣고서큰충격을받는다.그후그이야기를글로옮겨첫소설「간수박서방」(1957)을발표했고,같은해에쓴「까마귀의죽음」에이어데뷔이래수많은작품들을4·3이라는비극을재조명하는데바쳐왔다.“「까마귀의죽음」은내청년시절의위기속에서태어나,그것을통해위기를뚫고나아감으로써나자신의삶이이어졌다고말할수있을정도로스스로구원받았다는생각이드는작품”이라고그스스로고백한바있다.그위기란“역사적비극의현장에부재했다는데서오는‘살아남은자의슬픔과분노’”였을것이다.

그는4·3을자신의문학적숙명이자감옥으로받아들였다.『화산도』집필로보낸20년만이아니라,그의문학적전생애가4·3에바쳐졌다.그리고그의나이아흔다섯이되던해인2020년에이책『바다밑에서』가출간되었다.(책으로출간되기전2016~19년24회에걸쳐일본의월간지《세카이》(世界)에연재되었다.)그가전생애를바쳐금기와대결해온지금도여전히4·3은목소리를되찾지못한채남아있으므로,그가말한『화산도』집필의도는이작품에서도마찬가지로유효하고절실할것이다.

문학작품을통해해방공간의역사를재검토하는것이『화산도』창작의기본의도이다.앞으로통일이될때,4·3이라는통한의역사를정리해두지않으면두고두고문제가될것이다.대한민국을수립하기위해대학살을자행할수밖에없었던모순을똑똑히기억해야한다.…내개인적소망은『화산도』의주인공이방근을통해독자들이해방공간의역사적진실을인식하게되는것이다.즉내가『화산도』를쓴궁극적목적은작품을통한역사바로세우기에있다.(김석범?2018년[한겨레21])

산다는것은새로운역사를계승한다는것
“모든죽은자는산자를위해있고죽은자는산자속에살아있다.

『화산도』가해방후친일파가청산되기는커녕도리어득세하는목불인견의상황과그위에서진행된남쪽만의단독정부수립과정,온전한해방조국을건설하고자단독정부수립반대에나섰던이들의항쟁과패배,대학살의비극을그렸다면,『바다밑에서』에서는그이후의이야기,즉『화산도』의주인공이방근의죽음과그가구출한남승지의일본밀항이후의이야기가펼쳐진다.

끝내‘게릴라섬멸’,‘평정’과함께죽음의폐허가된제주도는인간의기억마저허공속바람으로사라지고땅속깊이바닷속깊이묻혀,섬은영구동토가되었고‘4·3사건’은기억과함께지상에서사라졌다.‘4·3사건’,뭐야,그게?그런건없었다.그것은인간이아닌빨갱이가꾸며낸거짓말.인간의생존과생활의장에역사가있다고한다면그런역사는제주도에없었다.하늘을나는까마귀들은주검을뜯어먹던기억이있어냄새로망원경같은눈으로그것을찾아다녔고개와늑대들도냄새로땅속의시체를파내어먹었지만,마침내짐승들의기억도사라졌다.(본문중에서)

제주4·3항쟁은미국과이승만정권에의한초토화작전,처참한도민학살로진압된다.“젖먹이마저빨갱이로만들고임신중인여성의배를갈라빨갱이의씨를‘멸종’시킨,가스실이나폭탄으로단시간에죽이는것이아니라도마위의생선이나고기를도려내듯이살아있는인간의몸과마음,육체,존재를거대한도마위에서난도질,닥치는대로칼질한살육.빨갱이말살,민주주의옹호라는대의명분을내걸고개개인의심신을갈아으스러뜨린대량학살”(본문중에서)을피해일본으로밀항해온남승지는선배이자정신적스승이었던이방근의자살소식을듣게되고큰충격을받는다.이방근은골수친일파였다가4·3항쟁의배신자가된스파이유달현을죽게만들고,외가쪽친척이며경찰경무계장이었던정세용을살해한후스스로목숨을끊었던것이다.그러나학살의기억도이방근의자살로인한충격도남승지는밖으로내색할수가없다.

제주도는언어가얼어붙고말이몸에서떨어지지않아몸밖으로나오지못한다.눈썹한올도꼼짝하지못할공포의침묵.제모를쓴인간의모습을보는것만으로도섬뜩해서몸을움직일수가없다.언어가,어제까지의아니,오늘아침의기억이공포에얼어붙어사라지는곳.뇌수가냉동고속생선처럼얼어붙었던그곳.제주도.말이얼어붙어몸밖으로나오지못한다.(본문중에서)

소설은1950년6월19일,이방근의1주기에서시작된다.끔찍한과거를짊어진채비보에맞닥뜨려어쩔줄몰라하던남승지는제사를지내러간도쿄에서이방근의누이동생이유원과재회한다.이유원과는서울과제주에서어렴풋한연정을주고받았던사이지만,그해후는남승지를혼란에빠뜨린다.여기에남승지의일본밀항을도왔던한대용이함께하며,세사람은이방근의삶을회상하고그가왜자살을한것인지이유를알고자애쓴다.그러나자살의이유는짐작조차할수없고,패주게릴라인남승지는그저‘돼지처럼살아남았다’는죄책감에시달리며끊임없이동요하고울적한심상에빠져든다.그러다급기야한국전쟁까지발발하고,남승지는삶의새로운전기를맞는다.한대용이이방근의유지를계승하겠다는의지를피력하고,남승지역시“돼지가되어서라도살아남아라”라고말한이방근의뜻을깨닫고처음으로희망이라는것을생각하게된다.살육의조국에서도망쳐적국에목숨을의탁할수밖에없었던그들이지만,그목숨속에“기억이죽지못하고소중히숨겨져”있고,죽은자들의의지가남아있었던것이다.

남승지는한동안눈을감고차체의흔들림에상반신을맡겼다.지금밤의특급열차좌석에앉아작열하는회전의굉음속에서몸을흔들고있는자는누구인가?나인가.나를누구라고생각하나.그래,나다.내마음깊은곳에오직패배,도망만있는것이아니다.끔찍한학살에대한공포를넘어선증오,복수심,8·15이후일제의주구,친일파정부이승만이저지른학살에대한복수심,복수의방법은당장없지만마음은있다.복수는생명,돼지가되더라도살아남아라.그것이투쟁이다.(본문중에서)

말은무기이상의무언가가될수있다
재일조선인작가라는정체성과보편성

소설은제2차세계대전패전후의혼란스럽지만평화로운일본사회를무대삼아,남승지라는재일조선인청년을통해인간존재의의미를캐묻는다.4·3항쟁과한국전쟁당시일본은제주라는죽음의땅으로부터탈출해서갈수있는대안없는선택지였다.

일본의오랜식민지배끝에가까스로해방되었으나그와동시에한반도는남북으로나뉘었고그결과는1950년한국전쟁이라는민족전체의비극이었다.그런데바로이‘전쟁특수’를기반삼아일본은자신들이일으킨제2차세계대전의잿더미에서재빨리일어나경제대국으로가는길을거침없이내달리기시작했다.반성도사과도없이나라안의모든정치적요구들을물질적으로입막음하면서범죄의결과로누리는풍요과평화,안정이라니.그렇게흥청거리고있는적국한가운데몸을두고살면서그는온생을온전히끓어오르는분노를삭여가며적의언어로글을써왔다.그울분과답답함,서글픔이그의작품엔가득하다.(「옮긴이의말」중에서)

작가자신이오사카이카이노에서자랐고,이소설의주인공인남승지의어머니집도그곳이다.재일조선인,특히제주4·3탈출자들의밀집거주지인그곳은그들에게민족차별과치욕이집중되는공간이면서,동시에치열한생존이이루어지는공간이기도했다.(제주4·3을다룬다큐멘터리「수프와이데올로기」(2020)의주인공역시일본에서태어나제주도로건너갔다가4·3당시다시일본으로밀항해돌아온재일조선인으로,오사카이카이노에살았다.)김석범의강렬한민족의식과역사인식,4·3의진실에대한소명의식은오사카이카이노출신재일조선인이라는그의정체성과도맞물릴것이다.

김석범은재일조선인문학,디아스포라문학의위상을정립하는데누구보다도열정적으로헌신했고,문학활동과정치적입장이나뉠수없다는지론을고수해왔다.그결과,그는말과글,문학을통해제주4·3항쟁의진실을드러낼뿐아니라,나아가동아시아현대사및인류보편의모순과대결하는작품들을내놓게되었다.

말은무기이상의무언가가될수있다.언어가없다면직접부딪칠수밖에없지만언어에의한완충지대가생겨나니폭력과폭력이직접부딪치지않아도된다.(김석범)

폭력을대신할수있는말의힘에대한이러한신뢰와기대,그리고말하는이없으니죽은자를대신하여자신이말해야한다는믿음이그의오랜문학활동을지탱하고쓸쓸한삶을버티게했을것이다.(「옮긴이의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