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진리

벌거벗은 진리

$28.00
Description
진리는 자명하게 주어져 있지 않고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은유학Metaphorologie의 창시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유고
“궁극적인 진리는 벌거벗은 채로 다니지 않는다.”
니체, 프로이트, 카프카, 칸트… 에게서 읽어낸 ‘벌거벗은 진리’라는 은유
은유는 개념의 ‘체계적 결정結晶, Kristallisation을 위한 배양액’이다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질적 구성 요소로서의 은유

은유(Metapher)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라고 정의된다.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비유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확한 인식의 결과가 아닌 문학적이고 장식적이며 은근한 표현으로 쓰여왔다. 따라서 통상 은유는 ‘신화에서 로고스로’-즉, 허구적 상상에서 이성적 인식으로-나아가는 사유의 도정에서 명확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사유의 ‘잔여물’로 간주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엄밀한 개념적 인식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고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진리가 종교의 절대적 소유물에서 벗어난 근대 이후, 진리는 명석판명함이라는 판단 기준을 통과한 개념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과연 그 개념(들)은 진리의 자격을 부여받기에 충분한가?
20세기 독일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하나인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 1920~1996)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사유의 전개를 탐색했다. 개념적 사고의 한계를 간파하고 그 한계가 은유에 의해 허물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 그는, 은유가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지평을 확장하고 사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개념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사상사의 통설을 전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은유’ 가운데 하나인 ‘벌거벗은 진리’라는 은유를 니체, 프로이트, 카프카,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어 등의 25개의 사유에서 읽어낸 유고로, 블루멘베르크가 창시한 ‘은유학’(Metaphorologie)의 진면목을 확인케 한다.
저자

한스블루멘베르크

저자:한스블루멘베르크(HansBlumenberg)

1920년독일뤼베크에서태어나제2차세계대전중유대인강제수용소에끌려가는위기를겪고나서종전후늦깎이로대학공부를마쳤다.킬대학에서중세철학연구로박사학위를받고후설현상학연구로교수자격을취득했으며,기센,마인츠,보훔대학교수를지냈다.

은유의철학자라불리는블루멘베르크는은유가엄밀한개념적사고에못미치는불완전한사고의산물이라는전통적통념을깨뜨리고오히려은유가개념적사유의자양분이자바탕이될뿐만아니라개념적사고로는도달할수없는영역에대한사유를가능하게해준다고보았다.그런점에서블루멘베르크의은유이론은프로이트의정신분석이‘의식’보다광대한‘무의식’의영역을개척한것에비견될수있다.생시에나온주요저서로『은유학을위한패러다임들』,『코페르니쿠스적전회』,『세계의해독가능성』,『신화만들기』,『근대의정당성』,『삶의시간과세계의시간』등이있고,사후유고로『인간에관한서술』,『비개념성의이론』,『동굴의출구들』,『벌거벗은진리』등이있다.



역자:임홍배

울대독문과를졸업하고같은과대학원에서괴테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한국괴테학회회장을지냈고현재서울대독문과교수로재직중이다.저서로『독일고전주의』,『괴테가탐사한근대』,『독일명작의이해』(공저)등이있고,번역서로『계몽이란무엇인가』,『한권으로읽는문학이론:소쉬르부터버틀러까지』,『젊은베르터의고뇌』,『로테,바이마르에오다』,『나르치스와골드문트』,『천사는침묵했다』,『어느사랑의실험』,『세상의끝』,『모든이별에앞서가라:독일대표시선』,『변신·단식광대』(공역),『진리와방법』(공역),『루카치미학』(공역)등이있다.또한펴낸책으로는『김남주시전집』,『김남주문학의세계』,『황석영문학의세계』,『살아있는김수영』등이있다.

목차


|옮긴이해제|블루멘베르크의은유이론과‘벌거벗은진리’의패러다임
한스블루멘베르크연보

1니체
2프로이트
3아도르노이후
4반전反轉
5카프카
6진실의벌거벗음그리고양의탈을쓴늑대
7피에르벨
8파스칼과초기계몽주의
9베르나르드퐁트넬
10진리는위안이되지못한다
11루소
12독일계몽주의
13베살리우스
14샤틀레부인
15악타이온
16레싱
17경험주의
18알레고리의후기형식
19테오도어폰타네
20카를아우구스트파른하겐폰엔제
21쇼펜하우어
22칸트
23계몽주의
24키르케고르
25리히텐베르크

참고문헌
인명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개념으로말해질수없는것에주목하다
지적호기심을자극하고새로운의미지평을열어주는은유의기능

블루멘베르크는하이데거의존재철학과프랑크푸르트학파의비판철학과함께20세기독일철학을삼분한‘은유학’의창시자이다.1980년우수학술논문에수여하는지그문트프로이트상을수상했고,현재세계적명성을얻고있다.국내에서는뒤늦게이제막소개되는참이어서2021년에『난파선과구경꾼』(새물결,2021)이출간되어주목을받은바있고,그외『우리가살고있는현실들』(고대출판부,2011)이나와있다.

그가탐구한분야는매우다양하고방대한데,그출발점이라할수있는대표작『은유학을위한패러다임들』(ParadigmenzueinerMetaphorologie,이하『패러다임들』)은은유가사유의자양분으로서어떤중요한역할을하는가를규명한다.종래의철학이개념으로파악된인간사유만을다루었다면,그의은유이론은개념형성이전의사고과정뿐만아니라나아가개념으로는접근할수없는한계영역까지도표현하는은유의적극적기능을조명하고있다.블루멘베르크가은유에주목하는이유는그것이끊임없이지적호기심을자극하고새로운의미지평을열어주며,개념을통한이론적탐구의기반이된다고보기때문이다.그런점에서그의은유이론은프로이트의꿈해석이‘의식’보다광대한‘무의식’의영역을개척한것에비견될수있다.블루멘베르크의저술중상당수는『패러다임들』에서제시한주제들을확장심화한것이다.

은유학은블루멘베르크의계몽주의연구프로젝트에속한다.처음에는3권으로계획했다가나중에5권으로바뀌었는데,그중세권을생전에출간할수있었다.(『난파선과구경꾼』(1979),『세계의해독가능성』(1981),『동굴의출구들』(1989))이세책은블루멘베르크가자신의“개념화할수없는것들의이론”의계획하에집필한것들로,인문학계에서센세이션을일으켰다.전통적인통설을뒤집고,세계를해석하는데있어은유가개념에필적할만하다고장려했기때문이다.

“블루멘베르크의은유이론은개념으로설명되거나입증될수없지만인간이맞닥뜨리는근본적인문제들에접근할수있는통로를열어준다.그럼에도종래의철학적탐구에서은유가간과된이유는은유를단순히수사적기법으로간주하거나명확한개념적인식에이르지못한불완전한인식과추측의표현이라고폄하했기때문이다.그러나은유중에는개념으로설명될수없지만‘철학적언어의근본바탕’이되는은유도존재하는데,블루멘베르크는이런은유를‘절대적은유’(absoluteMetapher)라일컫는다.”(「옮긴이해제」중에서)

명석판명함이라는척도로확보된순수한개념만을진리로보고다른모든것은선입견이나성급한예단으로배척하는근대의진리관은개념과인식의역사성을배제하고결국진리를‘검증가능성’으로축소하는결과를초래한다.반면

“은유는단지개념의장식물이아니라질적구성요소라는것을‘개념의체계적결정을위한배양액’이라는화학적은유로표현하고있다.이러한은유의‘배양액’은그러한화학작용을통해소진되거나고갈되지않는다.개념의결정체가마모되어기능을다하면그것을해체하고재구성하는기능까지도수행하기때문이다.따라서은유는개념의형성을위한의미지평과관찰방식자체의변화까지도수반하기때문에개념보다더근본적인차원에서역사성을띤다.”(「옮긴이해제」중에서)

이책『벌거벗은진리』는그가계획했던프로젝트의다섯번째책으로,그의사후에출간되었다.(2019)

“벌거벗은진리”라는절대적은유
궁극적인진리는벌거벗은채로다니지않는다

절대적은유는개념으로환원될수없고원칙적으로최종적인답변이불가능한문제에답하려는시도이다.“절대적은유는얼핏생각하면소박하지만원칙적으로대답할수없는질문에답한다.그런질문은우리가제기하는게아니라우리존재의근저에서이미주어져있는질문이기때문에중요하다.”(『패러다임들』)

블루멘베르크가제시하는절대적은유의패러다임은매우다양하고범위가넓다.절대적은유로서가장오래되고지속적인탐구의대상은‘진리의은유’이다.개념이나명제를사용해진리에관해최종적이고직접적으로진술하기란불가능하다.보편타당한진리가과연‘적나라하게’―문자그대로‘그자체’로―표현되고인식될수있을까?인식주체의경험과이해지평,특정한이론체계와방법,시간과공간의역사적제약을초극한불변의보편타당성이과연성립할수있을까?이러한질문들앞에서‘적나라한/벌거벗은진리’는결코도달할수없는인식목표인것처럼보인다.그렇다면은유를통한간접적진술에의존할수밖에없는것이필연적인귀결이다.『패러다임들』에서도전체10개장중에7개의장을진리의은유에할애하고있다.진리내지진실그자체를가리키는은유인‘벌거벗은진리’의은유는진리의은폐성과개방성에대한다양하고상반되는태도들을입체적으로살펴보기에적절한척도가된다.

무엇보다‘벌거벗은진리’의은유는은유자체의핵심적특성인다양한‘함의’(Implikation)의양상을가장잘보여준다.우선우리말‘진리’로옮긴Wahrheit의함의가매우폭넓다.보편타당한‘진리’에서부터세부적인‘사실’에이르기까지의미의스펙트럼이끝없이확장될수있다.불변의보편타당성,‘적나라한/벌거벗은진리’에비해,‘적나라한사실’의확정은더수월해보이고,누구도이의를제기할수없는객관적사실성을인식하는것도용이해보인다.그런데과연그럴까?니체의생각을빌리면우리가‘사실’이라고여기는모든것도어디까지나‘해석’일뿐이다.‘사실’에대한이해는사실이의미를획득하는맥락에따라얼마든지달라질수있기때문이다.다른한편Wahrheit를체험적특성이강한‘진실’로이해할경우진실을베일로감추는것과그베일을벗기는것사이의경계는매우유동적이고모호하다.

진리는자명하게주어져있지않고베일에가려져있다
견딜수없는진리,추한진리는어떻게표현되는가

이런난관에도불구하고진리/진실을추구한다는것은있는그대로의벌거벗은진리/진실을추구하는것과거의동의어로사용되어왔다.진리/진실은응당규명되고폭로되고벌거벗겨져야하는것으로여겨져왔다.그것은진실이자명하게주어져있지않고대개는베일에가려져있기때문일것이다.

그렇다면진실에옷을입히거나그것을베일로가리는이유는무엇일까?진실을은폐하고호도하려는기만적의도를일단논외로하더라도,진실을베일로가려야할이유는의외로많아보인다.‘옷’이나‘베일’은벌거벗은상태의치부와수치심을감추는구실을하기때문이다.니체는진리가매우추하다고말했다.이철학자가보기에진리는명백히견딜수없는,더이상견딜수없는것이었다.

“벌거벗은진리에관해서도역시한스블루멘베르크는누구도흉내낼수없는생각을했다.…벌거벗은진리는아름답지않고치장을하지도않는다.이진리가나타나는곳에서그것은당황스러움을자아낸다.구차한변명은당장들통이난다.그리고벌거벗은진리의가차없음에직면해서는가장정교한정당화조차궁색한변명으로보이지않는가?더욱이,면전에대고거리낌없이말해서는,바로거기에벌거벗은진리의요점이있기때문에,상처를주게마련이다.”(프랑크푸르트룬트샤우)

진리는모욕과좌절속에서드러나지만,그럼에도반드시표현되어야한다.블루멘베르크가니체를다룬챕터에서분석했듯절망에빠지더라도말이다.니체는이미다음과같이냉정하게파악한바있다.“진리는추악하다.진리때문에파멸하지않기위해우리는예술을가지고있다.”“벌거벗은진리는절망을가져”오기때문에,살아남기위해서는“환상을통해베일에싸인”것이특히중요해진다.진리를위장시키는새로운기능은예술에귀속되었다.벌거벗은진리는우리로하여금폭로뿐아니라위장도생각하게하고,계시뿐아니라덮음도생각하게하며,따라서깨달음도생각하게한다.

25개의스케치에담긴벌거벗은진리의다양한함의들
진리의은유가거쳐온역사적의미변화에관한탐구

성경의비유는진리와복음을표현하기위한불가결한수단이다.하느님의말씀을전하는성경의진리는인간의이성으로남김없이밝힐수있는것이아니므로성경적은유는성경의성스러운의미를고갈시키지않고계시의무궁무진한원천을간직하기위한보호수단이된다는것이다.이런경우은유는그자체로는표현할수도인식할수도없는진리를가리키는절대적은유가된다.

다른한편‘벌거벗은진리’를옹호하는입장도다양하다.루소는인간사회가‘복잡한위장체계’로발전하면서불평등을은폐한것을비판하면서‘자연상태’의벌거벗은진리를옹호한다.일찍이하느님앞에서벌거벗고자했던아우구스티누스에겐순수한신앙고백의신조였던‘벌거벗은진실’이루소에이르러사회적불평등을혁파하려는사회변혁이념의슬로건이된다.동일한은유가전혀다른맥락에서새로운의미를획득하는것이다.

벌거벗은진리의은유가가장큰힘을얻는것은근대과학을통해서다.계몽정신의정수라할근대과학은사물을감추는모든베일을걷어내고사물을벌거벗은모습그대로인식하고자했다.말하자면‘벌거벗은진리’를추구했다.그러나19세기후반이래특히실증주의가표방하는진리의객관성에대한근본적인회의가대두하면서‘벌거벗은진리’의문제는인간행위와사고의근본적동기를해명하려는시도로옮아가는데,여기서니체와프로이트가결정적역할을한다.

근대과학에대한니체의평가에서가장중요한전제조건은“우리는우리가훤히꿰뚫어보는모든것을경멸한다.”(이책72쪽)라는것이다.사물의베일을벗긴적나라한모습이허상이거나또다른베일로가려져있음을알게되었기때문이다.그리고그적나라한모습도또다른외피라는사실을애써외면하고그모습이궁극의실체라고여기는자기기만을통해서만인식의욕구는충족되기때문이다.어느경우든‘적나라한진리’는우리를실망시킨다.

프로이트의정신분석,특히꿈해석은진실을베일로가리는작업과다시그베일을벗겨내는작업이교차하는전형적인표본이라할수있다.괴테상수상소감문에서프로이트는자신의작업이무의식을가리는모든베일을찢어버렸다는말에동의하지않으며,아직도얼마나많은베일을찢어야할지모르겠노라고말했다.그것은단순한겸손의말이아니다.무의식을감추는베일은한꺼풀벗겨낸다고해서바로‘벌거벗은진리’를드러내는얄팍한것이아니라수없이겹겹이에워싸고있는것이기때문이다.

니체와프로이트는‘벌거벗은진리/진실’의요청을가장충실히이행한사상가라할수있다.니체는종래의진리탐구가추구한모든가치의근본적인전복을시도했고,프로이트는무의식이라는전인미답의신천지를개척했기때문이다.블루멘베르크가니체와프로이트를『벌거벗은진리』에서가장비중있게다루는것도그때문이다.그러나니체와프로이트는진실을은폐하는가식을철저히해부하면서도벌거벗은진리에의요구자체에내재하는또다른함정도경계했다.(「옮긴이해제」중에서)

또한카프카의문학세계는허위가지배하는현실에서그어떤보호막도없이자신의맨몸을드러내고,그럼으로써이세계의불안을온몸으로겪을때만그불안을진지하게받아들일수있음을보여준다.“카프카는옷을입은사람들사이에서홀로벌거벗은사람같다.”그렇게벌거벗은몸으로감지되는카프카의세계는기성의관념과인식체계로는좀처럼해명되지않는“절대적형상세계”로서,그것은블루멘베르크가말하는절대적은유에상응한다.그렇게구현되는카프카문학의‘진실성’은“기만이횡행하는세상에저항하는실존의형식이다.”(이책132쪽)

이렇듯은유의의미와기능은다양한텍스트속에서그리고역사적맥락속에서부침하는데,이궤적에관한메타적성찰이은유학의탐구주제가된다.25개의스케치로이루어진이유고작에담긴블루멘베르크의언급은여러면에서단편적인것,아포리즘또는분석으로남아있으며,벌거벗은진리의역사를역사적으로관통하는검토가결코아니다.왜냐하면블루멘베르크는역사적연속적인일관성에대해매우회의적이었고,오히려역사적노선의지속적인단절에대해확신했기때문이다.다만한가지,진리란은유와언어의사용이면에놓여있으며,이데올로기로부터가장멀다는것이그의일관된생각일것이다.블루멘베르크는계시된진리,절대적진리의지배에대해경고하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