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진리는 자명하게 주어져 있지 않고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은유학Metaphorologie의 창시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유고
“궁극적인 진리는 벌거벗은 채로 다니지 않는다.”
은유학Metaphorologie의 창시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유고
“궁극적인 진리는 벌거벗은 채로 다니지 않는다.”
니체, 프로이트, 카프카, 칸트… 에게서 읽어낸 ‘벌거벗은 진리’라는 은유
은유는 개념의 ‘체계적 결정結晶, Kristallisation을 위한 배양액’이다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질적 구성 요소로서의 은유
은유(Metapher)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라고 정의된다.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비유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확한 인식의 결과가 아닌 문학적이고 장식적이며 은근한 표현으로 쓰여왔다. 따라서 통상 은유는 ‘신화에서 로고스로’-즉, 허구적 상상에서 이성적 인식으로-나아가는 사유의 도정에서 명확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사유의 ‘잔여물’로 간주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엄밀한 개념적 인식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고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진리가 종교의 절대적 소유물에서 벗어난 근대 이후, 진리는 명석판명함이라는 판단 기준을 통과한 개념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과연 그 개념(들)은 진리의 자격을 부여받기에 충분한가?
20세기 독일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하나인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 1920~1996)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사유의 전개를 탐색했다. 개념적 사고의 한계를 간파하고 그 한계가 은유에 의해 허물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 그는, 은유가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지평을 확장하고 사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개념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사상사의 통설을 전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은유’ 가운데 하나인 ‘벌거벗은 진리’라는 은유를 니체, 프로이트, 카프카,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어 등의 25개의 사유에서 읽어낸 유고로, 블루멘베르크가 창시한 ‘은유학’(Metaphorologie)의 진면목을 확인케 한다.
은유는 개념의 ‘체계적 결정結晶, Kristallisation을 위한 배양액’이다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질적 구성 요소로서의 은유
은유(Metapher)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라고 정의된다.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비유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명확한 인식의 결과가 아닌 문학적이고 장식적이며 은근한 표현으로 쓰여왔다. 따라서 통상 은유는 ‘신화에서 로고스로’-즉, 허구적 상상에서 이성적 인식으로-나아가는 사유의 도정에서 명확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 사유의 ‘잔여물’로 간주되어 왔다. 다시 말해 엄밀한 개념적 인식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고의 산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진리가 종교의 절대적 소유물에서 벗어난 근대 이후, 진리는 명석판명함이라는 판단 기준을 통과한 개념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러나 과연 그 개념(들)은 진리의 자격을 부여받기에 충분한가?
20세기 독일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하나인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 1920~1996)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사유의 전개를 탐색했다. 개념적 사고의 한계를 간파하고 그 한계가 은유에 의해 허물어질 수 있음을 주장한 그는, 은유가 개념의 장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의 지평을 확장하고 사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개념사를 중심으로 한 기존 사상사의 통설을 전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책은 개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절대적 은유’ 가운데 하나인 ‘벌거벗은 진리’라는 은유를 니체, 프로이트, 카프카, 칸트, 쇼펜하우어, 키르케고어 등의 25개의 사유에서 읽어낸 유고로, 블루멘베르크가 창시한 ‘은유학’(Metaphorologie)의 진면목을 확인케 한다.
벌거벗은 진리
$2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