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허무는자유로움과편견을타파한관점
서구와비서구,역사와철학,과학과기술을두루유목한성찰의결실
이정우는국내철학계에서보기드문학문적깊이와폭을겸비한학자이다.이미다수의저작들과대안공간(철학아카데미,소운서원)에서의강의를통해전통과현대,서구와비서구,과학과철학을회통하는철학을모색해왔고,또한공대를나와서양고대철학(아리스토텔레스)연구로석사,서양현대철학(미셸푸코)연구로박사학위를땄으며,한학자인부친의영향으로한문에능하고일본학자들과의교류까지활발히해온보기드문학문적편력이쌓여이역작이나올수있었다.덧붙여현대수학과과학,기술의영역까지섭렵함으로써경계를허무는자유로움과편견을타파한보편적인관점을장착하는데더할나위없는내공을갖추었다.
그런그가구상한『세계철학사』전체의구도는유라시아대륙전체를두고인류문명의사유의역사를보여주는것이다.그첫번째권은부제“지중해세계의철학”이말하듯,유라시아대륙의서쪽(이슬람세계까지포함)에서고대와중세에전개된철학의역사를,두번째권(“아시아세계의철학”)은유라시아대륙의동쪽(동북아와인도)에서고중세에전개된철학의역사를다루었다.특히2권에서는이미확고하게정립된서양철학사와는달리개념과구도는물론이고이름조차존재하지않았던아시아철학사에자리를제대로잡아주었다.(언어권이다른동남아시아와인도는접어둔다쳐도,한문을공통언어로하는동북아삼국의철학사조차개념과구도를갖추지못했다.)이를위한그의전략은아시아세계의철학을지중해세계의그것과계속비교해가며논하는것이었다.
그러고나서세번째권에서는동과서를구분하지않고유라시아대륙전체를두고함께다루며근대의사상지도를그렸다.근대이전에는따로전개되었던두세계의철학이근대에들어와만났고,함께나아갔기때문이다.이3권에서는대략17세기에서19세기중엽까지를근대성이형성된시대로,19세기말에서20세기초를근대성이전개되는시기로보아,지금여기우리의삶에가장심대한영향을끼친“근대”300년간의여러사유들의알짜를,서구와비서구,자연철학(자연과학)과형이상학을종횡무진넘나들며엮어냈다.
이제마지막권은지금우리세계가마주한파국적상황들을배태한근대성과의대결,그한계를돌파하려는사유의시도들을보여준다.우리가사는현대의철학은탈-근대의철학으로서,근대철학을이어받되그것이내포한문제점들을극복하려는철학이다.근대의철학은인간을주체로우뚝세우는성취를이루었다.그러나그성취의이면에서제국주의,전쟁,환경파괴,인간소외,기술지배등고통과어두움또한태어났다.그것은근본적으로근대의사유/철학에내장되어있는문제로부터비롯했다.등질화,결정론,일방향적인과론,환원주의,발생적오류같은측면들이그원인으로지목된다.지금우리가직면한세계의어려움들은결국근대성과대결해야만극복이가능하다.근대성의한계를돌파하려는사유의시도들,그것이현대철학의지형도를이루고있다.이책은그‘탈근대’철학의여러갈래들을서구뿐아니라동북아를포함한비서구까지포괄하여두루살핀다.
단순한철학사가아니라‘철학하기’이다
허울좋은글로벌스탠더드가아닌진정한세계보편성을찾으려는시도
책으로3,220쪽,원고지로18,000매에달하는이엄청난작업은철학사를그저균형있게다시정리하려는학자적야심의발로만이아니다.여기에는문명을바라보는저자의철학관과역사관이깊이녹아있다.서구중심의,허구에가까운역사/철학사서술은결국오늘날의일방적인세계화를낳았다.저자는편견이낳은사유의정향을타개하고“비서구를전근대로보는”허울좋은‘글로벌스탠더드’를넘어진정한보편성을찾고자이대규모기획을감행했다.이것은단순한철학사집필이아니라,또하나의철학하기이다.
“철학사를통하여철학을수행한다.저자의관점에동의하든그렇지않든이러한수행은뜻깊다.철학의회로안에만머무는철학사,철학바깥에서맴도는철학사가많다.저자의철학사작업은철학의안과바깥을자유로우면서도절제있게드나든다.사상사,지성사를겸한다.드문성취다.”(출판평론가표정훈)
이제우리는이『세계철학사』4부작의완간과저불어“우리철학자의손으로쓴최초의세계철학사”를가지게되었을뿐아니라,특정문명과언어권의헤게모니에지배당하며반쪽짜리사유만을배태했던사유의한계를극복하려는진정한‘철학하기’를만나게된다.이는남의잣대가아니라스스로사유의주체가되어세계를균형있게바라보기위한주춧돌이된다.
내가꿈꾼것은할어버지세대의세계,아버지세대의세계,
그리고아이들세대의세계를모두이어서사유하는것
무엇보다저자는자신이“세계”철학사를쓰게된이유를다음과같이밝히고있다.
“왜‘세계’철학사가되었는가?나는소은선생께배운서구존재론사에깊이경도되었지만,그보다더깊은곳에는내가어린시절부터살아온세계가늘변치않는산하처럼온존(溫存)하고있다.이세계는태극도,각세교(覺世敎),한의학,고전문헌들,붓글씨,가사(歌辭),…같은전통의향기가짙게배어있는세계이다.그러나나를둘러싼세계는너무나급격히변해갔고,이예스러운시대는이내서구의근대성을모델로한‘개발’에매진하는시대로,그리고그시간을채소화하기도전에다시‘글로벌’과‘디지털’로상징되는탈-근대적세계로쏜살같이이행해갔다.내가꿈꾼것은내가짧은시간에압축적으로경험했던이세계들,어린시절할아버지세대와함께살았던전통의세계,그후아버지세대와함께살아온근대세계,그리고지금내가아이들세대와함께살아가고있는탈-근대적세계,이세세계를모두이어서사유하는것이었다.그랬기에내가써야할철학사는서양철학사도아니고동양철학사도아닌세계철학사여야했고,그구성의실타래는전통과근대그리고탈근대여야했다.”(「맺는말」에서)
철학이란철학자가책상에앉아고민하며수행하는작업이아니라는것을저자는보여준다.이미강단이아닌여러대안공간들을열어시민들과함께철학과철학사를공부해왔던그는그것이나와이웃이살아가는세계에관한공부임을강조한다.그리고그공부가,사유가향하는곳은우리의미래이다.
“아무리난해한철학도결국사람이생활하면서봉착한문제를고민하는것입니다.위대한철학자의고민과일반인의고민이다른것도아니고요.그걸파악하는방식,서있는전통,동원한자료가다른것이지궁극적으로칼로자를수있는게아니라고봐요.문학·철학·역사등다양한학문영역을마치유목을하듯이가로질러오면서,서로다르다고여긴것들이겉보기만큼다르지않다는것을많이느꼈습니다.”(이정우인터뷰)
“내가지금까지살아온,일종의수수께끼와도같았던그삶이도대체무슨의미였을까를세계철학사의수준에서반추해본이제,내시선은현재우리의삶과미래의가능세계들로향하고있다.시간이많이흘러갔다.2000년에대안공간을열어시민들과함께철학사를공부하던패기만만했던젊은이는이제어디론가사라지고없다.그러나사유는계속되어야한다.나는벌써초로에접어들었지만내곁에는뜻을함께하는젊은이들이있고,이제그들과함께우리시대에대해서그리고우리의미래에대해서계속사유해나갈것이다.”(「맺는말」에서)
형이상학의부활과함께시작된탈근대의철학
탈근대와의대결을통해전개해나가야할새로운단계의보편철학,세계철학
근대철학을이은20세기의철학은‘형이상학의부활’로특징지어지며,이새로운형이상학은근대의인식론과형이상학에내포되어있는문제점들과대결하면서펼쳐진다.근대성의어떤문제점에초점을맞추는가에따라,현대철학의여러갈래들이상이한방식으로분기하여전개되었다.근대철학의빛나는한성취가자연철학(오늘날의자연과학)과그것이응용된새로운문명에있다는것은분명하다.하지만현대의철학자들은근대문명이,나아가그것을떠받친근대과학기술의세계관이근본적인문제점을담고있다고판단했다.그리고근대과학기술의근저에존재하는존재론적정향들,즉데카르트이래의기계론,정신-신체이원론,갈릴레오이래의고전역학적세계관에서비롯해근대사유전반을관류한등질화,결정론,환원주의,일방향적인과론을,아울러헤겔이래전개된목적론적진화론등을비판적으로분석하게된다.
“근대철학의문제점들을극복하고자한현대철학의정초자들은시간과생명에대한성찰,다원성과이질성의중시,단순한인과론에대한비판과우연의역할에대한분석,주객의통합적이해등에대한참신한성찰들을통해이과제를수행해나갔다.이모든사유들의근저에는무엇보다도우선‘생성’에대한새로운존재론적음미가깔려있었다.이런맥락에서이시점에이르러서구철학은역(易)과기(氣)을근간으로사유해온동북아철학사,‘화(化)’의사유를전개해온인도철학사와만나게된다.우리는이런흐름을‘생성존재론’이라부를수있으며,현대철학은이생성존재론으로의‘존재론적전회’에서,보다넓은시각에서본다면형이상학의부활에서시작된다.”
“여기에서논의되는탈-근대적사유들,즉근대철학의본질주의및결정론을극복하면서전개된생성존재론,근대적실증주의인식론의한계를극복해나간규약주의이래의여러인식론과합리주의적형이상학,인간존재를둘러싼현상학,구조주의,생명철학등여러결의참신한시각들,그리고유난히어두웠던20세기의현실에부딪쳐나가면서전개된여러실천적철학들,이사유들은지금의우리에게도여전히‘현대의고전’들로서큰영향을끼치고있다.이제우리는다시이사유들과대결하면서전통,근대,탈근대를가로지르는사유를,철학의새로운단계로서보편철학,세계철학을전개해나가야할시간을맞이하고있다.본철학사를마무리함으로써,이제우리는이런사유에로의나아감을밑받침해줄하나의지반을다졌다고할수있을것이다.”(「여는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