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현대는 뉴노멀을 넘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향하는 것 같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존재했던 다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이에 맞추어 전통적 이슈들은 전혀 다르게 해석되곤 한다. 이런 시대에 변화가 더디고,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철학과 신학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이번에 출간된 이관표 교수, 「현대의 철학적 신학」은 앞의 물음에 긍정적 답을 제시한다. 단, 철학 따로, 신학 따로 현대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적 신학(론)이라는 공동의 작업을 신학과 철학 각각의 영역 안에서 수행함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뼈아픈 비판들을 뚫고 여전히 신학이 가능할 수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모든 터를 비우고, 거기로부터 신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철학적 신학은 신학함의 오류가능성을 늘 반성하게 만들면서 신학을 ‘신’학되게 한다. 이것은 이 책의 1부 1장과 3, 4부를 전체를 통해 논의되는 내용으로 증명된다.
또한,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뼈아픈 비판들을 극복하고 여전히 철학이 기능할 수 있음을 밝힐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부정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통해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초월을 깨닫게 하고 그럼으로 그를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새로운 타자와의 관계로, 새로운 세계이해와 언어이해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의 1부 2장과 2부 전체를 통해 논의되는 내용이다.
이 책 안에서 저자는 과감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과 더불어 전적으로 새로운 미래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는 단순히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 및 트랜스휴머니즘만의 주장은 아니며,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뉴노멀, 언노멀, 비정상의 정상화 등의 사회운동이 하나의 준비과정으로서 미래적 사상들과 나름 연결고리를 가지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를 가로지르지만 이제 현대를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말처럼 모세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 자신은 비록 가나안으로, 잘 알지 못하는 희망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곳을 준비하고 응원했던 모세와 같이, 「현대의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종말점 앞에서 미래의 철학과 신학이 출발하는 그런 터에 대한 준비이다.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뼈아픈 비판들을 뚫고 여전히 신학이 가능할 수 있음을 밝힌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모든 터를 비우고, 거기로부터 신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철학적 신학은 신학함의 오류가능성을 늘 반성하게 만들면서 신학을 ‘신’학되게 한다. 이것은 이 책의 1부 1장과 3, 4부를 전체를 통해 논의되는 내용으로 증명된다.
또한,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뼈아픈 비판들을 극복하고 여전히 철학이 기능할 수 있음을 밝힐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부정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통해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초월을 깨닫게 하고 그럼으로 그를 새로운 자기 자신으로, 새로운 타자와의 관계로, 새로운 세계이해와 언어이해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의 1부 2장과 2부 전체를 통해 논의되는 내용이다.
이 책 안에서 저자는 과감하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종말과 더불어 전적으로 새로운 미래에 진입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는 단순히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 및 트랜스휴머니즘만의 주장은 아니며,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의 뉴노멀, 언노멀, 비정상의 정상화 등의 사회운동이 하나의 준비과정으로서 미래적 사상들과 나름 연결고리를 가지기에 그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현대를 가로지르지만 이제 현대를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말처럼 모세의 마음을 담고 있다. 그 자신은 비록 가나안으로, 잘 알지 못하는 희망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그곳을 준비하고 응원했던 모세와 같이, 「현대의 철학적 신학」은 현대의 종말점 앞에서 미래의 철학과 신학이 출발하는 그런 터에 대한 준비이다.
현대의 철학적 신학 (철학과 신학이 만나는 터(Da) 그리고 현대의 신 논의)
$2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