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죄도 짓지 않은 당신,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이 될 당신,
형사, 검사, 판사, 변호사인 당신,
이 네 사건을 보라!
이 ‘슬픈 거짓말’은 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네, 제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아니, 아니, 절대로 제가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형사님! 검사님! 재판장님!”)
우리 평범한 ‘보통사람’이 아니라 범인을 잡는 게 일인 경찰마저도, 경찰서장마저도, 자신이 ‘범인’이 되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거짓자백’할 수 있다.
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 사이에 발생한 거짓자백 46건을 분석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논문 「형사절차상 허위자백의 원인과 대책에 관한 연구」(2012)에 그 사례가 등장한다. 1992년 11월 29일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하던 중 진범이 자수해 누명을 벗은 김아무개 순경 사건에서는, “과학수사를 통해 수집된 증거”로 강한 예단을 갖게 된 수사관이 “장시간 수사와 강압적 분위기, 위협이나 형량에서 자백이 유리하다는 회유 등 강한 압박을 통해” 거짓자백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2001년에 일어난 옥천경찰서 박아무개 서장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부하 직원의 거짓자백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박 서장은, 2심에서 ‘범죄를 부인할 경우 오히려 죄질이 불량한 것으로 판단되어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라는 변호사의 조언을 받고’ 거짓자백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얼마나 어이없고 ‘슬픈 거짓말’인가. 고문과 폭압이 횡행했던 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왜, 어떻게, 어쩌다가?
2013년 3월 4~7일에 『한겨레21』과 두잇서베이가 4,67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를 현실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통념은 깡그리 무너진다. 대표로 통념-1 ‘(자신에게) 불리하게 허위자백하지 않는다’를 살펴보자. “79%가 ‘누구도 자신에게 불리한 허위진술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 유죄 오판사례를 분석해보면 5명 중 1명은 허위자백을 했다. 미국에서 DNA 검사로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져 면죄를 받은 303명의 경우 27%가 거짓으로 범죄를 자백했다. 미국 미시간 대학 로스쿨 새뮤얼 그로스 교수가 2012년 6월 오판사례 873건의 원인을 분석했는데 그중 15%가 허위자백 탓이었다. 허위자백은 오판으로 이어진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로스쿨 리처드 레오 교수가 30년간 발생한 125명의 허위자백 사례를 추적했더니 35%(44명)가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그중 80%(35명)가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사형도 9명이나 됐다.”
실제와는 다른 그 밖의 통념들은 이렇다. 2) 허위자백은 고문·폭행 탓이다, 3) 반복질문한다고 허위자백하지 않는다, 4) 공범이 허위자백했다고 따라하지 않는다, 5) 중대범죄에서 허위자백은 드물다.
1992년 미국 변호사 배리 셰크와 피터 뉴펠드는 비영리단체 ‘이노센스(결백) 프로젝트’를 설립하고, 누명을 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쓴 원죄(?罪)사건을 DNA 감식을 잣대로 규명하는 활동을 펼쳐 2013년 3월 20일 기준 305명에 이르는 무고한 이들을 구했다. 그리고 일본에는 ‘설원(雪?: 억울한 죄를 풀어 없앰) 프로젝트’가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이 ‘설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형사법학자, 심리학자, 변호사들로 구성된 ‘진술증거 평가의 심리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회’가 3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네 건의 대표적인 원죄사건을 형사절차와 심리학의 두 측면에서 분석하고 정의로운 민주적 사법제도를 위한 제언을 담은 것이다.
형사절차와 심리학의 두 측면에서 검증한다, ‘정말, 자백은 증거의 왕인가?’
“아시카가 사건은 DNA 재감정으로, 그리고 도야마히미 사건, 우쓰노미야 사건, 우와지마 사건은 나중에 진범이 체포됨으로써 모두 무죄인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이라면 하지도 않은 사건의 죄를 인정하는 자백을 할 리가 없고, 더구나 무고한 사람이 재판에서 유죄가 되는 경우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사건은 전부 어느 날 갑자기 체포당해 피의자가 된 사람이 취조과정에서도 재판과정에서도,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거짓자백’을 한 사건입니다.”(57쪽)
형사도 검사도 판사도 변호사도, 실제로는 하지도 않은 일의 ‘거짓자백’을 ‘진짜’라고 믿은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피고인이 무고하다는 것이 밝혀질 때까지. 다시, 왜, 어떻게,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진술증거 평가의 심리학적 방법에 관한 연구회’는 이 책에서 이 네 원죄 사건을 심리학과 형사법학의 공동작업을 통해 검증한다. 형사재판은 왜 ‘거짓자백’을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는가? 왜 ‘거짓자백’을 간파하고 배제하지 못하는가?
범죄심리학의 권위자 하마다 스미오(浜田壽美男) 교수는 「오판 연구 리포트」에서 피의자가 취조과정에서 ‘거짓자백’으로 전락하는 심적 상황의 8가지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a. 일상생활로부터 격리, b. 타자에 의한 지배와 자기통제감의 상실, c. 증거 없는 확신에 의한 장기간의 정신적 굴욕, d. 사건과 관계없는 수사와 인격 부정, e. 전혀 들어주지 않는 변명, f.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전망 상실, g. 부인의 불이익 강조, h. 취조관과의 자백적 관계.’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는 그렇게 피의자를 ‘거짓자백’으로 전락시키고, 이후의 형사절차를 거치면서 무고한 피고인의 인생이 망가지고 만다. 그래서 자백은 “증거의 왕이 될 수도, 마왕이 될 수도 있다”.
거짓자백 없는 형사절차를 위한 기본 교양서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첫 오판 연구’로 인정받는 김상준 부장판사의 논문 「무죄판결과 법관의 사실인정에 관한 연구」(2013)에 따르면, 1995년~2012년 8월에 ‘1심 유죄-2심 무죄’ 판결을 받은 강력범죄 사건 540건 가운데 31.5%가 허위자백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그 밖에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이 49.3%, ‘범인 오인지목’이 20.7%, ‘과학적 증거의 오류’가 13.9% 등이었다).
그리고 이기수 연구관의 논문에 따르면, 허위자백의 원인은 폭행(16%), 기망(10.6%), 장시간 조사(10.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시대 변화에 따라 허위자백에 이르는 사유도 달라졌다. “1990년대에는 고문, 폭행 등 물리력의 행사가 절반을 차지했으나, 2000년대에는 협박, 기망, 회유, 장시간 조사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은 말미에서 형사재판을 개선·발전시키고 원죄를 줄이기 위한 의미있는 제언들을 내놓는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옮긴이는 거기에 ‘김인회의 한국 이야기’ 25꼭지를 덧붙여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거짓자백 강요와 피의자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해 2007년에 살인·성폭행 같은 특정 범죄 수사과정 일부의 영상녹화제도가 도입되고 2008년 1월 1일부터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는 등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한 사법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구체적인 사례와 공동의 연구작업을 통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이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이 책이야말로 민주시민의 기본 교양서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