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오줌,고름,피,토사물…
이더러운것들을통해나를,그리고한국사회를본다는것은
『토지』의뻐드렁니,김수영의「시작노트」
일본인은“게다짝신고안짱걸음걸으면서땅바닥에떨어진동전살피듯땅을보고걷”고,“남자여자할것없이속바지를안입”으며,“용모에는뻐드렁니가꽤나많”다.6800쪽이넘는대하소설『토지』의가장악랄하고잔인한악당,일본경찰의밀정김두수역시뚱뚱하고못생겼을뿐아니라,놀랍게도,‘뻐드렁니’(!)를가졌다.
『토지』는선(인)/악(인)의선명하고도가차없는이분법으로엮는민족-멜로드라마다.궁극의승리를향해가는선(인)의총칭은‘민족’이고,출발점이자회귀점인‘민족’은이멜로드라마의진정한주인공이다.그리고일본(인)과친일파는“악의뿌리”이자“절대악”이다.
『토지』에서,일본에는종교도,사상도,철학도,문화도,예술도없다.일본의문화나예술은저속하고빈곤하며상스럽고조잡하다.있는것은칼과섹스뿐이다.일본인은‘짐승’,‘야만인’이다.‘조선사람은아무리막돼먹었어도삼강오륜이몸에밴점잖은양반’인데에비해‘왜놈은더럽고상스러운야만인,짐승’인것이다.이런일본(인)론,일본문화론은저마다다른인물의입에서,심지어는“만주에서일본군부의덕을보고사는”“우익대륙낭인”무라카미라는인물의입을통해서도똑같이반복된다.
그런데,이와같은난폭한인종주의적편견은본디제국주의/일본의것이아니었던가.말할것도없이,제국주의를넘어설상상력역시이안에서는결코기대할수없다.
김수영은1966년2월한문학잡지에이런「시작노트」를발표했다.“(…)그대는기껏내가일본어로쓰는것을비방할것이다.친일파라고,저널리즘의적이라고.(…)하여튼나는해방후20년만에비로소번역의수고를덜은문장을쓸수있었다.독자여,나의휴식을용서하라.”
겹으로충격적이다.첫째,글전체가일본어로쓰여졌다.한국전후문학을대표하는시인김수영이해방20년후에의도적으로일본어로글을써서한국독자들에게발표한것이다.둘째,그럼에도불구하고정작잡지에는한국어로번역되어실렸다.작가가일부러일본어로써서보낸원고를잡지의편집자가마음대로한국어로번역하여출판한것이다.결국,일본어원문은사라졌고김수영의의도는실현되지않았다.한국문학사상전무후무한(것이될뻔했던)이사건의‘사건성’은이렇게‘사산’되고말았다.
여기에는식민지와해방이후를관통하는한국사회의어떤뿌리깊은정신구조,혹은현대한국인의어떤정치적무의식의전형이깔려있다.그것의정체는무엇인가.한국근대문학을통해식민주의,민족주의,제국주의문제를천착해온지은이는,다케우치요시미가루쉰을논하며“구원하지않는것이노예에게는구원”이라고말한대목을지팡이로삼는다.우리가노예였던시절,한글과조선어를살펴보는것으로시작하자.
그때는그때고,민족적순수성-연속성의신화속에서우리는깨끗한가
“新春을맞이하옵시어天皇,皇后兩陛下께옵서御機嫌이御麗하옵시고”“皇軍의威武와國家興隆의氣運더하여지기를祈願하옵나이다.”『한글』1939년1월호머리글,「謹奉賀新年」이다.1938년이후조선어학회는이기관지매년1월호에「신년봉축사」를실었고,「국민정신총동원‘총후보국강조주간’에대하여」,「제36회해군기념일을맞음」같은글로노골적인전쟁협력행위를했다.그때는그랬다.
문제는?한글?이이런내용을실었다는것자체가아니라이내용이해방이후에나온?한글?영인본에서는모두삭제되었다는사실이다.게다가조선어학회를이어받은한글학회는1972년에?한글학회50년사?를간행하면서그머리말에이렇게쓴다.“따라서,한글학회의역사는일제에대한무기없는투쟁이었다.”필요없는것들은다뺐다.그런데,그‘필요’는무슨필요였을까.
어느여학생의일기장에적힌“국어를상용하는자를처벌했다”라는문장이빌미가되었던‘조선어학회사건’(1942)도,살피자면길고도깊다.1938년부터조선어는존재자체를위협받았다.조선어는식민지의상징적질서의무대에서사라지고그자리를일본어=국어가대체해야했다.이사건은조선어≠국어라는기표를가지고식민자와피식민자가환상의무대에서펼친가장극적인드라마였다.
사건의발단에대해서는이설이있고,해석또한엇갈린다.일기장에적힌‘국어’는일본어였는가,조선어였는가.그것을사건화한형사는일본인이었는가,조선인이었는가.그런데식민주체와민족주체의무의식과식민지의사회적현실이뒤엉킨이드라마최대의아이러니는,법정과판결문에서나타난다.“어문운동은민족고유의어문의정리·통일·보급을도모하는하나의문화적민족운동임과동시에심모원려를품은민족독립운동의점진형태”라고식민지사법권력이주장하고,피고인측은‘조선어로정치,경제,과학,사회등을논하는것은불가능하다’,‘조선어는민족정신이나민족발전및독립운동등과아무런관련이없다,조선어문운동에는그럴능력이없으며우리역시그럴의사가전혀없다’고변론한다.
이것은환상게임이다.식민자와피식민자의욕망은서로전도된채표출된다.그리고‘주인과노예의변증법’이작동하는이현장에서,노예=피식민자는‘해방에의꿈’을포기했다고선언하고,노예의환상이없으면주인의환상도없기에,식민권력은노예가지녀야할해방에의꿈을거듭거듭일러준다.
하지만‘일제시대’라고타자를치면한글프로그램이자동으로‘일제강점기’로바꾸어버리는2019년의한국사회에는‘식민지시대’가,그시절의2000만조선인의총체적인삶과일상이없다.일본제국주의의식민지지배를교전상태에서의적에의한일시적인점령으로이해하는‘일제강점기’라는용어는식민지의기억을민족적순수성,연속성의신화속에봉인하고,궁극적으로는식민지의치욕과굴종의기억을깨끗이‘청산’,즉‘망각’하고자하는한국사회의오랜욕망을반영한다.무엇보다도그것은식민지를살았던수천만명의삶을특정한목적에맞추어재단하는타자화의폭력이라는점에서심각한문제를지닌다.그것은자신의과거를직시하고싶지않은욕망,과거의진실과마주하고싶지않은초라한욕망의단적인표현이다.
삼팔선은빨갱이가지키고,동해는친일파가지킨다
근대국민국가는새로운질병,자기동일성=정체성에대한편집증적강박을만들어낸다.그리고식민지조선은한국에서의근대정체성-정치의수원지일뿐아니라,지금이곳에서진행되는폭력의마르지않는저수지이다.정체성회복이니정립이니하는허구적정언명령은식민지의역사적경험에대한끝없이반복되는이데올로기적환상을통해새로운폭력의연료를공급받고정당성을확보한다.지은이는근대국민국가의정체성-정치가필연적으로낳기마련인잉여적존재들,즉난민적상태의‘비천한육체들’(卑體,앱젝트abject)에주목한다.
통치의주체subject도대상object도아닌앱젝트는근대정체성-정치의메커니즘속에서“기본권박탈이아니라아무곳에도속하지못하는존재”,체제의부분이아니라체제의배설물,토사물로존재한다.배설하지않으면유기체로서의체제는존립할수없다.그러므로앱젝트는체제의필연적산물이며필수적존재다.
앱젝트는내몸에서나온오물들,똥,오줌,피,땀,고름,토사물같은것이다.역겹고구역질나는이앱젝트야말로내존재의한계다.살아있는존재로서내육체는그오물들이쏟아지는지점까지만살아있을것이기때문이다.따라서이경계선의저쪽은시체다.앱젝트는“정체성을,체제를,질서를교란하는”불순하고위험한존재들이다.이들을밀어내지않는한,나의정체성은끊임없이흔들리고법과질서는위험에처한다.근대국민국가는이비천한육체들,이비체들에대한공포와혐오를딛고서있다.
한국사회에서정치적이념의금기(=성역)를표시하고그에따라국민적동질성을구축해온것은‘빨갱이’였고,나이,신분,직업,지역,정치적입장등에따른모든차이와갈등을한순간에해소하면서‘한민족’으로서의집단적동질성을확립해온것은일본과‘친일파’였다.참으로,삼팔선은빨갱이가지키고,동해는친일파가지킨다.
비천한육체들은말할수있는가?
지은이는묻는다.내안에있지만내눈에보이지않는/보고싶지않은이비천한육체들은어디에있는가?그들은누구인가?나는그들의말을들을수있는가?일제식민지에서종군위안부와강제노동의주요동원대상이되었던,인구의80%이상을점하는농민과문맹자와빈민들,그밖에일상적범죄자,매춘부,정신병자,장애인….존재하되존재하지않았던이들은정체성-정치의상상력,즉역사서술의목표를‘국가의신체’와국민적정체성의확립에두는국사-민족사의시야,혹은식민지의삶을오직영웅적독립투사와비열한친일파의대립으로만그리는멜로드라마의편집증적시각으로는결코보이지않는다.해방이후,미군기지촌의‘위안부’‘양공주’,‘혼혈아’,간첩조작사건의‘간첩’,‘광주대단지’의‘폭도’,‘막걸리반공법’의‘빨갱이’,삼청교육대의‘부랑배’,수용소의장애인과부랑자,매춘부,탈영병,성소수자,외국인노동자,불법체류자,난민….이들의비천한육체역시‘국가의신체’에서는보이지않는다.
누가어떻게이비/존재의비루한신체=‘국민국가의오물’을드러내고그들의목소리를들리게할것인가?그들은말할수있는가?‘서발턴을재현하면서자신을투명한존재로재현하는지식인’의자기모순은어떻게넘어설수있는가?나아가,‘그리는자’와‘그려지는자’사이의회복할수없는분열상태를어떻게극복할수있을까?
끝내발표하지못한김수영의시<김일성만세>와‘한국학’-‘한국문학’의난관들,그리고소설『토지』의일본(인)관을다룬글로먼저눈을크게뜬다면,답을함께찾아갈수있을것이다.자신안에있는타자성에대한인식이야말로정체성의강박에서벗어날가능성의첫단서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