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 (전쟁과 근대의 동시대사)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 (전쟁과 근대의 동시대사)

$18.00
Description
조선 영화 텍스트에 새겨진
식민지 근대의 빛과 그림자-
1930~40년대, 일제시대 국책영화와 조선?일본 영화인들의 개인사를 기초로
당시의 사회와 일상을 생생하게 되살려낸 다큐먼트.
영화감독 이마이 다다시와 최인규, 배우 주인규와 김소영, 그리고 하라 세쓰코…….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
저자

시모카와마사하루

1949년7월가고시마현에서태어났다.오사카대학법학부를졸업하고,릿쿄대학대학원박사과정전기(비교문명론)를수료했다.『마이니치신문』서부본사,도쿄본사외신부를거쳐서울지국장,방콕지국장,편집위원,논설위원등을역임했으며한국외국어대학언론정보학부객원교수,오이타현립예술문화단기대학교수(매스미디어론,현대한국연구)를지냈다.‘한일차세대영화제’의디렉터를맡았고,2015년에정년퇴직하고집필활동을하고있다.특히근현대사,한국,타이완,영화를중심으로취재와집필을하고있다.저서로『나의코리아보도』,『망각의귀환사』가있고,논문으로는「체험적으로본‘위안부보도’론」,「저널리스트가본일한관계50년」등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머리말

제1부[망루의결사대]의미스터리
제1장만주·조선국경의국책영화
제2장하라세쓰코와이마이다다시의수수께끼
제3장전쟁과해방,그후

제2부조선시네마의빛
제1장베스트시네마[수업료]
-「수업료」원문(전라남도광주북정공립심상소학교4학년우수영)
제2장[집없는천사]의추락
제3장‘해방’전후의조선시네마

후기
연표|조선시네마의사회문화사1935~45
조선시네마인물사전
주요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압록강국경지대를배경으로한조선웨스턴활극[망루의결사대],
스러져가는수원화성,소학교의일상,추석을맞은마을농악대를담은로드무비[수업료],
종로뒷골목부랑아들과화신백화점옥상의화려한전광뉴스판으로대조되는[집없는천사],
영화에새겨진일제시대의기록과당시사회상과삶을복원한식민지조선의풍경!

이책은일제시대에만들어진조선영화에대해일본의전신문기자가쓴첫책이다.근대미디어의대표격인영화가식민지조선에서어떻게제작되고또한무엇을담아냈는가를연구하고서술했다.조선의감독이나배우,스태프,제작자의궤적을통해한국(조선)과일본동시대의실상을확인하는취재기이기도하다.‘한국영화100주년’을맞이하여,활자로만알았던‘근대조선’,‘식민지조선’,‘전시체제하의조선’을기록한,전쟁과근대의프로파간다에활용된미디어로서의영화를통해식민지기조선과조선인의일상을생생하게재현한다.
이마이다다시今井正감독의[망루의결사대](1943)외에한국영상자료원에서‘발굴된과거’시리즈로서DVD가출시된최인규감독의[수업료](1940),[집없는천사](1941),이병일감독의[반도의봄](1941)을중심으로영상과시대를검증하고있다.제1부‘[망루의결사대]의미스터리’에서는하라세쓰코와이마이다다시의진실,공산주의자인조선인배우주인규의파란만장한생애에다가갔다.제2부‘조선시네마의빛’에서는조선인소학생의작문을원작으로한[수업료]와경성거리를떠돌던부랑아들의처지를다룬[집없는천사]등을시대배경과함께살피고있다.나아가여배우김소영의생애를중심으로비운에가득찬조선영화인의동향을살피고,리샹란(李香蘭,야마구치요시코山口淑子)등일본인여배우와교류한기록을발굴했다.

[망루의결사대]에는왜조선어로부르는[도라지타령]이나올까?
1943년국책영화로개봉된[망루의결사대]는웨스턴활극,압록강국경,제국주의이데올로기를배경으로전후영화를대표하는‘영원한처녀’배우하라세쓰코가주연하고,전후‘민주화’영화로유명한이마이다다시가감독했다.
영화화면에는주재소안에붙은‘국어(일본어)상용’이라는표어가빈번하게비친다.그런데조선인끼리조선어로대화를나누고일본인경관과조선인순사의잔치에서는조선어민요를낭랑하게노래한다.마을학교에서조선인유선생이아이들에게가르치는것은일본어이지만,주재소의일본인순사는조선어가능숙하다.
1943년말조선에서의일본어보급률은22.15퍼센트에지나지않았다(조선총독부제86회제국의회설명자료).한편조선어를할수있는일본인공무원도사실적지않았다.조선국세조사보고에따르면,1930년기준으로재조선일본인52만7016명중일본어와조선어를다읽고쓸수있는일본인은3만2714명(6.2퍼센트)이었다.이를거주지별로보면군지역일본인남성의11.0퍼센트는일본어와조선어를둘다읽고쓸수있었다고한다.[망루의결사대]의일본인경관이직무상조선어를능숙하게구사하는것은예외적인일이아니었던것이다.
또하나.[망루의결사대]에서는왜조선민요[도라지타령]을조선어로낭랑하게노래하는장면이그려졌을까.검열책임자인조선군보도부장구라시게슈조倉茂周?(육군소장)가이수수께끼를풀열쇠를제공한다.“우리는조선인에게황국신민이되려면,모름지기‘다꽝(단무지)’을즐겨먹으라는촌스러운말은하지않는다.”‘제국내의지방색’으로서조선의민속이나풍물을그리는것은피할일이아니었고,이는식민지시대조선영화가담고있는포인트중하나다.
『한국영화사-개화기에서개화기까지』에서는윤봉춘감독의[신개지](1942)를마지막으로조선어영화는금지되었다고기술한다.그러나1943년에공개된조선과일본의합작영화[망루의결사대]에서는여전히조선어대사나노래가영상화되었다.즉영화관이라는공적시설에서상영되어도영화와관객의사적커뮤니케이션이감소되는일없이현실의사회상을반영하는방법론이모색되었던것이다.그러나1944년,45년이되면대사는모두일본어로바뀌고,패전으로치닫는‘대동아전쟁’에복무하는게급선무였다.

그시절,우리는이렇게살았다:조선의첫아동영화,[수업료]
2014년9월한국영상자료원은[수업료](1940)의“필름이6월베이징의중국전영자료관창고에서발견되었다”고발표했다.해방전조선에서제작된극영화157편중필름이발견된것은15편밖에안된다.[수업료]는그중다섯번째로오래된영화다([수업료]는인터넷에공개되어있다).
원작은조선인소학생의작문이었다.조선총독부기관지『경성일보』의자매지인『경일소학생신문』이모집한제1회작문공모(1938)의응모작품가운데하나로,조선총독부학무국장상을받은전라남도광주북정공립심상소학교4학년우수영의작품이다(1등상인총독상은일본인소학생이받았다).1938~39년에이루어진작문공모의작품들은『전조선선발소학교작문총독상모범문집』전2권으로,현재한국국립중앙도서관에소장되어있다.
다쓰러져가는성문이있는지방도시수원을무대로한로드무비이다.원작은전라남도광주이지만,영화의무대는경성남쪽인수원화성이다.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된수원화성의당시모습이영화의배경으로등장한다.
식민지조선의가난한소년에게수원에서평택으로가는도보여행은소비사회와군국일본을동반하는괴로운여행이기도하다.그는일본의군가로외로움을달래고‘모리나가’밀크캐러멜로위로를받는다.도보장면은어느시대에나보편적인‘소년의여행길’을상징하는것이지만최인규가담아낸서정적인영상은식민지조선에수없이많았을시련을표상하여특히깊은감명을준다.

발굴된과거,복원된영화·영화인
무성영화시대의나운규감독을중심으로하는영화제1세대와달리,1910년전후에태어난유성영화시대의조선영화제2세대는해방이후한국,북한(월북,납치),일본,미국,인도네시아등에서그파란만장한삶을마무리하였다.
해방전후를대표하는감독으로[수업료],[집없는천사]등의뛰어난작품을연출한최인규는한국전쟁때납북되었다(제자인신상옥감독이납북되었을때스승최인규의생사를가장먼저확인했지만이미고인이었다고한다).주인규는흥남공업지대의인망있는노조활동가로,배우경력을겸비한흔치않은인물이다.이후월북했지만,당내종파사건으로조사중자살했다.김소영은박복한여배우였다.문예봉,김신재와함께조선의3대여배우중한명이었지만,다른두사람이‘정숙한아내’,‘황국신민의누이’의이미지였던것과대조적으로김소영은‘추문의여배우’였다.해방후전남편추민은월북하고,재혼한조원택과미국으로이민을간후이혼,로스앤젤레스에서세상을떠났다.
2006년부터디렉터로서‘한일차세대영화제’를개최하며조선시네마를일본에소개하는데힘써온저자시모카와마사하루는식민지조선의격동기를살아간영화인들의파란만장한삶을따뜻한시선으로훑는다.영화를만들기위해서는이데올로기의낙인으로부터자유롭지못했던당시의시대상황에서,그럼에도오로지영화에자신의삶을걸었던‘영화인’들에대한저자의상찬은그휴머니즘적시선으로더욱빛난다.한국어구사에불편함이없는언론인다운관찰과열정의기록인이책이,한국영화100년을맞는올해,그리고10월에열리는부산국제영화제에즈음하여나온것은그래서의미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