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정신대에 관한 우리 사회의 오해부터 이를 둘러싼 학술적인 논쟁까지-
정신대 모집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동원 규모는 약 2000명, 최대 4000명 정도였다
박광준
朴光駿
1958년통영에서출생했다.부산대학교를졸업하고일본붓쿄佛教대학에서페이비안사회주의사상연구로사회학박사학위(1990)를받았다.12년간신라대학교(전부산여자대학교)교수를거쳐2002년이후붓쿄대학교수로재직중이다.
중국사회과학원방문학자,(중국)시베이西北대학객좌교수,(중국)옌볜延邊대학대학원객원교수,그리고동국대학교(서울)객원교수를역임했다.
영국을중심으로한복지사상사를연구했으나2000년경부터주로동아시아를중심으로한사회정책(역사)비교연구,그리고불교사상,유교와법가등동양사상을복지사상과접목시키는연구를주된관심사로삼고있다.지금의연구과제는개항이후대한민국건국까지의빈곤정책역사인데,특히빈곤과실업으로인한대규모인구이동에관심이많고,이책도그일환이다.
취미는사진,바둑등이며특히동아시아의노거수老巨樹를찾아보고사진에담는일을즐거움으로삼고있다.은퇴후에는제주도에서살려고한다.
대표적인저술로는,『사회복지의사상과역사』(양서원,2002),『붓다의삶과사회복지』(한길사,2010.청호불교문화상학술상.문화관광부우수학술도서),『한국사회복지역사론』(양서원,2013),『조선왕조의빈곤정책:중국ㆍ일본과어떻게달랐나?』(문사철,2018.2019년세종도서학술부문),『초기불교:붓다의근본가르침과네가지쟁점』(민족사,2020.2021년세종도서)등이있다.
일본에서출간된것으로는『社会福祉の思想と歴史:魔女裁判から福祉国家の成立まで』(ミネルヴァ書房,2004),『老いる東アジアへの取り組み』(九州大学出版会,2006.共著),『ブッダの福祉思想』(法蔵館,2013.붓쿄대학학술상),『朝鮮王朝の貧困政策:日中韓比較研究に視点から』(明石書店,2020.사회정책학회학술상)이있다.중국에서출간된것으로는『東亜:人口少子高齢化与経済社会可持続発展』(社会科学文献出版社,北京,2012.共著),『中日韓人口老齢化与老年人問題』(社会科学文献出版社,北京,2014.共著),「東亜地区社会保障比較研究的意義和課題:有関養老保険的問題」(『社会保障研究』2005.12.中国人民大学),「公共年金制度建立的国家間学習:以東亜為例」(『社会保障研究』2009.3.中国人民大学)등이있다.
서문
제1장|여자정신대에대한접근방법과관련사료
1.여자정신대란무엇인가?
2.선행연구와사료
3.정신대문제에대한접근
4.증언이라는사료에관해
제2장|식민지통치구조와노동자이동
1.식민통치구조와행정조직ㆍ64
2.식민지조선의빈곤과조선거주일본인
3.조선의산업화와공장법논의
4.조선여공의탄생
5.조선노동자의일본이동
6.노무동원이전의노동자이동과그규모
제3장|조선인노무동원과여자노무자원
1.15년전쟁과노동력부족
2.조선여자노무자원의특성
3.여자노무동원의준비와이념전략
4.노무동원의전형적방법들
5.노무동원과관련된고질적문제
제4장|여자정신대의편성과동원
1.여자정신근로령의성립
2.여자정신근로령의내용
3.총독부의선전전략과여자정신대의유인
4.1943년자주적여자정신대동원
5.정신대편성경로:학교와지역
6.정신대출귀국과인솔자
제5장|여자정신대의현지생활,노동및임금
1.여자정신대를받아들인기업들
2.일본중공업분야의여성노동과교학
3.여자정신대의문화충격과일상
4.배고픔의고통
5.노동과작업환경
6.임금문제에관해
제6장|그리고돌아오지못한대원들
1.정신대와사회계층
2.귀국못한대원들
3.사망자및산재등에대한보상
4.정신대원이(군)위안부가된경우
5.이탈후,돌아오거나돌아오지못하거나
제7장|여자정신대에관한학술적쟁점들
1.여자정신대에관한학술적논의
2.정신대령‘시행’과‘발동’에관한쟁점
3.정신대령은조선에서시행되고발동되었다
4.황민화교육,강제성그리고동원규모
에필로그
감사의말
참고문헌
[참고자료1]노동자모집취체규칙(요약)
[참고자료2]조선인내지이입알선요강(부분)
[참고자료3]여자정신대제도강화방책요강
[참고자료4]여자정신근로령
찾아보기
조선여자정신대의오해와진실
1945년이른봄에12세의나이로여자정신대로서는마지막으로일본에동원된사람이지금생존해있다면88세가된다.이들이여자정신대최저연령이므로,대원중많은분들은고령등으로이미사망했을것이다.하지만또한적지않은정신대원들이생존해있다.
여자정신대원들의증언은어느하나가볍게여겨질수없다.‘휴일에는도야마시내에나가서죽을사먹기도했다’는어느대원의증언은어떻게읽어야할까.해방직전에는배급제가철저히시행되고있었고식당영업같은것은생각할수없는시기였다.그런데당시도야마현경찰기록을검토해보면그증언은있는그대로의사실이었음을알수있다.도야마현의배급량이겨우아사를면할수준까지내려갔을때,노동자에한해최소한의영양을보충시키려고죽을만들어염가로판매한적이있었던것이다.1944년7월부터시작된사업이었다.죽의기준은‘쌀0.3홉에물과야채를넣고끓여서2.5홉으로불린다음,그중간에나무막대를꽂아서막대가넘어지지않을정도가된상태.’조선정신대원중에는1944년7월부터약1년동안,휴일이되면도야마시내로나가그죽한그릇으로그동안주렸던배를채우는소녀들이있었던것이다.
저자박광준은동아시아비교사회정책혹은비교사회정책사를연구해왔다.일제통치하의빈곤문제와빈곤정책을규명하기위해국가총동원법에의한동원정책이시작된1939년을전후로한디아스포라경험자의구술자료를집중적으로연구하면서정신대증언에대해우리사회에알릴필요를느꼈다.특히후지코시소송자료를검토하면서원고측이피해보상요구의근거로서제시한‘강제동원으로인한피해항목리스트’를접하면서그요구사항들이예컨대정부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구술자료에나타난여자정신대의실상과는상당한거리가있음을알게되었다.그들의육성을어떤형태로든연구자로서‘설명을시도해야한다’는생각에서이책은시작되었다.
기억의정치화,‘만들어진’역사
오해1.정신대란곧군위안부다?
진실1.연구자에관한한,이렇게오해하는사람은이제거의없다.하지만우리사회의난폭한논의문화가정작당사자인그들을침묵시키고있다.
오해2.정신대모집이군위안부동원의수단이었다?
진실2.정신대로동원되었다가그후위안부가되었다는피해자증언이4명있다.이를근거로‘(관이)군위안부를동원할때여자정신대라고선전했다’고주장할수있을까?민간업자나인신매매관계자가군위안부모집을여자정신대모집이라고속여서동원한경우가적지않았다.
오해3.조선여성강제동원20만명설로보건대,여자정신대동원규모가그러하다?
진실3.정신대와군위안부를혼동함으로써생긴오해다.동원규모는약2000명,최대4000명정도로추정된다.
이책의주제는일제식민지하인1943년봄부터해방때까지약2년반동안일본군수공장으로노무동원되었던‘조선여자근로정신대’다.여자정신대의결성과동원과정,일본군수공장에서의생활과노동,귀국과정에관한전반적인역사적사실들을명확히하고,그에관련된의문들을풀어내고자했다.한국정부와연구자들이수집작성해온정신대원들의구술자료,그리고정신대소송에제출된진술서를가장중요한사료로삼아가능한한세밀하게기술하는데에주안점을두었다.또한그시절여자정신대와관련하여어떤일이일어났는가,또그들의구술내용은왜그렇게되어있는가를규명했다.따로제7장에서는여자정신대가시행된근거,총독부의행정행위로서시행되었는가,아니면정신대령이라는칙령에근거하여시행되었는가하는문제를둘러싼학문적논점들을짚었다.
‘식민지를도외시한식민지논의’를거듭해온결과,구술자료에나타난실태와우리사회에퍼져있는강고한‘상식’사이에는상당한괴리가있다.정신대에관한우리사회의‘만들어진’오해를풀기위해서는조각조각의수많은사료와당사자들의소중한목소리에숨을불어넣어역사에등장시키는데서부터출발해야할것이다.이책으로인해여자정신대에관한이해가깊어지고,나아가일제하노무동원전반에관한시야가보다입체적이되기를기대한다.
여자정신대와노무동원전반에대한입체적조망
역사적사실은그시대를체험했던한사람한사람의기억과다를수있으며,널리공유된집합적기억collectivememory도진실이아닐수있다.하지만개인적기억들이집적되어체계화된집합적기억도존재하며그것이다음세대로전수된다.정신대에관한오늘날우리사회의집합적기억도마찬가지다.특기할점은정신대문제에관한한국사회의집합적기억은,그것이자연스럽게형성되어왔다고하기보다는인위적으로만들어져확산되어왔다는점이다.
이책에서는정부조사자료집에실려있는23명의구술자료를비롯하여개인연구자들의저술,그리고조선정신대가일본정부혹은기업을상대로일본재판소에제소한4건의소송에서각원고들이제출한진술서등등60여건에달하는증언을가능한한모두활용했다.또한여자정신대동원에관여했던당시조선인교사1명과일본인교사수명의증언,그리고정신대가일했던일본사업장내청년학교의관계자나교사,기숙사관계자등의증언도있다.일본여자정신대혹은일본학도대가남긴문집속의조선정신대에관한내용도활용했다.정신대령을비롯한중요한법령자료,정신대를받아들인기업에대한노무관리지침,일본공장법의여자노동자보호규정,총동원법노무동원자에대한원호사업요강,그리고각기업의사사,해당지역경찰서사등도포함했다.
일찍이니체는사물을보는법,생각하는법,말하고쓰는법,이세가지를바르게가르치며그실천사례를몸소보여주는교육자야말로사회의존재이유라고역설했다.보는법을배우기위한출발점은관찰대상을오랫동안응시하는습관을기르는것.그때야말로‘깊은의구심’을가지게되고,즉각적반응을억제할수있게된다.여자정신대라는주제가논란의여지가있는만큼저자박광준은가능한한사료의출처를명확히밝힌세세한자료제공과함께꼼꼼한해석과신중한관찰로여자정신대문제와관련된당시조선과일본의사회제도와사회문화를좀더정확하고다각도로전하고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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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이어서
미쓰비시원고김복례는식사에대해다음과같이말한다.“아침과저녁은기숙사에서,점심은공장에서먹었다.그때만큼밥맛이좋은적은없었다.성장기였기때문에늘밥이모자라서조금만더먹고싶다고생각했다.간식은없었고음식을파는곳도없었다.”이증언은배고픔의고통을호소하는것과는거리가있다.그럼에도불구하고내가배고픔문제를별도의항목을만들어논의하는까닭은,그것이일부대원들의경우,공장생활에대한불만,그리고외부인(일본인및조선인)과의접촉과그로인한인간차별경험,나아가공장으로부터이탈이라는문제와직결되어있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304~305쪽)
우선,후지코시의경우다.후지코시에동원된일본인근로정신대기록집에13인의체험기가있는데,그내용에단편적으로조선정신대가언급되어있다.“특별히관심을기울이지않았다,사감이저쪽으로는가면안된다고주의를주었는데아마그곳이조선정신대기숙사였는지모르겠다,줄지어출근하는모습을보았는데같이일한적은없다”등이다.특징적인것은,조선정신대에대해민족차별적태도를보이는사람들이주위에있었다고말하는사람이거의없고,또한조선정신대가아주어렸다는기술도없다는점이다.오히려,언뜻보았지만조선정신대는모두예쁘고잘사는집아이같이보였다는언급이있다.다른한편,아주외롭고힘들어보였다는다음과같은기록이있다(塚原かず子.도야마시립고등여학교3년.학도대).“소재과素材課에조선소녀들이와서,우리들이일을가르쳐주었다.조선아이를화장실에서만난적이있다.정신대원인데큰소리로울고있어밖에서도들렸다.뭐라고말하는지말을알아들을수없었지만,가족들과떨어져서외롭겠지하고가엽다고느꼈다.”(315쪽)
어느대원(양춘희)은“서울에서정신대로간여자아이는모두인텔리”라고말한다.그녀는귀국후후지코시에서알게된정신대원을우연히만난적이있는데,그사람은대학을졸업했더라고한다.정신대증언내용을보더라도,정신대에절대적빈곤층이포함되는경우는한정되었다.예를들어여순주(1994)가조사한31명의대원조사에서,당시생활정도가‘중류내지중상류’(아버지직업은어장,철공장,방앗간,금융조합,은행원등)라고응답한사람이16명,‘중하류’(아버지직업은농사,공장노동자등)라고응답한사람이15명이었다.조선에서는비교적유복한계층자녀였던것이다.이러한가정환경이일본에서의열악한식사에대한반발을더크게했을수있다.가정형편이어려웠던것이정신대지원의동기였던어느대원(이종숙)은부잣집아이들은일본에온것을후회했다고말한다.(361쪽)
정부의진상규명위원회구술자료집에있는도쿄마사대원김남이도이탈후밀항으로귀국한경우다.그녀는간이학교를다니다가14세에일본으로가서17세에귀국했다.그녀는도쿄마사에서일하다가거기있던언니들(여공)과시모노세키로가서도둑배(구술자의용어임)로귀국했다.그녀는진주근교의개양출신이었는데,깜깜한밤에기차로문산역에내리니변소같은작은건물이있었고거기에문산역이라고쓰여있었다.건물이너무작아서잘못내린것이아닌가하고당황했다고말한다.후지코시에서도같은고향출신의어느대원으로부터함께도망가자는제의를받았던대원이있다.주금용(진상규명위)은나주출신으로국민학교5학년때집이가난해서스스로나서서정신대를지원했다.어느날같은고향출신두사람이주금용에게함께도망가자고권유했다.그녀는다음과같이구술한다.“나는안갔어.돈한푼가진게없는데어떻게도망을가?도망가서뭐하게.”(405~406쪽)
여자정신대가시행된근거는무엇인가?총독부의행정행위로서시행되었는가,아니면정신대령이라는칙령에근거하여시행되었는가이문제를둘러싼논의는1999년경부터시작되었는데,한국과일본의여러연구자들이관련되어있다.이논쟁에서마지막으로제시된견해는도노무라(外村,2017)에의한것이다.그는그간의각논자들의견해를종합적으로검토하고어느정도결론을내린듯한논문을공개했다.도노무라의견해에는선행연구들의오류를지적하는내용이들어있지만,오류를지적당한논자로부터다시반박하는견해는아직나오지않은것같다.하지만나로서는도노무라의견해에동의하기어려운부분이있으므로그에대하여검토한다.(415쪽)
나는역사의교훈이든혹은그에대한원망의감정이든,그지나간역사가결국향해야할대상은먼저우리사회와우리자신이어야한다고생각한다.마찬가지로이책에서다룬문제도먼저‘우리(한국)사회의문제’로서볼필요가있다.역사문제를공유한두나라사이의평화는각각의나라가스스로를성찰하는것이그출발점이다.이책에서는일본의책임추궁문제는거의다루지않았는데,그것은물론그문제까지논의할여유가없었기도하지만,역사문제가기본적으로우선한국사회의성찰로부터시작해야하는문제라고보는나의입장이반영된결과다.
이는일본에대한책임추궁이불필요하다는의미가아니다.일본사회가가져야할역사적책임이나교훈은일차적으로일본사회의문제라고본다는의미일뿐이다.일본도과거사를진정으로반성하고역사적과오를되풀이하지않기를바란다.그러나일본이반성하든하지않든,앞으로국제환경이어떻게변하든,나라의주권을빼앗기는수치를다시는후손들에게남기지않아야한다는각오와실천은누구보다도바로한국인에게더더욱요구되는것이아닐까?그러기위해서우리가먼저바라보아야할곳은일본이아니라바로우리사회다.(4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