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선남자’와변증법적이미지들의몽타주
표지그림을보라.전간기의가장강력한‘사유-이미지’로손꼽히는디에고리베라의<인간,우주의통제자>(1934년)라는벽화다.처음디에고리베라와계약한록펠러재단측에서벽화에등장한레닌을‘무명의사람’으로대체할것을요청하자,이를거절하고멕시코시티예술궁전의벽화로이작품을완성했다.
갈림길에선남자는과거와미래,악과행복,이기주의와형제애,병과건강,편견과계몽,반계몽주의와진보,자본주의와사회주의사이에서거의완벽한균형을이루며서있다.미래가자신의선택에달려있음을아는그는심각해보인다.왼편에는우아한숙녀와신사들이춤을추고담배를피우고카드놀이를하고칵테일을홀짝거린다(존록펠러주니어가눈에들어온다).그들옆에서노동자들이벌이는대규모시위가기마경찰에게폭력적으로진압된다.더왼편에서는교사가다윈의진화론을설명하고있으며,원숭이가아이에게손을내민다.다윈옆에있는발전소와방사선사진이과학의도구를통해자연을길들이는인간의역량을보여주는한편,다인종으로구성된학생청중은진지하게수업을듣는다.오른편에는레닌이있다.엄숙한자세를한10월혁명의설계자레닌은노동자와농민,병사의손을잡음으로써그들의동맹을다짐한다.더오른편에는‘전세계의노동자여제4인터내셔널로단결하라!’깃발은든레온트로츠키와프리드리히엥겔스,카를마르크스가있다.트로츠키와마르크스바로뒤에있는조각상은목이잘린카이사르를나타낸다.바닥에나뒹구는그의머리를의자삼아앉은노동자들이뭔가를관람하고있다.카이사르의손에는이탈리아파시즘의상징인나뭇가지묶음이쥐어져있고,거기에나치의만자문양이새겨져있다.상징적가치로가득한이프레스코화는마르크스주의의역사관,사회주의의미래상,혁명의패러다임을생생히보여주고있다.
이처럼트라베르소는혁명의개념,경험,상징,이미지,기억등을두루살펴보기위해변증법적이미지들의몽타주를그려보인다.혁명은공식적상징이나기념물로고정하기에는너무도다채로운면모를갖고있기때문이다.마르크스의‘역사의기관차’에서콜론타이의‘붉은사랑’으로서의성해방,블랑키의바리케이드와붉은깃발등혁명의여러이미지는독자에게풍부한해석과상상의여지를제공한다.그결과기관차,신체,바리케이드,깃발,의례,물질적장소,그림,포스터,상징적랜드마크등온갖‘변증법적이미지’로만들어진매혹적인역사의풍경이펼쳐진다.현재라는거친물결을헤쳐나가며21세기를위한새로운정치적상상력에연료를공급하려면과거를탐구하는게절대적으로필요하다.
우리시대의얼굴또는혁명적지식인
혁명가의가장고전적인이미지는아마아우구스트잔더의『우리시대의얼굴』(1929)에실려있는사진〈혁명가들〉(알로이스린드너,에리히뮈잠,귀도코프)일것이다(274쪽의그림4-1을보라).세사람의허름한옷차림은가난은말할것도없고내면의정신적동요를거울처럼반영하는그들의불안정한현실을증언한다.세사람의얼굴에담긴근엄함은자기만족대신두려움을드러내며,한껏붙어앉은모습은친밀감과유대만이아니라위험앞에서서로도우려는분위기까지느끼게해준다.그들은주변부로몰린뿌리뽑힌음모자들,선동적보헤미안삼인조를이룬다.
19세기말에‘인텔리겐치아’라는단어가러시아에서서구로들어왔다.1860년대러시아에서는이미이단어가정치에몰두하는문필가를가리키는의미로매우흔하게사용되었다.그들은“스스로를마치복음과도같은특정한삶의태도를퍼뜨리는데헌신하는집단,거의세속적인사제단으로여겼다”.이혁명적지식인들이아무리능수능란하더라도그들대부분은국외자로살았다.또한아이작도이처가언급한동유럽과중유럽의‘비유대적유대인’은변증법적인간형으로서유대교를거부하는대신초월했으며,아시아를비롯한제3세계의혁명적지식인들은전통과근대,조국과서양,이론과행동사이에서갈팡질팡하는이들이었다.이들의혁명은“생각하는게아니라삶으로실천하는것”이며,“역병과도같은기근으로서서히죽어나가는사람들을”위해존엄을획득하는길이었다.
혁명은스스로알든모르든간에그안에조상들의경험을담고있다.우리시대의혁명이자신만의모델을발명해야한다면,지나간투쟁과정복의기억뿐만아니라더많은패배의기억을소환해내지않을수없다.그리하여트라베르소는마르크스와트로츠키,베냐민,그리고마오쩌둥과호찌민에서호세카를로스마리아테기,C.L.R.제임스를비롯한남반구의반역적정신들에이르기까지혁명을추구한지식인들의삶의궤적과이론을추적하면서혁명의이론을샅샅이검토한다.
99개의도판을통해혁명의이미지들을다룬탁월한에세이
발터베냐민은혁명을핵분열에비유했다.과거안에담긴온갖에너지를해방시키고증식시킬수있는폭발이라는의미였다.이책은시대순으로혁명의역사를이야기하는대신기성질서를파괴하고새로운기대의지평을열어젖히는집단적분출로혁명을해석한다.혁명은갖가지유토피아의공장이다.트라베르소는우리가사는근대를이해하는열쇠로혁명개념을복원한다.혁명의사회적?정치적구조만이아니라혁명의이념과집단적상상,심지어미학적형태까지,다시말해텍스트와이미지,이론과경험,물질적유산과집단적기억에담긴혁명의지적?정서적차원을파악하고자한다.
1989년현실사회주의가막을내린이후자본주의는‘야만적’얼굴을되찾고곳곳에서복지국가를해체했다.공산주의는자본주의에인간의얼굴을강요하는현실적위협으로서힘을잃고존재자체가사라졌다.사회민주주의는신자유주의로변신했다.“자본주의적자유의위선과기만을폭로하는것은19세기내내좌파급진주의의주요한주제”(392쪽)였다.자본주의가모든인간에게자유와평등,존엄을부여하는완전무결한체제가아니라고할때,누군가는반대의깃발을들어야한다.제어되지않는자본주의아래서우리는기후변화에서부터불평등,혐오와극우포퓰리즘,초강대국간극한경쟁,전쟁과학살의위험에직면하고있다.지구온난화를지나지구열대화globalboiling가진행되면서인류문명의존망자체가문제가되는시대다.그폐허위에서파국으로달려가는역사에비상브레이크를당길수있을까?19세기와20세기의혁명의역사에서우리는유의미한교훈을얻을수있을까?21세기에혁명은과연어떤모습일수있을까?
당대의가장뛰어난마르크스주의연구자로손꼽히는트라베르소의<혁명의지성사>는도판99개의혁명의이미지들과함께두세기의자료를수많은선명한행위자,사상가와나란히엮어풍부한태피스트리를펼쳐보인다.마르크스는근대의혁명은“과거로부터시詩”를끌어낼수없다고말한반면,베냐민은패배자들을구원하려는열망속에서혁명의숨은동력,즉“과거세대와현재세대의비밀협정”을탐지했다.혁명은두시간대를가르는칼날위에서흔들리고있는지도모른다.미래를발명함으로써과거를구원하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