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이식민지지배를진솔하게사과해야한다고?
그런데,그것은일본국헌법‘위헌’이라면?
헤이세이의천황아키히토의‘상징천황’으로서의적극적인활동,
그‘공무’를둘러싼좌파와우파의전통적구도의뒤틀림,
그리고천황의그런언행이일본국헌법‘일탈’임을지적하는천황제비판론자와타나베오사무교수…
전후일본정치체제의핵심‘상징천황제’의본질을해부한다!
천황뒤에‘폐하’를붙이지않는천황제비판론자,
천황아키히토의‘헤이세이30년’을재구성하다
2005년6월28일,아키히토(明仁)천황부부는태평양전쟁때일본군이‘옥쇄’했던미국령사이판섬의‘태평양한국인위령평화탑’에배례했다.옛전장과‘중부태평양전몰자의비’,수많은민간인들이스스로몸을던진‘반자이(만세)절벽’등을찾은위령일정을마치고호텔로돌아가는도중에‘돌연’(사전에공개하지않은채로)들른것이었다.4분동안,헌화나추도사없이탑앞에서묵념을올리고주위를돌아보았다고한다.
한일월드컵을앞둔2001년12월에는“나자신으로서는간무천황의생모가(백제)무령왕의자손이라고『속일본기』에기록되어있으므로한국과의인연을느끼고있다”는깜짝발언을했던아키히토천황의방한또한양국에서여러차례추진·모색되었고,기자들도물었다.물론,그것은‘정부가결정할일’이라고대답했지만,본인도적극적인의사가있는것으로알려졌다.일각에서는이제상황(上皇)이된그가해방80주년,한일국교정상화60주년을맞는2025년에방한하는구상이다시나오는모양이다.과거사문제의매듭이자한일관계의새로운막으로서.쉬운일이아닐것이다.
그런데,만약천황이(당연히상황도)식민지지배를진솔하게사과한다면,그런정치적발언은일본국헌법‘위헌’이다.전력을보유하지않고전쟁을방기한다는평화헌법제9조를지키는‘9조의모임’구성원이자,천황뒤에‘폐하’를붙이지않는천황제비판론자로,1989년1월7일쇼와(昭和)천황이서거했을때는매일밤우익의협박전화와위협을받아야했던,천황제연구에평생을바쳐온히토쓰바시대학명예교수와타나베오사무의지적이다.
왜?와타나베교수는그이유를,이책에서1989년1월천황으로즉위하여2019년4월30일근대이후처음으로‘생전퇴위’를이뤄내기까지,전후최초의진짜‘상징천황’이었던아키히토를중심으로‘헤이세이(平成)30년’의일본사회,일본정치,천황제와황가를입체적으로재구성하며들려준다.논의는꼼꼼하고준거는명확하다.
천황아키히토의‘헤이세이류’는헌법,‘상징천황제’로부터의일탈이다
2016년7월13일,천황아키히토가퇴위를원한다는NHK특종이나온다.퇴위찬반논의가이어지면서‘헤이세이’의천황의업적을예찬하는대합창이나타나고,그천황예찬의목소리가3년후인2019년5월1일,새천황나루히토(德仁)즉위와‘레이와(令和)시대’개막에즈음하여절정에이른다.상황은30년전의쇼와천황서거때와는완전딴판이었다.
먼저,천황을둘러싼정치적대결구도가뒤집혔다.기존전후정치사의천황-보수정치대혁신세력-‘리버럴’지식인구도가뒤틀리고,‘퇴위’하겠다는천황과지지하는‘양심적보수’,‘리버럴파’지식인,언론의다수에맞서퇴위를원치않는아베정권과퇴위를반대하는우파논객들이대결했다.
그리고천황(제)비판담론이전무에가까웠고,우익도폭력이나테러없이조용했으며,언론에더해놀랍게도양심적보수,‘리버럴파’,헌법학자들의아키히토옹호와예찬이이어졌다.
보수정권의천황이용,천황의헌법일탈이없어졌기때문이라면좋은일이다.그러나지은이가보기에,30년동안아키히토천황은명백히헌법/상징천황제로부터의일탈을강화해왔다.이책을쓰게된동기였다.
샌프란시스코조약과‘상징천황제’를담은새일본국헌법이전후일본사회를구성했다.천황은“일본국가와국민통합의상징”이다.그러나‘상징천황’은절대군주도입헌군주도아니다.일본국헌법은‘제1장천황’,8개조로시작된다(그다음이위의‘제2장전쟁의방기’로제9조하나,제3장이‘국민의권리와의무’제10~40조다).천황은어떤정치적권능도가지지않고,엄격하게열거된‘국사행위’만할수있으며,그것조차도‘내각의자문과승인’을받도록제한되어있다.
천황아키히토는즉위하면서‘헌법준수’를맹세했다.그이후30년동안국내전도도부현을세바퀴돌면서특히재해피해지와사회적약자들을찾고만났고,해외의옛전적지를찾았으며,때로는아베신조수상을비롯한정권과맞섰고,황실의미래를걱정한끝에근대이후처음으로‘생전퇴위’를이뤄내며‘헤이세이류상징천황’의새로운전통을만들려고나름고투했다.지지와인기도많다.
그러나,그것은과연헌법이규정한‘상징천황’에걸맞은것이었는가.지은이는‘헤이세이30년’을정치,그리고천황의행동과의관계에초점을맞추어세시기로구분해살펴본다.
제1기(1989~94년)에는보수정권이일본의대국화를지향하는가운데천황에게새로운역할을요구하고,천황이거기에응답하면서자신의역할을모색한시기였다.제2기(전후50년에해당하는1995년부터2012년)는,천황에대한기대가정치쪽에서줄어들고,이것에반비례하여천황자신의의사에기초한행동이늘어나면서천황이자신(自信)을갖게된,이른바‘헤이세이류’가확립된시기였다.이시기에쇼와천황때는없었던천황의행위의비대화가진행되었다.제3기(제2차아베정권이탄생한2012년말부터황위계승까지)에는천황의권위가증대하고,천황과보수정권이긴장관계에빠졌던시기였다.
그것은결국일탈의과정이었고,지은이는현행천황제역시민주주의와모순된다고지적한다.
첫째,국민의민주적선출에의하지않은천황의정치적언행이정치에큰영향력을행사하기때문이다.아키히토천황에대한지지로인해용인된잦은‘말씀’과‘행행(行幸)’등위헌혐의가짙은행동이‘상징으로서의직무’라는명분으로기정사실화/확대되었고,그위험성은2016년아키히토천황이‘퇴위’를요구했을때의,아베정권을능가하는정치적행동으로나타났다.아베수상과대립각을세웠기에지지했다면,반대의경우에는어찌할것인가.
두번째의더큰문제는,천황이라는권위에의존함으로써국민이주권자라는자각과책임이모호해지고결과적으로문제해결을계속회피하게되기때문이다.식민지지배문제든원자력발전문제든오키나와기지문제든,국민이스스로,그리고정치세력과수상이해결해야할과제다.천황의방문이나‘말씀’은일시적위안은될지언정문제를해결할수도없고,해결해서도안되는것이다.
그래서,상징천황제를어떻게볼것인가,어떻게할것인가
지은이는두개의과제를든다.첫번째는현대의천황제도를헌법이지향하는상징제도에가깝게만드는것.천황의공적활동은엄격하게국사행위로제한하는방향으로재검토하고,‘4대행행’등으로불리는천황의지방방문,식전참가는중단,‘황실외교’로불리는공적외국방문도중단.꼭가고싶은곳이있다면시민으로서,즉‘민간인’자격으로가면된다고.여성천황,여계황족도인정하고.그래도남는근본적인문제,세습천황과민주주의및헌법의‘법아래의평등’과의모순은‘상징’을헌법에따라축소해가는긴작업의끝에가서야해결할수있을거라고.
두번째과제는위안부,징용공문제를비롯한식민지지배-전쟁책임과원전,오키나와기지문제등을천황의‘여행’이나‘말씀’으로얼버무리는게아니라국민이주권자로서정면으로대처하는것,그런정치를만드는것이다.“사실이책을통해제가가장강조하고싶은점은바로이것입니다.천황제를생각하는것은우리의민주주의를다시묻는것입니다.”
곡진한‘한국어판서문’이책한권의완벽한요약이자노학자의담백한초대장으로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