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응시하는두가지시선,생태와민주주의
우리나라의섬은총3,300여개이며,그가운데사람이살고있는섬은460여개다.『섬문화답사기』는한국의유인도흙을모두밟아보겠다는포부를품고21세기판‘섬대동여지도’를만들겠다는각오로지은이가파도와바람을벗삼아각각의섬을일일이찾아가두루살피고꼼꼼하게섬의어제와오늘을기록하고내일을전망한책이다.
조선시대의유배지는대부분섬이었다.그래서인지섬이라는단어가주는느낌은우선고독감과고립감이다.섬사람들은태어나면서부터숙명적으로뭍으로부터소외된공간,바람과파도가허락할때에만벗어날수있는유배의시간속에내던져진다.섬은인간이자연에맞선삶의터전이며,섬사람들은그곳에서치열하게삶을엮어간다.
지은이는이처럼거칠고모진자연에기꺼이순응하고자연의리듬에맞춰살아가는섬사람들의삶과역사를조망하고,전복따고미역뜯는공간을‘생태’와‘민주주의’라는두가지시선으로응시하고있다.지은이는섬에발을디디면사람들을살폈다.섬사람들의표정과행동과삶의방식을찬찬히관찰했다.그리고섬사람들에게다가가말을걸었다.그들의신산한삶을,그리고지나온시간과다가올시간을꼼꼼히스케치했다.그렇게섬사람들속으로바닷물처럼스며들기를20여년.이제야겨우‘섬의삶이란무엇인가’에대한대략적인윤곽을그려낼수있게되었다고한다.섬사람들이야말로자연의시간에맞춰살아가기,말하자면가장지혜로운인간의생존방식을무의식중에실천하고있음을깨닫고그들의지혜에서뭍과뭍사람의미래를찾아낸지은이는말한다.“섬이야말로오래된미래”라고.
자연생태와고유의문화가잘전승되어있는완도
완도의바다는동서로70킬로미터가넘는다.그위에50여개의유인도와600여개의무인도가저자의표현을빌리자면마치‘푸른별처럼떠있다’.완도군은바다를경계로고흥,장흥,강진,해남과접해있다.행정구역으로나뉘어있기는하지만바닷물을따라어류들이오가듯이섬사람들도뭍과섬을오가며삶을나누어왔다.그렇기때문에완도를이해하려면고흥,장흥,강진,해남의역사와문화,그리고그곳에사는사람들의삶을엿봐야한다고저자는힘주어지적한다.
김양식을가장먼저,가장많이했던곳이완도다.지금은전복양식으로다시금부흥기를맞고있으나예전에는미역과다시마양식으로그어느곳보다경제적으로윤택했던곳이다.노화도,보길도,소안도는현재전복생산량을좌우할만큼많은양식을하고있다.평일도와생일도는다시마로먹고산다고해도과언이아닐정도로다시마양식을주로하고있다.이곳에서는사람이누울자리는없어도다시마를널자리는꼭챙긴다.약산도와고금도는매생이생산에서으뜸이다.섬주변으로매생이발을매달기위한대나무가빼곡하게꽂혀있다.매생이는오염이되지않고파도도세지않은곳에서잘자라는데,그런조건을갖춘바다가완도군고금면과약산면,강진군마량면과대덕읍사이의바다다.
완도의섬들은대체로어느지역보다자연생태와문화가잘남아있는편이다.아직도당산제나풍어제,갯제가사라지지않고전승되는마을이많다.노화읍에속한넙도는매년정월이면소를잡아당할머니에게바치는당산제가이어지고있으며,약산면당목리는큰몽돌을신체(神體)로모시고정월이면당산제를지낸다.현재는슬로시티로주목받고있는청산도에서는사람이죽으면바로땅에묻지않고초분을하는풍습이지금도남아있다.
또한청산도에는해녀들이많다.모두제주에서배를타고,신천지를찾아건너온사람들로,낯선땅에왔다가그길로혼인하고눌러앉은사람들이다.그러니완도는충청도의외연열도,동해의독도,심지어러시아까지오갈수있는요지에있었던셈이고뱃길이자문화의이동로였던셈이다.
아픈역사를간직한강직한섬사람들
완도를누비면서저자가가장마음아프게여겼던곳은소안도이다.소안도에살던주민들은대부분‘일제강점기식민통치에반대하는조선인’,‘불령선인’으로낙인찍혀감시를받았던아픈기억을가지고있다.섬사람이모두항일운동가였던것이다.주민들스스로학교를세워우리말을가르치고민족의식을고취하면서스스로를지키려고했던열사들이었다.하지만민족항일운동은사회주의운동으로,한국전쟁을거치면서는‘반공’이라는굴레로바뀌어그어느곳보다시리고아픈세월을겪어내야했다.
또한동아시아의바닷길을장악하고해상무역을개척한장보고가세운청해진,노량에서일본과마지막으로싸우다목숨을잃은이순신이처음으로누웠던고금도,고산윤선도가만들려고했던별천지보길도의세연정,오래된미래청산도,임금에게진상을한신비한약초들이많았다는약산도,모래울음소리가십리에이른다는신지도명사십리등완도의섬들은적은덩치를가졌지만커다란뜻과유산을간직하고있어자부심만으로도빛이난다.
저자는완도의섬을다니는일이녹록치않았다고고백한다.물때에따라계절에따라시시각각변하는바다때문에발목이잡힌적도많았다고한다.어느날은등대지기와지새우고어떤때는하루를꼬박배위에서보내기도하고섬에묶여옴짝달싹하지못하는때도있었다.하지만그때마다따뜻한밥한그릇나눌줄알고정겹게술잔을내밀줄아는섬사람들의넉넉한인심에힘을얻었다고한다.또한바다의선물에감사할줄알고뭇생명에게도음식을나누는지혜를지닌섬사람들의모습에항상감동한다고한다.하지만그무엇보다저자김준이계속해서이힘든작업을계속하는이유는이한마디에응축되어있는듯하다.“이제섬사람은늙고,바다도병들고있다.급하다.늦기전에그지혜를도시의선남선녀들에게알리고싶었다.”
현재까지<여수고흥><신안>을거쳐<완도>의기록을마쳤다.약200여개의섬을발로뛰며각섬의생태환경과역사,섬사람들의삶과문화까지세세하게담으려애썼다.앞으로도가야할섬이많다.부디그의행진이더욱힘차지기를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