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외유일지 (지방 사대부 청년의 독립지사 성장기)

지산외유일지 (지방 사대부 청년의 독립지사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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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911년 22세의 나이에 충청도 고향에서 서울, 간도, 북만주, 블라디보스토크, 상해, 동남아 국가들을 다니며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 청년의 성장일기!

지산은 간도생활, 북만주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중국으로 유학했다가 독립자금을 위해 남양(동남아)의 고무농장 경영생활을 하고 일시 귀국했다. 그는 다시 남만주에서 농장을 경영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예관 신규식으로부터 독립운동의 거사밀령을 받고 길림에 들어가 여준, 박찬익 및 김좌진 등과 독립의군부를 조직하고 독립선언서 4,000장을 국내외 각지에 발송하고 파리평화회의에 76자에 이르는 전보를 쳤다. 그 뒤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모습을 보고 자금을 얻으려 본국에 왔다가 잡혀 석방되는 경위가 이 일지에 담겨있다. - 홍순옥

국치의 통한을 독립운동으로 승화시킨 지산 정원택의 일지이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만 8년 4개월에 걸친 기간으로, 22세의 지방 사대부 청년이 간도, 상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등을 거치면서 박찬익, 조소앙, 여준, 김좌진, 홍명희 등 여러 독립지사들과 만나며 항일운동에 투신하며 겪은 일들을 일기체로 엮었다. 이 일지에는 간민회와 동제사의 활동 내용, 저자가 참여한 <대한독립의군부>에 대한 조직 과정과 상해 임시정부의 수립과정 및 요인들의 동태, 그리고 간도 교민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저자

정원택

저자정원택
충청북도음성출생.독립운동가.1960년대통령표창을받았으며,1977년에는건국포장이추서되었고,1990년에는건국훈장애국장이추서되었다.

목차

지산외유일지건곤을엮으면서

해제

Ⅰ.약관22세에뜻을세우다
Ⅱ.간도
Ⅲ.중국유학
Ⅳ.남양(동남아)군도
Ⅴ.만주개척교섭
Ⅵ.조소앙구조
Ⅶ.학주정안립
Ⅷ.농장관리
Ⅸ.독립의군부조직
Ⅹ.상해임시정부
ⅩⅠ.귀국후체포되다

인명색인

출판사 서평

22세조선사대부청년의울분
1910년경술국치후청년정원택은고향인충청북도음성에만묻혀있을수없다고생각하고팔도각지의숨은선생님들을찾아길을떠난다.그러나모두들경전에만집착할뿐실리적인방도를제시하지못하여방황하다가집으로돌아가려고하던중전라도에식견이뛰어난은사가있다는말을듣고그선생을찾아떠난다.거기서조소천선생을만나더뛰어난은일거사인호석강석화선생을소개받게된다.

큰뜻을품고간도로
백마강기슭에서호석선생을만나가슴이뻥뚫리는식견과조선의총명하고준수한자제들은서북간도에운집하여조선광복을바라며중국혁명에협조하는이도많다는말씀을듣고독단적으로간도로갈계획을세운다.간도를가기위해호석선생의소개로경성의대종교를찾아가간도를가는방법과가서있을곳을제공받는다.
간도로가서대종교로부터소개받은사람들을찾아다니며편의를제공받고,학교도다니며식견을키운다.거기서북경으로유학을가려하였으나좌절되고남경,상해로가서유학하며,여러독립운동가들과교류하게된다.

독립자금을위한동남아행
벽초ㆍ단정ㆍ동성및네사람이모여서남양군도로떠나자고결의한다.이여행은벽초가제창하고3명이동의하여동반하기로한것이다.이동기는중국광복전후에운동자금이남양의화교중에서많이연출되었으므로우리도재원이풍부한남양에광복운동의자금기반을마련할수있을지답사코자함이었다.

독립운동전개
그후만주에서농장을개척하였고,독립의군부창설멤버가되었으며,상해임시정부수립을참관하기도하였다.주로중국에서독립운동에힘쓰던중1919년에국내로잠입하여임무를수행하던중체포되어옥살이를하였다.일지는옥살이를마치고나오는것으로끝을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