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고속도로 (길에서 길을 찾다)

박정희와 고속도로 (길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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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한민국 번영의 길, 박정희는 ‘길(고속도로)’에서 찾았다.
한국의 번영은 고속도로가 있어 가능했다. 그 시작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이었다.

〈200자 소개〉 1970년 경부고속도로 준공으로 열린 한국 고속도로의 역사 반세기. ‘길’에서 국가 발전의 길을 찾고, 제주도의 실험에서 성공을 확신하고, 마침내 번영의 길을 마련하기까지 박정희의 분투를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중심으로 연대기적으로 살펴본다.
저자

금수재

저자금수재(錦繡齋)는충북단양금수산자락오막의당호(堂號)다.본명은김정태,충남홍성에서태어났다.한양대무역학과를졸업하고한국도로공사에24년간근무하며역사자료관리,공사30년사및40년사편찬,홍보자료제작,사료관리시스템(온라인역사관)구축등을담당했다.지은책으로박정희탄생100돌헌정서『6737일간의혁명』,역사소설『광해법정:폐모살제』등이있다.병자호란의이면사로왕을구하기위해출병했으나뜻을이루지못하고산화한사람들을발굴조명하는역사소설을집필중이다.

목차

책을펴내며

들어가며_흥하는길,망하는길
대제국의길
한반도의길

제1부_길을묻다
길이안보인다(1945~60)
‘길’에서실마리를(1961~63)
서독에서길을보다(1964~65)
길에미친사람들(1966~67)
재원마련나선대리인의고충

제2부_길을열다
역사의물줄기가터지다(1968)
“여기서죽어도좋다”(1969)

제3부번영의길
국토의대동맥(1970)

나가며_더길게,더넓게,더편하게

참고한자료들
쓰고나서
부록_경부고속도로건설일지

출판사 서평

박정희없는경부고속도로50주년
2020년7월7일은우리나라고속국도1호경부고속도로가준공된지50주년되는날이었다.한국도로공사는이날추풍령휴게소에있는기존의경부고속도로준공기념탑옆에‘준공50주년기념비’와건설공사에참여한주원·이한림당시건설부장관등530명의이름을새긴명패석을세웠다.새기념비명의는‘도로교통부장관김현미’로돼있었고,소식이알려지자기념비의‘김현미’이름이실리콘등으로훼손되는사태가잇따랐다.경부고속도로기념물에마땅히있어야할이름이없었기때문이다.바로경부고속도로의구상부터준공까지전과정을총지휘한박정희대통령이다.
『박정희와고속도로(길에서길을찾다)』는사라진‘대한민국고속도로의아버지’박정희의이름을기억하며그의고속도로여정을5·16혁명직후1961년9월의제주에서부터시간순으로추적하는‘고속도로실록’이다.25년동안한국도로공사를다니며사사(社史)편찬,홍보,사료관리(온라인역사관)등을담당한저자가공사와국가기록원의기록물들은물론이고경부고속건설대역사(大役事)에참여했던영웅들을일일이만나채록한육성증언과개인보관자료가책의밑바탕이됐다.

고속도로가박정희고,박정희가고속도로다
조선이망한것은제대로된도로가없었기때문이다.위정자들은잘닦인길이외침(外侵)을부른다며반(反)도로정책을폈지만,낙후한도로는산업발전의걸림돌이되었고도리어망국을재촉하는지름길이되었다.박정희는이점을꿰뚫어보았다.서울을머리로하는큰대(大)자고속도로망의핵심인경인(1968),영동(1975),경부(1970),호남고속도로(1973)는모두박정희재임중에준공되었다.고속도로가없었다면지금한국의번영은없다.
한반도의남북길이는약1천킬로미터,그중남쪽지역대한민국에만고속도로총연장이5천킬로미터에달한다.기록상최초로개통된고속도로는경인고속도로(1968년12월21일개통)이지만,우리나라‘고속도로1호’는상징적으로경부고속도로다.사실은경인고속도로도박정희의업적이지만,경인고속도로개통식이열린그날경부고속도로서울~수원구간(일명경수고속도로)도함께개통됐다.경부고속도로의더욱중요한의의는,단순히길하나를새로놓는것이아니라처음부터대한민국전국토를큰대자로사통팔달연결하는‘대국토건설계획’의주축으로구상되었다는데있다.
한국의1인당국민소득이100달러(연간!)를돌파한것은5·16혁명첫해인1961년.경부고속도로를착공한1968년의국민소득이780달러였으니,한국은당장고속도로가필요해보이지않는나라였다.야당의원이자대통령후보김대중이경부고속도로개통코앞까지도고속도로를무너진와우아파트(1970년4월8일)에빗대비난한발언을모두가기억한다.

“경부고속도로가(누워있기에망정이지)와우아파트같이5층으로올라간건물이었더라면,이것역시폭삭무너지고말았을것입니다.”(258쪽)

역사는박정희가옳았음을웅변하지만,당시만해도어쩌면김대중의저발언에박정희를우러르든미워하든많은국민이내심고개를끄덕였을지도모른다.그래서,궁금하다.도대체박정희는어떻게경부고속도로와큰대자대국토건설계획을구상할수있었을까?

시작은‘한라산의기적’이었다
박정희의경부고속도로구상은1964년서독을방문해아우토반을달린데서비롯되었고,당시서독에르하르트총리가‘길과철과석유’를조언한데서영향을받은것으로막연히알려져있다.그러나책의시각은다르다.독일을방문하기3년전,혁명직후1961년부터박정희는아직눈으로보지도않은아우토반을언급하며‘도로실험’을했고,실험에서성공하며경부고속도로의확신을갖게되었다는것이다.
그시작은1961년9월부터이어지는제주도방문과,갈때마다제주도의발전을약속하며시내도로→한라산횡단도로(5·16도로)→제주일주도로순으로도로개설과확포장에착수한일이었다.육지의일개군정도인구밖에안되는제주도개발에지나치게공들이는것을각료들이우려하자박정희는일갈한다.

“어느것을먼저하느냐하는경우에는,제주도민들과같이자기가할수있는일은자기들이하는자조정신이강한그런주민들한테우선적으로해주자는것입니다.”
그이유는밖이아니라안에있었던것이다.제주도를방문했을때,근면하고부지런하고자립과자조정신이강한주민들을본것이다.제주도주민들에게서희망을발견한것이다.(65쪽)

바로‘자조(自助)’정신이었다.후에고속도로건설과새마을운동으로가시화될구상이10년전인1961~63년에이미머릿속에구체적으로들어있었다는것은경이롭기까지하다.

총지휘자이자설계자
박정희가대통령으로서고속도로대역사의총지휘자일뿐아니라구체적이고세부적인설계자이기까지했다는점도놀랍다.투기꾼들이몰려들기전에전격적으로고속도로부지매입에나설것을독려하며도지사들에게설명하는대목이대표적이다.

“노면의폭을22미터,노체의두께를2미터,구배(기울기)를1.5퍼센트정도로잡았을때로계산해봅시다.그러면도로가점유하는용지의폭원은대략40미터정도돼요.40미터폭으로1천미터,즉1킬로미터의길을닦을경우에필요한총부지는4만평방미터가됩니다.이것을평수로환산하면대략1만3천평이고.그리고서울부터수원까지노선연장을30킬로미터로잡아서곱하기30을하면전체평수가나올것아니오.
이지도를봐요.여기에는전·답·임야별로색칠을따로해서구별해놨어요.임야와전답의분포가대체로반반이야.그러니까구획별로세부적인지가는차후에계산하기로하고,여기서는개략적인평균지가를뽑아보자는말이오.
이것은모시중은행에서서울~부산예정노선의지가현황을조사한기록이오.여기보면서울~부산구간의땅값이대체로평당170원내지180원으로나와있어요.”(123~124쪽)

1960년대에태어난저자는‘산업화의수혜자’일지언정초기경제개발과고속도로건설의산증인이기에는너무어렸다.어쩌면운명처럼도로공사의사사편찬과홍보일을맡아빛바랜자료들을들추고,책에도나오는백영훈,윤영호,박찬표,방동식,김성남,심완식등등산업영웅들이아직살아있는동안인터뷰하면서,누군가는그‘숭고한역사’를기록하고전해야한다는사명감을갖게되었다고고백한다.그러나위대한구상자박정희가영원히입을다물었기에,끝내풀지못한물음하나는저자와독자모두의몫일수밖에.
“박정희그는왜교사나군인의순탄한삶을마다하고이런삶을선택했을까?”(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