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지은이:전상인1958년생,미국브라운대학에서사회학박사학위를받음.한림대사회학과교수,워싱턴주립대방문교수,한국미래학회회장역임.현재서울대환경대학원교수.저서로『공간으로세상읽기:집,터,길의인문사회학』『편의점사회학』『아파트에미치다:현대한국의주거사회학』『우리시대의지식인을말한다』『고개숙인수정주의:한국현대사의역사사회학』『세상과사람사이』등이있음.
제1장서론제2장근대국가,발전국가그리고공간1.근대국가와공간생산2.발전국가와공간계획3.‘공공계획가’박정희제3장국토정책1.국토개발2.산업도시및공업단지조성제4장교통정책1.(산업)철도2.(고속)도로3.항만및공항제5장도시정책1.도시화와도시계획2.서울과도시계획보론보론1:박정희시대주택정책의평가보론2:박정희시대환경정책의평가제6장결론참고문헌
<공간디자이너박정희>는국토공간구성의관점에서박정희를평가한최초의책이다.근대화혁명은공간혁명이다공간>근대화혁명은곧공간혁명이다.전근대와근대를가르는기준은다양하지만양자는공간의관점에서뚜렷이구분된다.인류는공간혁명을통해공동체적삶에서개인사생활이보장되는이른바‘도시형개인’으로탈바꿈하였다.그렇다면한국인은언제부터근대적의미의공간을인식하게되었을까?한국은국토,도로,도시발전을어떻게이루고산업국가반열에오르게되었을까?그리고언제부터개인의자아가존중받는‘사생활공간’을확보하게되었을까?그출발점에박정희가있다.공간전략가박정희의전략적결단,국토개발정책근대적의미의공간계획이시행되었던것은일제시대였다.조선시대에는국토계획이라는것이존재하지않았다.경관론(景觀論)이나풍수론이대세를이루었고,‘무도즉안전(無道則安全)’이라하여길이없는편이안보나치안에유리하다고생각했었다.이에따라지도제작은엄격히통제되었다.공간의중요성에대해그나마각성한것이한말의일부개화파지식인들이었다.일제시대에이르러대륙진출을목적으로북쪽에는공업,남쪽에는농업중심의불균형적국토개발이이루어졌다.전쟁을겪었던1950년대에는전후복구나당면한현안에대증적,임시방편적대응을하는것외에는더이상의여력이없었다.전국토가종합적으로개발되고생산되고혁명적인일대변환을맞게된것은박정희가주도한조국근대화계획이후부터다.박정희의국토개발은경제개발5개년계획과긴밀히연결되어경제의고도성장을효율적으로뒷받침하였다.부강한나라,보다나은삶의터전을만들겠다는적극적인의지로제도적기반및계획적장치를구축하였으며국토정책을경제개발과유기적으로결합시켜체계화하였다.박정희시대의경제및국토발전과관련된지역차별론에대해저자는허쉬만의성장거점이론을제시한다.박정희가어떠한전략으로선제적산업성장입지를선택하였는지,지방공업단지와중화학공업은어떻게발전할수있었는지,그리고이과정에서필연적으로수반되는불균형발전과환경,도시,인구등제반문제를극복하기위해어떠한노력과정책을펼쳤는지를우리는비로소알수있다.한국의국토대개조와근대화기적은분명한계와문제점이있었으나박정희의전략적결단과의지가오늘날발전의기틀을마련했다는것은누구도부정하기어려울것이다.총괄계획가박정희의교통정책국토개발은철도와도로,핵심물류인프라인항만및항공교통이서로연결될때총체적으로이루어진다.1964년박정희가독일국빈방문시에르하르트서독수상은다음과같이말했다고한다.“국가가발전하려면경제적번영밖에없다.경제발전은공장만건설한다고되는것이아니다.도로나항만등사회간접자본의기반시설이정비되어야한다.”이말에충격을받은박정희는이때경험한독일식고속도로아우토반에서깊은인상을받아,당시로서는누구도상상하지못할파격적인발상으로고속도로건설을추진했다.당시열악했던우리나라의도로교통과일부정치인들의극렬한반대속에서도박정희는특유의집념으로2년반만에경부고속도로를건설했으며이는‘한강의기적’을일으키게되었다.산업철도와경부고속도로,항만시설과항공사의발전은박정희정권의산업화역사에서빠질수없는이야기다.철도,도로,항만및항공에서박정희의‘총괄계획가’적면모가드러난다,저자는현재세계곳곳으로뻗어나가한국의국력과위상을대변해주고있는대한항공의탄생에대해서도소개하고있다.수도서울의탄생2018년연말에우리는광화문에서‘백두칭송위원회’나‘꽃물결대학생실천단’,‘위인맞이환영단’등단체들이김정은환영맞이집회를여는것을목격하였다.서울을불바다로만들겠다며협박하고대한민국영토에대한무력도발감행으로우리국민의생명을앗아간독재자는찬양하면서지금의서울과대한민국을있게한위대한지도자박정희는도리어독재자로폄훼하다니,잘못돼도한참잘못되었다.이에대해저자는‘평양방문-서울답방’이라는평면적이고기계적인공식자체가문제라고지적한바있다.서울과평양을대등한선상에서바라보는것자체가어불성설이라는것이다.평양은여느문명국가의대도시가아니라하나의‘거대한연극세트장’으로서김가왕조체제를떠받들기위해존재하는도시라고했다.김일성광장,주체사상탑,개선문,인민대학습당,만경대혁명사적지등이도시경관을압도하고있고평양사람들은각종극장정치를위한‘살아있는인형’혹은엑스트라라는것이다.따라서평양은신민(臣民)의왕도(王都)일뿐이다.반면서울은문명국가의수도이며시민(citizen)의도시다.이승만과박정희는화려하고과시적인수도건설을자제하였고,개인숭배와도시계획을결합하지않았으며,국가안보와경제개발에집중해오늘날의대한민국과서울을있게하였다.그결과오히려서울은대한민국이성취한근대화의기적을공간적으로형상화함에있어너무약소하고빈약하다는인상을준다.차제에시민(citizen)의서울,그의미와역사를한번되돌아보고더이상독재자박정희가아닌훌륭한리더,탁월한공간디자이너로서의박정희를기억하며서울과대한민국의새로운도약의발판으로삼아야할것이다.공은공대로남기고보완해야할것은후배세대가개선하는것이역사의발전일것이다.공간디자이너박정희의선물,공간과자유그리고개인박정희의공간디자인은단순히국토발전과고도경제성장만을가져온것이아니라한국인의생활양식과문화,사고방식도획기적으로변화시켰다.그는산업화와도시화에따른주거문제에아파트대량공급이라는해결점을제시했는데,이는단지좁은국토의효율적인활용측면뿐만아니라개인의자아확보공간을마련해주었다는것에큰의의가있다.‘아파트‘는사생활공간을갖게해주었고,이사적공간에서키워진사색과자아성찰은곧개인과자유,민주화(?)에대한열망으로이어지기도했다.뿐만아니라‘집사람’또는‘안사람’의지위로부터여성을해방시켜여성인권도신장시켰다.자유화와요즘시대의화두인양성평등도곧공간혁명으로부터이루어진것이라고볼수있다.한국은세계역사에서유례를찾아볼수없을정도로사생활공간보장을단기간에이루어냈는데,그러한주택정책을체계적으로계획하고실행한것이박정희였다.박정희는전국토규모의산업화와근대화프로젝트를통해한국의땅과공간에활기와생명력을불어넣었고한국인에게‘공간’이라는것을선물한전략가이자공간디자이너였다.그럼에도지금까지공간의개발이나생산,배치등에대한박정희개인의혜안과역량에초점을맞춘연구는찾아보기힘들었다.그결과발전국가의구체적인현장이자가시적인성취였던공간영역은박정희연구사의공백으로남아있게되었다.또한숨가쁘게달려온경제와국토발전사에어두운그림자만을선택적으로집중함으로써공과를균형있게다루지못했다.저자도물론국토종합개발계획관점에서흔히지적되는불균형적성장론을잊지않고언급하였지만,그러나박정희야말로공간구성의혁명이곧근대화라는것을인식한위대한지도자였다는것을감동적으로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