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고(故) 원암 이규동(圓庵 李揆東, 1905~1991) 교수는 생전에 세인의 관심을 별로 끌지 않았던 인물이다. 원암이 태어난 해가 을사늑약이 체결된 해라 그는 평생을 억압과 혼란의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원암은 3·1만세운동 때 검거된 적이 없으며 고등보통하교 다닐 때도 맹휴를 주동한 적도 없었다. 해방 전 사상불온자로 체포되거나 투옥을 당한 적도 없으며, 4·19때에도 독재 타도를 앞장서서 외치지도 않았다.
그러나 원암도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의 독립 쟁취의 방법은 비폭력적이고, 은밀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불령한 인물을 색출하려던 일경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았고 또 신문의 기사감도 되지 않았다. 그가 숨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우리말과 글과 역사가 아니라, 동포의 가슴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민족의 혼이었다.
일제강점기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원암은 민족의식이 가장 박약하고 민족정신 교육이 가장 취약한 곳이 공립학교인 것을 알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전 민족을 상대로 계도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가까이 있는 철없는 학생들을 데려다가 그들 하나하나가 장차 민족의 대들보가 되어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눈물로써 각인시켰다. 일제는 공립학교 교육을 통하여 한국 학생을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으로 만들고자 갖은 방법을 썼지만, 원암은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몰래 우리말과 글과 역사와 민족혼을 가르쳤다. 그의 이런 활동은 은밀하면서도 지능적이었기에 어떤 고등계나 신문기자들의 눈도 피해 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글과 민족 문화, 역사를 가르쳐 민족혼을 일깨웠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웠고 민족 정신 창달을 염두에 두고 먼 미래를 내다본 참 교육자이다. 그는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지킨다면 알퐁스 도데의 말처럼 감방에 갇혀도 그 감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죄수와 같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의 방법이 온유하고 은밀하였기에 제자들의 추억담 외에는 그의 항일 운동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억하는 제자들은 원암이 그들 정신 속에 뜨거운 민족혼을 심어주었다고 증언한다.
원암은 평생 불쌍한 동포들을 도왔다. 특히 가난한 학생들이 자립하도록 페스탈로치처럼 유도하였고, 그것도 모자랄 경우 자신의 봉급을 쪼갰다. 또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배우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집에 데려와서라도 가르쳤고 자신이 병들어 누웠을 때도 가르쳤다. 페스탈로치가 빈자들을 가르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원암도 가난한 학생에게 글과 바른 정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발을 뻗고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원암은 평생 가난한 삶을 택하고 이웃을 피붙이처럼 사랑하였다. 그의 이웃 사랑은 평등하여 어떤 호오(好惡)도 없었고, 파당을 만들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인조차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세속적인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겠지만 가진 것은 모두 주변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진정한 부는 나라의 동량을 키우고 그 동량들을 축적하는 데 있었지 재물에 있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저력은, 지난 세기에 원암 같은 스승의 핍박과 빈곤 속에서도 빛을 내던 올곧은 정신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원암이 남긴 정신은 아팠던 한 시대를 극복하는 ‘슬기’였으므로, 꼭 시대와 함께 꼭 정리해 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전집의 큰 제목을 ‘시대의 스승’으로 정한 이유도 바로 그가 아팠던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한 스승이라는 뜻에 있다. 그가 발휘한 이 시대적 슬기와 인고와 사랑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기를 희망하여 이 책을 펴낸 것이다.
그러나 원암도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의 독립 쟁취의 방법은 비폭력적이고, 은밀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에 불령한 인물을 색출하려던 일경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았고 또 신문의 기사감도 되지 않았다. 그가 숨어서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은 단순한 우리말과 글과 역사가 아니라, 동포의 가슴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민족의 혼이었다.
일제강점기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원암은 민족의식이 가장 박약하고 민족정신 교육이 가장 취약한 곳이 공립학교인 것을 알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전 민족을 상대로 계도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가까이 있는 철없는 학생들을 데려다가 그들 하나하나가 장차 민족의 대들보가 되어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음을 눈물로써 각인시켰다. 일제는 공립학교 교육을 통하여 한국 학생을 대일본제국의 충량한 신민으로 만들고자 갖은 방법을 썼지만, 원암은 교실 문을 걸어 잠그고 몰래 우리말과 글과 역사와 민족혼을 가르쳤다. 그의 이런 활동은 은밀하면서도 지능적이었기에 어떤 고등계나 신문기자들의 눈도 피해 갔다.
그는 학생들에게 한글과 민족 문화, 역사를 가르쳐 민족혼을 일깨웠다. 이로써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웠고 민족 정신 창달을 염두에 두고 먼 미래를 내다본 참 교육자이다. 그는 우리가 우리말과 글을 지킨다면 알퐁스 도데의 말처럼 감방에 갇혀도 그 감방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죄수와 같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의 방법이 온유하고 은밀하였기에 제자들의 추억담 외에는 그의 항일 운동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기억하는 제자들은 원암이 그들 정신 속에 뜨거운 민족혼을 심어주었다고 증언한다.
원암은 평생 불쌍한 동포들을 도왔다. 특히 가난한 학생들이 자립하도록 페스탈로치처럼 유도하였고, 그것도 모자랄 경우 자신의 봉급을 쪼갰다. 또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배우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집에 데려와서라도 가르쳤고 자신이 병들어 누웠을 때도 가르쳤다. 페스탈로치가 빈자들을 가르치지 않아 우울증에 걸린 것처럼, 원암도 가난한 학생에게 글과 바른 정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발을 뻗고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원암은 평생 가난한 삶을 택하고 이웃을 피붙이처럼 사랑하였다. 그의 이웃 사랑은 평등하여 어떤 호오(好惡)도 없었고, 파당을 만들지 않았고, 심지어 일본인조차도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한 적이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더 많은 세속적인 부(富)를 축적할 수 있었겠지만 가진 것은 모두 주변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진정한 부는 나라의 동량을 키우고 그 동량들을 축적하는 데 있었지 재물에 있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저력은, 지난 세기에 원암 같은 스승의 핍박과 빈곤 속에서도 빛을 내던 올곧은 정신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원암이 남긴 정신은 아팠던 한 시대를 극복하는 ‘슬기’였으므로, 꼭 시대와 함께 꼭 정리해 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전집의 큰 제목을 ‘시대의 스승’으로 정한 이유도 바로 그가 아팠던 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한 스승이라는 뜻에 있다. 그가 발휘한 이 시대적 슬기와 인고와 사랑은 앞으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기를 희망하여 이 책을 펴낸 것이다.
시대의 스승 원암 이규동 세트
$68.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