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 | 박정희 탄생 100돌(1917~2017))

4·19 와 5·16 (연속된 근대화 혁명 | 박정희 탄생 100돌(1917~2017))

$15.00
Description
4·19는 ‘좌절된 혁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혁명이고, 더 나아가 5·16으로 꽃피워지고 ‘완성된 혁명’이다. 5·16은 4·19로 인하여 탄생될 수 있었던 것이고, 4·19는 5·16으로 계승되면서 비로소 혁명적 성격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4·19와 5·16의 상호관계를 가장 정확히 표현했던 선각자 함석헌 옹은 5·16 발생 직후 4·19의 학생은 ‘잎’이고, 5·16의 군은 ‘꽃’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4·19의 ‘잎’과 5·16의 ‘꽃’은 비로소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예언했었다.
물론 그 예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게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기적’과 신생 독립국과 개발도상국의 모델이란 열매로 맺어졌다.
저자

김광동

목차

제1장근·현대한국정치의연속성
민주공화제에기반한근대산업화09
근대산업화의계기,4·19와5·1625


제2장4·19의성격과민주당정부의지향성
혁명의전개와성격45
근대화지향성61
민주당정부의반공주의74
민주당정부의번영민족주의86


제3장5·16과박정희정부의과제와도전
경제건설계승101
반공주의115
번영민족주의123


제4장근대화를향한4·19와5·16의연속성
사회변동과근대화열망의분출135
민주주의혁명(8·15)을넘어선산업화프로젝트152
민족번영국가의지향169


제5장4·19의계승과5·16체제의의미
생산과성과중심사회로의전환179
수출체제가만든글로벌화와삶의질혁신195


제6장번영체제를향한4·19와5·16의연속혁명
근대문명전개과정의연장선217
산업화의불길을지핀4·19와5·16222
민족역량의결집과산업화의길226

출판사 서평

가장위대한민주주의대혁명은‘대한민국건국’

5천년한반도역사상민주주의는대한민국이건국된1948년8월15일에이루어졌다.시장경제와자유민주주의체제를도입한48년체제야말로‘민주화’이고‘민주주의대혁명’이다.이때선거와삼권분립이도입됐고개인기본권이보장되었으며한국인은‘자유’로운‘개인’으로태어났다.개인들은사유재산에대한법적보호를확실하게받을수있게되었으며복수정당제에의한정당정치가시작되었고한국인은‘백성’에서‘국민’으로탈바꿈했다.수천년의봉건제와식민지배를끝내고우리민족이최초로인류보편가치인자유민주주의라는혁명적단계에돌입한것이다.

이승만정부(1948-1960)12년은자유민주적기본질서를근간으로하는근대국가를만들고정착시키는데기여했다.그12년을딛고한국은다시4·19와5·16을거쳐다른비약의길로들어설수있었고,근대산업화를기반으로산업경제의고도화와정치사회의성숙까지이루어낼수있었다.1945-1948년간전개된건국과정과건국체제의연속선에서4·19와5·16의역사적성격과상호관계를규명하는것은현대한국정치를이해하는본질이다.한국사회에서는정치적입장에따라4·19를의거로볼것인가,아니면혁명으로봐야하는것인가부터정치적논란이되어왔다.마찬가지로4·19의역사적의의가부각되어야하는지,5·16의역사적의미가더부각되어야하는지의문제도정치적의도에따라편의적으로평가되어오기도했다.(pp.13-14)

저자는〈4.19와5.16-연속된근대화혁명〉에서한국근·현대정치사,특히4·19와5·16을규명하는데에대한사회적합의수준이매우낮다는문제점을지적하며4·19와5·16은상호대립적인것이아니라계승적인것이며양자모두대한민국건국혁명의연장선상에서근대화를발전시킨상호보완적인과정이라고주장한다.저서가밝힌4·19와5·16의의의는과거의역사적사건에대한국민적합의수준을제고하고진정한의미의국민형성(NationBuilding)에기여할것을기대한다.

번영체제를향한4.19와5.16의연속혁명
봉건체제를해체시키고근대체제를만드는과정은서유럽을비롯한대부분의근대국가들에서도결코단기간에걸쳐지는역사가아니다.대한민국은건국된지2년만에3년의가혹한전쟁을겪어야했으며전후복구와순탄치않은자유민주주의체제정착기간을거쳐야했다.

건국이라는나라만들기가일단락된1950년대후반,한국사회에는또다른염원이꿈틀대기시작했다.그것은공화국도아니고,자유와민주도아니며,언론자유확립과선거권확대도아니었다.물론복수정당제와경쟁적정당구조를안정적으로정착시켜야한다거나잦은선거를통한정치지도자를교체할수있어야한다는열망도아니었다.그것은바로지긋지긋한배고픔과가난에서벗어나취직도하고,삶의질도향상시키고싶다는염원이었다.단기간에결코가능한것이아니었지만,미국이나일본과같은수준으로가고자하는바람이결집되고있었고,그연장선에서의폭발이4·19와5·16이라는사건으로전개되었다.(p.26)

4·19는3·15부정선거를계기로분출된정치적저항이긴하지만4·19가표출하고자했던핵심메시지는근대화된국가를향한번영민족주의이다.배고픔,빈곤,실업,무질서,기성사회에대한실망,원조에의지하는민족적비굴함,사회로진출할수있는직업의부재,정치와정치인에대한불신과염증등이현실적극복과제였다.
4·19는처음부터이승만대통령의하야를목표로하거나민주적제도에대한요구,또는사회주의에대한요구로일어난사건이아니었다.삶의질개선을요구하는것이었고,번영민족주의외에는보이지않았다.‘못살겠다,갈아보자!’라는구호가번영지향적민족의식을가장극명하게반영하고있으며4·19의방향성을이미예정해놓았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또한동일한제도와체제속에서여당과야당간의정치적주역만바뀌며종결되었다는것이4·19가결코정치혁명이아니었다는것을입증한다.
4·19혁명은다른민족을배타적으로한국수주의나저항민족주의는결코아니었다.강력한근대화의열망과번영을지향하는민족주의를담고있었으나그런열망이바로성공적인번영민족주의의실현을이끌어낼수있었던것은아니었다.대통령제에서내각제로,이승만정부에서더보수주의적인민주당장면정부로바뀌었을뿐번영을향한강한열망을실현시키는것은전혀다른차원의문제였다.이를성공시킬수있는일관되고조직화된제도의힘이충분하지않았기때문이다.뿐만아니라민주당장면정부에서는오히려민주주의의부정적현상인시위만능과선거만능의시대로빠져들어갔다.민주주의의탈을쓰고질서해체와타인의자유를침해하는타락된상황이전개되어갔다.이것이4·19가맞이한한계이자과제였다.(pp.94-97;pp.159-160)

4·19혁명의진정한역사적성격과의미를부각시켜그정신을계승·발전시킨것은4·19로집권할수있었던민주당정부가아닌5·16혁명세력이었다.박정희는1963년민주적직접선거를통해대통령에선출된이후제3공화국이4·19혁명정신을이어받은정부임을다음과같이명확히밝혔다.

독재에항거하여민주주의를수호한영웅적인4월혁명의영령앞에나의이모든영광을돌리고자합니다...4월혁명에서...민주주의를수호하였고,이어5월혁명으로부패와부정을배격함으로써민족정기를되찾아,오늘여기에우람한새공화국을건설하기에이른것입니다.

5·16주도세력과박정희정부는빈곤극복이5·16정부에부여된혁명과제임을명확히했다.권력투쟁적정치에매몰되며근대산업화란목표가좌절되고떠내려가는상황에서5·16은군부엘리트가중심이되어경제산업화와국민의삶의질제고라는명확한목표를내세웠다.우선민주제도를유린하는집단시위와폭력정치,선거중심정치를단절시켜내는것에서시작했다.(p.160)또한3년에걸친처참한전쟁에서목숨을건전투에참여했던주역이었기에박정희와5·16세력은반공을제1국시로하여미국과의동맹을공고히하고4·19이후전개된사회적불안정을틈탄용공세력과사회주의를지향하는급진행동에강력히대응했다.4·19이후전개된좌익남로당잔존세력과공산주의연대세력들의움직임이펼쳐지는상황에서군의반공강화는국민적불안에대한대응과사회안정질서확립으로가는기본조건이었다.(p.120)

박정희는국민의삶이개선되고성장의혜택이확대되어누릴수있는사회로간다면본인이독재라고비판받는것에대해개의치않았다.산업생산과성과중심사회를만드는과정이곧소모적논쟁과선거중심적정치영역의축소로나타나는것은당연한귀결이었다.반복되는잦은선거는‘민주주의’라는평가를받는데도움이될지모르지만국민에게는도움이되지않는다는것을이미12년간16회의전국선거를통해확인했던것이다.(p.191)박정희는독재로불리는걱정보다는근대산업화가추진되지못하는것을우려했던대통령이었다.박정희정부는군중심의쿠데타세력이범하기쉬운폐쇄적민족주의의길을결코가지않았으며자율적인시장에기반한기업발전,수출주도형체제를만들어국민들의염원인빈곤탈피와번영을이룩하였다.

한국근·현대정치에1948년8·15는명백한‘민주혁명’이었고,6·25전쟁이후의4·19와5·16은빈곤타파와경제건설을향한‘산업혁명’이었다.4·19와5·16은기아와빈곤을극복하기위한경제재건과국토개발이라는매우강력한공통된기반에서있다.둘다경제건설과재건을말하며‘근대화된조국’이란민족주의의실현을염원하고있었다.그럼에도두혁명을편협한정치적시각과‘민주주의’라는잣대로만본다면,그것은1960년대에대한민국이만든세계사적역동성을부정하는것이다.(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