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태영호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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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태영호의 간절한 바람
3층 서기실은 북한 주민들도 잘 모르는 조직이다. 서기실이 어느 건물 3층에 있어서 붙여진 별칭이 아니라, 3층 규모의 건물 전체를 쓰고 있어 유래된 이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며 김정은의 집무실이 있는 당 중앙 청사가 3층 규모인데, 이 청사에서 김정은의 사업을 가장 근접해서 보좌하는 부서를 3층 서기실이라고 한다. 3층 서기실은 기본적으로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인 것이다.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 태영호의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 저자는 노예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주민을 해방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해야 할 책임이 한국에 있음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안타까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국력이 가져온 회담의 성과를 김정은의 과감한 결단과 용단으로 돌렸던 것을 언급하며, 이 책으로 온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저자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공사 및 대한민국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을 역임했고,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남구갑에 당선됐다.

목차

머리말 -- 10
프롤로그 -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14

1부 평양심장부

1장 | 핵으로 가는 길

김일성,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라” -- 18
남북 유엔 동시가입 막전막후 -- 24
주중 이탈리아 대사의 방북에 들뜬 김씨 부자 -- 29
모택동, 김일성에게 “조선은 핵무기 꿈도 꾸지 말라” -- 40
제네바 핵합의는 시간 끌기 기만극 -- 52
북한 농촌 현실 보고 외국대표단 ‘경악’ -- 55
영국의 비밀접촉 제의에 김정일 흥분 -- 57
실세 리수용은 왜 힘이 센가 -- 61
김정일의 저팔계식 실용외교 -- 64
“동무들은 나처럼 살지 마시오” -- 66
북한외교가 강해 보이는 이유 -- 69
김용순을 제친 강석주 -- 71
잘 나가던 장인 숙청, 내 앞길에도 암운 -- 79
강명도 탈북이 열어준 나의 첫 해외 발령 -- 84

2장 | 고난의 행군 외교
북한외교관 담배 밀수 사진, 세계에 공개돼 -- 88
노르웨이에서 위조여권으로 체포된 장성택 -- 93
식량원조 받으러 동분서주, 덴마크 지원 약속에 눈물 -- 98
황장엽 탈북, “남조선 납치” 주장하다 “비겁한 자여”로 돌변 -- 103
스위스에 북한 우표 120톤 팔고, 덴마크에 또 팔았다가 -- 105
덴마크TV서 본 영화 <태백산맥>, 한국 와서 임권택 감독 만나 -- 108
북한을 뒤흔든 ‘심화조 사건’, 숙청 주도자도 처형 당해 -- 110
병원도 못 가는 외교관들, 친구 김춘국 대사의 죽음 -- 113
독일이 건넨 동독 유학생 명단, 보위부가 간첩단으로 조작 -- 115
치즈 원조 받으면서 “싣고 갈 배도 제공해 달라” -- 117
김정일, “태영호가 원하는 것 다 해주라” -- 118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 당선, 환영과 당혹 사이 -- 128
이스라엘과 스웨덴서 미사일 극비 협상 -- 131
연평해전 후 남북 외교관 사우나서 조우, ‘멀뚱’ -- 136
남북정상회담, 김정일 덕분이라고 주재국에 선전 -- 139
귀국선물로 양초가 인기, 극심한 전력난 때문 -- 142

3장 | 한국이 살린 북한
장성택 도움으로 복귀한 장인 -- 145
6·15 선언 후 활기 찾은 평양 -- 147
석 달간 해외생활 샅샅이 조사받고 북유럽과장 부임 -- 149
북송 장기수들, 한국서 번 돈 당에 바치고 때늦은 후회 -- 151
김대중 정부, 유럽국가들에 북한과 수교 요청 -- 155
“굴욕 감수해도 빨리 수교하라, 미 부시 정부 들어서기 전에” -- 162
수교 거부한 프랑스, 북한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 165
런던 대영박물관 한국관서 북한 미술 전시회 열어 -- 169
스웨덴 총리, 김정일 면전서 북한 인권 지적 -- 172
북한 최초의 인권 ‘접촉’, ‘대화’나 ‘회담’은 안 돼 -- 181
이라크전쟁에 떠는 김정일, “런던에 대사관 열어라” -- 185
임신한 평양 주재 영국외교관 부인에게 ‘기적’을 선물 -- 192
영국월드컵 8강 <천리마 축구단> 영화 제작 비화 -- 196
서방 언론사 첫 평양지국 개설 추진 -- 200
김정일, 고이즈미 강공에 일본인 납치 직접 사과 -- 208
영국 비행사 유족에게는 짐승 뼈 보내 망신 -- 212
유럽에 내다판 북한 돈의 역류, 재정상 처형 -- 214
룡천역 폭발사건 후 금지된 휴대폰, 리수용 건의로 재개 -- 218

4장 | 영국 통해 미국 견제
해외 발령 때마다 아이 데려가기 전쟁 -- 221
실세 리용호가 영국대사로 간 까닭은 -- 225
“남조선 괴뢰에게 골프를 배운다고?” 김정일의 격노 -- 228
‘모르는 게 없는 지도자’ 만들어내는 ‘3층 서기실’ -- 233
나도 감탄한 김정일의 핵전략 “배짱 튕기면서 다 챙겨” -- 236
영국학교의 아들 담임, “너희 나라가 잘못한 거야” -- 243
백승주 의원이 준 한국 손톱깎이와 10년 -- 249
북한 핵외교의 한 축 “영국 통해 미국을 견제하라” -- 252
에릭 클랩튼, “북한 인권 때문에 평양 공연 어렵다” -- 253

5장 |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1차 핵실험 후 “외교관 자녀 한 명 빼고 모두 귀국시켜라” -- 256
실권 쥔 제1부상, 하루 종일 김정일 전화 대기해야 -- 263
갑자기 내려오지 않는 김정일 결재, 알고 보니 뇌졸중 -- 269
후계자 김정은 ‘대장동지’ 이름으로 부상 -- 277
김정은 등장 직후 화폐개혁으로 후계 공고화 시도 -- 280
연평도 포격으로 날아간 벨기에 주재 북한대사관 개설 -- 284
영국과 관계 개선 위해 런던 장애인올림픽 참가 -- 288
김정일 사망, 김정은 지시로 이틀 후 발표 -- 294
김정은 집권 초 “개성공단 14곳 만들라”, 개혁조짐 보여 -- 297
외무성 대변인 맡겠다는 사람 없어, 문서로만 언론 발표 -- 304
모란봉악단 미국노래 연주, 리설주 등장, 개방 시동인가 -- 306
금세 돌아온 공포정치, 인민군 총참모장 처형 -- 307
‘내부의 적’ 경고로 장성택 처형 암시 -- 309

6장 | 망명 전야
다시 영국으로, 맏이와 생이별에 눈물바다 -- 315
김정은 공포정치엔 ‘어머니 콤플렉스’도 한몫 -- 317
장성택 처형을 런던서 인터넷판 <노동신문> 보고 알아 -- 319
숙청을 부른 또 다른 사연들 -- 322
어릴 때부터 고모부에 원한 쌓여 -- 326
장성택 측근 1만여 명 쑥대밭 숙청 -- 332
외무성 성원이 숙청을 피하는 법 -- 339
영국공산당의 북한 세습 비판에 곤혹, “논쟁에 말려들지 말라” -- 343
나를 ‘혁명의 배신자’라고 한 영국인 허드슨의 ‘순정’ -- 349
장애인청소년 예술단 영국 공연 추진 -- 352
김영철 정찰총국장, 영국 대리대사 불러 테러 협박 -- 360
김정은 헤어스타일 조롱한 미용실 찾아가 테러 위협 -- 365
김정은과 로드맨의 ‘위험한 만남’, 주선자는 베일 속 -- 367
BBC 한국어 방송 극력 저지 중 기자 3명 억류 -- 373
3층 서기실이 보낸 암호 -- 375
“김정은 원수님이 태영호 동지를 구체적으로 요해하셨다” -- 381
김정철과의 61시간 -- 385
김정철과 함께 부른 <마이 웨이>, 그의 눈엔 이슬이 -- 389
지방 소도시에서 원하던 기타 사고는 꼭 껴안아 -- 394
‘방북 불가’ 로이터 기자 신원보장해 주고 입국시켜 -- 400
2018년을 핵 보유 위한 평화환경 조성 시기로 설정 -- 402
영국서 바라본 북한은 숙청과 처형의 나라, 수치와 분노 일어 -- 405

2부 노예 해방을 위하여

7장 | 소년 유학생

소년 유학생으로 선발되다 -- 416
대사관 직원 가족으로 위장해 중국 유학 -- 419
중국 학생들 모택동 비판에 충격 받아 -- 421
김일성과 기념사진을 찍다 -- 424
모택동 격하운동에 “나쁜 물 든다”며 북한 소환령 -- 428
5·18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나자 “이제 통일 되겠구나” -- 430
‘곁가지’ 치기 시작, 김성애 시계 사건 -- 432
국제관계대학에서 배운 상대를 제압하는 협상기술 -- 433
대학 2학년 때 야간돌격대 자원해 노동당 입당 -- 436
유학 시절, 박정희 동경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며 -- 439
집단생활하는 북한 유학생들, 경멸과 호기심 대상 -- 442
<동물농장> 영화 보며 북한 현실 오버랩 -- 445
유학생 숙청으로 이어진 김일성대학 독서회사건 -- 446

8장 | 명천 태서방
명천의 태서방 집안, 빈농에서 토지개혁으로 기반 마련 -- 450
당위원회 지시를 따라야 하나, 치안대에 가입해야 하나 -- 454
황곡리 시골에도 농지 협동화 바람 -- 460
1960년대엔 농촌 형편이 평양 못지않아, 이후 지방 가면 ‘나락’ -- 463
6·25 때 이모할머니 가족 월남 사실 드러나 아버지 좌천 -- 467
만경대를 ‘망경대’로 잘못 쓴 수학천재의 영락 -- 472
김일성 사진으로 딱지 만든 친구 가족의 불행 -- 477
“영어 잘해야 잘 살 수 있다” 당 간부 아이들 외국어학교로 -- 481
평양외국어대학 출신 탈북자 많아 -- 486
핵심 빨치산 출신 가문에 장가를 가다 -- 492

9장 | 노예 해방을 위하여
“이순신이 누구예요?” -- 499
이렇게는 못살겠다 -- 504
김정일 시대 봉건사회로 퇴행을 거듭 -- 509
단언컨대 북한은 현대판 노예사회다 -- 513
김정은, 거칠고 즉흥적이나 똑똑하고 논리적이기도 -- 516
북한 체제가 견디기 어려운 까닭 -- 521
북한 주민이 진짜 신을 믿는다면 -- 526
김영남의 눈물과 김여정의 미소 -- 530
통일은 노예해방혁명이다 -- 533
에필로그 - 만인의총 앞에 서서 -- 540

출판사 서평

무자비한 독재자인 게 틀림없는데, 떠들썩한 하루 동안의 환영 이벤트로 김정은의 이미지는 더 할 수 없이 미화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7.5%가 김정은에게 신뢰가 간다고 답했다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누구이며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온 세계의 이목이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는 지금,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밝히는 평양 심장부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북한 핵폐기냐, 한반도 비핵화냐 라는 용어 중 이번 남북정상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택했다. 이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으로 결국 주한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만이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241~242)

→1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북한 외무 차관 강석주가 나눈 다음의 대화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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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분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1차 핵실험 사흘 후인 2006년 10월 12일, 중국 선양에서 외무성 1부상 강석주와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李肇星·리자오싱)이 비밀리에 만났다. 북한 외무성 회담기록문에 따르면 리조성은 강석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인민은 조선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 김일성 동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매우 전략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조선 동지들은 그의 사상과 유산을 어기고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제시하신 것은 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가 핵 경쟁에 말려들 경우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될 수 있음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같은 큰 나라도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에 말려들었다가 결국 붕괴되었다.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
그러자 강석주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련의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소련의 붕괴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 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우리처럼 당을 강화하고 사상 사업을 중시했다면 아무리 많은 군비를 쏟아 부었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또한 김일성 수령님의 탁월하고 위대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언급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
강석주가 사용한 이 논리는 이후 북한의 일관된 핵 논리이기도 하다. (p.24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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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3대의 핵 집착

-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그 방식이 핵과 ICBM, 공포정치였다.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마저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다.
이것으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체제는 물론 김정은 자체가 무너진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과 ICBM에 집착하고 장성택 숙청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를 휘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18)
- 핵은 체제 보장을 위해 90년대에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다. 6. 25 와중에 피란민의 핵 공포를 확인하고 이때부터 김일성은 핵개발을 시작했다. 50년대에 이미 원자폭탄 개발 핵 연구소를 설립했고, 70년대 중반 이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핵무기 개발 전략)를 주장하며, 핵 불사용 정책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p.40~48)

태영호의 간절한 바램

- 2016년 12월 나는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일부 출입 기자단과 회견을 가졌다. 이때 나는 북한의 핵개발 완성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핵 질주 계획’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에 감행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나로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 문제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p.404~405)

철도 건설 문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철도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6.15 공동 성명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그것이 공허한 선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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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은 6·15 공동선언 직후 러시아와도 협력의 제스처를 취했다. 2000년 7월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의 지도자로서는 사상 최초의 방북이었다. 김정일은 이듬해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답방했다.
김정일과 푸틴은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각각 「조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었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 답방 1년 만인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지역을 다시 방문해 조러 모스크바 선언의 이행 문제를 협상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 철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열고 컨테이너나 석탄과 같은 중량 화물을 수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를 어느 정도 직선화하고 터널과 교량도 많이 건설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북한 군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스스로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부대 이전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개성 공단 건설 때도 군부는 새로운 주둔지를 마련하기 위해 엄청난 고생을 했다. 군부는 당연히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과 부대 이전을 반대했다.
부대 이전만 해결해 주면 되는 문제였지만 북한은 그렇게 할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반대를 물리치지 못한 이유다. 동해안 철도 현대화 계획은 자연히 힘을 잃었다. 이후 북한은 러시아의 하산부터 함경북도 나진항까지의 철도만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과 러시아는 아직도 한반도 종단철도 수송로 창설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구글 어스를 통해 확인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북한의 동해안 철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비행장이 수없이 많다. 지금도 북한은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이 가능한 것처럼 한국과 러시아에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물론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동해안에 무수히 산재한 부대 이전 비용까지 부담한다면 말이다. (p.14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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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남측 대통령 특사는 ‘배려, 리더십, 여유, 숙성된 고민, 솔직하고 대담’ 등으로 평가했고, 4월 정상회담 뒤 언론과 온라인에서는 ‘뚱뚱하고 귀엽다’ ‘솔직하고 담백하다’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이다’ ‘생각보다 무섭지 않다’ ‘소탈하게 잘 웃는다’는 찬양 일색의 인물평이 나왔다.
고모부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했다는 뉴스는 까맣게 잊고 있다.

그럼 김정은의 진짜 모습은?

- 김정은은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즉흥적이며 거칠다.
7월 27일은 휴전협정일이지만 북한에서는 전승절로 기념하고 있다. 2013년 7월 재개관을 앞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전쟁기념관)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부리나케 달려와 아직도 물바다인 지하에 구둣발로 들어갔다.
수백 명이 진화와 정리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