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춘원 이광수 (양장본 Hardcover)

언론인 춘원 이광수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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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문인이 아닌, 언론인으로써의 이광수를 만나다
문인보다 논객이고자 했던 이광수의 언론활동_근대 문학의 개척자, 민족개조를 주장한 실천적 계몽운동가.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언론인 이광수’의 언론활동을 실증적으로 깊이 있게 추적한다. 이광수라는 인물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 한국 언론사에 의외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습을 밝혀낸다. 풍부한 사진과 그림, 신문 지면 등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는다.
저자

정진석

저자정진석은한국외국어대학교명예교수,런던대학교정경대학(SchoolofEconomics&PoliticalScience-LSE)박사,1964년언론계에입문하여한국기자협회폅집실장,관훈클럽사무국장역임.1980년부터한국외국어대학교언론학교수로재직하는동안사회과학대학장,정책과학대학원장을맡았다.언론중재위원,방송위원,LG상남언론재단이사를지냈다.현재장지연기념회,서재필기념회이사로언론관련사회활동을계속하고있다.

목차

서문|100년전의특파기자

서장|문인·언론인·논객이광수
남북한일본미국의연구
가난,병마,탄압과의싸움

1장상하이거쳐치타에서잡지편집
일본유학후오산학교교사
다이세이중학,메이지학원졸업
최남선홍명희와의우정
해외방랑,대한인정교보주필
상하이러시아에서만난사람들
연해주와미주의교포신문
필사석판인쇄월간정교보
국어와한글사랑
정교보에실린이광수의글
풀어쓰기한글인쇄혁신시도
키릴문자차용필기체고안
애국정신의근본은국사와국문

2장매일신보소설논문기행문
와세다대학유학과글쓰기
미국행포기귀국국내체류
「동경잡신」기고
「농촌계발」과소설「무정」
매일신보-경성일보특파기자
「오도답파여행」두신문게재
「개척자」와「신생활론」
폐병발병을안타까워하는최남선
베이징순천시보교섭
2·8독립선언문기초
도쿄유학생들의독립운동
도쿄에서상하이로탈출
국내의지하신문들

3장상하이독립신문사장
독립운동선전활동
상하이임시정부수립
한일관계사료집편찬
이광수와주요한
조동호,차이석,박현환,김여제
경영난,과로,영양부족
사장겸주필로논설집필
죽여야할친일파들
미주교포와독지가의성금
좌절,귀국
네차례정간과『신대한』출현
개인적고뇌
통치거부,평화적전쟁

4장논객소설가
아니쓰지못하는심정
「소년에게」와「민족개조론」
허명의해외독립운동가비판
개혁커뮤니케이션이론
“춘원일생일대의역작”
동아일보논설기자의필화
편집국장두차례
「민족적경륜」필화
합법적타협적민족운동
병고와탄압속에서
동아일보퇴사-편집국장복귀
척추수술,신장수술,각혈
흥사단잡지『동광』
편집국장시기의정간

5장민중속으로문화운동
이순신장군유적보존
조선의노래현상모집
편집국장의현지취재
‘슬픈이순신의일생’소설
브나로드운동
총독부의조선어말살정책
금지된‘글장님없애기운동’
학생계몽대,강연대,기자대
농춘계몽문자보급
농촌계몽소설「흙」
계몽운동대로명칭변경
교재한글공부,일용계수법
총독부방해로중단

6장조선일보부사장
사장방응모의혁신작업
조선일보증축,증액,증면
평안도중심인재영입
시간여유,경제적안정
부사장편집국장학예부장겸직
지면혁신,내용혁신
편집국조직혁신
편집간부와총무국의갈등
신문사사퇴,편집고문
돌연한사임
아들의죽음,건강악화
조선일보편집고문

7장이광수의언론사상과역사관
신문기자의보람과자질
언전-말의싸움
우리말과한글사랑
단군,세종대왕소설계획
친일의길에들어서다
흥사단-동우회주모자로피검
징역5년에서무죄로
긍정과부정끝없는논란

춘원이광수언론활동연보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계몽주의논객의반역적선언
춘원이광수(春園李光洙,1892.2.28.~1950.10.25)는사랑과비판을동시에받는인물이다.근대문학의텃밭에첫씨앗을뿌린개척자이광수는1930년대중반까지민족개조를주장하고역사의식을고취하는한편으로수양동우회운동을벌였던민족주의자였다.그는가난과불우한환경에서어린시절을보냈고,평생중병을앓으면서수많은글을쓰다가일제경찰에구속되어재판받는과정에서변절하여친일의길로들어서고말았다.
이광수는문인가운데가장많은연구가진행되었다.100년전에근대문학의효시‘무정’을발표한이후춘원연구학회가창립되던2007년9월까지단행본50여권,학위논문270여편,각종학술논문과단평800여편이나왔다.2002년에는?이광수문학사전?(한승옥,고려대학교출판부)도출간되었다.그후에도국내와일본미국에서많은연구가축적되고있다.연구는앞으로도끊임없이계속될것이다.

자신의그림자에가린이광수의언론활동
문인이광수와문학적업적은널리알려져있지만,그가언론인이자논객으로활동했던사실은별로주목받지못하고있다.‘무정’을발표하던1917년에이광수는매일신보와경성일보(일어)특파원자격으로충청도전라도경상도를현지취재하면서르포기사?오도답파여행기(五道踏破旅行記)?를두신문에2개월넘게연재하였다.그보다먼저1914년에는러시아치타에서교민들이창간한‘대한인정교보(大韓人正敎報)’의주필을맡았던적도있었다.이광수는일찍부터언론의계몽적기능과정치적영향력에주목했다.
그는문인보다는언론인으로활동하기를바랐다.“문장을한무기로하려고는(생각)하였지만시나소설을지으려는생각은조금도없었다”는것이다.“원체소설을쓰는것으로일생의업(業)을삼으려는생각은없는데다가글을쓰려면사상평론이나쓰랴고마음먹었다.그리고내게도정치적관심이도리어주(主)가되었던것이다.”이광수에게소설은부기(副技)이자여기(餘技)였다.
본격적인언론활동은상하이에서‘독립신문’사장을맡은때부터였다.귀국후에는동아일보편집국장두차례,조선일보부사장겸편집국장으로재직하는동안언론과문학의경계를가르지않고활동했다.역사소설「이순신」은동아일보편집국장재직시에아산현충사유적보존운동을벌이면서연재했고,「흙」은전국적인농촌계몽,문자보급운동의신문캠페인소설이었다.
그는언론과문학활동을동시에수행했지만문학적업적에가려서언론활동은잘알려지지않았다.이광수와더불어조선의3대천재로불렸던최남선,홍명희도언론인으로큰발자취를남겼지만문인으로만알려져있는것도비슷하다.

독립신문사장,동아조선두민족지편집국장
언론사연구의권위자인정진석한국외국어대명예교수는‘언론인이광수’의언론활동을실증적으로깊이있게추적한다.이광수라는인물을통해서일제강점기한국언론사에의외로알려지지않았던모습을밝혀낸다.
당대최고의행동하는지성인이광수는시골의가난한환경에서양친을여의고불우한어린시절을보냈다.그러나역경을헤치고일본유학이라는가장높은교육환경을경험했으며만주,중국베이징,상하이,러시아령블라디보스토크를거쳐치타까지가서많은독립운동가들을직접만났다.1919년에도쿄유학생독립선언문을작성한뒤에상하이로망명하여임시정부와긴밀한관계였던‘독립신문’을발행했다.수많은독자의심금을울리는소설과신문고정칼럼집필자였던이광수는남다른경륜과문장력을동시에갖춘인물이다.우리말과한글의우수성을예찬하고우리역사에자부심을지니고있었다.
이광수는보고느낀현실을글로써서남긴역사가였고,천재적인문인이자선구적인언론인이었다.『춘원연구』를쓴김동인은말한다.“조선의소설가가운데서그지식의풍부함과그경험의광범함과교양의많음과정력의절륜함과필재의원만함이춘원을따를자없다.”
저자정진석교수는일본경찰의비밀기록과신문잡지를조사하고이광수의글을빈틈없이찾아내어언론활동을추적했다.이광수는기행문과회고록으로자신의행적을기록하거나스스로를소설의모델로삼기도하고,잡지의설문과인터뷰에응하면서밝힌경우도있다.그의삶자체가일반대중에게관심과논란의대상이었고,소설보다더흥미로운요소를고루갖추고있었다.이광수전집(삼중당,우신사)20권이나와있지만전집에수록되어있는글이라도가능한대로발표당시의지면을찾아보고인용했다.전집에는누락되거나첫게재지면의내용과달라진부분도있기때문이다.

풍부한사진과관련신문지면
특히이책의특이한점은풍부한사진과그림,신문지면등을수록하여이해를돕는편집이다.젊은시절부터광복이후까지이광수의사진을연대순으로배치하여화보의역할도할수있도록하였다.사진을통해서그의일생을살펴보도록하는동시에,그의소설연재와관련된‘사고’와기사지면을많이실어서그시대의언론사를눈으로확인할수있도록했다.문학사와언론사연구에큰도움이될수있겠다.

이광수의언론활동은1937년6월7일동우회의주동인물로경찰에구속된이후에완전히단절되었다.문학활동은제한된상태로나마가능했지만,이때부터는본인의의지와는상관없이언론활동을할수없었다.언론인이광수를살펴본이책도거기서끝이난다.이광수는1940년2월22일자‘매일신보’에「창씨와나」를실어가야마미츠로(香山光郞)라는일본이름으로창씨개명한이유를공개하고친일의길로들어섰다.

함석헌의이광수평가
함석헌은말한다.이광수는우리민족을위해울고이나라를위해슬프게힘있게,우렁차게운사람이다.하지만이광수는울기만했던인물은아니다.조선을문명의단계로끌어올리기위한장기적인경륜을품은경세가(經世家)였다.그는몸으로실천했다.상하이로가서독립신문을발행하면서붓을들어‘언전(言戰)’의선두에서싸웠고,흥사단-수양동우회를통해민중의역량을기르는실천운동에앞장섰다.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을설계하고진두지휘했다.그러면서글을써서운동의취지를선전하고실천을독려했다.
그랬던이광수였지만친일로돌아선이후의행적은비판받지않을수없다.함석헌은이광수와최남선을비판하고통탄하면서도,비난만하지말고민족전체가반성할것을촉구한다.

“육당·춘원의생애는하나님의이민족에대한심판이다.너희성의와너희지혜와너희용기가요것뿐임을알아라,하는판결문이다.그러므로민중은자기가운데서는인물에서자기상(自己像)을읽어내어반성해야할것이다.개인적으로칭찬만하면그것은우상숭배요,개인적으로비평만하면그것은자기를속임이며자기를낮추는일이다.민중은인물을떠받들뿐만아니라비판할줄도알아야하는것이요,엄정하게비평할줄만알뿐아니라용서할줄도알아야한다.”

우리는예로부터인물대접할줄을모른다.그것이우리의국민적성격의큰결함이다.나라가쇠한큰원인의하나는인물빈곤이다.비판을하되가혹하고도량좁은제재를가하지말아야한다.그래서는사회가건전한발달을할수없다는것이함석헌의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