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저자이영훈(李榮薰)은 1985년서울대학교대학원경제학과졸업(박사학위) 1977-1982년지곡서당수료 1985-1989년한신대학교경제학과교수 1989-2002년성균관대학교경제학부교수 2002-현재서울대학교경?제학부교수 2004-2005경제사학회회장 2003-2007한국고문서학회회장 낙성대경제연구소이사장(현재) 주요저서 『조선후기사회경제사』(한길사,1988) 『수량경제사로다시본조선후기』(서울대학교출판부,2005) 『대한민국이야기』(기파랑,2007)
목차제1장대한민국역사를위한올바른관점제2장해방과건국투쟁제3장국민국가의건설제4장나라만들기세력의교체제5장고도경제성장제6장민주주의의발전제7장북한의역사참고문헌,색인
출판사서평왜새삼‘대한민국역사’인가?분열의역사가아닌통합의역사를기록하다!때이른더위가몰려오던지난5월하순경부터한국사회에서는때아닌역사논쟁이불붙었다.그것은일부좌파성향의언론과지식인,정치인이아직공개되지도않은한권의역사교과서를두고아무근거없이무턱대고‘왜곡’이라며몰아세운탓으로빚어진어처구니없는해프닝이었다.그러나그것은단순한해프닝이아니었다.그근저에는오히려그쪽진영이가진대한민국역사에대한뿌리깊은왜곡과날조의식이단단히똬리를틀고있었다.이처럼...왜새삼‘대한민국역사’인가?분열의역사가아닌통합의역사를기록하다!때이른더위가몰려오던지난5월하순경부터한국사회에서는때아닌역사논쟁이불붙었다.그것은일부좌파성향의언론과지식인,정치인이아직공개되지도않은한권의역사교과서를두고아무근거없이무턱대고‘왜곡’이라며몰아세운탓으로빚어진어처구니없는해프닝이었다.그러나그것은단순한해프닝이아니었다.그근저에는오히려그쪽진영이가진대한민국역사에대한뿌리깊은왜곡과날조의식이단단히똬리를틀고있었다.이처럼이념적으로지나치게편향된역사교과서가학교의교육현장을점령하다시피한현실을크게우려했던학계의비중있는12명의중견학자가2005년한자리에모여'교과서포럼'을결성했다.그렇게해서맺어진결실이2008년3월에탄생한도서출판기파랑의『대안교과서한국근ㆍ현대사』였다.당시이책의집필에주도적으로참여했던서울대학교이영훈교수는이번에도팔을걷어붙이고나섰다.2013년의시점에서또불거진생뚱맞은역사논쟁의진실을다시정확하고소상하게기록하여,비단청소년뿐아니라군복무중인젊은청년들과일반인들에게도널리알려야할필요성을절감했기때문이다.저자는이렇게말한다.“선진국으로갈수록정부는자라나는세대에게나라의기초이념이무엇인지,왜그것이정정당당한것인지,그것이언제어떻게생겨났는지,어떠한정치세력이그이념을받들어국가를세웠는지에대한역사교육을중시하고있다.어릴때부터그러한교육을받은선진국의국민은대개애국적이다.자기가소속한국가가정당한이념에기초하여세워진훌륭한정치체제이며그에의해자기와가족의행복이보장되고있음을이해하고그에동의하기때문이다.때문에선진국의국민은국가가위기에처하여그를부를때주저하지않고몸을던져전장에나아간다.”그렇다면대한민국은어떤가?한국의정치와사회는깊은내면의분열을안고있으며,그것은끊임없이정치와사회의크고작은갈등과대립으로표면화하고있다.국민모두가애국심으로공유하는국가의역사가아직성립해있지않은실정이다.그같은안타까운현실을대하는학자의결의는단호하다.“대한민국의국민이자랑스럽게공유할역사를새롭게쓸필요가있다.지금까지쓰이고가르쳐진대한민국의역사는이나라가세워지고발전해온역사를정당하게평가하지않았다.그래서역사가오히려국민을분열시키는역할을하였다.그런분열의역사가아니라통합의역사를새롭게쓸필요가있다.”건국40년만에경제성장과민주주의정착1988년,비로소나라다운나라가만들어졌다!새로운나라를세우는일은무(無)에서유(有)를창조하는것과같다.우선국가의기초이념을공고하게다져야했다.그래야다른이념을가진내외의적대적세력으로부터나라를제대로방어할수있기때문이다.이같은나라만들기의과제들을한꺼번에동시다발로해결할수는없다.신생후진국이보유하는인적,물적자원이부족하기때문이다.대한민국의건국도마찬가지로곤란한과정을거쳤다.대한민국이국제사회에성립을알린것은1948년8월15일이었다.이후나라다운나라가만들어지는데는대략40년의세월이소요되었다.1988년서울올림픽이개최되는그시점에이르러서야대한민국은경제성장도이루고민주주의도정착하여나라다운나라가만들어졌다는평가를받게되었다.그사이수많은시련이있었다.전쟁이터졌고,수많은사람이죽었다.몇차례의폭력적인정변도겪었다.그렇지만대한민국에는다른후진국과달리나라만들기에적합한인적자본과정치적리더십의조건이충족되었다.그래서제2차세계대전후독립한국가가운데거의유일하게경제성장과민주주의를성취하는모범사례를이루었다.‘나라만들기’에는합리적인계획과건강한리더십이필요하다.이를두고인간들은갈등할수밖에없다.대한민국의지난60년역사가온통그러하였다.저자는이나라가얼마나준비가덜된상태에서허둥지둥만들어졌으며,그과정에서피했으면좋을큰상처를안게되었는지를몇차례나강조하였다.대한민국은상처투성이의나라로출발하였다.‘5·16군사정변’을보는저자의관점“혁명적인근대화의출발점이었다!”50년의세월이흐른오늘날의관점에서5·16을되돌아봤을때두가지사실이새삼스럽게주목된다.첫째,5·16은이후한국인들이경험하게되는혁명적인근대화의출발점이었다는사실이다.1963년이후한국경제는1997년까지연평균7∼10%의고도성장을지속하였다.그결과1961년에82달러에불과하던1인당국민소득이1995년에1만달러를초과하였다.세계자본주의의역사에서전례가드문고도성장이었다.급격한경제성장은한국인의물질생활과정신생활에실로커다란변화를초래하였다.그것은젊고유능한5·16세력이권력을독점한위에‘조국근대화’에대한강력한의지로써올바른방향의개발정책을일관되게효율적으로추진했기때문에가능하였다.둘째,5·16은이승만권위주의체제의계승이었다는사실이다.박정희대통령은집권18년간에걸쳐이승만건국대통령에대해한마디의존경도표하지않았다.박정희는그자신이새로운역사를만들고있다는확신에서1948년에이루어진대한민국의건국을긍정적으로평가하지않았다.그점에서그는근대화혁명의커다란업적에도불구하고대한민국의정통적역사에부담을남겼다.그렇지만매우역설적이게도그는이승만대통령의더없이충실한계승자에다름아니었다.자유민주주의의국가체제가이승만건국대통령에의해세워졌다면,4·19와5·16은그토대위에서국가경제의곳간을채우는역사적과제를추구하였다.다시말해4·19와5·16은나라만들기의제2단계과제를수행하기위한새로운정치세력이등장하는연속하는두혁명에다름아니었다.반(反)유신투쟁과같은부(負)의역사도기록핵심부의분열로7년을버틴유신체제가무너지다!유신체제는국민의상식적인정치감각에어긋난것이었다.1952년이후여섯차례나대통령을직선해온한국인들은대통령직선제를민주주의의소중한요건으로받아들이고있었다.유신체제는처음부터국민의마음에서멀어져있었다.유신체제는1977년부터위기에접어들었다.그해초에취임한미국의카터대통령은인권외교를내세우며한국의열악한인권상황을비판하였다.카터는박정희를압박하기위해주한미군철수라는카드를들고나왔다.국내의저항세력은카터의비판에고무되었다.1977년가을부터유신체제에반대하는대학생들의시위가다시일었다.유신체제에대한저항으로수감된정치적양심수는1979년1,239명으로급증하였다.유신체제에대한민심의분노는마침내폭발하였다.1979년10월중순부산에서학생시위가일어나일반시민이대거가담하는소요사태로번졌다.시위는마산·창원지역으로확산되었다.정부는급거계엄령과위수령을발동하였다.사태가심각해지면서유신체제의핵심부가분열하였다.시위현장을시찰한김재규중앙정보부부장은민심의이반으로유신체제가한계에도달했다고판단하였다.김재규는10월26일서울궁정동의만찬에서박정희를권총으로시해하였다.이로써7년을버티던유신체제가붕괴하였다.아울러18년에걸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