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2(큰글씨책) (김비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2(큰글씨책) (김비 장편소설)

$23.00
Description
동반자살을 결심한 가족, 비상계단에 갇히다
“희망이라고 다 옳은 게 아냐. 어떤 희망은 후련한 절망만도 못해.” (98쪽)

노력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이 간절한 시대지만, 어느새 희망은 '고문'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어두운 현실을 견디는 데 이야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의 방식은 정면 돌파다. 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암흑으로 몸을 던져, 희망이 아닌 다른 언어로 삶을 비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인 김비 작가는 장편소설 『빠스정류장』,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 등을 통해 꾸준히 위태로운 삶 속에서 반짝이는 힘에 주목해 왔다. 신작『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은, 가난의 쳇바퀴를 도는 데 지쳐 동반자살을 택하지만, 자살이라는 출구조차 막혔음을 깨닫는 한 가족의 '후련한 절망'에서 시작한다.
저자

김비

저자김비는1971년남과북의경계위,삶과죽음의경계위,그리고남자와여자의경계위에서태어났다.
2000년서른살의나이에'여자'라는이름으로다시태어났고,2007년여성동아장편소설공모에「플라스틱여인」이당선되어'소설가'라는이름으로다시태어났다.
2012년세계문학웹진『국경없는문학』www.wordswithoutborders.org의세계퀴어문학을소개하는자리에단편소설「입술나무」의영어판을게재하였고,에세이『네머리에꽃을달아라』를출간했다.
부끄러운기억같은책몇권을썼으며,영화<천하장사마돈나>를만드는데함께했다.

목차

11.계시(啓示)ㆍ07
12.아래로ㆍ21
13.다시위로ㆍ31
14.다시ㆍ49
15.31층반ㆍ64
16.푸른등아래ㆍ80
17.물고기의층ㆍ97
18.다시또아래ㆍ110
19.공중통로ㆍ124
20.계단위의순례자들ㆍ140
작가의말ㆍ147

출판사 서평

▶삶을향해꿈틀거리는이상한절망우리의현실을빼닮은비상계단과등장인물들

『붉은등,닫힌문,출구없음』의주인공남수는달동네에서자랐고여전히가난을벗어나지못한가장이다.택배기사로매일수백개의계단을오르지만생활은나아지지않고,비관으로가득찬그는무기력에빠진아내지애,그리고뇌손상을가지고태어난여섯살아들환이와동반자살을하기로결심한다.그러나마지막만찬을위해들른160층초호화백화점건물의비상계단에갇혀버리고만다.아무리두드려도문은열리지않고,위아래로끝없이이어진계단만이시야를가득채운다.자살시도마저실패로끝나나싶지만,남수는오히려꼭살아서이곳을빠져나가야한다고느낀다.
생에대한그의의지는더나은삶에대한꿈이아니라,절망에뿌리를두고있다.

시커멓게끈적거리기만했던생각의늪속에서,남수는한가지확신이생겼다.남루하기만했던생을빼앗기지않기위해,반드시해야하는것이떠올랐다.(…)기필코여기에서탈출하는것.그리하여나를억압했던생을농락하며,망설임없이내손으로내삶의마지막을선택하는것.(18쪽)

남수가족외에도계단에갇힌이들은여럿이다.비정규직으로취직하면서기초수급대상에서탈락한20대여성가장정화,명예퇴직압박에시달리는명식,'일류대학교수님사모'이지만남모를아픔을가진해숙등,소설의인물들은모두우리와비슷하거나우리가일상에서스쳐지나갔을법한사람들이다.
남수와이들일행은열리지않는문앞에서좌절하지만,더위쪽에있는공중통로로이곳을빠져나갈수있을것이라는누군가의말에마지막기대를걸고계단을오른다.그러다아래에서구조가진행되고있으니내려오라는구조대의방송소리를듣게된다.
하지만계단을내려가는사람들을맞이하는것은오히려지진처럼사방을뒤흔드는진동과불길이다.아직도우리의가슴을아프게하는여러재난들의메아리이다.

“비상등이었다.그런데,붉은색이었다”한편의영화처럼,강렬한이미지와빠른전개를갖춘소설

비상계단이라는한정된장소내에서장편을풀어가는것은난관이될수있으나,작가는과거를회상하는장면과남수가족이외의인물들을적절히등장시켜이야기를빠르게전개한다.문이열릴지도모른다는기대를남수일행이버렸을때공중통로의가능성이제시되고,새로운인물들이제시하는비상계단에대한정보는서스펜스를끌어올린다.
색과이미지가중요한상징으로쓰이기때문에소설은한편의영화처럼읽히기도한다.예를들어,붉은빛으로계단안모든것을물들이는비상등이파란바다색으로바뀌면서이야기의반전이시작된다.또한,소설속인물들이각자어떻게이계단에갇히게되었는지털어놓으면서모두가붉은띠로가로막힌문을통해이곳에들어섰다는사실을알게된다.하지만정확히몇층에서비상계단으로들어왔는지아무도기억하지못하는이유는무엇일까?소설의기본설정에대한의문들과이에대한힌트가곳곳에배치되어재미를더한다.

▶트랜스젠더여성작가가쓴소수자문학몸에대한깊이있는사유돋보여

『붉은등,닫힌문,출구없음』의저자김비작가는트랜스젠더여성으로,영화<천하장사마돈나>를만드는데에도참여한바가있다.성소수자뿐만아니라사회경제적약자,여성등마이너리티의삶에꾸준히주목하면서김비작가는작품속에소수자로살아오며쌓은통찰을담아왔다.
이소설에서는희망에대한관점뿐만아니라,'몸'에대한작가의사유가특별히눈에띈다.공중통로의가능성을제시하는주요인물'수현'은성전환수술비용을마련하려는스무살트랜스젠더남성이다.성별구분이명확하지않다는이유로남수는그를괴물취급한다.
“인생망치는수술이나하려고”한다며남수가그를비난하자,수현은'아저씨는자신이아닌다른것에서삶의의미를찾지만나는나를믿는다'며이렇게말한다.

난아저씨가부럽지않아요.그렇게간단하게살수있는삶이라도…태어나보니그어떤혼란도없이,그저돈벌면행복하고나쁜짓만하지않으면괜찮은그런삶이라도(…)아저씨한테는그게전부인지모르지만,나한테는먹고사는일보다더중요한게있거든요.(85쪽)

한편,남수의아들'환'이는기형적인팔다리를가진아이다.남수는한때환이의탄생에서희망을보았지만,환이는남수가동반자살을결심하게된하나의이유이기도하다.지애또한환이가“족쇄”같은몸에갇혀살고있다며마음아파한다.
하지만환이는오히려“나…안이상한데?(…)나,지금처럼예쁜…내가좋은데?”라고말하며웃는다.'비정상'의몸을가지고있는수현과환은,'비정상'의몸이란본질이그러한것이아니라우리가'정상'을만들어내고유지하기위해부여한의미때문에만들어진다는것을나타낸다.

▶삶과죽음을가로질러암흑속으로또다른발걸음을내디딘다

절망의바닥에가닿은상황에서,남수를일으키는것은역설적이게도'불신'이다.남수는열리지않는문이끝을의미한다는것을의심하고,그가딛고선현실을비관하며삶을꿈꾼다.소설의말미에서,그의아내지애는“당신이나를믿지않든(…)지금우린당신이필요해”라고말한다.
앞으로나아가려면서로가필요하다는고백,그곳에이이야기의핵심이있다.“나의불안과두려움은부끄러운것일까.희망을꿈꾸지못하는내게미래로나아갈자격은없는걸까.”김비작가는이런질문에서부터이소설의집필을시작했다고말한다.
찬란한희망이아니라,어두움과위험이깃든희망을이야기하는『붉은등,닫힌문,출구없음』.지금암흑속으로발걸음을디디려는,디뎌야만하는독자라면,'우리는같은곳에있다'말하며내민이손을기꺼이잡아도좋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