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2(큰글씨책)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나는 나 2(큰글씨책) (가네코 후미코 옥중 수기)

$25.00
Description
▶ 국가와 가부장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의 옥중 수기
이 책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박열의 아내이자 일본의 젊은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1903~1926)가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쓴 수기이다. 그녀는 일본과 조선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같이 생활하고 옥중에서 결혼하였으며, 천황과 황태자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아 수감되어 있던 중 23살의 나이로 우쓰노미야 형무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였다. 지금은 경북 문경 박열의사기념관 옆에 잠들어 있는 그녀의 불꽃 같은 삶은 국내에서 관련 도서나 [KBS 스페셜] 등을 통해 발표된 적이 있다.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 사망 86주기에 맞춰 발간된 이 수기는 어린 시절부터 박열과의 동거까지를 다루고 있다. 독자들은 가네코 후미코가 무슨 생각으로 이 짧은 생을 살았는지,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가네코후미코

저자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1903~1926)
1903년1월25일요코하마시출생.아버지사에키분이치와어머니가네코기쿠노사이에서장녀로태어났지만,출생신고를하지않아‘무적자’로살았다.
1912년,당시충청북도부강에살던고모의양녀가되어조선으로건너가약7년간생활한다.이때외할아버지가네코도미타로의다섯째딸로입적한다.
1919년4월12일조선을떠나일본으로돌아온후미코는1920년봄에상경하여신문팔이를하면서학업을병행한다.거리연설에서,학교에서,일터에서사회주의자들과만난것을계기로사회주의에관심을가지게되었고,특히니힐리즘에심취하였다.
잡지『청년조선(?年朝鮮)』에실린박열의시[개새끼(犬コロ)]를읽고큰감동을받은후미코는1922년4월경부터박열과동지로서동거를시작한다.두사람은흑도회의기관지『흑도(??)』간행에착수하여1호와2호를발간하고,흑도회가해산한이후에는월간지『후테이센징(太い鮮人)』(불량하고불온한조선사람이라는뜻의불령선인(不逞鮮人)을빗대어말함)을발간한다.그리고1923년4월에는박열과함께‘불령사(不逞社)’를결성한다.
관동대지진직후인1923년9월3일,후미코와박열은보호검속명분으로구속되고10월10일치안경찰법위법으로기소된다.1924년2월15일폭발물취급벌칙위반으로추소,이어1925년7월17일박열과함께대역죄및폭발물취급벌칙죄로기소된다.1926년2월26일,후미코와박열에대한대심원특별형사부의공판이시작되고3월25일에는사형선고를받는다.이어4월5일,무기징역으로감형되지만7월23일우쓰노미야형무소에서목을매어자살하였다.

목차

3부다시고향으로
고향으로돌아가다ㆍ009
호랑이굴로ㆍ024
소용돌이치는성ㆍ045
안녕히계세요,아버지ㆍ076

4부독립
도쿄로ㆍ081
작은외할아버지댁ㆍ083
신문팔이ㆍ091
노점상인ㆍ116
식모살이ㆍ134
거리의방랑자ㆍ149
일!나자신을위한일!ㆍ174

맺음말ㆍ201
역자후기ㆍ202

출판사 서평

▶“저주받은나의생활최후의기록”
가네코후미코의삶은불행의연속이었다.가난하고서로사이가좋지못했던부모님사이에서태어난그녀는출생신고를하지않은‘무적자’인탓에취학연령이되어도학교에다닐수없었다.사설학교에서잠시공부했으나이마저도생활고때문에오래가지못했다.아버지는어머니의여동생(후미코의이모)과새가정을꾸리고어머니도재혼을거듭하면서후미코는친척집에서지내다1912년에당시충청북도부강에살던고모의양녀가되어조선으로건너가약7년간생활한다.그곳에서식모로전락한후미코는자살까지결심할정도로가혹한정신적,육체적학대를받았다.
수기의많은부분을차지하는조선에서의유년기는그녀의인격형성에도많은영향을미쳤을것이다.힘들고고통스러운시간속에서도후미코는배움을열망하게되었고,부당한폭력에대한투쟁을마음먹게되었으며,자신처럼고통받는다른사람들을동정하게되었다.

▶“나는나자신이어야만한다.”
1919년에파양되어일본으로돌아온후미코는다음해봄에배움의뜻을안고도쿄로상경한다.신문팔이,노점상,행상,식모등여러직업을전전하며고학의길을걸었지만도쿄에서의생활역시순탄치않았다.그녀는부지런히공부해서남들이선망하는‘성공한삶’을사는것은자기인생의목표가될수도없고되어서도안된다는사실을깨닫는다.

모든일에열정을갖던당시나는고학을해서훌륭한사람으로성장하고싶다는것을유일한목표로삼았다.하지만확실히깨달았다.지금과같은세상에서는고학을하더라도훌륭하게될수없다는것을.아니.그뿐만이아니다.훌륭하다고대접받는사람만큼별볼일없는사람은없다는것을.주변사람들이훌륭하다고말하는게무슨의미가있나.나는주변사람들의평가를위해사는것이아니다.나자신을위한진정한만족과자유를얻어야하지않겠는가.나는나자신이어야만한다.
나는너무나많은사람들의노예로살아왔다.참으로많은남자들의장난감으로살아왔다.나는나자신을살지않았던것이다.
나는나자신을위한일을해야한다.그렇다.나자신의일이다.그러나나자신의일이란무엇이란말인가.나는그것을알고싶다.그것을깨달아실천하고싶다.(‘일!나자신을위한일!’)

이후후미코는더이상고학에만의지를불태우지않는다.사회주의자,부르주아,조선인유학생,기독교도등여러계층의사람들을만나는동안그녀는자신이하고싶고또한해야만하는일이무엇인지에대해끊임없이고민하였다.
히비야에있는속칭‘사회주의오뎅’이라불리는요릿집에서일하던어느날,『청년조선(?年朝鮮)』에실린박열의시[개새끼(犬コロ)]를읽고큰감동을받은후미코는1922년4월경부터박열과동거를시작한다.그러나후미코를박열의부인,전시에조선인과결혼한일본인여성으로만바라보는시선에는문제가있다.그녀는조선인독립운동가의일본인아내이기이전에이미독립적이고주체적인혁명가였다.

▶“모든환경속에서학대받을만큼학대받은나의운명에감사한다.”
만나는사람들마다,심지어친척과가족마저도그녀를끊임없이학대하고억압했지만가네코후미코는결코나약해지지않았다.오히려고난에감사하고그것을자신이성장하는계기로삼았다.또한주어진상황을무력하게비관하는대신적극적으로바꾸어나가려고노력했다.

내가유복한가정에서태어나지않고,가는곳마다모든환경속에서학대받을만큼학대받은나의운명에감사한다.왜냐하면만약내가나의아버지나외할머니외할아버지집에서부족함을모르고자랐다면,아마나는내가그토록혐오하고경멸하는사람들의생각과성격,생활을그대로받아들여결국에는나자신을발견하지못했을것이기때문이다.하지만운명적으로불운한탓에나는나자신을발견할수있었다.그리고나는벌써열일곱살이되었다.나는이미자립할수있는연령에달해있다.그렇다.나는내삶을스스로개척하고스스로창조해야한다.(도쿄로!)

아무리우리사회에서이상을가질수없다고하더라도우리에게는자신을위한일이있다고나는생각했다.그것을성취하든성취하지않든그것은관여할바가아니다.우리는그저그것을진정한일이라고생각하면된다.그렇게하는것이,그러한일을하는것이우리자신을위한진정한생활인것이다.나는나자신을위한진정한일을하고싶었다.그렇게함으로써우리의생활은곧우리와일치된다.먼저편에이상적인목표를두는것과다른것이다.(‘일!나자신을위한일!’)

그녀를둘러싼환경은언제나열악했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가네코후미코는항상성실하고솔직했으며자신의욕망과이상에충실했다.힘든상황에서도끊임없이배우고일함으로써자신의자립과진정한독립을추구했다.천황제와군국주의,가부장제와남성우월주의라는폭력적인이데올로기들에맞선한여인의투쟁의삶을담은이수기는어떠한재산도가지고있지않은가네코후미코가독자들에게보내는유일한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