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시간 1(큰글씨책) (정영선 장편소설)

물의 시간 1(큰글씨책) (정영선 장편소설)

$23.00
Description
조선의 시간, 명성황후와 함께 사라지다
이번에 큰글씨책으로 발간한 『물의 시간』은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시간’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또 명성황후야” 하고 지겨워하는 독자를 위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당신은 말하고 싶을 거다. 아직도 명성황후냐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 영화, 드라마, 뮤지컬, 장편소설이 줄줄이 나온 걸 모르냐고. 한심함을 감추느라고 짐짓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난들 왜 그 사실들을 모르겠는가. 진짜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지만 아래의 두 문장 때문에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명성황후라는 한 개별적인 인간의 죽음과 한 시대의 죽음을 ‘시간’이라는 테마 속에 겹쳐놓았다. ‘시간’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소설 속 공간은 역사적인 죽음과 개별자의 죽음 사이의 낙차를, 상징적인 죽음과 물리적인 죽음 사이의 시차를 가시화한다. 작가는 그것을 ‘조선의 시간’과 ‘근대의 시간’ 사이, 혹은 틈새라고 부른다. 물시계가 멈춘 사건은 그 자체로 시간의 멈춤이라는 상징성을 환기한다. 왕후의 죽음에 가까워져 올수록 물시계의 죽음은 시대의 죽음과 궤를 같이한다. 시간의 멈춤은 시간 자체의 정지가 아니라 시간을 측정하는 개념의 폐기를 의미한다. 시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는 소설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저자

정영선

저자정영선
1963년경남남해에서태어났으며부산대학교역사교육과와동대학원국문과를거쳐경성대학교국문과박사과정을수료했다.1997년중편「평행의아름다움」으로《문예중앙》을통해등단하였으며소설집으로『평행의아름다움』(문화예술위원회우수문학도서선정),장편소설로『실로만든달』이있다.부산소설문학상,부산작가상,봉생문화상(문학)을수상하였다.2013~2014년교육부파견교사로경기도안성의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내청소년학교에서근무하였다.이때의경험이바탕이된2018년최근작『생각하는사람들』을출간하였다.

목차

물시계가죽던날ㆍ009
북소리를기억하는사람들ㆍ069

출판사 서평

▶40대중반폐경이시작된여성으로서의명성황후에주목
이소설은중세와근대의시간이교차하는1895년조선을배경으로조선에사는사람과조선에온사람의시간의식이다르다는것,서양시간과조선시간을둘러싼권력,그와중에벌어진명성황후의시해사건을중심줄거리로전개된다.저자는여기서사실시간이라는것은누구나알고있는듯하지만사실아무도시간에대해서잘알지못하다는것과,명성황후에대한분분한이야기중40대중반폐경이시작된여성의우울과불안,그리고비숍여사를만났을때의충격에주목한다.

왕후가운명하신지한달만에밤의시작과끝을알리던누각의물시계가멈춘것이다.마흔중반,폐경직전이거나갓폐경을맞이했을왕후가자주생각났다.어디왕후뿐이겠는가.조선도폐경직전이었고그럼에도옳고그름,좋고나쁨을떠나오직조선의것이기때문에지키고자했던사람들의아름다움이자꾸들려왔다.(작가의말중에서)

▶전루군봉출과명성황후의사랑
신경숙의『리진』과김탁환의『파리의조선궁녀리심』이명성황후의시녀였던리진을중심으로이야기를전개하고있다면정영선의『물의시간』은전루군봉출을중심으로이야기가전개된다.수십년간물시계에물을채우고,잣대를확인하고파루(罷漏)시각을알려온전루군봉출은오늘도어김없이파루를알리는북을친다.그러나궁궐안은오늘울린파루의북소리에대해시각이맞느니안맞느니말들이많다.왕후를마음에품은전루군봉출은왕후를위해북을치고,왕후는수십년간들어온그북소리가맞는다는걸몸으로안다.그러나왜국영사관직원은시각이틀렸다고불평하고,급기야봉출은의금사로끌려가게된다.

“시간이란게원래몸에새겨지는게아니겠소이까.내수십년간그소리를듣고아침저녁을맞았습니다.이제내몸이그북소리에익숙해져있을터인데오늘새벽의파루는내몸과한치의빈틈이없었소이다.내자세히는모르나그전루군은아주오랫동안누각에있었던것같은데…….”

왕후를마음에품은전루군봉출이왕후를위해북을칠수있었던이유는그둘이공유한과거의기억이과거와현재사이를오가는매개자의역할을했기때문이다.왕후에대한봉출의사랑은이소설의핵심적인부분을차지하는데,그럼에도불구하고그사랑은세속적인열정으로그려지지않는다.여기서사랑은남녀간의사랑이기도하지만,침묵해야하는자들의공감과연민의다른표현이기도하다.왕후는생의마지막순간에가서야자신이수십년간들어왔던파루의전루군이름이어릴적만났던봉출임을알게된다.


“빌고빌어제속으로난세자까지도가끔희미할때가있는데어린시절만난박봉출만어찌이리생생한지…….왕후는일순시간이정지되어있는것같았다.사직을위해서,왕후를위해서누각의종을울린다는영상의말이귀에생생했다.”

▶직관과내면의언어로왕후와소통하는이방인‘비숍여사’
왕후의말벗이면서이방인의시선으로조선을관찰하는등장인물‘비숍여사’는소설속에서‘지리학자’로등장한다.그러나지리학자는단순히서구의이론으로조선을평가하려들지않는다.여행하는자가체험을통해서얻은교훈은경계의모호함에대한자각에가깝기때문이다.비숍여사가들려준「이상한나라의앨리스」의토끼동굴은왕후의공간을의미하기도한다.시간이과거와미래양방향으로흐르는토끼굴은과거의시간과미래의시간이혼융된왕후의시계(視界)와일치한다.언어가통하지않는지리학자와왕후는직관과내면의언어로소통한다.

작가는지리학자의내면을통해“자신이말을하는게아니라자신의말을듣는것같았다”고표현한다.그것은불가능해보이는소통의가능성을보여주는표현일것이다.“보이지않는다해서알수없는건아니”며“보는방법이다를뿐”이라는다소직설적인표현은소통이라는이소설의핵심적테마를보여주는것이다.다양한시간성이뒤섞여있는공간에서만나는사람들간의소통은언어의소통가능성이아니라언어의소통-불가능성에의해서,비로소가능해진다.(해설-양윤의문학평론가)

▶한인간의삶을보여주는아름다운연서
이소설은한인간의죽음을전하는비통한부고이자,한인간의삶을보여주는아름다운연서이다.비극적인죽음으로봉합된왕후의삶은물기가마른뒤종이위에남은작은소금알갱이처럼딱딱하게굳어있다.그것은검은잉크로쓴글씨를지우지않는작은알갱이에불과할것이다.작가는그것을‘여인의역사’라고불렀다.죽음은역사라는의미맥락안에포섭되기보다는역사를향한질문으로끝없이되돌아온다.그것은우리가“외롭지도서럽지도않아도”떠오르는질문이다.작가는한편의연애편지를손에들고우리에게천천히읽어주고있는셈이다.우리가알고있었던한여인의죽음(비밀)에대해서,그리고우리가모르고있었던한여인의삶(이야기)에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