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산 1 (빨치산 구연철 생애사)

신불산 1 (빨치산 구연철 생애사)

$25.00
Description
이념의 대립 속에 가려진 인물과 역사를 다시 조명하다
영남알프스 빨치산 구연철의 일대기
해방 전후 격동의 시기에 이 땅을 뒤흔든 빨치산 투쟁, 그 현장을 지켜온 영남알프스 빨치산 구연철의 일대기를 담은 『신불산』이 재출간됐다. 장편소설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을 집필한 안재성 작가는 구연철의 생애를 통해 남·북의 이념 대립으로 가려진 역사와 인물들에 집중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어린 나이로 해방을 맞은 구연철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전쟁을 맞이하면서 빨치산을 찾아 신불산에 들어가 활동했던 기록이 담겨 있다. 작가가 오랜 기간 구연철과 직접 인터뷰를 하여 구술사 형식으로 집필하였다. 일본에서 보낸 구연철의 어린 시절, 해방과 더불어 벌이게 되는 빨치산 투쟁, 1954년 체포된 후 20년 동안의 감옥 생활, 그리고 출옥 후 사회인으로 살아온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저자

안재성

1960년경기용인출생.광주민주화운동과관련하여계엄포고령위반으로,광산노동운동과관련하여국가보안법위반으로옥살이를했다.장편소설『파업』,『황금이삭』,『경성트로이카』등을썼으며이현상,이관술,박헌영등에대한인물평전을썼다.노동운동기록으로는『청계내청춘』,『한국노동운동사』등이있다.이념대립으로가려진역사와인물들을복원하는일에열정을다하고있다.

목차

서문잊혀진전쟁의기억들

1.영광의문
2.지옥의문
3.분노의서울
4.입산
5.신불산
6.입당
7.갈산고지

출판사 서평

▶영남지역빨치산투쟁의근거지가된신불산
격동의해방공간,그리고전쟁.치열한좌우대립속에수많은빨치산들이자신의이념을지키기위해싸웠던사실은역사적으로주지의사실이다.특히빨치산들은지리산근방에서대규모로활동했지만그외에도전국적으로널리분포했다.영남지역에서는신불산이그근거지가되었다.해발1,209미터신불산일대는간월산,영축산,재약산,가지산,운문산등고봉들이몰려있어영남알프스라고불리기도하는데,높은봉우리와크고작은계곡들은빨치산활동에최적지가되었다.이곳은1948년가을부터본격적으로빨치산이형성되어있었는데,전쟁발발이후에는동해남부유격대정예부대가이북에서내려와서기존에존재하던빨치산들과합류하여함께활동하게된다.

▶일본에서보낸어린시절
양산에서태어난구연철이일본으로건너간것은아홉살때였다.일본나가사키근처에하시마라는섬이있었는데,그곳에무기를만드는미쓰비시중공업이직영탄광을운영하고있었다.구연철의아버지는바로거기서탄광노동자로일을하였고,온가족을이주시킨것이다.양산들녘의푸르른자연을바라보고자라던구연철은풀한포기나지않는이섬에서학교를다니며7년을지내게된다.그러다가구연철이고등과2학년이되던1945년어느날,컴컴하던방안까지갑자기섬광이번쩍하는데,바로나가사키에핵폭탄이투하된것이다.구연철은나가사키에나가참혹한현장을직접목격한다.그리고8월말,가족들과함께양산으로귀향한다.

▶서울에서학교를다니다가전쟁과더불어입산
귀국한후서울에서고등학교를다니면서인쇄소에서일하던구연철은해방이되었지만여전히친일,친미세력이득세하는사회현실에눈을뜨게되고,이후인쇄노조활동을하다가붙잡혀49일동안감옥에서호된곤욕을치른다.이후대학에입학하였지만심해진예비검속을피해고향집으로돌아왔다가전쟁이발발하자신불산에입산하여빨치산활동을시작한다.
1950년7월입산한이후1954년4월하산하여경찰에체포당할때까지3년9개월동안의빨치산활동기간은희망과절망이교차하는시간이었다.조선노동당경남도당동부지구당으로입당하여대민조직사업으로활동영역을넓혀가는일은나름대로보람이있었다.이후유격활동까지전개하다가전쟁이막바지에이르는1953년부터는수세에몰리게되고,휴전이성립된후에는대규모토벌작전에목숨을내놓아야하는상황에까지내몰린다.

▶하산후체포당해20년간감옥살이를하다
옥죄어오는토벌대에게총을맞아목숨을잃을위기까지겪은후가까스로살아남은구연철은지하당건설을위해하산했다가1954년부산에서체포된다.이후감옥에서20년동안장기수로생활하게된다.장기수로생활하면서도불의를보면참지못하는성미는여전하였다.교도소용도과장이식량을빼돌리는걸밝혀내기도하고,정해진운동시간을지키라시위를하기도하였으며,1972년유신헌법제정이후대대적으로벌어진전향공작에대항하여말로는못할고초를겪기도하였다.

▶출옥후사회생활,그리고오리농장
1974년,감옥에들어간지20년만에출옥하여사회로돌아오게되었다.부모님은다돌아가셨지만일곱형제들이맏이인구연철을반겨주었다.여동생의소개로결혼까지하였지만,출옥한사상범들을집중감시하는사회안전법은그의생활을끊임없이옥죄었다.막노동이나가능할뿐제대로된직업을가질수없던구연철은80년대후반,해운대에서오리농장을하면서자리를잡을수있었다.그사이오랜민주화투쟁으로세상도많이변했기때문에가능한일이었는데,사회단체,노동조합모임장소로많이들찾아주었다.나이도들고더이상여력이없어지금은문을닫았지만,1989년에문을연이래20년동안구연철의오리농장은부산과경남지역진보운동가들의명소가되었다.

▶통일을염원하는평범한노인일뿐
지난한세월을보냈지만구연철은한번도자신의삶을후회해본적은없다.그동안우리사회는정치민주화는많이이루어진듯보이지만신자유주의시대에자본주의경제모순은더욱심화되었다.하지만민족의미래에대한그의전망은대단히낙관적이다.오리농장을할때도많은시간을통일운동에보냈지만,그만둔이후로는일주일이면서너차례이상온갖집회와모임을찾아다니는것이일과가되었다.통일에직접관련된모임뿐만아니라노동자집회와파업현장,민주화시위현장,민주노동열사추모행사,진보정당선거운동등어디든찾아다녔다.현장에서조용히자리를지키고앉아있으면사람들은그가와준것만으로도든든하게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