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성 재발견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단초)

왜성 재발견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는 새로운 역사 인식의 단초)

$25.00
Description
▶ 31개의 왜성을 통해 420여 년 전 역사 속 그날을 깨워본다
역사상에는 기쁨의 역사와 슬픔의 순간이 공존한다. 희비(喜悲)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재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도려낸 단정의 역사, 망각의 역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희망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왜성은 임진왜란이라는 420여 년 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블랙박스다.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에서 전남 여수까지 한반도 동남해안 일대에 분포해 있으며 이제는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일본 고유 양식 성곽의 원형이 남아 있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왜성은 임진왜란의 침략을 대변하는 유적으로 인식돼 홀대를 받아왔다. 이에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은 31개의 왜성 전체를 취재하여, 임진왜란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책에서만 볼 수 있는 420여 년 전의 임진왜란, 왜성을 통해 역사가 되어버린 그날의 기억을 깨워본다.
저자

신동명

1989년3월1일한겨레신문사에수습공채2기지역기자로입사해28년째부산과울산에서취재활동을하고있다.초기에는1990년4월울산현대중공업노동조합의‘골리앗파업’을비롯해주로울산지역노동운동과진보적인시민사회단체활동에관심이많았고,최근들어산과자연,우리역사와그흔적을찾아보는일에특별한흥미를느끼고있다.이런관심과흥미의대상과관련한글을써서책을펴내는게꿈이다.

목차

책을펴내며
추천사
들어가며

1.왜군,부산에왜성을쌓다-부산증산·자성대·박문구·추목도왜성
2.동래읍성의아픔을420년만에발굴하다-부산동래왜성
3.임진왜란은‘도자기전쟁’이었다-부산기장죽성리·임랑포왜성
4.한반도분단위기막았던‘서생포회담’현장-울산서생포왜성
5.왜구막아냈던‘신라의성’에왜성이들어서다-부산구포·양산·호포왜성
6.낙동강물길을장악하다-낙동강변죽도·농소·마사왜성
7.왜군,진해에수군기지를건설하다-진해웅천·안골·명도·자마왜성
8.가덕도를점령해남해안바닷길을확보하다-부산가덕왜성과지성
9.조선수군에게한부로싸움을걸지말라-거제영등포·송진포·장문포·견내량왜성
10.조선수군,남해바다를빼앗기다-마산·고성·남해왜성
11.왜장가토,우물없는‘철옹성’에갇히다-울산왜성
12.조·명연합군,어이없는패배를당하다-사천왜성과진주망진왜성
13.임진왜란7년전쟁의마지막전투를벌이다-순천왜성

출판사 서평

▶왜성에대한오해와진실
‘왜성,어디까지알고있니?’

조선에침략한직후부터부산에전진기지구실을할성을쌓기시작했던왜군은1593년남쪽으로후퇴한이후명나라와강화교섭을진행하면서부산을중심으로한동남해안에집중적으로성을쌓았다.1597년강화교섭이결렬되자,왜군은정유재란을일으켰고전라도와충청도를확보하기위해울산,경남,전남등에추가로성을쌓았다._'들어가며'중에서(p.13)

임진왜란7년동안왜군은울산에서전남순천까지동남해안일대에성을쌓았다.현재행정구역으로왜성은부산11개,울산2개,경남17개,전남1개등모두31개이다.왜군이임진왜란때조선에설치한군사시설은훨씬많지만,관련학계가성으로인정하는것은이31개의성이전부이다.
‘왜성’이라는명칭은왜군이쌓은성이라하여명명된것으로,대부분강이나바다근처의사방을내려다볼수있는독립된구릉에자리잡고있다.왜성은조선의읍성과는달리겹겹이둘러친성곽을바깥에서부터하나씩차례로뚫어야하는구조로,방어하기에좋은성이다.실제로임진왜란동안조·명연합군에의해점령된왜성은하나도없었다.
이런왜성을사람들은얼마나알고있을까?왜성은존재자체가생소하기도하고,한편으로는부정적인식을주기도한다.임진왜란당시왜군이만든성이기때문에우리민족치욕의상징물이인지되기때문이다.하지만왜군이왜왜성을쌓았는지그역사적사실에다가가면그인식은바뀌게된다.

1592년조선을침략한왜군이이듬해부터남해안에집중적으로성을쌓은것은성에의지해조·명연합군의공격등에최대한버티다가여의치않으면바닷길을통해일본으로안전하게철수하려했기때문이다.따라서왜성은치욕의상징물이아니라,임진왜란이라는절체절명의국난을극복한우리조상이자손들에게당당히물려준전리품이다.-'들어가며'중에서(p.14)

우리역사의한단면이자국난을극복한조상들의당당한전리품,왜성.이제왜성에대한오해와편견을거두고,새로운역사인식의주춧돌을놓을필요가있다.

▶“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
아픈역사에대한외면이왜성을사라지게만들다

왜성은16세기말조선전역에서벌어진임진왜란이라는한·중·일동북아3국간의7년국제전이남긴특수한산물이다.실제로임진왜란첫전투인부산진성전투에서마지막해전인노량해전에이르기까지모두왜성을통해현장을확인할수있고,그당시상황을돌이켜볼수있다.
하지만20세기초일제강점기를겪은국민들사이엔왜성을‘조선이침략해쌓은부끄러운역사의상징물’로바라보는시각이만연해있다.이러한태도는우리삶의터전가까이에있는왜성을방치하게했고세월이지남에따라왜성이라는존재조차잊게했다.즉,아픈역사에대한외면이사람들에게왜성의존재를지우게한것이다.

박문구왜성은용두산에서남쪽으로이어지는용미산에있었다고하는데,부산항매립등개발바람에휘말려현재용미산은흔적도없이사라진상태이다.(…)추목도왜성과박문구왜성의위치는여전히제대로파악되지않고있다.개발등에휘말려왜성이사라졌기때문이다.들어선건물때문에왜성터로추정되는땅을파헤쳐조사할수도없다.그렇게왜성은우리곁에서사라지고있다._P.29

부산박문구왜성외몇몇왜성들은관공서건물과지하철기지창건설등개발바람에휘말려문화재조사조차제대로이뤄지지않은채흔적도없이사라졌다.학계와언론의무관심속에서개발과맞물려왜성에대한곱지않은시선이여전히존재한다고할수있다.
한때,왜성은지정문화재에서해제되어우리역사에있어미아가될뻔한적이있으며,‘허물어버리자’는극단적인주장이일때도있었다.다행히현재는지방기념물로서타문화재와동등하게보호받고있으나아직학계와언론의무관심,일반인들의부정적인식은여전하다.

▶왜성을통해우리역사의아픈과거를현대적시각으로재해석하다

2005년4월부산동래구수안동부산도시철도4호선수안역건설현장에서소동이벌어졌다.조선시대동래읍성주위에있던것으로추정되는성곽방어시설‘해자(垓字)’가발견된것이다.(…)이렇듯임진왜란당시왜군에끝까지저항하다스러져간조선백성들의주검이동래읍성해자에아무렇게나던져졌다.우리역사에서잊혀미처수습하지못했던조선백성들이420여년만에세상에나왔다._p.33~34

부산도시철도수안역공사현장에서나온81명의유골,성벽돌없이윤곽만남아있는옛동래읍성과동래왜성,그리고전쟁이후쌓은새동래읍성등은임진왜란이라는우리역사의아픔을되새기게하는증거물이자,동시에임진왜란이라는국난을극복하고이어져오는한국사의증거물인것이다.더불어일반인누구나쉽게접근할수있는곳에위치한왜성은우리네삶속에서자연스레익힐수있는역사교육의훌륭한교재가되기도하고,나아가국제적관광자원으로활용할수있는가능성도크다.

왜성은16세기한ㆍ일관계사의규명되지않은역사적비밀을고스란히담고있다.게다가왜성은일반인누구나접근할수있는가까운곳에있다.이에우리가까이에있는왜성을,다시는되풀이하지말아야할역사적교훈으로삼아야한다는목소리가커지고있다._‘책을펴내며’중에서(P.5)

아무도관심을가지지않는왜성에대한취재를시작한것에대해저자는“우리의입장에서왜성을새롭게조명해보고싶었다”고전한다.더불어“편견의역사를바로잡으려는역사인식의시작”이라고덧붙였다.한반도곳곳에흩어져있는왜성은우리역사의한단면이다.우리역사의증거물인왜성을통해선조들이처한당시의상황을재조명하고반성해보는것도의미있는일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