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관객은이미해방된존재이다.”추구되어야할목표가아니라전제되어야할정치적원칙이다.
예술가와관객사이의앎과무지,능동과수동의위치라는전제에대한미학적전복
예술가와관객,창작자/생산자와향유자/소비자사이지적불평등을제거하려는실천
교육,정치,문학,영화,미술등분과학문의경계를넘나들며사유하는자리옮김의철학자랑시에르가동시대예술에제기하는‘지적해방’‘지적능력의평등’이라는비판적사유
1.“곰곰이생각해보니지적해방의사유와오늘날관객에관한물음사이에...
“관객은이미해방된존재이다.”추구되어야할목표가아니라전제되어야할정치적원칙이다.
예술가와관객사이의앎과무지,능동과수동의위치라는전제에대한미학적전복
예술가와관객,창작자/생산자와향유자/소비자사이지적불평등을제거하려는실천
교육,정치,문학,영화,미술등분과학문의경계를넘나들며사유하는자리옮김의철학자랑시에르가동시대예술에제기하는‘지적해방’‘지적능력의평등’이라는비판적사유
1.“곰곰이생각해보니지적해방의사유와오늘날관객에관한물음사이에아무런뚜렷한관계도없다는것이또한기회인듯보였다”
:바르트가말하는저자의죽음,랑시에르가말하는관객의해방/해방된관객
“아이유님.제제는그런아이가아닙니다.”
“출판사가문학의해석에있어엄정한가이드를제시하는것은옳지않다.모든문학은해석하는자의자유와역량위에서시시각각새롭게발견되는것이다.제제는출판사에동의하지않을것이다.”
“전시장에가면작품에손대지마세요,라는경고문을보게됩니다.왜손대지말아야할까요.”
“아이유‘제제.’문학작품에대한해석을출판사가독점할수있다고믿는것은이시대에웬만큼무식하지않으면할수없는망발이죠.”
작년,외국소설『나의라임오렌지나무』를모티프로삼은가수아이유의신곡「제제」가낳은소아성애논란을둘러싸고해당출판사와[그들스스로관객이기도한]한작가[예술가]및두비평가가작품과관객을사이에두고SNS에서벌인설전이다.
수동적이며무지하다고전제되는관객들혹은구경꾼들은이같은설전에대해,작품과자신들사이를‘매개’하는‘스승’의‘설명’에대해어떠한생각을할까?한국을찾기도했던랑시에르가이설전에코멘트를요청받았다면그는어떻게답할까?
『해방된관객』은랑시에르가지적해방의사유와오늘날관객에관한물음에답하는책이다.랑시에르는『무지한스승:지적해방에관한다섯가지교훈』(1987)에서교육의문제를지적능력(지능)의평등이라는철학적·정치적문제로옮겨사유하는지적모험을펼쳤다.그는‘무지한스승의테마’를가지고관객에대해논해달라는요청을받는다.이요청에답하는『해방된관객』은『무지한스승』에서시작된또하나의모험담으로,지적불평등의고리,지적해방의사유를연극과관객이라는예술(연극,회화,사진,영화,비디오,퍼포먼스등)의영역으로확장해오늘날‘해방된관객’,‘평등한관객’의자리를찾는다.[『해방된관객』의한국어판역시『무지한스승』을옮긴양창렬번역가가맡았다.]
지능의불평등이교육학의신화이듯,관객의수동성이고전연극패러다임의불평등주의적전제에지나지않다면,관객이작가의의도와상관없이작품을지각하고해석하고비교하고생각하고표현하는능력을갖고있다면,관객은그자체로이미해방되어있는것일까?그렇다면관객이어떻게해방되는가라는물음은관객의해방되지않은상태를전제하기에잘못제기된물음은아닌가?『무지한스승』의도식을예술에적용하는『해방된관객』에서해방하는스승에해당하는심급이존재하는가?관객자체가이미해방되어있다면관객이작품을만나개인적모험을하며자신의역량을증대하는지혹은그런역량의발휘를가로막는제도나장치가무엇인지에대한분석은무용해지지않는가?
랑시에르는한인터뷰에서이런의문을해소한다.관객이하는것은결국‘주의’라고,주의란시선이나청취를끌고감으로써관객이제고유의저작을만들어내는것을가리킨다고했다.다시말해,“어떤작업의결과물앞에있는자가그결과물을전유하여제것으로만들때해방이있다고말할수있겠다.그림이있다는사실에,그림을바라본다는사실에그자체로해방의형태가있는것이아니다.[스스로]시선을이끄는가운데해방이있으며,그것이내가관심을갖는측면가운데하나이기도하다.”요컨대“관객이된다는것은,자신이읽거나보거나들은것이낳은새로운가능태들에의거해관객이기존의것을변이시키는조건들을구축하는것”이라는말이다.
2.“관객이된다는것”―“아무나에게속하는느끼고말하고생각하고행동하는능력”:관객은거리를둔구경꾼인동시에스펙터클에대한능동적해석가이다
연극에서배우(acteur)와관객(spectateur)은그단어의로마어원이가리키듯각각능동적인행위자(actor)와수동적인구경꾼(spectator)을말한다.행위/인식과보기의구분이연극에뿌리깊이박힌것이다.이러한나눔에답하는몇가지정식이있다.플라톤은연극이공동체에끼치는해악을비판하며연극을폐지하고무용공동체를대안으로내세운다.베르톨트브레히트는연극안에서배우와관객의동일시/정체화를방해하고관객이‘인식하는’관찰자가되도록유도한다.앙토냉아르토는관객을거리를두고바라보는관찰자가아니라연극안에‘참여’하여생의에너지를얻는구성원으로만든다.브레히트와아르토의방식은대립되는것같지만사실은동전의양면이다.두연극개혁자는모두연극이라는매개를이용해플라톤이하고자했던것,즉관객을능동적존재로변환하기를이뤄내려한것이다.랑시에르는배우와관객사이불평등을제거하려는기획이전자의능동성과후자의수동성이라는근본전제를되풀이하는한에서만유지되며,이것이『무지한스승』의‘불평등의고리’,‘바보만들기’와닮아있다고본다.
해방은보기와행위사이의대립이의문에부쳐질때시작된다.해방은말하고,보고,행하는관계들을구조짓는명증성들자체가지배와예속의구조에속한다는사실을우리가이해할때시작된다.해방은보기역시이위치분배를확인하거나변형하는행위일수있음을이해할때시작된다.
관객역시학생이나학자처럼행위한다.관객은관찰하고선별하고비교하고해석한다.관객은자신이본것을그가다른무대에서,다른종류의장소에서보았던다른많은것들과연결한다.관객은자기앞에있는시의요소들을가지고자기만의시를짓는다.관객은퍼포먼스에참여한다.퍼포먼스를자기방식대로다시하면서,예를들어퍼포먼스가전달한다고간주되는생의에너지를회피하면서퍼포먼스를단순한이미지로만들고이단순한이미지를자신이책에서읽었거나꿈꾸었던,자신이겪었거나지어냈던이야기와연결시키면서말이다.그리하여관객은거리를둔구경꾼인동시에자신에게제시되는스펙터클에대한능동적해석가이다.
바로이것이요점이다.배우나극작가,연출가,무용수또는퍼포머가하듯관객들이그들나름의시를짓는만큼,관객들도뭔가를보고느끼고이해한다.극작가나연출가는관객이이러한것을보고,저러한것을느끼고,이러한것을이해하고그로부터저러한결론을끌어내길바랄지모른다.이것이바보를만드는교육자의논리요,[어떤것이]동일하게똑바로전달되어야한다는논리이다.
3.관객의역설―관객은무지한자,수동적인자라는기존질서와단절하는관객의주체적역량:아무나의지적인평등에서출발하는감성적[미학적]해방―해방된관객,민주주의적인민
‘보는자는볼줄모른다.’
이전제는플라톤의동굴에서스펙터클사회에대한고발에이르기까지우리의역사를관통한다.관객의해방이란―이러한전제와달리―관객이자신이본것을보고,자신이본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