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정치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제국의 관객)

소리의 정치 (식민지 조선의 극장과 제국의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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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소리의 정치』는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최근 본격화된 한국의 토키 이행기를 더욱 예리하게 살피고 폭넓게 탐구하는 책이다. 식민지 시기 영화에 관한 풍부한 해설과 도판을 통해 당대의 극장이 얼마나 역동적인 공간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운드 테크놀로지의 문화 정치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

이화진

저자이화진은연세대학교국문과에서「식민지조선의극장과‘소리’의문화정치」(2011)로박사학위를받았다.일본교토대학의외국인공동연구자(2011~2012)를거쳐,현재는인하대학교한국학연구소의HK연구교수로재직중이다.지은책으로『조선영화―소리의도입에서친일영화까지』가있고,『조선영화란하오』,『조선영화와할리우드』,『전쟁과극장』,『월경하는극장들』,『식민지검열,제도·텍스트·실천』,『기억과전쟁』등의공저가있으며,『페미니즘위대한역설』을공역했다.

목차

책머리에

1장.식민지의극장과‘소리’
식민지의다이글로시아와조선영화
극장과‘소리’에관한연구의궤적
(목)소리와말의영화
이책의구성

2장.토키이행기극장의문화적지형변화
1.식민지극장과다이글로시아
1두민족,두언어,두극장
2‘동족(어)공간’의정치적잠재성
2.외국발성영화의도래와‘방문자막(邦文字幕)’의출현
1무성영화기외국영화의수용:과잉혹은유연성의조건들
2초기외국어발성영화의상영방식들
3‘방문자막’의출현과정착
3.상영의표준화와극장의문화정치적위상변화
1‘육성(肉聲)’에서‘발성(發聲)’으로
2‘동족(어)공간’의쇠퇴와상영의문화적지형변화

3장.‘발성’하는신체와‘조선영화’의형성
1.조선어영화의등장과조선영화만들기
1‘음화(音畵)’로의재출발
2조선어대사로영화만들기:나운규의시도와좌절
3문학과영화,그리고조선영화의‘신세리틔’
2.초기조선어영화의사운드실험
1경성촬영소의토키토착화시도
2‘사운딩코리안’:조선영화의음악,노래하는조선
3육체와음성의사운드몽타주
3.‘발성’하는신체:목소리와신체,그리고스타덤
1영화연기의제도화:‘안면근육’의무도(舞蹈)에서‘에로큐?’의문제로
2‘조선적신체’와목소리

4장.‘소리’의벡터:제국의관객을상상하기
1.중일전쟁이후제국적영화권의편성
1식민지조선의양화(洋畵)통제와일본흥행계의조선진출
2조선영화의일본이출(移出)과내선(內鮮)합작영화
2.‘대동아공영권’과일본어영화의기획
1‘대동아영화(권)’과‘동아공통어’로서의일본어
2‘조선어영화’의기로
3‘고쿠고(?語)영화’와흐려지는민족적신체
3.조선어공간의재편
1문화의외부,이동하는극장
2‘오랄리티(orality/aurality)’의이중성

맺는말
주(註)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제국과식민지영화의각축장,소리

무성영화에서발성영화로의이행을둘러싼
식민지조선의영화와극장의정치학


영화에소리가도입된이래,영화의표현은더욱풍부해졌고그결과우리는소리가없는영화를상상할수없게되었다.그런데음향과음성이영화에삽입되면서영화는국민국가의언어로‘들리는’매체가되었으며,이를통해관객은자신이특정한언어를공유하는공동체에속한다는것을자각했다.그럴때극장은정치적중립지대이기는커녕치열한정치적무대가된다.그렇다면식민지시기조선의상황은어땠을까.무성영화[아리랑]을즐겨보던조선인관객의눈앞에토키(발성영화)라는신문물이나타났을때,조선영화인들은조선어영화를만들고제국일본의국경을벗어나는것을꿈꿨다.정치적공간인극장또한토키의도입에따라변하지않을수없었다.
『소리의정치:식민지조선의극장과제국의관객』은한국영화사연구에서최근본격화된한국의토키이행기를더욱예리하게살피고폭넓게탐구하는책이다.영화테크놀로지의도입과변화는기술적차원에그치는것이아니라그자체로정치적경제적문화적변화를가리킨다.무엇보다보는것이상으로듣는것과말하는것은대단히첨예한정치적테마다.이때사운드도입은식민지조선의동족(어)공간을때로는갈라놓기도했고,거꾸로새로운공공적공간을창출하는데영향을미치기도했다.
이책은식민지시기영화에관한풍부한해설과도판을통해당대의극장이얼마나역동적인공간이었는지를보여준다.그리고더나아가사운드테크놀로지의문화정치를역사적으로이해하는데좋은길잡이가될것이다.

“우리의맑고뜨거운붉은피를온세상에뿌리어우리의존재와우리의정성을깨닫게하자!”
식민지조선의극장은치열한정치적무대였다

1910년조선최초의영화상설관인경성고등연예관이문을연이후,조선에는여러극장이개관했다.식민지조선의극장은크게조선인상영관과일본인상영관으로나뉘어있었다.조선인상영관에서는주로서양영화가,일본인상영관에는일본영화가상영되곤했다.조선인상영관은재조선일본인관객에게“저렴한입장료로서양영화를볼수있다는장점은있지만,빈대가많고,‘조선인특유의’‘이상한냄새’가나며,여기저기서‘지저분한욕’을하는자들이있(43쪽)”는공간으로비쳤다.이런종족적편견은제국일본이‘내선일체’를표방하지만그저변에는차별이깔려있으며,식민지조선이이중언어의환경에놓여있음을단적으로드러낸다.즉“조선의언어환경은각언어사용자의합의에의해두언어가공존하는바이링구얼리즘(bilingualism)이아니라,식민자의언어인일본어와피식민자의모어인조선어가지배자의언어가가하는상징적폭력에의해위계화된다이글로시아(diglossia)이다(29쪽).”무성영화시기식민지조선의극장에저항의기운이스며드는것은자연스러운일이었다.

1920년7월,우미관변사정한설은상영중휴식시간에무대에나타나긴장된표정과흥분된어조로주먹을불끈쥐고객석을향해외쳤다.“오늘은자유를부르짖는오늘이요,활동을기다리는오늘이라,우리의맑고뜨거운붉은피를온세상에뿌리어세계의이목을한번놀래어서세계만국으로하여금우리의존재와우리의정성을깨닫게하자.”곧바로임석경관에게체포된그는종로경찰서에구인되었다.상영되는영화와는무관한불온한언사로관중을선동하고사상을고취했다는죄목이었다.당시의기사는변사가상영도중“언론에대한관계로구인”된것은이사건이처음이라고기록하고있다.(50쪽)

스크린에비친무성영화를해설하는변사는관객과영화를이어주는매개자이자번역자로서목소리를통해관객과공명했다.하지만토키이행기동안관객의영화체험은‘육성(肉聲)’에서‘발성(發聲)’으로변화했고,그에따라극장에서배제된변사들은자살을감행하기까지했다.동시에조선인상설관은‘동족(어)공간’으로서의성격을조금씩탈각해갔다.

‘최초의조선어토키’를향한도전과좌절의역사
사운드는어떻게식민지조선의‘로컬컬러’를구현했나

[아리랑](1926)으로스타덤에오른나운규는‘최초의조선어토키’를제작하고자젊은영화인과의기투합했지만그의시도는금세좌절을맞는다.토키는무성영화보다고도의기술과자본이필요했기때문이다.그렇지만경성촬영소가토키영화[춘향전](1935)을제작하면서조선영화는‘세계표준시’에진입할수있었다.경성촬영소는거기서더나아가사운드트랙의도입을실험했다.영화는시작부터소리와함께했지만,그때소리는스크린밖의악단과변사에게서나오는것이었다.사운드트랙은영화음악의성격을바꿔놓은동시에,조선영화만의사운드를구현해야한다는새로운문제를제기했다.식민지조선의‘로컬컬러’는영화에삽입된조선민요를통해구체화되었다.“서양음악을박스음악으로사용하여할리우드고전영화가표방하는보편적인영화문법안에있으면서도,스크린음악으로조선음악을삽입하여조선적인특수성을강조하는방식인것(172쪽)”이다.이때조선의로컬컬러는제국일본의신민이라는위치를강화하는방향으로도,조선인관객의동족(어)공간을개방하는방향으로도동시에작용한다.

이장면에서식민지인들이식민지의언어로부르는식민지의노래는전혀다른두방향으로해석될수있다.하나는노래를부름으로써“겉모습(形)도마음(心)도피(血)도살(肉)도모두일체가되어야한다”는,쉽게합리화되지않는세계로의비약이시도되고있다고할수있다.이때노래란논리나이성으로설명될수없는세계에있는것이다.다른하나는‘노래부르기’가스크린바깥으로확장될가능성과관련된다.영화를보면서[양산도]를조심스럽게따라부르거나영화를본후극장을나온관객이[양산도]를흥얼거리는상황을가정해보자.백마강시퀀스를연출한감독허영의의도가무엇이었든그효과는의도를쉽게배반한다.(181~182쪽)

한편무성영화에서발성영화로의이행은배우의연기에도큰영향을미쳤다.“우리에게는대사가필요없었지.우린얼굴이있었거든(190쪽).”이라는영화대사처럼표정과동작으로극을이끌던무성영화기배우들은‘에로큐?(화술연기)’이라는새로운도전을맞닥뜨려야했다.조선어발성영화에출연한배우들역시마찬가지였다.무엇보다조선인배우의신체와목소리가제국안에서‘이국성’을강조하는방향으로소비됨에따라‘내셔널한스타의세대교체’가일어나기도했다.

프로파간다는결코순조롭게이뤄지지않는다
지배와저항이교차하는식민지조선의‘동족(어)공간’을탐색하다

조선어토키의제작은활성화되었지만,토키이행은만주사변(1931)과중일전쟁(1937),태평양전쟁(1941)으로이어지는일본의침략전쟁과함께이뤄진것이었다.그런상황에서조선영화는두가지다른방향으로뻗어나갔다.첫번째는조선영화가제국일본의영역으로널리퍼져나가는것이었고,두번째는미디어테크놀로지의변방에자리잡은이들을관객으로끌어들이는것이었다.
첫번째벡터는전쟁발발직후제국일본이외국영화의수입을제한하면서본격화되었다.조선영화는식민모국인일본을겨냥해중심으로진입하고자했는데,이때‘조선색’이라는로컬컬러는다시금조선영화의특성으로강조되었다.한편제국일본이‘대동아공영권’을주창하면서일본영화계에서도이에호응해‘대동아영화(권)’을제안한다.이때일본어는‘동아공통어’로서위계화된언어로자리매김한다.그에따라조선영화역시일본어제작이이뤄졌다.일본어로된조선영화는조선인과일본인사이의경계를흐리고조선인을완전한‘황국신민’으로만드는것처럼보인다.하지만“조선인배우가아무리일본어를유창하게해도그발음과음조가일본인의그것과다르다는것은감춰질수없었을것(288쪽)”이기에,일본어로된조선영화는제국과식민지사이의불균등한언어환경과그로인해빚어지는긴장을더욱더드러낼수밖에없다.
조선영화의두번째벡터는전시체제하의성공적인동원을위해식민권력이추진한이동영사와관련이있다.조선인상영관을비롯해식민지조선의극장은경성을비롯한대도시에집중되었고,빈자와지방민은여전히미디어테크놀로지로부터소외되어있었다.식민권력은일본어도조선어도읽고쓸줄모르는문맹자를대상으로‘이동하는극장’인이동영사를추진했다.이동영사는식민지방방곡곡을누비며선전영화와시국영화를상영했고,제국의이념을조선어구연으로번역했다.이동영사에는그동안‘문화’로부터배제되었던이들이모여들었는데,여기서피식민자들은제국의논리를일방적으로수용했다기보다독자적인해석을수행하는주체로이동영사에참여했다.이는시인이상이평안남도성천에머물렀을때지역주민과함께이동영사에참여했던기록을통해잘드러난다.

부산,평양,압록강등조선의실경(實景)을담은필름의영사가끝났을때에는서양명감독의작품이라도접한듯이박수가터져나왔지만,휴식시간에단상에올라온금융조합이사의연설에는아무도박수를치지않은것이다.조선어통역이뒤따른이사의말을알아듣지못해서가아니라,영화를미끼로던지는식민주의에대하여무언의저항과차가운시선을돌려보냈던것이라하겠다.이무언의순간,이상은성천사람들을“촌민”이아니라“우매한백성”이라고부르며,그역시“그우매한백성중의하나일수밖에”없었다고고백한다.(303쪽)

이동영사관객의저항은식민지배가결코매끄럽게이뤄지지않았으며,“호명하는자의말(orality)이호명당하는자의귀(aurality)와계속불일치할수밖에없는상황적필연성(307쪽)”에놓여있음을보여준다.이동영사는일종의공공적공간,동족(어)공간을발생시켰다는점에서양면적인성격을갖는다.
『소리의정치:식민지조선의극장과제국의관객』은민족주의적관점에서서술된기존한국영화사연구와거리를두고,조선영화가식민지조선과제국일본을오가며제작,유통되는과정을세심하고명민하게포착한연구서다.이책은‘한국영화’라는틀로사후적인해석을전개하기보다당대의이중언어환경하에서영화의토키이행이갖는정치적함의를밝힘으로써식민지관객의정치적주체성과테크놀로지의동시대성을새로이해석하고자한다.사운드테크놀로지의문화정치를상세히보여주는『소리의정치』를통해한국영화사연구의새로운지평이열릴것이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