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_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융합예술학과에서가르친다.시각예술과자본주의의문화/경제에대한비판적연구와글쓰기를하고있다.《문화과학》《마르크스주의연구》《경제와사회》등의편집위원을맡고있다.2017년전시〈ReadMyLips(합정지구)〉〈공동의리듬,공동의몸(일민미술관)〉에참여하였으며,퍼포먼스작업인〈OtherScene(국립현대미술관)〉에서연출과퍼포머로참여하기도하였다.지은책으로『변증법의낮잠』『자유의의지,자기계발의의지』『디자인멜랑콜리아』등이있으며그외다수의공저가있다.
서문.낌새채기로서의비평
1부.동시대:기억과역사사이에서
인터내셔널!:어느노래에대한역사적반/기억
플래시백의1990년대:반기억의역사와이미지
보론1:차이와반복-한국의1990년대미술
2부.동시대:의식과경험사이에서
목격-경험으로서의다큐멘터리:자오량의〈고소〉에관하여
사진의궤적그리고변증법적이미지
사진이사물이될때,사진을대하는하나의자세
반ANTI-비IN-미학AESTHETICS:랑시에르의미학주의적기획의한계
보론2:“서정시와사회”,어게인
3부.동시대이후
참여라는헛소동
포스트-스펙터클시대의미술의문화적논리:금융자본주의혹은미술의금융화
참고문헌
동시대라는시간없는시간을넘어
그이후를사유하는비평적도전
기억과역사모두를정확하게비판하기위하여
1985년영화감독클로드란츠만은〈쇼아Shoah〉라는영화를통해“홀로코스트는없었다”는유의수정주의적역사해석에정면으로반기를들었다.역사적기록의빈틈을파고들며대량학살의역사를지우려는반동적시도에대해,란츠만은강제수용소에서가까스로살아남은사람들을일일이카메라에담으며그들의얼굴과목소리를관객과대면시켰다.〈쇼아〉는역사에대항하는역사,즉반역사(대항역사)로서의기억의힘을여실히증명한셈이다.우리는일본군위안부생존자들과그들의투쟁을통해기억의힘을다시금확인할수있다.일본정부가그토록집요하게교과서에서위안부문제를삭제하려할때,매주거르지않고진행되는수요집회에서터져나오는생존자들의목소리는과거의기억이남아있는한누구도역사를왜곡할수없을것이라는믿음을더욱강하게한다.
그결과오늘날에는기억과경험,공감을강조하는말들이곳곳에서설득력을얻어가고있다.‘객관적인역사’란남성의역사,백인의역사,자본가의역사였음을강조하는이들은여성의기억,아프리칸스의경험,노동자의감각을내세움으로써잊히고지워지고사라진소수자의역사를복원하려한다.현재한국을뒤흔들고있는미투운동역시같은자장에놓여있다.이를두고보았을때기억에대한강조는그자체로정치적올바름을획득한듯하다.이제중요한것은기억을어떻게아카이빙할것인가에달렸다고강변하는입장은지금의시각예술에서더욱더강한영향력을발휘하고있다.특히〈응답하라〉시리즈와같이대중매체와시각예술에서과거재현의전략을적극적으로차용하는데서이를선명하게확인할수있다.
『동시대이후:시간-경험-이미지』는이렇게기억의아카이브를구축하는데여념이없는지금의시각예술을다시살펴보고기억과경험을더욱정확하게비판하려는비평적시도다.1990년대문화운동의기수였고현재시각예술과자본주의의관계를비판적으로사유하는데천착하는서동진계원예술대교수는대중매체와예술작품들이과거를향한회고에몰두하는것을특유의예리한시선으로포착한다.저자는오늘날의시각예술을일컫는용어로서‘동시대예술’이란사실상‘시간없는시간’의예술이며,바로이‘시간없음’을사유하지못하는데기억과경험이라는개념이작동하고있음에주목한다.하지만이책은기억,경험,공감등을일방적으로힐난하는것이아니라,서로대립된다고상정되는개념들을더욱선명하게대질함으로써기억의편이냐역사의편이냐하는이분법을넘어서고자한다.
이책에실린열편의비평문은그동안저자가음악,영화,미술,사진,문학등다양한분야에서차곡차곡쌓아올린글들이다.이들을한줄로꿰어내는고리는바로‘비판’이다.서로대립되는것처럼보이는것들을온전하게사유하기위해서는둘모두를동시에비판해야한다는것이다.비평이갈수록‘주례사비평’으로간주되고그정반대편에서는별점과댓글로작품을평가하는시대에『동시대이후:시간-경험-이미지』는비평을다시금활성화할뿐만아니라‘동시대’를새롭게사유하는촉매가될것이다.
기억과역사사이에서
허둥대지않는다는것
1부「동시대:기억과역사사이에서」에실린세편의글은지금의대중매체에서재현되는역사가기억의아카이브에의지하고있음을지적하면서,기억의아카이브를넘어역사를정확하게인식하기위한비판적관점을제시하고있다.첫번째글인「인터내셔널!:어느노래에대한역사적반/기억」은혁명의기억을상기시키는〈인터내셔널가〉를다양하게복각하는시도를살펴본다.1920년대에만들어진전자악기테레민으로〈인터내셔널가〉가연주될때거기서는‘좌파멜랑콜리’라할만한것이나타난다.즉이젠사라진혁명을노래를통해상기하면서거기에애틋함을느끼며작별을고하는것이다.하지만〈인터내셔널가〉가단지향수에그칠수없는것은이노래에담긴유토피아적주장때문이다.단결과연대에앞서자유로운개인을요청하는〈인터내셔널가〉는그때문에개인들의다양한기억을촉발한다.어느다큐멘터리에서한필리핀여성이투사였던아버지를회상하며그가불러주던〈인터내셔널가〉가브람스의자장가보다더좋았다고말할때,그노래는더이상구소련의공식석상에서불리는것과똑같이느껴질수없다.“공식적인기억의서사속에수장된〈인터내셔널가〉보다더많은함량의역사적기억을갖고있을지(65쪽)”모르기때문이다.대중매체와예술작업이과거를재현하는데충실한지금,노래는역사적총체성을사유하고경험하는데있어피난처가될수있다.
그리고「플래시백의1990년대:반기억의역사와이미지」는〈응답하라〉시리즈의성공이보여주는과거재현의전략이1990년대라는시간대에치중하고있음에주목한다.적극적으로자기를표현하는시대,본격적으로소비문화가형성된시대로기억되는1990년대는그이전의‘운동권문화’가만개했던1980년대와는구분되곤했다.1990년대를향한향수는‘밤과음악사이’같은레트로펍의등장,그곳에서울려퍼지는‘7080가요’,과거의소품을꼼꼼하게재현하는드라마와영화를통해더욱두드러진다.저자는〈응답하라〉시리즈가나오기훨씬전인2000년대의영화들에서이미그와같은경향이나타났음을지적한다.이창동감독의〈박하사탕〉,봉준호감독의〈살인의추억〉과〈괴물〉은1980년대를1990년대의전사前事로서다룬다.저자는당시를연상시키는소품과사운드를통해재현된1980년대는1990년대이후의기억을통해재구성된다는점에주목한다.1990년대라는시점으로바라본1980년대는‘민중’이라는보편적주체가감각적공동체를분열시켰던역사를흐리게함으로써만재현될수있었다.그런점에서1990년대는새로운감성을발견한1980년대의음화일뿐이며,그와같은재현전략은지금도지속되고있다.
1부의마지막글인「보론1:차이와반복-한국의1990년대미술」은1990년대미술비평을이끌었던포럼A를돌아보는작업이다.1990년대를‘한국동시대미술’의시작으로꼽는이들은당시의작업들을하나하나수집하고분류하면서‘동시대미술’의상을구축하고,그럼으로써당대를사회학적사실로환원한다.하지만이과정에서역사적분석으로서의비평은사라지고만다.비평이란“매체이든형식이든전시형태나제도이든비평이든모두역사에의해매개되고규정된다는것을받아들이는(108쪽)”때에야가능할것이다.
의식과경험둘중하나를
일방적으로지지하지않는다는것
2부「동시대:의식과경험사이에서」는기억에못지않게경험에주목하는동시대의예술작품들과비평들을살펴보면서경험에함몰되지않는비평의가능성을탐색한다.「목격-경험으로서의다큐멘터리:자오량의〈고소〉에관하여」는중국의독립다큐멘터리〈고소〉를통해경험을재현하는방식이처한윤리적곤경을따지고,중국독립다큐멘터리가관찰적다큐멘터리에서성찰적다큐멘터리로변화했다는평가가과연적절한것인지되묻는다.자오량감독의〈고소〉는중국중앙정부에항의하는고소인들을비추지만,이들을단순히재현하는데그치지않는다.감독은의도하지않게고소인들의삶에개입하게되었고이로인해동요하게된다.이과정에서관객역시영화에이입해윤리적인선택을요구받는다.그러나저자는관객이받는윤리적충격에만주목할때“그것이역사적시간을제거하거나억압한채찰나혹은순간의시간으로구성하고있음을(125쪽)”놓칠수있음을지적하며경험에만몰두해서는안된다는것을강조한다.
이어서「사진의궤적그리고변증법적이미지」와「사진이사물이될때,사진을대하는하나의자세」는각각사진가박진영과염중호의작품들을살펴본다.저자는「사진의궤적그리고변증법적이미지」에서사회적다큐멘터리로서의사진을제작했던박진영이‘사진그자체’로서의사진으로회귀하는양상을세심하게들여다본다.2000년대초반파노라마사진작업을통해당대의인물과공간을사회학적으로살피던박진영은3.11동일본대지진이후의일본을비추면서는사진의물질성자체에천착한다.쓰나미가휩쓸고지나간뒤에우연히발견한사진을전시할때,재난현장에서수집한사물들을늘어놓고사진을찍을때,그때의사진들은존재만으로도특정한기억을환기시킨다.그런점에서박진영의작품들은‘감각하게하는이미지’로서동시대의사진이어떤경험과기억을환기시키는가를보여주는사례라고할수있다.한편「사진이사물이될때,사진을대하는하나의자세」는염중호의〈괴물의돌〉전시를살펴보면서이미지-사진에서사물-사진이되어가는동시대사진의추세를다시금확인한다.저자는염중호의작품이그같은추세를그대로따라간다기보다오히려이를냉소하고사진에서사진그자체의실체를찾으려는시도에대한농담같은것이라고비평한다.
경험에몰두하는경향에대한이론적비판은「반ANTI-비IN-미학AESTHETICS:랑시에르의미학주의적기획의한계」에서더욱적극적으로다뤄진다.저자가직접적으로겨냥하는이론가는자크랑시에르로,특히그의『해방된관객』은‘비판’이라는기획자체를문제제기한다는점에서동시대미학의경향을분명하게드러내고있다고본다.비판에의지하지않는해방의정치가가능하다고믿는랑시에르에게있어비판은자신이비판하는세계를넘어서지못하는무능을보여줄뿐이다.저자에따르면랑시에르는‘해방을통한새로운감각적공동체의노선’을제안한다.해방을통한새로운감각적공동체의노선이란정치적인것과미적인것이전적으로일치한다는것을,노동자와예술가가동일하다는것을강조하는입장이다.랑시에르의미학주의적입장에반해,저자는비판을옹호하기위해프레드릭제임슨의‘인지적지도그리기의미학’을다시금소환한다.동시대예술이경험에천착하는데반해인지적지도그리기는인식으로서의예술을강조한다.예술의목적이진리를인식하는데있다면비판은필연적이다.개인적경험과사회적구조사이의불일치를인식하고둘사이를매개하는것이바로비판이기때문이다.동시대미술비평의한가운데에서적극적으로발언하고있는랑시에르를향한이론적도전은이책에서가장흥미로운부분중하나일것이다.
1부에이어또다른보론인「보론2:“서정시와사회”,어게인」은‘세월호이후의글쓰기’를주장하면서다시금사회를이야기하는듯한문학저널리즘의현재를짚고그것이놓치고있는것이무엇인지를성찰한다.저자는‘4.16이후의정동-쓰기’를강조하는글에대해비평하면서세월호이후의글쓰기가‘세월호’라는윤리적충격에대한반응일수밖에없음을수긍한다.하지만그처럼충격에사로잡힌글쓰기는오히려경험그자체를망각해버릴위험에놓인다.그렇기에문학은‘세월호이후의문학’을강변하며충격적경험을통해사회를끌어들이는데몰두할것이아니라사회적인경험을매개할새로운형식을찾아야할것이다.
시간없는시간을넘어
그이후를사유한다는것
3부「동시대이후」는동시대시각예술에대한비평에머무르지않고대중문화현상과정치적주체의관계를,또한예술작품과자본주의의관계를더욱명민하게탐색하고자한다.「참여라는헛소동」은‘1000만관객영화’의등장이라는현상을‘영화-이후적관람양식’의출현과긴밀하게연결해분석하는글이다.극장에머무르지않고도노트북이나스마트폰으로영화를볼수있는지금은영화-이후적관람양식이일반화된시대라고할수있다.1000만관객영화시대의관객은영화전문프로그램을통해영화의내용을파편적으로가늠하고SNS에도는별점과한줄평으로영화관람여부를결정한다.동시대의관객이파편화된시각적충격에주의를집중할수록영화에관한정보와감각적경험도더많이만들어진다.또한이들은SNS등을통해유사능동적인참여에몰두하고있다.극장에서수동적으로영화를보는관객이오히려그수동성때문에타인의삶을인정할수있는계기를얻는것과달리,동시대의관객에게그런가능성은훨씬줄어들었다.그런점에서영화-이후적관람양식을향유하는관객은대표의위기,계급정치의몰락,우익포퓰리즘의성향과같은오늘날의정치적풍경과긴밀하게연관되어있다.
마지막으로「포스트-스펙터클시대의미술의문화적논리:금융자본주의혹은미술의금융화」는끊임없이셀러브리티작가가배출되고미술비평가가일종의취향제조자로변신한동시대미술을살펴보면서그같은변화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