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는본래활기가없다는말은이제수정되어야한다!
더생태학적이고더물질적으로지속가능한사회를위한철학
팬데믹시대,우리에게필요한‘생기적유물론’의통찰
팬데믹쇼크.일명‘코로나19바이러스’라고불리는SARS-CoV-2로인한감염증이전세계적으로유행하고있다.독특한모양의외피를가진이바이러스는기존의바이러스에비해점액친화성이수십배높아인체에머무는시간이길다.그런탓에기존의바이러스퇴치방식또한전면적으로재검토해야하는상황이다.바야흐로인간과물질을구분짓던기준에대한획기적관점이필요해진때다.이책『생동하는물질:사물에대한정치생태학』을쓴제인베넷은주류철학에서무력하고수동적이며힘이없는것으로여겨져왔던‘물질’을새로운관점에서탐구하며‘생기적유물론(vitalmaterialism)’을주창한다.
흔히‘물질이란무엇인가’라는질문에는‘무생물’의사전적의미가답변으로등장한다.즉물질은‘생물이아닌물건’,‘세포로이루어지지않은어떤것’,즉인간이외의것들중에서도‘살아있지않은무언가’로이해된다.이는사회의일반적인해석일뿐아니라근현대주류철학의입장이기도했다.일례로칼마르크스의사상은고대철학자에피쿠로스와루크레티우스의원자론을기반으로유물론과변증법을한층더발전시켰고,거기서‘세계’는엄연히‘개조’될수있는물적토대를가리켰다.
20세기대다수나라들은다양한처방의개조론을내세우며자연재해에맞서댐을짓고,고효율의에너지를찾아석유를채굴하고,육류소비에대처하기위해대량사육체계를갖추고,각종무기들을개발해전쟁에나섰다.그리고한세기가지난2020년현재,전세계를혼돈에몰아넣고있는팬데믹쇼크에서도퇴치와박멸,방역과격리등의수사가반복되고있다.우리에게물질은“어디까지나인간의의지나이성이일방적으로적용되는대상일뿐”이다.
물질에관한이같은평면적시각에통렬한비판이제기되고있다.헤겔로부터마르크스로,그리고다시현대독일철학의흐름으로이어지는유물론의시각을벗어나,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스피노자―들뢰즈라는계보속에서물질에대한새로운인식을이끌어내려는흐름이등장한것이다.그중미국존스홉킨스대학정치학교수로재직중인제인베넷이대표적이다.그는인류역사속에서각각의외형을가지거나늘어나거나줄어들수있으며대개는무력한것으로간주되어온물질이실은“행위성의원천이고언제나우리의안과옆에서흐르는힘이며,항상인간의몸과얽혀있는역동적이고활력넘치는사물”이라고주장한다.
인간권력이아닌사물-권력을재조명하다
생동하는물질에관한긴철학적역사
‘생동하는물질’이라는생각은서양에서긴철학적역사를갖고있다.바뤼흐스피노자(모든사물은살아있다는주장),프리드리히니체와헨리데이비드소로(사물을들여다볼줄아는훈련이필요하다는주장),찰스다윈,테오도르아도르노,질들뢰즈,그리고20세기초반베르그송과한스드리슈등의개념과주장들이대표적이다.이같은사상들은인간과비인간(다른물질들)의관계를수평적으로경험해야한다는데서공통점을갖는다.
저자는말한다.“야심차게말하자면이책의정치적기획은생동하는물질및활기넘치는사물과더지적이고지속가능한관계를맺도록장려하는것”이다.물질을능동적인것으로자리매김하는일은우리인간역시수천,수만개의물질(비인간)로이뤄졌음을밝히는일이다.제인베넷은이책에서인간과비인간에대한고정관념에반기를들며,인간을하나의행위소(행위자가아니라)라고부르고물질을하나의활력가(활력소가아니라)라고부른다.다시말해“인간행위소의지위를재조정하는작업”은불가피하다.이는인간이자연에서누리는권력자체를부정하려는시도가아니다.이는각각의인간이생기있는물질들로구성되어있다는주장,즉인간의권력이“사물-권력”이라는색다른주장으로이어진다.
물질이무엇인가라는질문에는다음과같이기존개념에대한비교로답할수있다.“환경이인간문화의토대로서정의된다면,물질성은인간과비인간모두에공평하게적용할수있는용어다.나는물질적배열이고,공원의비둘기또한물질적구성물이며,나와비둘기의살에있는바이러스,병원균,중금속역시물질성으로신경화학물질,허리케인의바람,기생충,마루의먼지도이와마찬가지다.물질성은인간,생물군,무생물군사이의관계들을수평화하는경향을갖는이름이다.”
인간은그자체가목적이고결코수단으로쓰여선안된다는칸트의주장은현대사회에서‘인권’을옹호하는데주요근거로쓰인다.다만베넷이밝히고있듯이,지금의세계는“고유가,이전까지태풍이발생하지않았던지역에달마다들이닥친태풍들,전쟁사망자와고문당한사람들,원거리공장식축산농장에서생산된고기에서발견된병원균등일련의실질적문제”에직면해있다.다시말해칸트식정언명령이과연인간의고통을줄이거나행복을늘리는데실패해왔음을증명한다.
인간의행위성개념을재규정한다는것은인간과인간이아닌물질에대한재해석만을의미하지않는다.그동안행위/행위성은인간신체의역량,집단으로서의인간이생산해낸역량으로만이해되었지만,이제는그것이존재론적으로인간이아닌이질적인장에분배됨을깨달아야한다는것이다.각각의이질적인장,부분은서로의존하는동시에갈등을일으키기도하며,이는부분-전체관계를새롭게보도록만든다.“각부분이전체에복종한다고말하는유기체모델은여기서거부된다.”
인간의행위성에대한이같은반성은인간중심적이론의한계에대한성찰로이어지며,사회현실에대해서도다르게인식하게한다.그리고더욱궁극적으로는철학의뿌리에해당하는개념인‘인과성’,‘의도’에대한회의와의심으로이어진다.베넷에게인과성은“작용적이기보다는창발적이고,선형적이기보다는프랙털적”이며,의도는“결과를내는상대적으로덜결정적인요인”이다.이에대한흥미로운사례로베넷은2003년미국과캐나다에서일어난대형정전사태를제시한다.그사태를통해사람들은전력공급을담당하는공공시설들이얼마나열악한지,정전사태아래서시민들의준법의식이어떻게드러나는지,개인의에너지소비가어떤대형재난으로이어지는지등을실감했다.즉정전사태,허리케인,전쟁같은거대한사건사고에서우리는인간의자율성,의도가얼마나취약한기반인지재확인한다.베넷은이제,한사람의행위자에게죄의대가를묻는도덕주의정치를지양하고,그에게책임을묻느라우리가지나치고말았던‘물질적행위성’에대해주목하자고말한다.
인간이음식을먹는행위에서도행위성의의미는전복된다.베넷은인간이음식을먹고그로인해살이찐다는사실을뒤집어보면서,그과정에서도비인간행위성이작동하고있음을보여준다.일례로오메가-3지방산이든음식을먹은죄수들은폭력을덜행사하며,이를먹은학생들은주의력이더욱높아진다는연구결과가있다.말그대로음식또한‘사물-권력’을가지며,이로써음식이라는‘먹을수있는물질’은인간의삶을바꿔놓는것이다.이런인식의전환은더나아가,헨리데이비드소로가그랬듯,고기를먹는것이활력을주지않고인간의상상력을고갈시킨다는생각으로이어져자연스럽게채식등의자연친화적식단을부추긴다.
인간중심주의혹은생물중심주의에대한통렬한비판
생명과생명아닌것이소통하는정치를향하여
생명을매력적인개념으로바라보았던기존의통념또한뒤집어진다.“때때로생명은지복이라기보다는공포로서경험되고,잠재적인것의충만함이라기보다는철저히의미없는공백으로도경험된다.”베넷은생명을비주체적인것이라정의하고니체의말을빌려생명을“영원히변화하는힘들의바다”라고부르는데,이로써이세계를하나의고정된대상,안정된실체,단단한무엇으로보았던기존의유물론에의문을제기한다.이는또한이제는하나의유행처럼쓰이는‘정동(affect)’개념에도마찬가지의변화가필요함을보여준다.그동안비평가들이‘인간의’정동에만초점을맞춰왔다면이제는그러한“이성적인분석이나언어적표상을통해서완전히포착될수도없고인간,유기체,그리고심지어신체에만특수한것도아닌그러한정동”에관심을둘때다.돌멩이,쥐,바람,무기물의정동을이야기해보자는베넷의주장은인간중심주의혹은더나아가생물중심주의에대한통렬한비판을담고있다.
본래생태주의,환경주의를연구했던베넷은하나의윤리로서의생태주의,환경주의의토대가생각처럼단단하지않음을깨달았다.이같은의구심은베넷을20세기초기의생기론에대한연구로이끌었다.베넷은앙리베르그송과한스드리슈가과학적·경험적탐구를기반으로하면서도동시에사물이지닌예측불가능성을인정했다는데에주목했다.그중에서도한스드리슈는자신의생기론이나치독일에의해‘생기가있고없음에따라인간의우열을가리는’데쓰이는것에반대했다.이같은생기와정치적폭력간의관계는오늘날미국기독교세력이주창하는‘생명문화’와미국행정부가역설하는‘선제공격’개념과겹쳐지는바가있다.베넷은줄기세포가지닌여러가능성과가치를인정하면서도,“생명과비-생명을구별하고줄기세포를둘중어느한쪽에만위치시키려는생명문화옹호자들의주장에반대”한다.
베넷은한마리의벌레가생태계의능동적인구성원인가라는질문을파고들면서,자신의속내를솔직하게밝힌다.베넷자신에게도“세계를완전히‘수평화’하는것”은어려운일이며,인간은곧“나의신체와가장유사한신체이기에그것과동질감을느끼는”게당연하다는것이다.인간과비인간의정치생태학을논하면서베넷은자신의생기적유물론이바라는바가물질들을인간과완전히동등하게대하는것이아님을분명히한다.그보다는지구의구성원들,즉인간과비인간모두가그들“사이의의사소통을위한더많은통로를갖는정치조직을추구하는것”이필요하다는주장이다.
계속이어지는베넷의이같은고백은인간중심주의철학이지닌필연적실패를벗어나는데에좋은실마리를제공한다.“인간이인간만으로이루어진게아니며우리가그것들로구성되어있다는모순적인공리에계속주목하는것은매우어려운일이다.하지만이러한공리와그것을기억하는재능을계발하는일은,나타나야만할필요성이있는새로운자아를,새로운자기이해를갖춘자아를형성하는핵심이다.”이로써우리인간이생동하는물질로서의경험을추구해가는일을반복해가야한다는주장이다.
비인간으로부터인간을떼어내려는헛된시도를단념하라
생기적유물론의관점으로바라본팬데믹시대
물질의힘에주목하는이책의통찰은2020년현재우리가맞닥뜨린‘코로나팬데믹’을바라보는시각을제공해준다.코로나19바이러스막의바깥쪽에달려있는스파이크단백질은기존의다른코로나바이러스에비해점액친화성이수십배이상높다고한다.이책의통찰에따르면,바이러스단백질의이같은변화는해당바이러스가“인간의신체및사회의구조와배치,연합체를형성했기에일어난효과”라고볼수있다.결국우리가맞이한이번사태는바이러스의퇴치와박멸이라는외과적방역을뛰어넘어,바이러스와배치를이루는무수히많은물질(인간과비인간)을함께살펴봐야그정확한면모를이해할수있는것이다.
제인베넷은환경주의자에서생기적유물론자로,‘자연대문화’의대립과구별을주장하는입장에서생동하는물질들의필연적이질성을옹호하는입장으로자신의관점을바꿔왔다.우리는왜환경을보호하려하는가.이에대해‘생태계를지키는것이인간에게유익한일이기때문이다’라고답하는것은이미그전제에서부터인간이외의물질들을배제한다는점에서한계를지닌다.이책은인간만이아니라물질에도힘과활력이있으며,우리가자신이외의물질들을존중할줄알아야‘생동하는물질’들과공존할수있을것이라고말한다.
베넷은막다른위기에처한자본주의에대한대안으로생기적유물론을제안한다.이는인간이전혀생각지않았던비인간의힘을주목하게하면서큰인식론적계기를마련할수있을것이다.이책에서소개하는물질의활력,그리고생기적유물론을뒷받침하는방대한이론적토대는우리인류가새롭게선택할철학의방향을넌지시일러준다.“비인간으로부터인간을떼어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