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란배제된사람들을중시하는것이아니라면무엇이겠는가?정신분석학자는억압된것을탐구하는의학자가아니라면누구란말인가?끝으로,예술가란가장역겨운폐기물을포함한모든것이미적가치를지닐수있다고믿는자가아니면누구이겠는가?”
쓰레기와폐기물의시대에
아방가르드를소환하다
『엑스폼』의저자니콜라부리오는프랑스의저명한미술비평가이자큐레이터로,그동안‘관계미학’‘포스트프로덕션’‘얼터모더니즘’‘래디컨트’등의비평용어로1990년대이후의동시대미술을분석해왔다.이책역시전작들과마찬가지로‘엑스폼’이라는비평적개념어로90년대이후미술의새로운지향과제작방식을논하고있다.전작들과다른점이라면“좀더근본적인수준에서비평의이론적토대와예술의실천전망을담고있다”(163쪽)는점이다.특히눈길을끄는점은,저자스스로도밝히고있지만,20세기사유에서다소특이한인물이라할수있는이데올로기이론가루이알튀세르를소환하고있다는점이다.저자는“알튀세르를다시읽게되면우리는미술과정치사이의복합적인관계를새로운눈으로바라볼수”(17쪽)있다고말한다.아방가르드의전망혹은미적인것과정치적인것의유기적인관계를줄곧모색해온저자는무의식에대한알튀세르의급진적인해석에주목해동시대의정치적미술을위한이론을제안한다.
형식,형태를의미하는‘form’에이탈,분리를뜻하는접두어‘ex-’가덧붙은엑스폼(exform)은특정한형식이나형태를가리키는것이아니라,어떤것을떨어져나가게하는정치경제적,사회적,문화적분류작동이나그렇게떨어져나온것들이존재하는영역을뜻한다.부리오에따르면,오늘날의글로벌자본주의는엑스폼이출현하는환경이자엑스폼을걸러내는체계라할수있는바,일차적으로그것은상품과물건이과도하게넘쳐나는세계에서떨어져나온쓰레기와폐기물이며,나아가쓰레기와폐기물처럼무가치하고쓸모없는것으로여겨지는모든사회적존재가속한영역이다.오늘날거대한규모로커지고있는영역을가리키기위해은유적으로쓰인‘쓰레기’혹은‘폐기물’이라는말은“비생산적이거나수익성이없는것들의망령에시달리는세계”(8쪽)를지칭하는것으로,현대판프롤레타리아라할수있는실업자,각종난민및이민자,불법체류자,노숙자등을비롯해,“대중문화,불결한것과부도덕한것들이뒤죽박죽쌓인배제된구역”등“차마눈뜨고볼수없는것들의무가치한총체”(10쪽)라할수있다.엑스폼은이처럼의미있는것과의미없는것,포함과배제,“버려진것과인정된것,상품과쓰레기사이경계에서협상이펼쳐지는현장”이자“반체제와권력사이를부유하며중심과주변을뒤바꾸는기호”(11쪽)이기도하다.
물론엑스폼이동시대만의현상인것은아니다.자본주의,산업혁명,제국주의적식민주의가본격적으로개시되던19세기이래로다양한수준에서폐기물을걸러내는분류메커니즘인배제의역학이본격적으로작동하기시작했다.역사적으로정치와예술의아방가르드는이배제된사람들이권력을잡도록돕는것을자신의임무로삼아왔다.말하자면자본이억압해온것을자본화하고,쓰레기로취급된것을재활용하여새로운에너지의원천으로만들고자했던것이다.부리오에게정치적미술이란“불량품을걸러내는사회적분류작동을거부”하고“권력장치가배제의체계와그폐기물(물질적이든비물질적이든)에씌워놓은이데올로기의베일을걷어올리는”(11쪽)미술이다.저자는이처럼사회가내세운위계질서와배제장치에깔려있는전제에의문을제기하며,그가면을벗기기위한방도를모색하기위한투쟁의핵심적인장(場)이바로이데올로기,정신분석학,역사,미술이라고주장한다.
『엑스폼』은소책자형식을취하고있지만사유의스케일이작지않고그의미또한적지않다.발터벤야민이묘사한‘거대역사의넝마주이’,바타유의이종학(heterology),알튀세르의이데올로기테제,문화연구의프로그램,19세기의쿠르베와마네에서부터피에르위그,리엄길릭에이르는동시대작가들의예술실천들을종횡으로넘나드는『엑스폼』은글로벌자본주의시대의미술과정치,이데올로기와실천,역사와현재사이의복합적인관계를새로운눈으로바라보게할것이다.
<책속에서>
자본이마음대로처분할수있는사회계급인프롤레타리아는더이상공장에서만발견되는존재가아니다.그것은사회전반에퍼져있으며버림받은자들로구성되어있다.그전형적인형상은이민자,불법체류자,노숙자다.예전에는‘프롤레타리아’가노동을박탈당한근로자를가리켰다.하지만우리시대에는그정의가확장되었다.이제프롤레타리아는경험(그것이무엇이든)을빼앗기고자신의일상에서존재(being)를소유(having)로대체하도록강요받는모든사람을포괄한다.점점더가혹해지는이민법뿐만아니라산업생산의탈현지화(delocalization)와대규모‘감축’,사회복지에대한점증하는정치적외면으로인해무등록근로자든장기실업자든사회의잉여인간이식물처럼무기력하게살아가는회색지대가출현했다.―8~9쪽
오늘날21세기초반의예술생산은알튀세르가벌인관념론과의필사적인투쟁을곧바로계승한다.이투쟁은때로는폭력적인방법으로공허,우연,이데올로기,무의식―즉,형언할수없거나신비로운것의자연보존구역을이루는모든것―의절대적물질성을끊임없이입증하기위한것이다.동시대미술은이와유사한반(反)관념론을이어나간다.반관념론은경제적추상성을구체화하고,비물질적인흐름을보여주며,우연을인위적으로창출하고,비가시적인것(또는특정한정신적힘)에형태를부여하려는예술적의지에서발견된다.―31쪽
우리를둘러싼현실은하나의언어적사실이어서,예술가들은언어의모든상징,환유,은유,반복과함께그것을숙달하고절합할수있어야한다.특히그들은발화과정에서‘탈락하는것’,즉언어의쓰레기를활용할수있어야한다.―56쪽
권력의입장에서보면역사서술은언제나대리석같은것이다.역사서술은과거와현재모두를이상화하려는의지에의해조각되어왔기때문이다.동시대예술가들이아카이브에서추출한폐허의진열,흩어진파편,덧없는이미지만큼이권력을뒤흔드는것은없다.그들의도발은사물의질서가피할수없는운명에서비롯된다고주장하는방어적환영주의(defensiveillusionism)를겨냥한다.―74쪽
동시대미술의정치적기획에서필수적인요소중하나는세계를불안정한상태로만드는것이다.바꾸어말하자면,사회생활을구조화하는기관들,개인과집단의행동을지배하는규칙들의일시적이고상황적인성격을끊임없이주장하는것이다.이와달리자본주의의이데올로기적장치들은그와정반대를공표한다.그장치들은우리가살고있는정치적,경제적틀이불변하고확정적이라선언한다.―82쪽
오늘날문화에서는링크,차트,가이드및항해의서사가중요해진다.마찬가지로방향설정과대조검토의매개자agent들의역할이두드러진다.디제이,프로그래머,큐레이터,컴파일러,도상연구자iconographers,‘바이어buyers’,편집자등사물들사이의관계를설정하고경험을설계하는전문가들의실질적인세계가이를보여준다.―89쪽
쓰레기라는문제틀은우리의사회경제적삶에매우핵심적인것이되어이를집중적으로다루는잔해학(rudology)이라는새로운연구분야가등장했다.라틴어rudus(잔해,rubble)에서파생된이학문은재처리기술뿐아니라인간활동에의해생성된평가절하과정을집중적으로연구함으로써쓰레기라는분석대상을통해경제영역과사회적실천을이해할수있다고본다.잔해학은경계영역의흔적을출발점으로삼아사회적사실을진단한다.이런점에서잔해학은집단심리의심층을탐구하는바타유의방법이나파리의아케이드에흩어져있는파편들을통해19세기의이데올로기적구조를재구성하고자했던벤야민의노력과궤를같이한다.―143~1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