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이토록방대한양의기록을남기도록추동했을까?왜이사진들은기가막히게잘찍히고아름답기까지한가?카메라강국,사진재료의제조국,그것도모자라배에무거운카메라를싣고조선에들어와전국을돌며사진을찍고조사하여출판과전시,아카이빙을했던나라.세기의언어로‘문명국’,지금의언어로제국이아니면불가능한프로젝트였을것이다.그렇다면‘사진국가’일본의존재감을보다견고한학문적틀로접근할수는없을까?”
―책머리에서
일본은어떻게‘사진국가’가되었는가?
근대의초입에서공유된사진의힘
일본을‘사진국가’라고명명하는것은매우자연스럽다.광학기술에서부터,화학및재료,카메라제조,나아가서출판및전시에이르기까지일본은명실상부한최강의사진국가라할만하다.하지만이것이사진국가의전부는아니다.사진국가의정말로무서운힘은우리눈에잘보이지않는다른영역에있었다.각종조사와기록사업을포괄하는방대한아카이브혹은기록체계가그것이다.
『사진국가』는19세기중후반부터사진과국가간의연대혹은공모가개시되었던시점에주목해19세기기록사진의정치적의미를살핀다.막부말기와메이지시기의일본은사진의힘,사진의문명적활용가능성을철저하게파악하고자했다.저자는그렇게해서확립된것이사진을매개로한근대적기록,정보화,시각화의체계였다고말한다.사실이체계의무서운힘은식민지조선에서도어렵잖게볼수있다.조선의고고학,민속학,인류학적조사사진을비롯해,식물,어류등의자원에이르기까지식민지조선에관한거의모든것을사진으로담고있는제국일본의아카이브를대면하게되면,한편으론그치밀함에소름이돋으면서도다른한편으로는그방대한양적규모에놀라게된다.『사진국가』가비록식민지조선을다루고있진않지만,저자는식민지아카이브사진의기원이바로메이지초기의이기록사진에연원하고있음을짐작할수있다고말한다.
사진국가의초석인된이아카이빙체계는활용도가매우높아일단만들어지면“모든대상을균질하게만드는무서운힘을가진다.그힘을추동하는것은거대한권력의작동이라기보다는,사진사이즈,포맷,앵글,각도,조명의표준화와같은지극히미시적인맥락”(11쪽)을통제하고관리하는데서나온다.그래서이시각체계에서는그대상이식민지조선이든홋카이도든관계없이장소간의맥락,미세한차이가제거되어모두비슷한풍경으로보이게된다.그런데이런사진들은왜우리눈에잘띠지않고특별한주목을받지못하는것일까?아마도그것들이유명사진작가의작품이아니기에,예술로인정받지않기에,혹은풍경이나초상처럼우리가아는사진작품이즐겨다루는소재나주제도아니기때문일것이다.그런데특별할것없이평범해보이는이사진들이야말로작품들은결코수행할수없는역할을담당했다.바로‘사진국가’를태동시킨것이다.사진은국가와공조하면서문명개화를향해다른무엇보다힘찬발걸음을내딛을수있었다.그사진들의강력한후원자가바로국가였기때문이다.
그렇다면근대의초입에서일본이이처럼사진을절실히필요로했던것이무엇때문이었을까?저자는이질문에답하기위해서는통상적인사진의역사가중점을두고기술하는사진가개인의표현능력문제를훌쩍넘어서야한다고말한다.그래서『사진국가』는이미19세기중후반부터만개한사진에관한다양한언어와담론,그리고사진관련기술을습득하기위한다양한주체들의노력,사진이국가공무에서핵심역할을수행한주체인관료(공무원)와그들이만들어낸수많은계기,1930년대에이르러지역의민간인이사진과국가의연대를적극도모하는일등을꼼꼼하게추적한다.(영업)사진가와지식인관료,국가,지역민모두가문명개화,나아가제국의팽창을향해질주하는프로젝트에서‘사진국가’는필연적인산물이었을것이다.
그들은사진의쓸모를어떻게인식하고활용했나?
만국박람회참가에서부터천황의순례까지
사진은이미1850년대의막부에서부터사진의전례없는기록성으로주목을받았다.서구에서사진의발명을공식화한지불과십수년남짓지난시점인셈이다.이후메이지정부에서사진은국가의비전을가장명확하게투사할수있는중요한시각장치로인식되었다.저자는사진이일찍부터국가차원의기록,정보,시각화의체계로구상되기시작했던것도이때문이었다고말한다.“손으로그릴필요가없는기계적공정,대상과의실질적인대면을요구하는재현메커니즘”(27쪽),그리하여대상을정확하게모사하고이를다시복제해쓸수있는사진의경제적효율성을신정부의관료들이놓칠리없었다는것이다.
저자는이들에게서사진의의미와효과가이매체에본질적으로내재되어있는것이아니었다고본다.낡은질서를개편해서새로운‘일본’을세우려는국가의요청혹은필요에따라피사체를기록하는‘치술의일조’였던것이다.메이지정부를이끌던이관료들은사진으로유물을조사해해외박람회에출품하고(1장),구미에서생산된사진을참조해세계를일본식으로도해한각종지리서를편찬했다(2장).또한사라져가는고건축과고기구물을조사해사진으로기록하고,이를출판해구미독자에게일본을더없이매혹적인이미지로어필하는가하면(3장),카메라를천황의순행에동행토록해순행사진을전국적으로확산하게했다(4장).막대한예산을배정해홋카이도의식민개척상황을기록한사진은정부가추진중인근대화청사진으로서국내외박람회에출품되어일본의근대화사업을힘주어자랑하는중요한장치였다(5장).『사진국가』는이처럼사진의쓰임새가공적으로사회화되는계기에초점을맞추면서,사진의다양한활용에담긴이야기를충실히기술한다.
정전(canon)에서비껴나있는복수의사진(들)
다종다양한개념의사진(들)과그경계를추적하다
『사진국가』는국가가요청한방대한조사?기록사업에서공적인기술로인정받고활용되는맥락을꼼꼼하게재구성해낸다.그때사진은결코단일한언어,개념,물질로규정되지않았다.이사진들은개인의작품중심으로역사를서술하는구미의대문자사진개념에서보면이질적인것으로비춰질수있다.저자는서구의정전화된대문자사진의개념으로는당시의사진이수행해낸쓰임새,담론,제도등을포괄할수없다고강조한다.사실대문자사진은이매체가펼쳐낼수있는수많은가능성,수많은사진‘들’의극히일부에지나지않은것이다.역사적으로도메이지근대의프로젝트를기획한지식인관료들에게사진은‘문명’을전유하면서‘문명’으로나아가는요긴한소품과도같았지만,그들이처음부터이소품의쓰임새를완벽히파악한것은아니었다.오히려매체와기술을직접체험하는과정을통해사진에서기대했던활용가능성을다양한방식으로실현할수있었다.저자는“식민지아카이브사진의기원이된메이지초기의기록사진을조사하다보니,막상사진은하나가아니라여러개의개념이었고,사진이아닌물질과매체까지아우르는이질적인‘사진(들)’이어지럽게얽힌혼성의풍경이펼쳐”(11쪽)져있었다고말한다.
『사진국가』는대문자사진의역사에서사진(들)의역사,사진의역사(들)로나아가는방법을제안한다.저자는여기저기산재한문헌과아카이브에서당시에통용되던사진과관련한다양한언어와담론,제도에주목해이것들을이질적인개념어로순차적으로정리해보인다.‘박진한모사’로서의사진(1장),그림자를잡는그림을뜻하는‘착영화’로서의사진(2장),사진과석판화,채색화의혼합물로서의절충주의사진(3장),천황의시선을따라가는시선의기록으로서의사진(4장),파노라마사진을횡축의두루마리비단에부착한‘사진두루마리’(5장)등은확실히구미사진에서볼수없었던특이한양상이다.저자는이토록여럿인사진의개념과실천,물질과담론을과연단일한의미의‘사진’으로묶어사유할수있는지반문한다.오히려‘사진’을‘사진적인것’들로펼쳐내는작업,복수형‘사진(들)’의유연한경계를포괄하는작업이야말로사진에관한새로운역사서술의방법론이될수있다고제안한다.
사진(들)의역사,사진의역사(들)이있었다면,이질적인주체들도있었다.『사진국가』에는저명한작가로서의사진가도등장하지않고,형식이나주제에기반한이미지분석과도거리를둔다.대신에영업사진관을운영하는사진업자들이소환되고사진을공무에활용했던지식인관료가등장한다.각각의장은이들의에피소드가주를이룬다.또한1930년대후반들어,사진과국가의연대를새로운차원으로주도하는주체가등장하는데,지역의민간인이그들이었다.중산층이확대되고카메라가대중화되면서민간인스스로가자체적인조사와기록,수집과배열,출판과전시행위의적극적인주체가된것이다.이에또다른종류의기록사진이거대한국가아카이브의한축을구성하게된다.이모든주체들에대한이야기는대부분의사진사에서는누락된것들이기에사진사에서는이질적인장면일수있다.하지만저자가보기에이들은사진과더불어국가주의적기획에박차를가하면서비로소매체에대한감각,기술의속성,물질의체계를이해하는사진술의주체이자사용자의자격을획득할수있었다고본다.이들이구축해낸사진이라는사회적네트워크속에서비로소국가공무에필요한기록,정보,시각화의강력한아카이빙의체계가나올수있었으며,일본은그렇게일찍부터‘사진국가’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