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관이 지배해온 문명사의 통념을 뒤흔든다!”
2020년 출간되어 역사 해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던 동양의 역사학자 쑨룽지의 『신세계사』 시리즈 두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제1권이 이제껏 우리가 배워왔던 서양 중심론과 민족주의에 기댄 세계 문명론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면, 제2권은 로마, 쿠샨, 파르티아, 진한 제국으로 대변되는 4대 제국에 영향을 끼친 헬레니즘 문화를 시작으로, 고대 세계의 종식을 불러온 흉노의 출현과 그들로 인해 어떻게 세계 민족 지도가 바뀌어 되었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본다. 세계 역사에서 흉노의 행적이 묘연했던 건 지금껏 역사에서 4대 제국 문명 사슬의 중간지대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지만, 대초원을 지배했던 흉노는 훗날 돌궐로 넘어가기 전까지 굽타 제국을 위협했던 장의사 역할을 한 역사의 중추세력이었다. 또한 지금의 스웨덴 지역에서 살아가던 고트족이 로마를 붕괴시켜 중세 시대를 촉발했다는 기존 역사 담론을 해체하고, 비잔틴 제국, 카롤링거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현대 유럽의 지도가 형성되었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한다. 유럽이 1천 년에 걸쳐 변모하던 이 시기에 즈음하여, 이슬람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다룬다.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라 불리는 대식 제국이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의 문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후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등으로 분할되어 종말을 맞이했는지까지 상세히 서술한다. 마지막으로 불교의 변모 형태를 통해 인도의 역사를 조망한다. 힌두교와 불교와 자이나교의 갈등을 통해 기존에 알려진 인도 역사에 대한 해석을 뒤집으면서 『신세계사 2』는 최종장을 기약하며 막을 내린다.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고 대만과 미국에서 수학한 후, 스탠퍼드대학교 및 미국과 캐나다의 대학교에서 오래도록 강의해온 역사학자 쑨룽지는 동서양의 역사적 관점을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이력의 소유자다. 쑨룽지는 이 책 『신세계사 2』에서 동양 혹은 서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사료에 근거한 글로벌 사관을 바탕으로 전쟁과 교류를 통한 문화의 전파, 국가의 소멸과 탄생, 종교의 부흥에까지, 장대한 세계사를 흥미롭게 펼쳐낸다. 진화사, 정치사, 전쟁사에서 종교사, 사상사, 사회사, 문화사까지, 이 책 『신세계사 2』는 “통섭역사학”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쑨룽지는 책의 서문에서 “‘옛것’을 장악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다”라고 말한다. 역사는 지나간 것이지만 항상 신선하다. 시대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각각의 다른 인식과 해석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세계사가 특히 그러한데,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습관적으로 시간의 축에 따라 역사를 나열하고 서양 중심의 사고에 따라 내용을 배열한다. 현대의 많은 글로벌 역사학자들이 이를 반성하고 한층 더 넓은 시야로 관용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관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쑨룽지가 그들 중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글로벌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이 책 『신세계사 2』는 신랄한 통찰의 자세로 기존 세계사의 서사 전통을 철저하게 뒤집는다. 치밀한 고증을 통한 세심한 분석과 대담한 가설, 도전적이고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견해,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한 수많은 사실들로 충만한 이 책은 참신하면서도 놀라움으로 넘쳐나 독자의 사유 영역을 한층 더 확장시킨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금’은 점점 ‘옛것’으로부터 멀어진다.
따라서 역사는 ‘새로움’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새로워질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계속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다.”
- 저자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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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사 2』의 내용 소개
『신세계사』 시리즈(총 3권)의 두 번째 책인 『신세계사 2』는 1권에 이어 17장에서 29장까지, 총 1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7장 구대륙을 가로지른 문명 사슬: 4대 제국과 실크로드
고대 유라시아 대륙의 4대 제국, 진한제국, 쿠샨, 파르티아, 로마를 하나의 문명지대로 연결해 고대 세계의 최종적이면서도 최고의 골격으로 삼았다. 알렉산더가 개척한 헬레니즘이 이 문명에 끼친 상이한 영향과 그로 인해 달라진 정치체제를 비교해본다.
제18장 미륵과 메시아: 세계적 구세주형 종교의 탄생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은 헬레니즘을 중앙아시아까지 전파했다. 헬레니즘은 지중해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을 위한 길을 닦았고, 페르시아에서 내륙 아시아 및 인도 일대에서 현지의 요소와 융합해 ‘그리스 아시아 문명’을 만들어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구세주론이 성행했고,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헬라화 된 정권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영향을 융합해 원시불교를 미륵 숭배로 변모시켰다.
제19장 제국의 멸망: 흉노는 고대 세계의 장의사
4대 제국 문명지대의 해체와 고대 세계의 종식을 다루며 이 과정에서 흉노가 어떻게 장의사 역할을 했는지 논증한다. 4세기 말 흉노의 서부 이주가 유럽 민족의 대이동을 유발한 나비효과의 시작점이 되었고, 훗날 또 다른 이주를 유발하게 되는 고트인 또한 조직을 갖춘 알프스산 북부 대제국을 이루었다. 세계 역사에서 흉노의 행적이 묘연해진 것은 지금껏 역사에서 4대 제국 문명 사슬의 중간 지대를 소홀히 다뤘기 때문이다.
제20장 아프리카 고대사의 형태와 후기 고대사의 노선
북아프리카는 지중해의 일부분이지만 고대 이집트 역사의 전반부는 서남아시아 역사에 편입되는 요소가 다소 많았고 그리스와 로마에 정복된 뒤로는 지중해 역사로 이전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줄곧 나일강 상류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흐름은 누비아의 역사로 확대 발전되었다. 누비아에서 사하라 남부에 연접한 주랑走廊을 가로지르면 서아프리카에 이른다. 서아프리카 문명의 발전은 어쩌면 현지의 요인으로 말미암은 결과일 수 있다. 선사 시대 블랙 아프리카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어 인류의 탄생지가 될 수 있었지만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 왕성했던 생명력은 아프리카를 바이러스 자생의 온상이 되게 했다. 지리적 구조 또한 역사 시대의 인류의 생존에는 극단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되었다.
제21장 고대 세계에서 탈피하지 못한 고트족
이 장에서는 ‘게르만인이 로마를 멸망시킨 사건이 상고 시대에서 중고 시대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라는 잘못된 관점을 수정했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로마와 운명을 함께한 것은 고트족이었다. 제국 말기 역사의 ‘흉노라는 삽입곡’은 로마 변방의 우환이었던 고트족을 통일하여 로마에 위협을 가했다. 하지만 흉노제국이 붕괴하자 고트족 출신 집단이 서로마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최후의 로마인’ 역할을 감당했고 이로써 서로마의 멸망을 476년까지 미룰 수 있었다.
고트족이 미래 유럽의 문을 연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건 고대 말기의 신학 논쟁에 지나치게 깊이 발을 들여놨기 때문이다. 그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개종하기도 한 아리우스파를 신봉했지만, 378년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아리우스파에 찬동했던 로마 황제 발렌스를 죽였는데, 그 바람에 니케아 신조 복권을 도모했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등극하였고, 결국에는 그의 신앙이 국교로 확정되었다. 이는 훗날 고트족이 로마에 입성한 뒤로도 로마인과 ‘정체성 충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제22장 서로마의 유산은 누구에게로?
동게르만족(고트족)이 고대 로마와 함께 멸망한 이상 훗날 새로운 서유럽의 문을 여는 주인공은 서게르만족이 된다.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속속 라인강을 건너온 프랑크족은 신속하게 로마 교회로 개종한 뒤 기존 갈리아성의 로마 지주와 손잡고 날로 라틴화하였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뒤 남은 로마 국교(즉, 로마 교황청)는 ‘서로마 제국’을 부활시킬 필요가 생겼는데 그때 교황청의 눈에 들어온 것이 프랑크 왕국이었고 둘은 힘을 합쳐 새로운 중심축을 형성, 미래의 유럽을 탄생시킨 배아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영국 제도의 ‘원서遠西 기독교’는 교황청 대신 편서 지역 변두리에서 가업인 기독교를 수호하는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황청과도 경쟁해야 하는 이중의 짐을 져야 했다.
제23장 끊임없이 변모했던 나라, 비잔틴
비잔틴은 오랜 기간 발칸과 소아시아라는 두 반도를 손에 넣기도 했지만, 중심지로부터 해안으로 밀려나고, 다시 중심지를 탈환하지만 이내 잃고 마는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후반부로 가서는 십자군과 오스만에 의해 분할되는 등 그 형태가 만화경처럼 끊임없이 변하였다. 이는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방국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고대 로마 말기 기독교의 국교화는 사상 통일을 위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은 로마 교회의 삼위일체론과 동방의 기독교 단성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동방을 이슬람의 손에 빼앗기고 만다. 신의 완전성은 훗날 중앙에서 성상 파괴 운동으로 변했다. 삼위일체론을 적극 지지했던 서방 라틴 교회는 끝내 사이가 틀어졌다. 9세기, 비잔틴은 슬라브에 동화한 그리스반도 중심부를 수복하였고 그 포교 공세는 대 모라비아를 향했다. 훗날 비록 라틴 교회에 패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슬라브 교리로 불가리아와 루스를 얻을 수 있었다.
제24장 아라비아인의 ‘다르 알 이슬람’
고대 로마의 ‘3세기 위기’ 때는 삼국이 대치하는 정세가 펼쳐지는데 그중 하나는 아라비아인에 의해 세워졌다. ‘고대’가 종식된 후 7세기에 이슬람이 권토중래하면서 아라비아인은 비잔틴의 4분의 3을 점령하고 전체 사산 제국을 병탄한 뒤 페르시아만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칼리프(선지자의 대리인) 정권을 세웠다. 초기에는 선지자의 후예들, 즉 지도자 계층에서 배제된 이들이 이맘 전승의 지하 정권인 시아파를 형성하여 수니파로 불리는 칼리프 정권과 대립하였다. ‘다르 알 이슬람(이슬람의 땅)’의 추가 확장은 비잔틴과 프랑크 왕국, 토번 제국, 하자르 칸국, 북인도의 라지푸트족에 의해 가로막혔다.
제25장 이슬람 문명의 황금시대
아바스 정권 초기, 문화적 전성기로 접어든 대식 제국은 수도 바그다드에 과학연구 센터인 ‘지혜의 집